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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역사]
1999.10.02 어머니의 꿈
[월별빛역사] 10월의 빛역사
1987.10.03 화왕산 동굴 노인과의 만남과 비서
1994.10.15 학회설립과 고려예식장 첫 공개 강연회
1995.10.7. 한라산 서치라이트 빛현상
1997.10.10 손인수 교수의 빛만남
1999.10.02 어머니의 꿈
1999.10.04 계룡산 신원사의 풍경소리
2000.10.20~31 메주고리예 성모님
2015.10.10 카프리섬 제2의 빛만남
빛역사 만평
제57화 황금 볏짚단의 꿈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9JVO/67
제70화 황금 볏짚단의 꿈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9JVO/82
황금 보릿단의 빛무리
<행복을 주는 남자재판 1쇄 P. 93-100>
태몽 이야기를 통해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내게 용기를 북돋워주신 어머니,
자식의 앞날을 무한한 사랑으로 축복해 주시는 어머니의 마음에
나는 가슴이 다 뻐근해졌다.
“얘야, 이제 아무래도 약속한 때가 다 된 것 같구나.”
그날 저녁, 어머니는 유난히 그 말을 되풀이하셨다. 엄니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이었다. 어머니의 주위에는 자식들과 학회의 오랜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 위로 황금빛 저녁 해가 드리워졌다.
평소 어머니께서 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아비야, 나는 꼭 두 주일만 아프다 죽었으면 좋겠다. 첫 주는 내가 알고, 그 다음 주는 자식들이 알고…. 그러면 그 시간 동안 이 몸이 살아오면서 지은 죄,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게 기도도 하고, 또 너희들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서 좋지 않겠니. 그렇게 꼭 두 주일 동아만 아프다가 하느님의 나라로 가고 싶구나….”
마지막 날까지도 어머니의 손에는 평생을 함께 한 묵주가 들려있었다. 어머니는 묵주를 늘 두 개씩 챙기셨는데, 하나는 자식들을 향한, 다른 하나는 세상의 모든 영혼들을 향한 기도를 위해서였다.
그렇게 평생을 올린 기도 덕택이었을까, 어머니는 당신이 원하시던 대로 그토록 좋아하시던 성모님의 로사리오 성월(聖月)이 시작되던 시월 이튿날,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어머니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게 말씀하셨다.
“아범아, 네가 가진 그 힘을 세상 모든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거라…. 그래서 이 세상을 더욱 맑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곧 죽게 되더라도, 하늘나라에서 널 지켜주마.”
어머니는 말씀을 잇기가 힘드신지 잠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천천히 눈을 뜬 어머니는 느릿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으셨다.
“너를 가졌을 때의 태몽을 이야기해주고 싶구나. 이렇게 마지막까지 그 꿈이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걸 보니 참 신기한 일이야. 내 어제 밤에도 묵주기도를 올리다 잠이 들었는데…, 너무도 아름다운 빛의 현상을 보았단다. 그리고 너를 낳기 전 꾸었던 그 태몽을 다시 꾸었어. 아, 아무래도 이제 약속한 때가 다 된 것 같구나.”
어머니는 마치 꿈을 꾸는 듯 먼 허공을 응시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혹 어머니가 몸이 많이 쇠약해지신 탓에 정신에 혼란이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다 못한 내가 물었다.
“어머니,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정광호! 넌 내 아들 광호다!”
평소 아이 이름을 대며 나를 부르시던 것과는 달리, 그날 어머니는 유난히도 크고 또렷하게 내 이름 석자를 부르셨다. 마치 마지막까지도 당신께서 맑은 정신을 놓지 않고 있었음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시려는 듯.
이윽고 어머니는 나와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태몽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했다.
“추수가 끝난 가을 벌판이었지, 가을걷이가 끝난 벌판에 누런 볏짚단들이 큰 뭉치를 지어 차곡차곡 세워져 있더구나. 주위는 온통 끝도 없는 들판이었고, 그 들판 가득 황금빛이 찬란하게 내리비치는데, 내 생전 그리 밝은 빛은 본 적이 없단다.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어. 그런데 그 커다란 볏짚단들 사이로 너무도 보잘것없이 작은 보릿단이 하나 보이더구나.
‘어째 저 짚단은 저렇게 빈약하고 작을꼬?’
나는 왠지 그 짚단이 측은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한참을 눈을 뗄 수가 없었어.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너무도 영롱하고 아름다운 빛무리가 내리비추었지, 그러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큰 볏짚단들이 그 앞으로 와서 절을 하는 게 아니겠니. 그 작고 볼품없는 보릿단은 주위의 절을 받으며 당당하게 서 있었어.
‘참 신기하기도 해라. 짚단끼리 저렇게 절을 주고받다니…. 그리고 저리도 작은 보릿단에게 커다란 볏짚단들이 절을 하다니….’
나는 혼자 속으로 생각했지. 그렇게 그 광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는데, 작은 보릿단이 갑자기 내게 걸어오기 시작했어.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쳐다만 보았지. 그래도 보릿단은 계속해서 뚜벅뚜벅 내게 걸어오는 거야. 그러더니 그 보릿단이 나를 확 덮쳐, 그만 나는 온몸으로 그 보릿단을 안고 말았단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꿈에서 깬 후에도 꿈속에서 보았던 그 빛이 온 방에 가득하고, 향기가 진동을 하더구나. 그런 꿈을 꾸고서 너를 가지게 된 거란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때 기억이 생생한 듯 더욱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네가 태어나는 날은 산통이 시작되었는데도 몸이 그다지 아프지 않았어. 그저 황금 들판에서 너를 처음 만나던 그 꿈속의 모습만이 아련하게 떠올랐었다. 참 수월하게 너를 낳았지.”
내가 어머니로부터 처음 그 태몽 이야기를 들은 것은 호텔을 그만두고 학회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범아, 집에 한 번 다녀가거라. 내 너한테 할 말도 있고….”
한밤중에 전화를 하신 어머님의 첫마디였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어머니께서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연락을 드렸었는데, 아마 그 일 때문인 듯했다.
“어머님이세요?”
내가 수화기를 내려놓는 걸 보고 아내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아내도 금세 걱정스런 표정이 됐다.
“무슨 일 있으시대요?”
“집에 다녀가라셔….”
“당신 일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자리에 누웠다.
“당신이 어머님 잘 달래 드리세요. 얼마나 걱정이 많았으면 이 밤중에, 그것도 당신에게 직접 전화를 다 하셨을까….”
아내의 말처럼 어머니는 어떤 일에도 직접 전화하지 않으셨다. 늘 형님이나 조카들을 시켜 전화를 해오신 분이다. 그런 분이 직접 전화를 했을 때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초광력超光力 일로 전화를 드렸을 때에도 어머님은 ‘어멈하고는 상의 한 거냐?’ 라고 한마디만 물으셨다. 그리고는 잘 생각해서 하라고만 하셨을 뿐 다른 말씀은 없어 의외로 쉽게 넘어간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하긴 날 대주교로 만드는 게 소원이셨던 어머님이고 보면 초광력超光力에 대해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만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난 혼자가 아니라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장이었다. 가장이라는 사람이 식구들은 팽개치고 초광력超光力이라는 이상한 일을 하겠다고 하니 어머님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새벽이 다 되도록 잠이 들지 못했다.
다음날, 아내와 함께 어머님을 뵈러 갔다. 어머니는 한복까지 깨끗하게 갈아입으시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내는 그런 어머님이 어려웠는지 힐끗힐끗 내 눈치를 살폈다.
“어멈은 그만 나가보고, 아범은 거기 앉거라.”
아내는 못내 걱정스런 표정으로 방을 나갔다.
“지난번 아범 전화 받고 많이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그런 말 듣자고 아범 오라고 한 건 아니다. 아범이 다니던 직장까지 관두고 그 일을 시작한다고 하니, 꼭 해줄 말이 있어서 널 부른 게야.”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어머님은 길게 숨을 고르셨다.
“사실 나는 너를 신부로 키워 대주교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어릴 적부터 복사 단장을 하며 성당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모습을 보며, 네가 어젠가 훌륭한 신부님이 되리라 생각하며 흐뭇해하곤 했었다. 또 그러기를 간절하게 기도했었고…. 그러던 내가 결국 내 기대를 저버리고 결혼을 하더구나. 그때 내 얼마나 실망했었는지 몰라.”
나는 잠자코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범이 처음 이상한 힘이 있다고 했을 때만 해도 난 아범한테 사탄이 들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범이 병든 사람을 고치는 걸 봤다는 사람이며, 아범한테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걸 보니 조금 마음이 놓이더구나. 하느님이 우리 아들에게 성령의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 거야. 하지만 막상 네가 이제 그 일에만 전념하겠다니 또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구나.”
어머님의 목소리는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 그 일을 못 하게 반대하시는 건 아닐까….
“아범이 비록 신부는 못 되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베풀고, 또 함께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이니 대견하게 생각한다. 이런 말은 처음 하는 게다만, 아범은 특별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각별히 몸조심해야 한다.”
어머니는 진심으로 자식의 앞날을 축복하며 간절한 기도를 아끼지 않고 계셨다. 지금껏 나의 걱정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난생처음, 꼭 돌아가시기 전처럼, 내게 태몽 이야기를 해주셨다.
“난 그 꿈 이야기를 지금까지 차마 아무에게도 꺼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도 생생하고 또렷한 꿈이었기 때문에, 분명 네가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 되리라 믿으며 널 키웠다. 아범아, 너는 세상을 위해서 큰일을 할 사람이다. 부디 내 말 명심하고 부디 훌륭한 일 많이 해야 한다.”
“네, 어머니 잘할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어머니가 그날 날 부르신 까닭은 지금껏 소중히 간직했던 꿈을 꺼내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내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자식의 앞날을 무한한 사랑으로 축복해 주는 어머니의 마음에 나는 가슴이 다 뻐근해졌다.
어머니의 격려 덕택에 나는 한결 힘을 내어 학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가 임종을 눈앞에 두고 다시 그 꿈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이다.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자식을 걱정하며 힘을 주시려는 어머니의 마음에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이 찡해졌다.
어머니는 그 꿈 이야기를 끝으로 지극히 전지전능하시고 우주의 마음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두손을 모으시자 이내 오색의 영롱한 빛줄기가 천천히 주위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어머니께서는 고요히 잠드시더니 영영 깨어나지 못하셨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영원히 떠나가셨다.
그렇게 어머니가 가신지도 어느덧 이태가 지났다. 가끔 학회 일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과 품속이 그리울 때마다,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해주셨던 그 꿈 이야기를 생각하며 평소 어머니께서 즐겨 찾으시던 남산동 성모당을 찾아 꽃 두송이와 함께 촛불 두 자루를 켜 올리곤 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지막 소망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내 온 힘을 다해서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행복을 주는 남자
초판 1쇄 인쇄일 2002년 6월 07일
초판 1쇄 발행일 2002년 6월 20일
재판 1쇄 발행일 2002년 8월 25일 P. 93-100
사람은 무엇을 위해
태어나는가
<그림찻방 3 P. 320-321>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어머니는 나를 깨워
계산 성당 새벽 미사를 위해
나를 이끄셨다
계산성당가는 길
그날도 나는 졸린 눈울 비비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칠흑빛
어둠만이 가득했던 새벽길을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온 대지는 눈에 뒤덮여 있었고,
가끔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쳐
온몸을 차갑게 휘감고 지나갔다
겨울바람의 냉기가 허기진
가슴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104개의 계단을 통과할 무렵이면
-광호야!
사람은 무엇을 위해 태어나느냐?
추위에 이를 부딪칠 새도 없이
날마다 반복되는 어머니의
교리문답이 시작되었다
사실 주교님의 반지에 그토록
입을 맞추려 했던 것도
이 시간,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다
-사람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 태어나요!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이미 수백 번도 더 들어왔던
대답을 한 번에 건넸고
졸린 눈을 다시 비볐다
대답에 만족한 어머니는
곧 흡족한 표정을 지으시고
묵묵히 묵주 알을 굴리셨다
그때 갑자기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른 산새 소리에 놀라
어머니의 치마폭에 몸을 묻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태어나는지
잊지 말라는 듯이
출처 : 甲辰年 그림찻방3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3
2024년 6월 22일 초판 1쇄 P. 320-321
감사합니다.
귀한 빛역사이야기 담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