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응급의학과 젊은 의사 54인 지음 『응급실, 우리들의 24시간』
응급실 앞의 리어카
분노가 일었다. 강남 피부미용에 종사하는 친구들의 전언으로는 하루에 레이저 토닝 쁘띠성형 슈링크로 2천만 원을 카드 일시불로 긁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생명을 포기하고, 다른 이는 피부의 윤기를 위해 수 천을 쓰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일까.
(반신마비가 되어 남편의 리어카에 실려 온 예순을 넘긴 뇌졸중 의료급여 환자. 그 녀의 치료 포기와 자의퇴원을 보면서) 부끄러웠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모습에 한심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생활비와 간병비를 내 조그만 인턴 월급에서 쪼개서 낼 수도 없는 것이고, 모든 이를 그렇게 구제할 수도 없을 터였다.
현장에서 바라본 의료 체계의 위기는 분명하다. 필수 의료의 인력과 규모는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수술할 외과 의사가 없어 암보다도 범복막염으로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
나도 편하게 수련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다. 스스로는 사명감을 외치지만 의사에게 사명감과 책임이 부족하다 평하는 비의료인에게는 36시간 연속 근무를 한 번 서 보고 말하라 하고 싶다. 한 달 수술방이나 응급실에서 중증 환자에 시달린 뒤에도 과연 그가 같은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돈만 밝히는 의사들’이란 댓글을 볼 때면, 이렇게 고생하는 동료들이 돈 버는 것이 이렇게 나쁜 일인가 싶다. 수조 원 재벌들, 집값등의 불로소득, 사업하는 이의 축재에도 침묵하면서 노동자인 의사는 만인의 적이 되는 것인지도 도통 모르겠다.
인간은 시대와 사회와 환경의 맥락에서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존재이다. 세상은 당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 배는 맞는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세상에 살게 될까.(류옥하다전공의 글)
의대증원 2천명
면허를 얻은 지 29년 차, 내과 개원 22년 차 의사가 필수의료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의사 면허 10년 차 미만의 젊은 의사의 글을 읽었다. 읽는 중에 옛날 생각도 나고 사연이 슬프기고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또한 대단하기도 해서 울컥하다가도, 미소를 짓기도 하고 뿌듯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들은 지금 진료현장을 떠나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와 공공의료를 살리기 위해, 향후 초고령사회에 요구되는 의료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2천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필수의료를 현장에서 담당하고 있는 젊은 의사들은 이에 반발하고 손을 놓아 버렸다. 아이러니하다. 상황은 공유하나 인식이 다르다. 누가 옳을까? 누가 답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그 답이 기성세대 선배의사나 손익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 안 한다. 나는 젊은 의사들이 답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들의 언어와 고민을 경청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의대 증원 2천명의 실목적은 앞으로 수 년간 수도권에 지어질 6천 6백 병상 규모의 대형 병원의 의료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병원자본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필수의료 위기, 공공의료 취약은 현 의료시스템의 결과다. 이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 의사 숫자만 늘린다고 해결이 될까? ‘질 좋고 싼 한국 의료’을 떠매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필수의료의 몰락은 저숫가와 적대적인 의료소송과 범죄화에 따른 젊은 의사의 수련 기피가 주 원인이다. 힘들지만 대우해주고, 불가항력에 좌절할 때 격려를 해 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누구는 필수의료를 반드시 담당할 것이다.
의료의 공공성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 공공의료는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그만큼 비용도 정부가 대야 한다. 육군사관학교처럼 공공의대를 신설하여 공공의료를 담담할 인력을 키우면 된다. 하드웨어도 필요없다. 기존 국립의과대학에 위탁교육을 하며, 때때로 모여 공공의료를 교육하면 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의료수요가 늘어나지만, 뒤이어 저출산 사회가 이어진다. AI와 로봇이 결합된 의료 기술이 노동집약적인 의료 인력을 대폭 대체할 수 있다. 또한 의사를 비롯한 다양한 보건의료인력의 협력으로 향후 의료 수요를 충족할 수도 있다. 즉 의삿 수가 중요하고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소아과 오픈런이나 응급실 뺑뺑이는 전국적인 현상이나 보편적인 문제가 아니다. 세종에는 소아과 오픈런이 있지만 보령에는 없다. 보령은 응급환자의 대처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렇듯 지역마다 의료 현안이 다르다. 해서 해결은 거시 정책이 아니라 지역 정부와 지역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 숙의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전공의의 자기 반성
‘의사는 병만을 잘 고치는데 만족하면 안 된다. 병을 넘어서 환자를 볼 줄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사회, 국가에 공헌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난 이 문장을 읽고 울컥했다. 한때 우리가 젊을 때 ‘조국의 내일은 청년에게 달려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우리 세상에 희망은 있다. 이들이 있기에.
책 익는 마을 원진호
첫댓글 2024.07.07: 그럼에도 국민들이 의대증원을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수의료,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서? 아니다. 신분제의 타파를 위해서는 아닐까? 의사신분을 귀족에서 평민으로 전환(강등이라는 표현은 쓰지 말자)하고자 말이다. 신분제가 현대 사회에 사라졌다고 하지 말자. 신분제는 변형되고 왜곡되면서 이어진다. 신자유주의, 불평등구조가 심화되는 우리나라도 '소득과 교육수준뿐 아니라 주거지, 학교, 소비시장등등'에서 계층적인 분리가 확연해지고 있다고 한다. 피라미드 상층구조에 의사집단(개개 의사는 서로 다를지 몰라도)이 분명있다고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신분제 타파를 위한 의대 증원 정책은 어찌보면 진보적인 면도 있다고 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