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453장 (구 506장) / 로마서 14 : 01 - 12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453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로마서 14장 01절 – 12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아멘!
우리들의 태도에 따라서 우리의 공동체는 달라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우리의 공동체가 계속 발전할 수도 있고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을 하면 사랑이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비판하면 비판이 되돌아옵니다. 사랑은 산산조각이 난 공동체를 하나로 만듭니다. 그러나 비판은 하나 된 공동체를 산산조각으로 만듭니다. 우리가 살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충고할 수 있습니다. 이 충고는 남을 살려줍니다. 그러나 비판은 남을 내 기준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다보니, 남을 아프게 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칩니다. 그러므로 날카로운 비판은 사람을 죽이지만, 사랑스러운 충고는 사람을 살립니다. 이와 같이 비판이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작용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활동할 당시의 로마교회는 많은 문제 중에 특별히 비판하는 문제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첫째로 먹는 문제를 놓고 서로 의견이 갈려서 비판하게 되고 급기야 교회 안에서 큰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는 것이 문제입니다. 로마교회의 어떤 성도들은 고기는 쳐다보지도 아니하고 정육점 근처에도 가지 아니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에서는 고기를 우상에게 제물로 바친 후, 그것을 시장에서 판매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상에게 제물로 받쳤던 고기를 먹는 것은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예 고기는 전혀 먹지 아니하고 채소만 먹었습니다. 반면에 어떤 성도들은 구운 고기 먹고 싶으면 구워서 먹고, 튀겨먹고 싶으면 튀겨 먹고, 날 것으로 먹고 싶으면 날 것으로 먹었습니다. 거리낌 없이 마음껏 고기를 먹었습니다.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라 할지라도 내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사하고 먹으면 아무 문제될게 없다고 주장하며 주저하지 않고 먹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의 문제는 고기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인신을 공격하며 비판하는 단계로 크게 발전했습니다. 자치 잘못하면 교회가 깨어지게 될 위기에 직면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 처해있는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이 연약한 형제를, 나와 의견이 다른 형제를 비판하지 말고 사랑으로 이해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여기에서 '받으라.' 는 말은 호의적으로 친절하게 맞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즉 믿음이 약한 사람을 비판하지 말고 사랑으로 이해해주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보면, 나이, 성별, 직업, 학력, 등 여러 종류의 분들이 앉아 계십니다. 또 믿음의 생활을 시작한지, 1주일 되신 분, 한 달 되신 분, 1년 되신 분, 10년, 20년, 수십 년 되신 분 등, 믿음의 정도가 제각기 다릅니다. 한 자리에서 함께 찬양 드리며, 함께 기도하며, 함께 예배드리고 있지만, 믿음의 키 높이는 각각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키 높이가 서로 같지 않고,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장성한 분들은 믿음이 아직까지 연약한 분들을 비판하기보다는 따뜻한 사랑으로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물론 이 말은 믿음이 연약한 자의 잘못된 행동까지 무조건 인정해 주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용납합시다. 그리고 비판하기보다는 사랑으로 이해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 주셨듯이, 그들도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입니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니라." 그들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셨습니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받아주셨다면 우리도 받아 주고,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비판하면 다 도망갑니다. 비판하면 앞에서는 듣는 채, 하다가도 다음부터는 아예 저만치 그 사람의 얼굴만 보여도 도망갑니다. 비판하지 마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고 있어도 자녀들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연약한 분들을 사랑으로 용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가정에서, 사업장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어디에서나, 남을 세워주시는 사람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로마 교회의 두 번째 문제는 날짜 문제였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를 안식일로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 날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안식일 대신, 주일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토요일이나 주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날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 때나 예배 드려도 좋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예배날짜 문제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날짜문제로 말미암아 언쟁을 하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5절 말씀을 가지고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한대로' 즉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소신껏 판단하고 행하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고, 알아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기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입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 주를 위하여 날도 지키고 주를 위하여 음식도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소신껏 돼지, 그러나 그 기준은 주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피 값으로 사셨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7절과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할렐루야! 여러분!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입는 것도 바르는 것도 항상 주님을 위하여 행하시기를 원합니다. 주를 위하여 사시기를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라고 외칠 때, 저와 여러분들은 '주를 위하여' 를 외치며 사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따지지 마십시오.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판단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판단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다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차의 차장이 승객의 표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기차를 잘못 탔으니 다음 역에서 내려서 갈아타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차표 검사를 해 나갈수록 잘못 탄 손님들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그러자 손님 한 사람이 차장에게 물었습니다. "차장님! 실례지만, 혹시 차장님께서 기차를 잘못 타신 것 아닙니까?" 알고 보니 정말로 차장 자신이 기차를 바꿔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공동체에 믿음이 장성한 분 뿐 아니라, 믿음이 연약한 분들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도 받아주시고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연약한 분들을 비판하지 말고 사랑으로 이해하고 세워 주십시오. 모든 판단은 선악 간에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시며, 매일 매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