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없이 오래 살다가 어느 날 고통 없이 눈감을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
젊었을 때는, "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복이라고 노인들은 입을 모으는가 " 관심 없이 귓등으로 흘려버렸으나 여든셋의 할아버지가 된 지금은 그 탐욕을 입 밖에 내놓지는 않으나 그것을 바라고 있기는 하지.
지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은 그들의 평균수명이 얼마 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으로 나이 들고 쇠약해짐을 느낄 때 당연히 세상에서 사라짐과 작별의 시간을 곧 맞이하여야 함을 잘 알게 되나, 그 안타까움이나 공포를 현실에
대입하는 능력은 터무니없이 모자란다.
쉬운 말로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도 밤의 여행을 더 원하기도 하며 한 생애에 줄곳 손 놓아보지 못한 여러 탐욕과 미련, 시기 질투까지 사소하며 쓸모없는 추악을 버리지 못한다.
요즘은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고,
눈여겨보기도 한다.
꽃잎의 색상이 모두 다르고 내음도 다양하듯이 나뭇잎 하나도 같은 것이 없으며 다채롭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 탓인지,
매 순간 會者定離의 숙명을 깨닫고 때에 맞추어 작별과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자 하는 것인지.
저는 지금 종로길을 걷고 있습니다.
순간이동에 시간은 소요되지 않습니다.
즉시 길 옆의 간판을 하나하나 읽으며 걷습니다.
조금 더 가면 동대문이 나오고,
신설동으로 더 갈까
창경원 쪽으로 꺾을까.
뉴욕, 아이보리코스트, 시드니, 케냐, 포르투갈의 허물어진 성터...
꿈에 자주 나타나는 계곡물은 어디였을까.
그 귀하고 그리운
적막 속의 많은 추억은 봄바람처럼 나와 함께 모두 사라지겠지.
한 때 세상에 머물고
참 아름다운 인연이었던 것들이.
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