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동네 한 바퀴
칠월 초순 일요일 새벽 열대야로 잠을 뒤척였겠지만 본디 일찍 잠들어 일찍 깨어남은 내 버릇이다. 정신을 맑게 차려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조각가 이일호의 ‘어느 예술가의 잠꼬대’를 펼쳐 읽었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조각은 내 사유의 외연을 확장하고, 글은 내면을 응축시킨다.’면서 몸으로 빚어내는 조각과 머리를 굴러 지어내는 글은 상극이라며 글쟁이에게 경의를 표했다.
한낮이면 더워서 야외 활동이 어렵겠다 싶어 날이 밝아오기 전에 산책을 나섰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최고층이라 새벽녘 현관을 여닫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면 앞 집이나 아래층에 조심이 되어 고양이 발걸음처럼 살금살금 움직인다. 1층으로 내려가니 아파트 경비원과 뜰에 켜진 외등이 새날을 맞을 준비를 했다. 건너편 아파트단지에서 용지호수로 가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새벽 어스름에 용지호수 잔디밭에는 파룬궁 수련인들이 현수막을 펼쳐놓고 뭔가 동작을 펼치려고 했다. 나는 그들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호숫가를 따라 걸으니 수면에는 가로등에 비친 부들과 수련 잎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처럼 새벽잠이 없을 노인네 몇몇이 산책로를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호숫가를 한 바퀴 돌아 용지문화공원으로 진출하니 잔디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중앙대로를 건너 동편 용지문화공원으로 가니 거기는 용지호수처럼 산책을 나온 이들이 더러 보였다. 인근 주택지와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산책을 나오기에 접근성이 좋은 공원이었다. KBS방송국과 가까워 야외공연 무대가 잘 설치되어 있었는데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음악에 따라 율동을 펼치는 이가 있었다. 나는 맞은편 야외무대 객석에 앉아 새벽 명상에 잠겨 보았다.
경남신문사 사옥에서 관공서 거리를 지나 도청으로 향했다. 날이 밝아오는 이른 시각이기도 했지만 주말에 이어진 휴일이기도 해서 아침이 되어도 공직자들을 출근할 일이 없지 싶었다. 내가 중앙대로 관공서 거리로 산책을 나서는 경우는 주말을 택해 가는 편이 많았다. 이른 봄이면 매화나 목련꽃이 화사하고 늦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웠다. 여름은 여름대로 녹음이 우거진 거리였다.
도청 광장에서 숲이 우거진 정원으로 들어서니 경상남도 지형의 모습을 본뜬 연못이 나타났는데 시원함을 더해 주었다. 엊그제 선출직 지방자치 단체장과 의원들의 임기가 개시되어 그들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지역민에게 다가가려고 하지 싶었다. 넓은 도청 정원에는 아침마다 산책을 나와 걷는 할머니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지팡이를 짚은 누구는 다섯 바퀴째 걷는다고 했다.
도청 곁의 경남경찰청 청사 앞으로 가니 직장 협의회 이름으로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요즘은 기업의 노동자는 물론 공직 사회에서도 직급에 따라 제 목소리를 당당히 내고 있었다. 공복이라면 국민을 섬기는 일에 얼마나 치열히 고민하고 있는가 되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경찰청 본관 뒤에는 근래 새로 지은 번듯한 신관이 들어서 있었다.
경찰청에서 창원대학 동문 앞 회전 교차로에서 캠퍼스로 들어섰다. 공학관과 자연대학을 거치도록 연구실에 켜진 불빛을 볼 수 없었다. 인문관은 올여름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갔고 중앙도서관도 적요하기만 했다. 일요일이고 방학이라지만 대학의 연구실과 도서관은 밤낮 구분 없이 불이 켜져 있어야 할 텐데 나라의 미래가 은근히 걱정됨은 혼자 하는 쓸데없는 기우이길 바랄 뿐이었다.
생활관 앞 청운지에서 창원국제사격장으로 올라가 잔디밭 바깥 트랙을 따라 걸으니 아침 산책을 나온 이들이 더러 있었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잔디밭을 서너 바퀴 걷고는 사림동 주택지를 거쳐 퇴촌삼거리에서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로 들어섰다. 꽃대감 친구는 이른 시각 꽃밭에 내려와 태풍을 대비하는 지지대를 세워주고 있었다. 밀양댁 안 씨 할머니도 손에 호미를 쥐고 나타났다. 22.07.03
첫댓글 조각은 내 사유의 외연을 확장하고,
글은 내면을 응축시킨다.
멋진 표현이네.
꼭두새벽부터 움직이는 부지런함은 보기 좋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