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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작품에서 느낀 과학과 예술의 무경계
거위의 꿈 추천 0 조회 152 10.02.27 10:2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작품을 보며 느낀 과학과 예술의 무경계

 

흔히들 과학과 예술은 대립적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과학은 인간세계에 있어 지식의 범주에서 끊임없이 누적적으로 진보 되어 왔다.

반면에 예술은 창의적 상상력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서 순간적인 은유의 포착을

해왔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즉 예술문화는 창조적이고 상상력에 기초하여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지식으로

과학처럼 누적적이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막연한 일반론을 깨는 견해는 다른게 아니라 철학자 로저 스쿠루턴에

의해서 설명되어 진다.

 

-토마스 왓슨/ 생각의 역사에서 로저스쿠르턴의 과학과 예술문화에 대한 탁견

"독창성이란 무조건 관심을 끌려고 하거나 세상으로 부터 경쟁을 차단하기 위해

충격을 주거나 교란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다.

가장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보면 널리 알려진 어휘를 천재적으로 응용한 경우다....

그런 작품들이 독창적인 이유는 과거를 거부하거나 다수의 정당한 기대를 마구

짓밟아버리기 때문이 아니라 전통적인 형식과 레퍼토리에 예기치 못한 놀라움이라는

요소를 얹었기 때문이다.

전통이 없으면 독창성도 존재할 수 없다.

독창성은 어떤 전통을 배경으로 할 때에만 가능하다."-

 

Randy Crawford - ALMAZ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루이스 부르주아 작품전

 

“에술의 목적은 두려움을 정복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루이스 부르주아

1911년 파리에서 태어난 루이스 부르주아는 수학의 예측가능하고 확고한 체계에 끌려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대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곧 수학적 관념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이론적 구조일 뿐임을 깨닫고

 예술의 세계로 들어서기로 결심한다.

부르주아는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와 에꼴 뒤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몽마르트 및 몽파르나스에 있는 화가들의 스튜디오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시절에 그녀를 가르쳤던 여러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페르낭 레제(Fernand L?ger)는 부르주아에게 삼차원에 대한 관념을 심어주어 훗날 조각가가 되는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2010년 2월 24일 수요일 저녁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작품을 만났다.

작품 전시 오프닝 리셉션에서 과학과 미술의 상호 연관성을 머리속에 떠올린 사람은

아마 나 하나 뿐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한마디로 LB(루이스 부르주아의 이니셜/작품사인에서)의 그림은 프로이드와 융에서 발견된

과학적 토대의 꿈의 해석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토마스 왓슨을 생각했고 연관을 짚어 냈다.

작품을 보면서 내내 그생각으로 가득찼다.

함께 동행한 지인이자 친구인 배기성콜렉셔너와 처음 소개 받은 갤러리 대표도

아마  그런 생각을 조금씩은 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1911년 파리에서 출생 했고 70세가 넘어서야 비로서 주목을 받은 현존하는 작가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 간주된다.

지금 그녀의 나이는 한국나이로 100세이며 직접오지는 못했다.

여성으로서 아버지로 부터 비롯된 억압적이고 억눌린 성의식이 세월이 무척 흐른후 발현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즉 그녀가 겪었던 아니 겪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성적인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기억의 저편에 눌려 있다가 솟아나지

않았을까하는는 생각들이다.

 

여기서 잠시 이해하자면,

프로이드는 꿈의 해석이라는 정신분석에서 회상을 통해서 기억해낸 상당수가

성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와 함께 회상을 통해서 기억해낸 사건들 중 다수가 실제로는 일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도 밝혀 냄으로써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개념의 토대를 마련했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반대로 딸은 엘렉트라 컴플렉스를 가진다.

즉 아들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의식이 아버지를 경쟁자로 여긴다면 딸은 그반대의 경우이다.

이런 동기화는 평생 지속 되면서 인격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고 프로이드는 주장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24점의 드로잉과 3점의 조각이다.

우선 국제갤러리 전시관에 들어서자 마자 눈길을 사로 잡는 강력한 기운이 있다.

붉은 꽃의 그림이 반복적으로 어지러운듯 정렬되어 있는 장면이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꽃과 여성이라는 소재를 통해 강한 생명력과 함께 욕망과 성을

시각화 했다.

나의 견해는  그녀가 표현한 은유적 작품이 감추어진 억압된 성의식이라는 점이다.

사실 작품을 첫 번째 보자 마자 머리속을 스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프로이드와 융에 대한

끊임 없는 논란속으로 나를 이끄는 것이다.

미술작품을 앞에 놓고 과학적 사유를 한다는 것이 다소 혼란할 것 같지만

최소한 LB의 작품이야 말로 작품을 이해하는데 직결되는 기저라는데 이의가 없다.

 

“꽃은 나에게 있어 보내지 못하는 편지와도 같다.

이는 아버지의 부정을 용서해 주고, 어머니가 날 버린 것을 용서해 준다.

또한 아버지를 향한 나의 적개심도 사그라지게 한다.

 꽃은 나에게 있어 사과의 편지이고 부활과 보상을 이야기한다.” 라는 작가의 언급과도 같이

꽃의 소재를 통해 작가는 소중한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어 치유와 안정을 찾아 나아간다.

-국제 갤러리 보도자료 중에서-

 

많이 알려져 있듯이 프로이드는 인간본성이 네가지로 구성되었다고 본다.

무의식. 억압. 유아성욕.정신 삼분법

(정신은 자아의식에 해당하는 에고ego

포괄적 의미의 의식에 해당하는 수퍼에고 super ego

무의식의 생물학적 표현인 이드id의 세가지로 구성돼 있다고 본다.) 

바로 LB의 작품을 보자마자 머리속에서는 과학적 근거와 예술작품의

창의적 상상력이 휘모리 하듯이 전개 되고 있었다.

아마도 동행한 지인들은 이사람이 제대로 작품을 보고 있나 하고

의아해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화를 하거나 한 가지 사물을 동시에 보면서도 각기 다른 사유의 창을

통해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모양이다.

작품을 일일이 하나씩 풀어 놓을 일은 아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100세에 도달한 대가의 열정과 피,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억눌린 성에 대한 직접일어나지 않은 일에대한 피해 의식도 읽을 수 있다.

더구나 다양한 드로잉과 이상적인 안식처로서의 여성과 모성은 그녀가 아버지로

부터 받은 박탈당한 자애와 부성을 빗대어 표현 했을 거라는 추론을 하게한다.

 

그녀의 작품은 한마디로 예단하기 어려울정도로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추상에 가까운 조각은 여성의 일부분을 상상하게 하고 한가지 시대적 사조에 잠식되지 않는

자유스런 대가의 풍모를 느끼게 한다.

아마도 예술이라는 커텐츠가 가지는 가장 특성적인 장점을 마주하게 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드로잉과 설치에 가까운 작가의 작품세계는 나이와 기력에 관계없이 마구 사유되고 표현 되었다.

결국 그녀의 작품세계를 배태하게한 원초적 기저가 그녀의 내면에 깔려있는 기억과 감정이라는 것이다.

일부는 긍정적으로 작품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또 다른 측면으로 그녀를 회복 시키는 힐링의 의미로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인간의 성격은 편안한 생활 속에서는 발전할 수 없다.
시련과 고생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은 단련되고
또한 어떤 일을 똑똑히 판단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며
더욱 큰 야망을 품고 그것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헬렌 켈러

 

작가가 이야기 하는 표현하는 의식과 무의식이 전제된 붉은 색의 꽃들과 여성의 신체를 표현한

조각들은 각기 다르지만 한가지를 지향 한다.

꼭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추하고 어둠속에 갖혀 있어야할 어린 시절의 감춰진 기억에서 부터

성인이 되어 가면서 이해하게된 모성과 부성의 크로스 오버가 표현된 것일 수도 있다.

예술문화와 과학이 이작가의 두뇌와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은유라는 독특한 드로잉 그려진 것이다.

대가의 작품을 풀어내고 이해한다는 것은 아마도 다빈치 코드를 처음 대하는 것과 같이

당혹 스럽고 황당한 일이 될지 모른다.

감상에의한 받아들임은 갤러리에 모이는 참여자 각자에 맡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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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거위의 꿈 /블로그니스트 leesu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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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2.27 11:03

    첫댓글 예술의 경지는 무한하겠지만 ..깨달은자만이 느낄수있는 치밀하고 예민한 감각에서 창조되는것,, 과학은 그들이 증명하지못하는 한계점을 블랙홀로 정의하고있는것인지도.. 그런면에서 예술은 어쩜 과학보다 더 진실할수도 있으리란 생각도든다 ,,,거짓과 환영을 담을수 없는 현실의 도구만을 사용하기에,,,환영에 길든인간은 그속에서도 스스로 블랙홀을 만들지만 ....우째끼나 항상 좋은글 잘 봤습니다 ~~헬렌켈러의 고통속에서 정신이 단련된다는말, 다시금 새겨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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