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지난 줄거리에서 빠진 이야기 부터 조금 더 적겠습니다.
통신대대 가설중대 근무당시 한해는 눈이 엄청많이 내린해에 기상하자 마자 재설 작업이 있었습니다.
전 군입대 하기 전엔 술과 담배는 배우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저의 아버님은 술을 자시면 술 주사가 좀 있어서요.
그래서 나는 술은 먹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 했던 것입니다.
군생활 하며 동기들과 한잔 두잔 배운 것이고
술을 접하게 되었지요.
담배는 지금까지 태우지 않아요.
다시 이야기로
통신대대 입구에서 국도 나가는 길까지 한 500m쯤 거리인데, 중대인원 모두 도로 재설 작업을 나갔습니다.
위병소에서 3중대 막사가 가까워서 재설구간이 3중대대 관할이였지요.
시간이 좀 길었는지
배가 좀 촐촐했는지 PX에서 막걸리를 한통 사와서 재설작업 나간 병들 전체 모두 한두잔씩 하고 막사에 왔는데,제가 못하는 술을 한잔하여 내무반에 들어와 실수로 오바이트를 하고 말아
았습니다.
청피도 하고 분명히
고참병들에 지적이 있겠다고 예감했었지요.
잠시 누워서 쉬니 술도 깨고,예감되로 그날 고참병 한사람 한데,
불려가 따구 몆대
벌을 받았지요.ㅎ
쫄병이 술한잔 먹고 실수도 벌 받을 이유 겠지만,군복 보수병으로 좀 편안 임무에 그 고참병이 시샘이 있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해요.
군생활 하면서 개인적 구타는 처음이였고 딱 한번
있었습니다.
단체 기압은 누구나 쫄병시절 받는 것이 군생활이지요.
야심한 밤 겨울에 속옷 바람으로 밖에 집합시켜, 2~30분 세워도 놓고 동기생 하나가 소소한 잘못이 있음,단체기압으로 꼬질대로 손바닥 맞기도 하고 업드려 퍼처는 수시로 기압 등등 요즘은 군생활에 그런 기압은 없어지고 살아졌겠지요?
다시
무선중대 병영생활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무선 중대가 3.5중대 두개 중대니까,5중대 연락병과 가까워지고 중대에 큰 일이 없어면 둘이 만나서 대대 들어가고 업무보고 돌아오고 했습니다.
5중대 연락병은 이상병인데,
고향은 경기도 광주 경안리 체구도 저와 비숫하고 성격도 저와 비슷해서 마음이 맞았습니다.
군생활 당시는 제가 허리싸이즈 28인찌키는168cm 체중은 57정도 날씬했습니다.
지금은 키는 줄고 무개는 더 나가고 그렇이요.ㅎ
군단에서 대대 거리는 4K정도 걸어 다닐때도 있고 시외뻐스는 지역내서는 전령완장 차고 증 제시하면 무료승차 입니다.
5중대 연락병과 둘이 다니면서 시간이 많이 남어니까 이동시내 목욕도 자주 다니고
다방에 들어가 차마시며 가요도 듣고 분식집에 들어가 라면도 사먹고.여름엔 골짜기 계곡에 들어가서 목욕도 했었지요.
한번은 목욕탕에 있는데,우리 중대장님이 목욕하러 오셨는데,
탈의실서 만났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목욕왔나고 하시면서
웃으셨습니다.
만일 탕안에서 만났어면.
짝사랑 하던 중대장님 고추 구경도 했을덴데요.ㅎ
마음 맞는 친구였고 제대후도
연락하고 오고 갔지만 세월이 흐르고 가깝게 자내던 군 동기들도 한명두명 마음에서
멀어지고 잊어졌지만,
가끔은 추억을 드듬고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군 동기생들이 보고도 싶습니다.
어디선가 건강히 저와같이 황혼에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계시겠지요.~
저보다 10개월정도 고참병이 있었는데,직책은 보급병,저를 많이 좋아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썸씽은 없었습니다.
저에겐 착사랑 이지만
중대장님만 눈에 보이지 아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니까요.ㅎ
절 좋아하던 보급병 그분이 유일하게 지금까지 소통하는 분이시며 현제 구로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보급병 고참이 절 좋아하니까,군복도 부탁하면 A급으로
지급 받을 수 있었고 그때부터 군복에 풀을 먹어서 세탁소 막껴서 다리미질로 바지 줄 세우고 상의는 등판은 가로줄 하나 세로줄은 셋을 세우지요.
일주일에 한번씩 갈아 입어며 병영 생활을 했었습니다.
우리 소장님 김소위 그분이 절 보시면 물찬 제비라고 하셨습니다.
국방색 작업복은 제질이 면이여서 풀 빳밧이 먹어 다리미로 줄세워
입으면 일주일은 새옷처럼 입었습니다.
저는 다른 작업을 안하니까요.
풀은 취사반에서 짠밥 얻어와 면 속옷으로 풀자루 만들어 짠밥담고 주물어 풀먹어 말리면
빳밧하고 다려입었죠.
세탁병도 본부소속,이발병도 본부소속 저와 가까운 사이니까
이발도 자주하게 되었고 깔끔한 유상병이라고 중대내에서 상관님들한데 친찬 받았습니다.
저는 그당시 중대장님을 짝사랑
하였기에 아무도 제 눈엔 들어오질 않았지요.ㅎ
또 한친구는 이발병인데,
군단으로 와서 만난
동기병이며 3중대 소속 중대본부 소속여서 한 침상을 쓰게 되었고 저를 좋아하고 한번 안아보려 했지만 허락하지 않았고 병영생활 친구로 지냈습니다.
고향은 경북 김천 가문면이였고
그 친구와도 가까이 지내며 외출도 함께 자주나가서 놀고 했었지요.
가끔은 부식 차가 들어오면 열무며 배추를 얻어와 제가 내무반서 김치를 담구어 중대본부
소대원과 식사할때
나누어 맛있게 먹기도 했었지요.
저에 어머니께서 일찍 하늘 나라로 가셨기에
부억일을 간간히 하여
밥짓고 반찬 몆가지는 할 수 있었습니다.
위로 누님들은 시집가시고 형님은 객지에 거주 아버지와 저 남동생 셋이 남았었지요.
이야길 하다보니 이런 저런 이야길 다 하게 되었네요.
7편엔 이제 병영생활
말이 되겠습니다.
댓글은 안쓰셨지만,
재미있게 읽는다고
카톡주신 회원님들이
여러분이 계시기에 긴 시간을 활용하여 쓰게됩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격어온 군생활 이야기지만,우리들의 이야기가 좀 담긴 이야기여서 쓰게 된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통신대대 연락병 유상병님은 부대내에서 인기가 참 많으셨군요 ㅎ
소풍산우회 회장님
인기가 많으신데
다음카페에 병영생활 연재소설 등재
인기리에 구독자 증가하네요
대단하시네요 ㅎㅎ
끝내 중대장님 꼬추는 못 봤군요~ㅎ
아쉬워라~ 넘 생생한 군 생활 마치 제가 갔다온듯 생생합니다~
근데 이글 쓰실때 폰에서 직접 찍으신건지~
컴퓨터로 타이핑 하신건지 그것이 궁금합니다~ㅋ
아우님 졸필을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폰으로 쓰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