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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3월 5일 오후 예배)
성 경 : 요한복음 2:12-25(신약 145)
요즘 황영웅이란 이름이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게 보신 분들도 있고,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는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되는데 MBN이란 방송에서 트롯 경연 대회에 참가해서 인기를 끌던 사람인데 최종 결승을 앞두고 자진 하차 했습니다.
이 젊은 가수가 문제가 된 것은 학교 다닐 때 학폭의 가해자였는데 장애를 가진 학생에 대해 무자비하게 폭행을 하고 20대에는 친구를 폭행해서 벌금형을 받기도 하고 데이트 폭력 등 과거에 다양한 폭행과 폭력을 행사한 것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황영웅의 이야기를 보면서 놀란 것은 그런 과거에 대해서 진솔한 사과도 없이 끝까지 경연에 참가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보도되는 이야기를 보면 어린 한 때의 실수라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 젊은 가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 프로를 진행하는 방송관계자들의 태도 때문입니다. 이 친구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여러 이야기들과 증언들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학폭에 대해서는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분위기인데도 불구하고 방송관련자들은 계속 주저하면서 여론을 악화시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많은 피해자들이 있음에도 방송관계자들은 돈이 목적인 것처럼 보였고 그에 대해서 분노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계획된 돈벌이 중에 하나인 콘서트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자 부랴부랴 하차 시킨 것처럼 보였다는 점입니다. 콘서트 티켓이 매진됐다고 홍보했는데 예매 취소가 늘어나면서 급하게 하차하는 방향으로 정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돈이 중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돈이 목적이 되고 돈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도 돈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을 때 성전 안에는 많은 장사꾼들이 있었고 예수님은 성전에서 매매하고 환전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다음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습니다. 12절을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가버나움에서 오래 머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13절에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성전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은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삼킨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데
성전 안에 장사꾼들이 있었습니다. 14절을 보면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여기에서 ‘성전’은 헬라어로 ‘히에론’으로서, ‘성소’나 ‘성전 건물’을 가리키는 ‘나오스’와는 달리 성전의 광장을 포함한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희생 제물용 가축을 파는 상인들과 환전상들에 관한 언급으로 보아 이것은 구체적으로 성전 광장 내의 이방인의 뜰을 가리킨다도 볼 수 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이곳에는 희생제물용 가축들로 붐볐고 돈 바꾸는 상인들이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희생 제물용 가축은 구약 시대부터 소, 양, 염소, 비둘기 중 결함이 없고 정결한 1년생으로 국한되었으므로, 이방이나 먼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돈을 가져와서 희생 예물을 사서 바쳤습니다. 특히 당시의 자료에 의하면, 희생 짐승 거래는 대제사장이 주관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 여기에서 ‘돈’이란 20세 이상 되는 유대인이나 개종한 이방인이 성소에 바치는 반 세겔의 속전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성소의 세겔은 민간용 세겔과 다른 도량형을 채택하고 있었고, 로마나 기타 각 지방의 돈도 성소의 세겔로 교환하여 비쳐야 했으므로 절기때면 환전상들이 성전 광장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환전에 대한 것은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관장했으므로, 이들은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희생 제물을 판매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막대한 수입을 올렸고, 환전을 통해서 산헤드린 공회가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장사하고 환전하는 것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멀리서부터 끌고 올 수 없으니까 돈을 가지고 와서 성전에서 사서 제물을 드리는 것은 어떤면에서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짐승의 소리가 들리고, 배설물들로 인해서 악취가 나고 또한 대제사장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보다 돈벌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과 예배를 돈벌이에 이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사꾼과 환전상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셨습니다. 15절을 보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유월절을 맞이해서 성전에 오신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고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느끼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유월절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인 상태에서 성전 뜰에서는 짐승들의 우는 소리 장사꾼 들의 호객행위 하는 소리, 짐승들로 인한 악취가 났습니다.
한쪽에서 제사를 드리고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고 한 곳에서는 장사하고 완전히 시장통 같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광경을 보시고, 채찍을 만들어서 양이나 소를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환전상들의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장소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사꾼들을 내쫓으셨습니다. 현대교회는 예배를 위해서 또는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서 교회에서 물건을 매매하거나 하는 일들을 종종하게 되는데 주님은 그런 것에 대해서 엄중히 경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사꾼들을 내쫓으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17을 보면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성전에서 장사하는 것을 보시고 분노하시면서 채찍으로 짐승들을 몰아내시면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존재 목적을 분명히 알고 목적에 맞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는 곳입니다. 우리가 성전에서 해야 할 일은 예배하는 것이고 기도하고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전은 그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고, 성전을 사람들이 원하는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 56: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마 21: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2. 보여주실 표적
성전을 청결하게 하심으로 인해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적개심을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을 비난하거나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예수님에 대해서 공격할 꺼리를 찾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에게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고 말했습니다. 18절을 보면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표적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기 위해 구약 시대 때부터 내려온 선지자 식별 방법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유대인들의 기대 속에는 메시아 시대가 도래할 때 하나님의 크신 이적이 나타나리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 소식을 들은 산헤드린 당국자들은 이를 유대교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이단으로 단정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좀더 신중을 기하는 의미에서 성전 정화와 같은 파격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권위가 어디서 온 것인가를 묻기로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결코 메시아가 아니라는 확신하에 예수님께 메시아의 표적을 요구함으로써 예수님을 이단으로 몰기 증거를 찾으려고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그 표적을 보여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은 표적을 요구하는 무리들에게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 동안에 다시 일으키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충격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롯이 오랜 세월 지은 성전이고 아직 완공된 상태도 아닌데 이 성전을 헐면 사흘 동안에 다시 일으키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성전의 목적을 상실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과 그들이 지금 알고 있는 성전은 다른 것이지만 예수님은 성전에서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고 장사꾼들의 소굴을 만들었다면 이런 성전은 존재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성전을 헐어버리면 내가 새로운 성전 즉 원래 목적에 맞는 성전을 다시 세우겠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요한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22절을 보면
2: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이 성전을 헐면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듣고 유대인들은 놀라서 말했습니다.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 지었는데 삼일 동안에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단 말이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성전의 시대가 끝났고 예수님의 시대가 올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도 그 당시에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믿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제사의 성전이 아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예수님을 통해서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3.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요한복음에 기록된 첫 번째 유월절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모두 아신다고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유월절 사건을 마무리 하면서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다고 기록했습니다. 23절을 보면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요한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첫 번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많은 일을 하셨는데 그 사역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에 하신 사역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역을 하시면서 사람들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24절을 보면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여기서 의탁하지 않으셨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신임하지 않아다.”, “마음을 주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하시면서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잘 아시기 때문에 그들을 믿고 전적으로 맡기고 신뢰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25절을 보면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에수님은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사람들의 증언을 받으실 필요도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도움이 없이도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을 의지하고 도움을 받지 않으시고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사역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속을 예수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아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시편 139:1-3
시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시 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시 139: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우리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오늘도 일하시고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고 은혜를 받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참빛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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