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與 당헌개정은 옳지 않다
편집국장 고하승
7.14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대표 경선에 나선 홍준표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을 당의 상임고문으로 추대하는 내용의 당헌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의 현행 당헌은 당권 대권 분리 원칙에 따라 대통령의 당직 겸임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실제 당헌 7조에 따르면,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 동안에는 명예직 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
이 같은 당헌 당규를 개정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합법적으로 당무에 관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이 대통령의 입김이 당에 작용하고 있는 마당이다. 그동안 각종 선거에 나타난 한나라당 공천 과정이나, 이른바 ‘MB 악법’이라고 불리는 각종 법안 처리과정을 보면 이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은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당무에 관여할 수 없도록 당헌에 명백하게 규정돼 있음에도 이런 정도라면, 당헌당규가 개정된 후에는 어찌 될지 안 봐도 빤하다.
이 대통령은 사사건건 당론에 개입할 것이고, 결국 당은 ‘MB 나팔수’ 혹은 ‘MB 거수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건 별로 놀랄만한 일도, 전혀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친이 세력에 의한 당헌당규 개정 시나리오는 이미 오래전부터 추진돼 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필자는 줄곧 ‘이명박 대통령의 개헌 음모’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에 앞서 당헌당규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즉 당헌당규를 개정해 ‘한나라당=이명박 당’이라는 사실을 공식화 할 것이란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홍준표 의원이 4일 이 대통령에게 합법적으로 당무에 관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내용의 당헌조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홍 의원이 나섰다는 건 정말 코미디 중의 코미디다.
현재의 당헌 당규는 누가 만들었는가.
박근혜 전 대표가 당 대표시절, 홍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해 오늘의 당헌당규를 만들도록 하지 않았는가. 즉 홍 의원 자신이 실무책임자가 되어 현재의 당헌 당규를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그건 잘못됐으니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홍준표 의원이 당헌당규 개정을 말하는 자체가 난센스라는 말이다.
더구나 현재의 한나라당 당헌당규는 우리나라 정당 역사상 가장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일 한나라당이 당헌당규만 제대로 지켰더라면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그토록 치욕적인 참패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헌 당규가 잘 못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당헌 당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홍 의원은 현재의 당헌이 △당정협조를 통해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 집권여당의 현실에 맞지 않고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멀리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당청 관계를 대등하지도 못하고, 불합리한 관계로 왜곡시키고 있다며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말 답답하고 한심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현 정권을 탄생시킨 여당으로서 당연히 당정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때 해당하는 것이다. 여당이라고 해서 정부가 하는 일에 무조건 협조해야 된다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정부가 잘 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힘 있는 여당으로서 정권을 견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따끔하게 질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대통령과 당은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분리돼 있어야 한다.
만일 여당이 세종시 수정안 문제에 대해 좀 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대했더라면, 지난 6.2 지방선거의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여당이 4대강 사업에 대해 이명박 정권이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기만 했어도 지방선거 결과는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또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멀리했다고 하지만, 실제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여의도 사람들이 알아서 기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원내대표 경선을 하든지 당 대표 경선을 하든지 모두가 이 대통령 눈치나 보고 있는 게 오늘의 한나라당 모습 아닌가.
특히 당청관계를 대등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홍의원의 주장은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당무에 관여 하지 못하도록 했는데도, 당이 청와대의 종속기관을 자처하고 있는 마당이다. 하물며 대통령에게 큼직한 직함을 주고, 당무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을 공식적으로 터준다면 당청관계가 어찌될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한나라당이 침몰하는 이명박 호와 동반 몰락하겠다는 뜻이라면 몰라도, 한나라당이 정말 살길을 찾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현행 당헌당규를 개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당헌당규를 철저하게 지키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