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계의 법들은 어떻게 알고 보나?
기억(sati) 나지(出) 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과거에 있었던 사건은 대부분 기억된(入)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과거(전생)에 있었던 사건이 기억나지 않더라도
적절한 수행을 하면 기억나게 되는 것 같다.
또한 과거 수 겁 동안 행한 業이 어딘가에 저장(藏)되어 있지 않다면
그 과보 혹은 이숙과를 현생 혹은 그 다음 생에서 겪을 수 없을 것이다.
기억이 저장되는 골격(型)이 界(dhātu)이거나 혹은 界에 대해 相(nimitta) 형태로 기억되는 것 같다.
有情의 (6내외) 處에서 생겨나는 것은 모두 蘊(界)으로 귀속된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 누겁의 界로부터
'kāmadhātuṃ,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kāmasaññā,
kāmasaññaṃ paṭicca uppajjati kāmasaṅkappo, kāmasaṅkappaṃ paṭicca uppajjati kāmacchando,
kāmacchandaṃ paṭicca uppajjati kāmapariḷāho, kāmapariḷāhaṃ paṭicca uppajjati kāmapariyesanā.
kāmapariyesanaṃ, bhikkhave, pariyesamāno assutavā puthujjano tīhi ṭhānehi micchā paṭipajjati —
kāyena, vācāya, manasā.'
界를 緣한 sañña-saṅkappa-chanda-pariḷāha-pariyesana까지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身口意(kāyena, vācāya, manasā)로 현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身口意(3업/10업)는 다시 蘊(界)으로 귀속된다.
즉 기억되어 있던 종자가 현행하고 현행한 업이 기억으로 훈습(잠재)되지 싶다.
이와 같은 반복을 끊는 방법이
기억에 의해서 삿된 기억을 바른 기억으로 재정립하는 수행이 4념처이지 싶다.
Netti에서는 身受心法이라는 수행주제를 통해서
상락아정(淨常樂我)의 顚倒를 不淨-無常-苦-無我로 正立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4념처는 삼매(사마타)의 무더기에 속한다고 경에서는 설명한다.
止觀(사마타-위빳사나)은 배타적이 아니라 상보적인 관계로 생각된다.
다음 경문을 근거로 '과거를 기억하지 말라.'고 해석하는 것 같다.
'atītaṃ nānvāgameyya, nappaṭikaṅkhe anāgataṃ.
yadatītaṃ pahīnaṃ taṃ, appattañca anāgataṃ.
paccuppannañca yo dhammaṃ, tattha tattha vipassati.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떠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法]을 바로 거기서 통찰한다.'
anvāgameyya: pot 3 sg of anvāgameti (caus of anvāgacchati = anu + ā-gacchati)
anvāgacchati 追驅추구하다.
'iti me cakkhu ahosi atītamaddhānaṃ iti rūpāti —
tattha chandarāgappaṭibaddhaṃ hoti viññāṇaṃ,
chandarāgappaṭibaddhattā viññāṇassa tadabhinandati,
tadabhinandanto atītaṃ anvāgameti.
'과거에 나의 눈은 이러했고 형색들은 이러했다.'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 대해 알음알이는 열망과 욕망에 묶이고
알음알이가 열망과 욕망에 묶이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즐깁니다.
그것을 즐길 때 과거를 돌아봅니다.'
<pubbe vā paṭiladdhapubbaṃ atītaṃ niruddhaṃ vipariṇataṃ samanussarato>
'iti me cakkhu ahosi atītamaddhānaṃ iti rūpāti — tattha chandarāgappaṭibaddhaṃ hoti viññāṇaṃ
<이미 지나갔고 소멸되었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한 것을 기억하고서 - *편집>
'과거에 나의 눈(~意)은 이러했고 형색(~法)들은 이러했다.'라는 열망과 욕망에 묶인 알음알이가 있다.
'Channaṃ, bhikkhave, dhātūnaṃ upādāya gabbhassāvakkanti hoti;
okkantiyā sati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
6界를 取(기억 - 집착)하고서 모태에 顯現이 있다.
顯現이 있으면 名色이 있다. 그 名色을 緣하여 六入(= 18界에 대한 집착)이 있다.
'yā kāci kaṅkhā abhinandanā vā,
anekadhātūsu puthū sadāsitā.
aññāṇamūlappabhavā pajappitā,
sabbā mayā byantikatā samūlikā.
“어떤 소원 가졌든 어떤 기쁨 가졌든
여러 가지 요소들에 범부 항상 집착하네. <*界에 대한 집착, 소원, 기쁨, 소망은 갈애>
무지를 뿌리로 소망이 생기나니
그 모두를 끝장내고 나는 뿌리 뽑았도다.'
'‘‘Āsā ca pihā abhinandanā ca,
anekadhātūsu sarā patiṭṭhitā;
Aññāṇamūlappabhavā pajappitā,
sabbā mayā byantikatā samūlikā’’ti.
기대와 열망 그리고 기쁨,
다수의 계(界)에 확립된 기억들, <*界에 대한 기억 = 집착>
앎의 없음을 뿌리로 하여 생겨난 갈망들,
나는 이 모든 것을 뿌리 째 끝내버렸다.'<Netti>
'cakkhuviññeyyānaṃ rūpānaṃ
iṭṭhānaṃ kantānaṃ manāpānaṃ manoramānaṃ lokāmisapaṭisaṃyuttānaṃ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매력적이고 세속적인 것과 연결 되어 있는,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이 있어
paṭilābhaṃ vā paṭilābhato samanupassato
pubbe vā paṭiladdhapubbaṃ atītaṃ niruddhaṃ vipariṇataṃ samanussarato uppajjati somanassaṃ.
그런 것을 획득하고는 획득이라고 여기거나
혹은 이미 지나갔고 소멸되었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한 것을 기억하면서 기쁨이 일어난다.
yaṃ evarūpaṃ somanassaṃ idaṃ vuccati gehasitaṃ somanassaṃ.
이러한 기쁨을 재가에 바탕 한 기쁨이라 한다.'
'“puna caparaṃ, bhikkhave, sāriputto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비구들이여, 다시 사리뿟따는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so tāya samāpattiyā sato vuṭṭhahati.
그는 그 증득에서 출정(出定)한다.
so tāya samāpattiyā sato vuṭṭhahitvā
ye dhammā atītā niruddhā vipariṇatā te dhamme samanupassati —
‘evaṃ kirame dhammā ahutvā sambhonti, hutvā paṭiventī’ti.
그는 그 증득에서 마음챙기며 출정하여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그 법들을 관찰[隨觀]한다.
'이와 같이 이 법들은 없었는데 생겨나고, 있다가는 사라진다.'라고.'
'tathārūpānaṃ, bhikkhave, bhikkhūnaṃ dhammaṃ sutvā dvayena vūpakāsena vūpakaṭṭho viharati
— kāyavūpakāsena ca cittavūpakāsena ca.
so tathā vūpakaṭṭho viharanto taṃ dhammaṃ anussarati anuvitakketi.
비구들이여, 그러한 비구들로부터 법을 배워서
그는 몸이 멀리 떠남과 마음이 멀리 떠남이라는 두 가지 멀리 떠남을 갖추어 머물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멀리 떠남을 갖추어 머물면서
그 법을 계속해서 생각<*기억>하고 계속해서 고찰<*생각>한다.
sarati는 삼계의 공통적인 기억 방식이고,
vitakketi는 (색계 초선도 포함되지만) 욕계 중생들의 기억 방식이다.
위 경문처럼 기억에 의해서 수행해서 기억력이 증장하면
비상비비상처 내지 상수멸을 증득한 자리에서는 위빳사나 할 수 없지만
출정하고서 기억에 의해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그 법들을' samanupassati.
즉 색계초선에서 무소유처까지는 그 자리에서 위빳사나 하고
그 이후 2處는 출정하고서 '동일하게 따라 본다(sam-anu-passati)'.
혹은 색계초선에서 무소유소처까지는 그 자리에서
그 이후 2處는 출정하고서 5온(색계) 내지 4온(무색계)을
'aniccato dukkhato rogato gaṇḍato sallato aghato ābādhato
parato palokato suññato anattato samanupassati' 合隨觀한다.
그러면 남는 것은 욕계의 법들(六六法)은 어떻게 알고 보게 될까?
'sati sati āyatane' - (心이 들어간 자리 入)
處<āyatane>에 대한 念<sati>이 있으면<sati>?
'pubbe vā paṭiladdhapubbaṃ atītaṃ niruddhaṃ vipariṇataṃ samanussarato'
이미 지나갔고 소멸되었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한 것을 기억하고서? 合隨觀
첫댓글
蘊 - 處 - 界라는 용어도 무지 어렵습니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no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nuppajja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rasaṅkappā saṃyojaniyā.
veditabbametaṃ, bhikkhave, bhikkhunā — ‘abhibhūtametaṃ āyatanaṃ’.
abhibhāyatanañhetaṃ vuttaṃ bhagavatāti.
imāni vuccanti, bhikkhave, cha abhibhāyatanānī”ti.
… 마노로 법을 안 뒤 비구에게
족쇄와 관계된 기억과 사유가 있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不善法]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그 비구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이 경지는 지배되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이런 것을 지배의 경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지배의 경지이다. <*處를 극복 abhibhāyat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