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맞수나 라이벌이 필수적인 스포츠와 달리 역사 속에서는 강력한 라이벌이 존재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학문적으로나 정치적, 경제적인 라이벌이라면 동시대에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만(게다가 이건 누구를 라이벌로 봐야할진 좀 논란도 되구요. 절대적으로 제가 이런걸 볼 능력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관심들을 가지는 강력한 국가끼리의 맞대결, 아님 명장끼리의 맞대결 이런 일은 정말 보기 힘듭니다.
재미로 보는 소설이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주인공과 거대한 산처럼 보이는 최종 보스(^^;;)의 존재가 꼭 있지만(삼국지같은 케이스도 있고) 실제 역사에선 정~말 보기 힘들죠.
그 이유는 한쪽이 강해지만 다른쪽은 약해지는게 진리와 비슷한 일이기 때문에 서로 강력한 세력이 맞서는 경우는 정말 드문 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게 아예 없는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꽤나 재미있는 결과를 낳곤 합니다.
1. 한니발 vs 스키피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잘 소개된 두 사람입니다.
카르타고 최고의 명장 한니발과 로마 최고의 명장 스키피오는 고대 지중해 세계의 명장 리스트를 뽑을 때 탑10안에 들 정도로 대단한 장군들입니다.
특히나 한니발의 칸네에 전투는 현재 유럽 사관학교에서 전술 교육을 할만큼 전술의 극치라고 평가받고 있죠.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전술을 제대로 이어받은 뛰어난 후계자지만 분명 전투적 재능은 한니발이 위입니다.
하지만 이 둘의 2차 포에니 전쟁의 마무리가 된 자마에서의 맞대결의 승부는 반대로 났는데 기병 위주의 전술을 구사하는 한니발이 기병 전력이 극히 부족했다는게 큰 이유였죠.
이 전투 이후 로마의 지중해 지배는 결정적이 됩니다.
(훗날 로마의 라이벌인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도 뛰어난 장군들이지만 저 둘보다는 한급 아래의 장군들이라서 이 둘은 패스)
2. 전진의 부견 vs 동진
오호 십륙국 시대 최고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전진의 부견은 당시 라이벌인 선비족의 전연을 멸망시키면서 하북 통일을 이룩하죠.
그래서 그의 다음 목표는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강남의 동진이었고 침공 준비를 합니다.
당시 동진은 그리 만만한 국가는 아니었는데 전대 총사령관 환수 시절엔 전진의 수도 장안, 전연의 수도 업을 모두 공격했었고(전진은 혼자 힘으로 막지만 전연은 전진의 도움으로 겨우 막습니다.) 이 시절엔 내분도 가라앉은 가장 안정적인 상황이었습니다.(환수는 동진을 찬탈하려고 했었죠. 그가 죽은 후 그의 동생과 재상 사현의 지휘때 동진은 가장 강력했습니다.)
부견은 명재상 왕맹의 반대에도 그가 죽은 후 동진을 침공하는데요 당시 군세가 97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동진군은 8만. 뻥이 좀 있겠지만 엄청난 군세죠.)
하지만 부견은 동진의 군대를 보고 강력한 군대라고 놀라고 감탄했다고 하고 실제로 비수 건너는데 고전을 합니다.
결국 동진군을 유인해서 치는 전략을 세웠는데 내부 배신자가 졌다 도망가자 한방에 전군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패배하게 되죠.ㅡㅡ;;;
부견은 이 전투의 패배로 권위를 잃고 국가가 멸망당하는 비운을 겪게 됩니다.
3. 성왕 vs 진흥왕
삼국시대의 우리나라는 삼국의 전성기가 모두 다르고 최고의 카드가 서로 맞붙은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백제 최고의 왕으로 평가받는 근초고왕의 상대는 모용황에게 수도를 빼앗긴 고국원왕이었고 고구려 최고의 국왕인 영락왕의 상대는 진사왕, 아신왕(실제론 그리 허접은 아니지만), 모용성이었죠.
(영락왕이 모용성에게 그의 할아버지 모용수와 겨루지 못해서 아쉽다고 할 정도로 후연을 세운 모용수는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성왕은 백제가 고구려에게 패해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공주로 수도를 옮긴 후 약화되었던 백제를 아버지 무령왕과 함께 부흥시킨 주역입니다.
무령왕 시절부터 왕권 강화에 성공하면서 귀족세력을 누리기 시작했고(무령왕의 아버지 동성왕은 귀족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죠.) 성왕 시절의 백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라는 진흥왕대에 이르러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죠.
이 두 나라는 연합을 해서 당시 내분에 휩싸인 고구려를 침공 고구려 남쪽 지방을 장악합니다만 신라가 배신을 합니다.
신라가 먹은 강원도 산골은 아무래도 백제가 먹은 한강 유역에 비해 별로 이득이 없는 곳이고 그래서 한강 유역을 급습해서 다 빼앗아 버립니다.
뒷통수 맞은 성왕은 분노하고 신라에게 복수전을 합니다. 하지만 계속 패배하죠.
결국 성왕은 나라의 국력을 걸고 관산성을 공격하는데 이 전투에서 15000여명이 전사하고 성왕 자신까지 죽임을 당하는 처참한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저정도 군세는 백제의 주력군은 다 잃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후 백제는 무왕대에 이르러 국력을 회복할 때까지 50년간을 암흑속에서 지내게 됩니다.
4. 옴미야드 왕조 vs 프랑크 왕국
유명한 732년에 벌어진 투르-푸와티에 전투 당시 지중해는 이슬람의 바다라고 할 정도로 이슬람 세력의 절정기입니다.
동로마 제국조차 두번의 콘스탄티노플 침공을 당했고(그리스의 불이라고 부르는 화염방사기로 겨우 막습니다.) 당시 이슬람 왕조인 옴미야드 왕조는 동은 지금의 아프간, 파키스탄부터 서로는 스페인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세력이었죠.
반면 유럽세력은 동로마제국에 의해 반달, 동고트의 두 게르만 왕조가 멸망한 후 서고트까지 이슬람에게 멸망당하면서 가장 주목 못받던 프랑크 왕조 하나 달랑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프랑크 왕조는 땅은 프랑스 독일을 합친것만큼 넓었지만 나라의 힘이 곳곳에 닿지 않은데다가 문화적인 수준에서도 야만인 겨우 벗어난 정도였고 옴미야드 왕조는 당시 거의 패배를 모를 정도의 강력한 군사력에 문화적으로도 서방 최고를 달릴 정도로 발달한 상황이었죠.
전투는 피레네를 넘어서 처들어온 이슬람군이 보르도를 함락하고 수도 파리에 근접할 정도로 진격을 하나 이를 당시 프랑크 왕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칼 마르텔이 투르-푸와티에서 격파하면서 이슬람군이 퇴각하게 되죠.
이 전투는 크리스트교가 이슬람교에 먹히지 않고 살아남게된 중요한 전투로 꼽히고 있기는 합니다만 워낙 중앙과 거리가 먼 상태의 이슬람군이 얼마나 강했을까 하는 의문과 얼마 후에 벌어지는 옴미야드 왕조의 내분으로 나라가 두쪽난걸(아바스 왕조-후 옴미아드 왕조. 근데 이 두왕조도 너무 넓어서 이후 10여개국으로 더 갈라집니다.) 가만할때 중요도가 많이 감해질 듯 합니다.
5. 사자왕 리처드 vs 살라딘
3차십자군의 주역인 사자왕 리처드는 정치력은 잼병이고 아버지를 배신해서 국왕이 된 좀 문제 있는 인물이지만 모험을 좋아하고 뛰어난 지휘력에 남자다운 성격 덕분에 당시엔 모르겠지만 후대까지 문학가나 일반인에게 꽤나 사랑받는 인물이죠.
(스코틀랜드의 문호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에서도 정말 멋지게 나오죠.)
반면 십자군 시대 아랍세계의 최고 영웅인 살라딘은 이집트의 아이유브조의 실질적인 지배자이자 뛰어난 정치가이자 장군입니다.
당시 전투전에 십자군과 이집트 군의 행동에서도 차이가 확연히 보이는데요, 리처드가 이끄는 십자군은 앞의 두번의 십자군과 마찬가지로 크리스트교도, 이슬람교도 가리지 않고 닥치는데로 죽이고 약탈하면서 예루살램으로 진격을 합니다.
반면 살라딘의 경우 전쟁 포로조차도 몸값만 받고 풀어주는 온건한 조치를 하죠.(실제로 십자군 초기 십자군을 해방군이라고 받아들였던 당시 중동의 크리스트교도들도 1,2차 십자군 이후론 십자군이라면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성지 해방이니 압제받는 크리스트교도의 해방이니 하는 명분은 약탈을 하기 위핸 명분에 지나지 않았던 거지요.)
이 둘은 리처드가 풍토병에서 고생을 하는 상황에서 예루살램 앞에서 맞붙는데요, 처음엔 십자군이 우세했고 살라딘은 철수까지 고려하는 상황이었습니다만 갑자기 모래폭풍이 불면서 이집트군이 승리합니다.
결국 리처드는 성지 순례를 할 수 있다는 통행권만 얻고(뭐 죽자사자 싸우지 않은것도 있지만...) 퇴각하죠.
6. 티무르 vs 오스만 제국
티무르는 중앙아시아의 지배자인 차가타이 한국 출신으로 본인이 칭키스칸의 후예라고 강하게 자각하면서 어린 시절을 지냈다고 합니다.
평범한 목동가문이었다고 하는 그는 기발한 전술로 사마르칸트를 함락하고 이후 엄청난 정복 전쟁을 하면서 구 차가타이 한국의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페르시아, 남러시아, 이라크 지방을 장악하고 인도의 수도 델리까지 함락하고 엄청난 재화를 약탈하죠.
반면 투르크민족 중 직계라고 할 수 있는 셀주크가 몰락한 후 성장한 방계의 오스만투르크는 터키를 중심으로 1400년 당시 발칸반도를 모조리 장악하고 동로마제국을 거의 멸망 직전으로 몰고 갑니다.(당시 동로마는 언제 멸망하나? 이 상황이었습니다.)
티무르의 최종 목표는 칭키스칸의 뜻대로 중국을 정복하는 것이고 그 준비를 위해 자신의 제국을 건드릴 상대를 모두 없애는 것이었는데 당시 오스만의 황제 바예자드 1세는 워낙 강력한 티무르의 제국을 서쪽에서 마물르크조와 함께 견제하고 있었죠.
그래서 후방을 정리하기 위해 티무르가 오스만투르크를 침공하고 양군은 앙카라에서 대규모의 전투를 벌입니다.
이 전투에서 양군 합쳐 백만명이 격돌했다고 하니 대단합니다만 승부는 오스만의 작센군대가 바로 배신해버리면서 허무하게 티무르의 승리로 끝나고 바예자드 1세는 포로로 잡혀버리죠.
후방의 위협을 없애버린 티무르는 명나라를 치기 위해 떠나고 오스만투르크는 내분에 휩싸여 50년 후 매맷 1세 등장까지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지 못합니다.
7. 영락제 vs 티무르
조카를 죽이고 수많은 신하를 죽이고 황제가 된 영락제는 잔혹하지만 뛰어난 장군이자 황제였습니다.
그는 당시 티무르가 명나라를 노리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죠.(대표적으로 정화의 항해의 임무 중 하나가 티무르를 감시하는 겁니다.)
티무르는 자신의 제국을 완성하고 주변의 모든 위협을 제거하자 중국 원정을 떠나죠.
동방과 서방의 최대 전투가 될 뻔 했던 이 전쟁은 티무르가 중국에 가지도 못하고 병사하면서(나이가 좀 많았죠. 70세나 되었으니...) 싸움도 안하고 끝납니다.
(만일 티무르가 안죽고 싸웠어도 준비 다한 명군을 이기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티무르가 죽음으로서 그의 제국도 바로 붕괴되어버리죠.
ps)칭키스칸과 마호메트 죽음 후 엄청난 정복전쟁을 하던 이슬람군과 붙었으면 누가 이겼을지 참 궁금....
전 시오노나나미가 카이사르를 너무 띄워줬다고 봅니다. 카이사르는 뛰어난 정치가이고 문학가, 장군이지만 장군으로서의 그의 능력은 세기에 남을 만한 사람은 결코 아니죠. 갈리아 전쟁기부근은 저도 재밌게 읽었지만 통솔이 제대로 안된 갈리아군을 상대로 올린 그의 전과는 명장이긴 하되 한니발급으론 보기 힘들다고
첫댓글 일단 중국애들이 주장하는 옛날군사들의 수는 기본적으로 나누기 10정도는 해주는 센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보통 연구자들은 기록에 나온 숫자에 2를 나누면서 사용합니다. 예륻들면 20만 대군 하면 한 10만쯤 되는구나 하는 거죠.(중국의 군사 수가 많은 이유가 어중이 떠중이를 무기만 쥐어주고 군사랍시고 써서 그런거라고 하죠.)
황우 와 유방은 어떨까요? 결과는 유방의 승리였지만.. 왜 황우가 더 기억되는지...서초패왕..
항우죠 -_-;;
황우.....황우석 박사...... -_-;;
오우- 황우라고 적어버렸군요 ㅋㅋㅋ 애교로 봐주세요 너무 유방에 집중했음
ㅋㅋ 유방에 집중하다..너무 웃겨요~~^^;;;
살라딘은...... 창세기전에....
창세기전 실제 인물 참 많이 이름 땄죠. 마키아벨리, 리처드, 리슐리외, 클라우제비츠, 조세핀, 엘리자베스-메리 여왕, 메데치-버몬트-콘웰가문, 살라딘 등등등... 게다가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라자드까지...(하긴 서풍의 광시곡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던데...)
그게 묘미죠. 참고로 사피알딘=살라딘입니다. 풀네임과 축약형이라고... 템페스트는 장미전쟁을 모티브로 따온거고...
창세기전 1, 2는 백년전쟁이 모티브죠. 창세기전 최고의 인기캐릭인 흑태자(GS)는 실제로 백년전쟁 초기 실존인물이었습니다. 3배의 적을 이긴 그라테스 전투와 비슷한 승리도 있고...(근데 사피알딘=살라딘은 저도 첨 알았습니다.^^;;)
체사레 보쟈르도 따왔죠.
헉 따지고 보니깐 무지 많네요...컥
재밌게 읽었습니다... ^^; 사학 지식이 참 넓으시네요...
베르캄프 vs 스프리짱
ㅋㅋㅋ
모택동이랑 장개석?
김대중 대 김영삼~~ㅎㅎ
문희준vs서지영.. 이글 글쓴이 안보고 그냥 클릭했는데 본문 읽어보면서 레드보이스님 글이구나.라고 예쌍했는데 딱맞았네요 좋은글 잘읽었습ㅈ니다.
전 카이사르가 절대 한니발이나 스키피오보다 한수아래라고는 생각치 않는데요;;
전성기 타이슨 vs 효도르?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랑 비교될마한 인물이 아니죠. 싸운적은 있지만ㅡ,ㅡ;;;폼페이우스는 훌륭한 장수이긴하나 희대의 천재전력가인 카이사르의 상대까진 못됩니다. 개인적으로 카이사르가 정치나 전쟁 종합적으로 따지면 중요성이나 위대함이 아우구스투스랑 맞먹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카드는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당의 이세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경극에서도 연개소문과 이세민을 그리고 진위여부를 떠나서 갓쉰동전 같은 이야기가 나돌정도로 둘의 이해관계가 꽤나 얽혀있었던것같습니다
갑모의 럽메와 명바
임까와 임빠
전 시오노나나미가 카이사르를 너무 띄워줬다고 봅니다. 카이사르는 뛰어난 정치가이고 문학가, 장군이지만 장군으로서의 그의 능력은 세기에 남을 만한 사람은 결코 아니죠. 갈리아 전쟁기부근은 저도 재밌게 읽었지만 통솔이 제대로 안된 갈리아군을 상대로 올린 그의 전과는 명장이긴 하되 한니발급으론 보기 힘들다고
봅니다.(단 동시대 장군중엔 폼페이우스와 탑을 다투겠지만요.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에게 지긴 했지만 그가 해놓은 장군으로서의 업적은 카이사르에게 앞서면 앞섰지 지진 않습니다. 정치가로서의 역량이 모자라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