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안경 김 신 용 나무들이 돋보기안경을 쓰고 있다 달이 떴다 주해(註解)는 언제나 풀벌레 소리처럼 작다 생의 원문을 골격을 마치 깁스라도 하듯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작아진 것을 더 크게 보려는 노안(老眼)의 골조공사 같은 것 명료함은 뚜렷한 윤곽의 것이지만 흐려보인다는 것은 애매함 만이 아니라 사물을 재해석하려는 것 새롭게 의미의 거푸집을 짓는 것 그러므로 돋보기안경은 고고학적 사고를 지닌다 쓰레기 더미에서 뒹굴어 다니는 녹슨 고철 따위도 목발을 짚고 걸어 나오게 한다 그 정크아트적 상상력이 새롭게 망막의 윤곽을 열어주는, 돋보기안경 사람들은 그런 돋보기안경을 근심스런 눈으로 쳐다보지만 흐린 눈에 걸쳐진 불룩한 유리알 또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만 이제 멀리 보지 않고 마치 근시처럼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생을 나무처럼 한 자리에 오래 붙박혀 있게 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풀숲속의 패랭이꽃의 얼굴도 자세히 보려 한다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점점 작아지는 사물의 의미를 더 크게 보려는, 노안(老眼)이 남은 생의 주석처럼 쓰고 있는, 저 돋보기안경 이제 광활한 바다를 숲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제 발치에 깃든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꼬물거리는 생의 주해들을 점자처럼 더듬으며 귀 기울이지 않으면 지워지는 작은 소리들을 찾아, 척추를 곧추세워 주려는 나무들이 돋보기안경을 쓰고 있다 달이 떴다 |
첫댓글 하나님이 연수를 정해 주셨건만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며 더 오래 지상에 머물기를 소원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들은 더 가까히 더 오래 살기 위해 온갖 기구를 몸에 삽입하고 덧대고 살아갑니다
돋보기 없이는 한글자도 읽지 못하는 나이인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