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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대 그리스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이번 올림픽 농구경기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올해 들어 본 농구경기 중 최고의 경기였습니다.
이 경기를 호주 TV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생중계를 해주는 바람에, 볼튼의 200m 신기록 수립하는 장면을 놓쳤습니다만, 그것이 조금도 후회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 경기는 수준높은 훌륭한 경기였습니다.
처음부터 종료 직전까지, 이토록 두 팀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혈전을 벌인 경기는 참으로 오랜만에 접해본 것 같습니다.
80 대 78. 아르헨티나의 극적인 승리.
1쿼터 시작하자마자, 양 팀은 거의 완벽한 게임을 펼쳐 나갔습니다. 공수에 걸쳐 탄탄한 조직력으로 맞선 두 팀은, 어느 한 팀이 에러를 범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시소 게임을 펼쳤고, 그러다가 어느 한 팀이 점수차를 4~5점 차이로 벌려 놓으며 승기를 잡는가 하면, 다른 한 팀이 금새 3점슛 두 방으로 동점을 만들곤 했습니다.
1쿼터에는 지노빌리가 연속 3점슛을 세 개 꽂으며,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그리스는 스퍼스가 드래프트 권한을 갖고 있는 스파뉼리스가 활기찬 모습으로 팀을 리드해 나갔습니다. 기대가 됐던 스콜라(11점, 9리바운드, 1블락샷)는, 그의 유럽에서의 활약상을 잘 아는 그리스 선수들에게 포스트업 동작이 사전에 읽히거나 차단이 되면서, 약간은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골밑 수비와 리바운드에서는 아주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4쿼터 종료 버저 직전에 힘든 수비 리바운드를 잡아내 아르헨티나의 승리를 굳힌 것도 바로 스콜라였습니다.
2쿼터 들어서도, 양 팀은 장군 멍군 해가며 그야말로 피터지는 각축전을 펼쳤습니다. 양 팀 감독들의 머리싸움도 대단했습니다. 몇 분 안되는 시간 사이에 수비전술을 변칙적으로 바꿔가며 상대팀의 공격 리듬을 끊었고, 선수 기용에 있어서도 상대 선수의 사이즈나 스피드를 공략할만한 카드를 수시로 꺼내들며 신경전을 펼쳤습니다.
3쿼터에 그리스는 "베이비샥"이라 불리는 거대한 소포 선수를 기용하며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이 선수의 몸빵에 아르헨티나 빅맨들이 파울을 자꾸 범하게 되자, 아르헨티나에서는 몸빵에서라면 그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곤잘레스를 투입해 소포와 맞짱을 뜨게 했습니다. 그러자 소포의 골밑 장악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자유투 성공률까지도 샤킬 오닐을 닮은 소포는 더 이상 코트에서 뛸 수가 없게 됩니다.
4쿼터는 델피노(23득점, 5리바운드, 2스틸, 1블락샷)와 지노빌리의 쿼터였습니다. 4쿼터 중반까지 델피노는 아르헨티나 공격의 "전부"였습니다. 3점슛 세 개, 골밑슛 두 개, 턴어라운드 점퍼 하나, 4쿼터에만 15득점을 하며 델피노는 무섭게 3점슛을 퍼붓는 그리스를 상대로 거의 홀로 아르헨티나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4쿼터 후반은 지노빌리(24득점, 3어시스트)의 몫이었습니다. 경기 종료를 몇 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점수차를 5점 차이로 벌려놓는 3점을 터뜨리더니, 끊임없는 돌파로 상대팀의 파울과 자유투를 얻어냈고, 중요한 시점에서 그리스의 원맨 속공 레이업을 쫓아와 블락했으며, 급기야 막판에는 오른손 레이업으로 끝을 냈어야 할 스탭으로 골밑까지 돌파해 들어간 후, 기습적인 왼 손 핑거롤로 결승골까지 성공시켰습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아르헨티나의 공수에 걸친 노련미가 엿보였던 게임이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스틸, 상대팀의 턴오버와 파울 유발, 리바운드는 대부분 아르헨티나의 몫이 되더군요. 그리스도 잘했지만, 경기가 이렇게까지 박빙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에 운도 많이 따라줬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리스의 3점슛이 상당히 많이 들어갔는데, 그 중 몇 개는 fluke에 가까웠던 슛들이었습니다.
눈여겨 봤던 스파뉼리스(9득점, 7리바운드, 2어시스트, 5턴오버, 3파울)는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경기 초반에는 활발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 이후로는 아르헨티나의 프리지오니(7득점, 6리바운드, 3어시스트, 5스틸)의 수비에 막히면서 자신의 경기 리듬을 끝끝내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결정적인 4쿼터에서는 마음만 앞서서 프리지오니에게 압박수비를 들어가다가 세 번 연속으로 수비자 파울을 범했습니다. 프로 생활이나 국가대표 생활을 처음 해보는 선수도 아니고, 이러한 멘탈 에러를 계속 범하는 수준의 포인트 가드라면, 스퍼스에 왔더라도 별 도움이 됐을 것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4쿼터 종료와 함께 던진 3점슛이 들어갔다면 국가적인 영웅이 됐을 수도 있었을텐데, 림은 그의 마지막 회심의 슛조차 외면해 버렸습니다.
노시오니(12득점, 1스틸, 1블락샷)는 오늘도 여전히 터프가이, 그리고 에이스스타퍼로서의 듬직한 모습이었습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수비하며 루즈볼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은 그가 어떻게 험하디 험한 NBA에서 자기 자리를 확실히 잡을 수 있었는지를 여실히 잘 보여줍니다. 오베어토는 오늘 득점은 없었지만, 블락샷을 세 개나 했고, 골밑 수비와 페인트존 안에서의 패싱 등으로 팀에 공헌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 아르헨티나는 4년 전과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올림픽 준결승에서 미국과 만나게 된 것이죠. 현재 미국팀의 실력이나 기세로 볼 때, 4년 전보다 전력이 약화된 아르헨티나가 이 경기를 이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뛰어서 눈빛만 봐도 서로 아는 팀웤이나 큰 국제경기 경험, 그리고 FIBA 룰에 훨씬 더 적응이 잘 되어있는 팀 칼라로 볼 때에, 또 다시 이변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지는 않겠지요.
아무쪼록 멋진 준결승 경기가 펼쳐졌으면 좋겠고, 지노빌리를 비롯한 아르헨티나의 NBA 소속 선수들 모두 몸을 조금은 아껴가며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 뛰어줬으면 합니다. 오늘도 노시오니 발목 나갈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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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방문) 이번대회 팀중 처음으로 리딤팀과 시종일관 접전을 벌였으면 좋겠습니다.지노빌리가 미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거 같습니다..그는 농구계의 마라도나니까요..
한 3쿼터까지는 박빙으로 가다가, 4쿼터에 가서 아르헨티나가 급격히 무너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3~4위전을 위한 체력안배 때문에 일찌감치 게임을 포기할 가능성도 높고요. 지노빌리가 아직도 몸상태가 완전치 않고, 노시오니까지 오늘 발목을 삐끗한 아르헨티나로서는 올해는 그냥 동메달을 노리는 것이 나을 겁니다.^^
울 마누라의 아르헨을 응원해야할지..느바 올스타팀을 응원해야할지..고민입니다.ㅋㅋ 건 그렇고 볼트는 괴물...ㄷㄷㄷ
경기는 정말 재밌는 경기였는데, 이 경기를 보고 나니 리딤팀과의 대결에서 고전을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슛감이 조금만 나빴으면 졌을지도 모를만한 경기였다고 봅니다. 아무튼 리딤팀과의 경기는 기대가 되는데, 승부와 상관없이 마누랑 오베르토가 무리해서 부상을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방문/ 스콜라 때문에 아르헨을 응원중입니다~ 노시오니 약간 부상을 입은것처럼 보이는데 남은경기 별부상없이 마무리했으면 좋겠네요~
흠... 델피노랑 스콜라는 정말탐난다는... 글고 오베르토는 국대에서도 튀는 역할을 아닌가 보군요... 리바운드랑 득점이 적은거 보니까
국가대표팀에서 튀는 역할은 지노빌리, 스콜라, 델피노, 이 세 선수에게만 주어졌습니다.
NBA팬들중에 거의 유일하게 아르헨티나를 응원할사람들이 우리 스퍼스팸일듯ㅋㅋ
휴스턴 팸에서도 응원하는 것 같더군요......^^
(방문) 저도 아르헨티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 nba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국대간의 대결에선 미국은 좋아할 수가 없네요;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