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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일요일 산행하신 산우님 여러분 !
멋진 산행과 맑은 산소 듬뿍
드셨으니 좋으시겠습니다 !
많은 산소 섭취는 "코로나 예방"에
좋답니다
왜랴구요!
코로나 죄종 치료는 "산소공급"이니까요
하여간에 산행은 정말 좋은것은
확실 합니다
누구나
몇번은 세상을 살다 보면
허리가 굽을 정도 " 무게를 짊어질때"가
있겠지요
이것도 인생살이의 한페이지 아닙니까?
떠있는 햇빛은 "구석 구석 모든이"에게
비쳐주고,
계곡에 흐르는 물줄기도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갈수
없듯이 ,
세상을 살다보면
금전에.건강에.사회생활등에
많은 구덩이를 만나지만,
헤치고 나가면
마지막 "행복이란 역"에 도착하겠지요
바로 앞역 이름이" 파이팅역"
이라고들 하네요
오늘은
심심해서 그냥 사연하나 올립니다
국민가요 1위인 "소양강 처녀"는
"한명"이어야 하는데 사실은
"두명 "이랍니다
그러니까
그 유명한 "반야월선생"이 만든 작품이지요
첫번째
소양강처녀는
"윤기순 "이란 분이 모델이랍니다
윤기순(1953년)씨는 고향 춘천을 떠나
서울로 상경
김종환 작곡가 사무실에 찿이가고
레코드사에 취직 이런 저런일을 하다
있었답니다 (자세한것은 생략할께요)
그러던 어느날
소양강에서 "민물고기"를 잡고 생활하는
아버지 집에서 머무르게
되었지요
고기를 잡는데 갈대슾이 흔들거리고
비가 내린 아를다운 모습을 보고
반야원 선생은" 가시 시상"을 만들어서
작곡가 이호씨가 작곡하여
그시절 제일 잘나간 "오이시스레코드사"
타이틀 곡이 되어
"김태희씨"가 부르게 되었지요
세월이 흘러
1995년 춘천시에서 노래비를
세우려고 합니다
"반야월 선생"이
사실 모델이 또 한명 더있다고
방송에서 말 합니다
"박경희"란 분이다
이때 이는 춘천여고
3학년
반야월 선생은 " 박경희부모님"은
여관을 하는데
여기에 몇일 묵게 됩니다(1개월 정도)
반야월선생도
여기 "붕어섬"에
모두다 몇번 가게됩니다
사실은
박경희씨는 같은 또래 남자 친구와
사귀고도 있었지요
몇번 갈대슾에서 데이트를 하곤 했지요
해가 저물어 버리고
비도와서 나가지도
못할때도 있었고요
그런사연을 듣고서
반야월 선생은 박경희에게
내가 노래를 만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하여간
춘천시는 누가 "소양강 처녀"냐는
결론에
두 명으로 결정 했답니다
누구나
소양강이나 댐은 한번은
가봅니다
저도 생각이나서
가사 한번 써 볼랍니다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오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비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
"동백꽃 피고지는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서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는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처녀"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가 더 무게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박경희씨는
서울로 갔던 남자 친구를 더
그리워 했으니까요 ?
생각은 자유입니다
어째든 떠난님을
그리워하는 " 여인의 그리움"입니다
물론
두 분다 관련이 있는것은
사실이니까요
오늘은
그리움을 생각해보니
산우님들이 그립습니다
그리움속에
"그리움을 마음속에 " 그려봅니다
항상 고맙고,
감사합니다. 파이팅 입니다
첫댓글 오늘도 뜻이 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이순님
오늘도 내일도 좋은 일만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자님 글 재밌게 보았습니다.
저희 세대에 비교적 많이 접한
노래이기도 하구요..
그립고 애닯픈 사연의 노랫말이
뭔지도 모르면서 가슴에 와 닿았던 기억이 . . . ㅎㅎ.
예
윤준 위원님
잘계시지요 시산제때 뵈어요
항상 묵묵히 하시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노랫말에 있듯이 한번쯤은
생각나는 글 귀인 것 같아요
즐거운 하루 보내셔요
소양강 처녀 동상 앞에 가사적힌 판이 있는데
그 밑에 단추가 하나 있는데 아시나요~?
그 것을 누르면 소양강처녀 노래가 나오더라구요~^^
재미나서 몇 번 눌렀던 기억이~^^
아
정옥지기님 그런가요
사실 그앞에만 몇번 가 봤는데
몰랐어요
다음에 한번 누르고 싶네요
매일 좄은일만 있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