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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위해서 부하를 희생시키는 사람은 장군이 될 수 없습니다. |
趙甲濟(자유북한방송) |
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을 장군님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김정일은 군대에 간 적이 없는데도 장군이라고 부릅니다. 가짜 장군이지요. 장군은 부하를 위해서 정말 노심초사하는 직책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부하를 희생시키는 사람은 장군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순신을 장군이라고 부릅니다만 이순신이 왜 장군이라고 불리느냐 하는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남한에서는 세 살짜리 어린들이부터 어른까지 이순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을 기리는 현충사라는 곳이 충청남도에 있기도 합니다. 북한의 김일성 생가처럼 남한에서 이순신을 기리는 곳입니다. 이순신은 아주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인물이었습니다. 1592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관군이 다 무너지고 말았지만 유독 이순신만이 해군을 통솔해 남해안을 지켜냈기 때문에 결국 일본군을 우리가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일본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군함 갑판 위에서 지휘를 하다가 일본군의 총에 맞고 전사했습니다. 이순신은 7년에 걸친 임진왜란 내내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마음고생만 한 정도가 아니라 간신들의 모함에 자주 걸려 벼슬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이순신이 워낙 잘 싸우니까 시기 질투를 한 동료들이 모함을 하고 당시 조선왕조의 왕이던 선조도 이순신을 시기하고 의심해 이순신을 불러다가 고문을 하는가 하면 졸병으로 강등시켰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계속 패하자 후에 다시 이순신을 불러내 일본군과 싸워 이기도록 했습니다. 이순신은 전쟁 기간 동안 일기를 썼습니다. 이 일기를 난중일기라고 부릅니다. 전란 중에 쓴 일기라는 뜻인데 이순신 자신이 붙인 이름은 아닙니다. 일기가 훗날 이렇게 유명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쓴 것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난중일기라는 이름은 이순신이 전사하고 나서 한참 뒤에 조선왕조가 이충무공 전서라는 책을 만들 때 편찬자가 붙인 것입니다. 이순신은 일기에서 자신의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기를 보면 인간 이순신의 정직한 모습이 나옵니다. 이순신이 쓴 일기를 보면 이 분도 약점이 많고 문제점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에게는 그런 약점과 문제점을 다 덮을 만한 위대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애국심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인간애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약점이 많기 때문에 더 위대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설명할 때 약점은 덮고 장점만 부각시킵니다. 그렇게 하면 인간은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난중일기를 남겼기 때문에 우리는 이순신의 고민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이순신은 우선 걱정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쳐지는 뇌물의 많고 적고에 따라 안팎이 모두 죄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결정한다니 이러다가는 결말이 어찌될지 모르겠다. 이야말로 한 줄기 돈만 있다면 죽은 사람의 넋도 찾아온다는 말이 아닌가' 이순신은 당시 조선왕조에 만연했던 뇌물풍조를 아주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사무치고 슬픈 마음에 눈물은 엉키어 피가 되고 마는데 아득한 저 하늘은 왜 내 사정을 살펴보지 못하는고. 왜 빨리 죽지 않는가’ 이렇게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같은 해군 장수로서 원균이 있었습니다만 원균에 대해 이순신은 아주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기에는 원균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글이 많이 나옵니다. '원균이 온갖 계략을 다 써서 나를 모함하려 하니 이 역시 운수인가. 뇌물 짐이 서울로 가는 길을 연잇고 있으며 그러면서 날이 갈수록 나를 헐뜯으니 그저 때를 못 만난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이순신은 결코 건강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도 일을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했습니다. 이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아프다’는 말이 180번이나 나옵니다. 1597년 8월 27일자 일기에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새벽 2시쯤에 토사곽란(급성 위장병)이 일어났다. 배를 차게 한 탓인가 하여 소주를 마시어 다스리려 했다가 또다시 인사불성에 빠져 거의 죽을 뻔하였다. 토하기를 10여 차례하고 밤새도록 고통을 겪었다’ 이런 병과 아픔에 관한 내용을 본 내과 전문의들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은 극심한 신체적 과로와 전신적 압박에서 비롯된 일종의 신경성 위장병을 앓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몸이 아프면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데 이순신은 자신의 일기에서 술 마신 기록을 140번이나 남겼습니다. 그러니까 속앓이를 하면서도 술을 더 즐겨 했고, 술이 아니면 그 고민과 고통과 울분을 덮을 수가 없었다는 뜻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순신이 가족과 나라에 대한 걱정이 많으니 자연히 꿈에 관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꿈을 많이 꾸면 깊은 잠을 못 자는데 그는 꿈을 많이 꾼 것 같습니다. 예컨대 이런 꿈 이야기가 나옵니다. 丙申(병신)년 정월 12일에 쓴 일기입니다. '새벽 2시쯤 꿈에서 어떤 곳에 이르러 영의정 유성룡과 함께 이야기를 했다. 잠시 함께 속 아랫도리를 끄르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서로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을 털어 놓다가 끝내는 가슴이 막히어 그만두었다. 이윽고 비바람이 퍼붓는데도 오히려 흩어지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하는 중에 만일 서쪽의 적이 급히 쳐들어오고 남쪽이 적까지 덤벼든다면 임금이 어디로 가시나 하고 걱정만 되뇌이며 할 말을 알지 못했다’ 이 꿈에 등장하는 영의정 유성룡은 임진왜란 때 가장 고생을 많이 한 공신입니다. 그리고 이순신을 수군통제사 자리에 추천한 분입니다. 이 두 사람이 꿈에서 만나 나라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이 분들은 꿈에서도 생시에서도 나라만 걱정하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이순신은 나중에 고문을 받고 졸병으로 강등되었다가 결국 이순신밖에 왜군을 물리칠 사람이 없다고 해서 다시 복직이 되었습니다. 복직이 되어 보니까 배가 다 없어지고 12척 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순신이 선조에게 보고한 문서가 있습니다. 尙有十二隻 微臣不死(상유십이척 미신불사), 무슨 뜻이냐 하면 “이순신은 아직 죽지 않았고 12척의 배가 아직 남아 있다”입니다. 얼마나 비장한 이야기입니까. 이순신이 죽지 않고 살아 있고 또 배가 12척이 남아 있으니 싸울 자신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문장이 가장 감동적인 문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로 인해 왜군과 지금의 전라남도 남쪽에 있는 해안에서 명량대첩이라는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때 이순신이 거느렸던 배는 13척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수군은 200척이나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200척과 13척이 싸웠습니다. 이 싸움에 대해서 이순신은 자신의 일기에 아주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기록 문학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른 아침에 보고하기를 수를 알 수 없도록 많은 적선이 명랑으로 들어와 곧장 우리가 진치고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즉각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가니 적선 130척이 우리 배를 에워쌌다. 여러 장수들은 적은 수로 많은 적을 대적하는 것이 두려워 모두 피하기만 하는데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이미 두 마장 밖으로 나가 있었다. 노를 저어서 재촉하여 앞으로 돌진하여 각종 대포를 폭풍같이 우뢰같이 쏘아대고 군관들이 배 위에 총총히 들어서서 화살을 빗발처럼 쏘니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나왔다가 물러났다가 하였다. 그러나 겹겹이 둘러싸여서 형세가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어 온 배의 사람들이 돌아다보며 얼굴빛을 잃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타이르되 적선이 비록 많다고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치 못할 것이니 조금도 마음을 동요하지 말고 또 쏘라 하였다. 여러 장수들의 배들을 본즉 먼 바다로 물러서 있는데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고자 해도 적들이 그 틈을 타서 더 대들 것이라 나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호각을 불어 중군에게 군령을 내리는 깃발을 세우게 하고 또 깃발을 세웠더니 중군장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츰 내 배로 가까이 왔으며, 거제 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다가왔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친히 안위를 불러 말하기를 너는 군법으로 죽고 싶으냐, 내가 군법으로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하니 안위도 황급히 적진으로 돌입하여 싸웠다. 또 김응함을 불러 너는 중군으로 멀리 피하여 대장을 구원하지 않으니 죄를 어찌 피할 것이냐, 당장에 처형할 것이로되 전세가 또한 급하니 우선 공을 세우게 하리라 하였다. 그래서 두 배가 앞서 나가자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의 배 두 척에 지시하여 일시에 안위의 배에 개미가 붙듯이 서로 먼저 올라가려 하니 안위와 그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죽을 힘을 다하여 혹은 모난 몽둥이로 혹은 긴 창으로 혹은 돌덩어리로 무수히 마구 쳐대다가 배의 사람들이 거의 기진맥진함으로 나는 뱃머리를 돌려 바로 쫓아 들어가 빗발치듯 마구 쏘아댔다. 적선 3척이 거의 다 엎어지고 쓰려졌을 때 녹도 만호 송여정과 평산 포대장 정웅두의 배들이 뒤따라와서 힘을 합쳐 적을 사살하니 몸을 움직이는 적은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내용을 풀이하면 명량전투 때 이순신의 부하들은 이순신을 피해서 달아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왜적이 너무 강하니까 달아나려 했던 것이지만 이순신은 달아나는 부하들을 불러서 군법에 죽고 싶으냐라고 타일러서 겨우 싸우게 하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이순신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즉 이순신은 나라가 도와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싸워서 이겼습니다. 이 점이 이순신의 위대성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도고 헤이하치로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러일전쟁 때 일본 연합함대를 이끌고 대마도 앞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전멸시킨 사람입니다. 그래서 러일전쟁 때 일본이 이기도록 만든 사람입니다. 기자들이 도고 헤이하치로를 트라팔가르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무찌른 영국의 넬슨 제독에 비교했더니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를 넬슨 제독에 비교한 것은 괜찮지만 나를 이순신에 비교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이순신보다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아주 겸손한 말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넬슨이나 도고 헤이하치로는 정부와 국가가 전적으로 지원해서 이겼지만 이순신은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데도 혼자의 힘으로 압도적인 병력을 가진 적을 무찔렀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은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하는 분이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해서 쓴 일기가 참 많이 나옵니다. 당시에 어머님은 충청남도 아산에 있었습니다. 그 어머님이 잘 계시는지에 대한 걱정을 다룬 대목이 난중일기에 100회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가 전쟁 중에 사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막내아들마저 전사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그 얼마나 비통했겠습니까. 막내 아들 이름이 면입니다. 막내아들의 전사통지를 받았을 때의 심경을 이순신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1597년 10월14일의 일기입니다. '저녁에 천안으로부터 사람이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겉봉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심기가 혼란해졌다. 겉봉을 대강 뜯고 열어 글씨를 보니 바깥 면에 통곡이라는 두 자가 씌어 있어 아들 면이 전사했음을 알고 간담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신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맞거니와 어떻게 네가 죽고 내가 살아 있으니 이렇게 어긋나는 이치가 어데 있으랴. 천지가 어두워지고 캄캄하고 밝은 해 조차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이순신은 겉으로는 아주 엄격한 장군이었습니다. 난중일기에 보면 탈영한 군인들을 잡아와서 처형을 하고 엉터리 보고를 한 장교들에게 곤장을 치는가 하면 뇌물을 받고 배를 빌려주는 군인들을 처벌하는 행위가 120회나 나옵니다. 이렇게 군율을 세우지 않으면 군대를 해산해야 될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속으로는 따뜻한 분이었고 여린 분이었지만 바깥으로는 엄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나라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악역을 맡았던 분입니다. 우리 역사에는 악역을 맡았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원래 착한 사람들이 악마처럼 되어가지고 국민들을 닦달해 많은 것을 만들게 하고, 결국 그 국민들이 잘 살고 잘 먹게 부자가 되도록 하게 한 사람들이 역사의 악역입니다. 바로 박정희와 이순신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장군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김정일 장군 같은 자가 있는가 하면 이순신 장군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오늘 이순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www.chogabje.com/ |
[ 2009-10-13, 14:56 ] 조회수 : 208 |
첫댓글 김정일이 위대한 장군이라?? 훗 우습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