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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은 복이 있으리로다
누가복음 12:41-48
41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 12:41-48 / 베드로가 물었다. `주님, 이 비유는 저희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42-44) 주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주인에게서 종들을 통솔하는 책임을 맡고 때에 맞춰 그 종들을 먹이는 신실하고 슬기 있는 모든 관리인에게 말하고 있다. 만일 주인이 돌아와 그가 자기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다. 주인이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그가 속으로 `주인은 오랜 뒤에 돌아올 것이다' 생각하고 남녀 종들을 때리고 술판을 벌여 먹고 마시는 것으로 세월을 보낸다면 46) 생각지 않은 날 예고치 못한 시간에 주인이 와서 그를 해고하여 신실하지 않은 자들이 받는 벌에 처할 것이다. 47) 자기 책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무서운 벌이 내려질 것이다. 48)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나쁜 줄을 모르고 한 사람은 그 벌이 가벼울 것이다. 많이 받은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인지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청지기(41-43) 예수님은 주인이 없는 동안 청지기가 보일 수 있는 두 가지 행동과 그에 따른 주인의 평가를 또 다른 비유를 통해 설명하십니다. 이번에는 청지기의 역할을 맡은 종을 예로 드십니다. 이 비유는 성도들을 책임지는 영적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을 교훈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주인은 신실하고 책임감 있는 청지기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당시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는 주인이 자리를 비운 동안 집안 전체를 관리하며 주인의 뜻에 따라 종들에게 때에 맞는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일을 맡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종은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오면(44-48) 청지기는 주인이 늦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종들을 학대하며 먹고 마시는 일에 빠져 지냅니다. 그는 주인의 도착 시간을 자기 방식대로 예측하고 그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맡겨진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청지기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마치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는 자신도 종이라는 사실을 잊고 권위를 남용하며 맡겨진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주인이 갑자기 돌아오고 그 결과 신실하지 않은 청지기에게는 무거운 벌이 내려집니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신임을 받아 중요한 책임을 위임받았지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유인이 아니라 종의 신분이었기에 자유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주인은 종이 자신의 뜻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에 따라 징벌의 정도를 달리합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은 자에게는 그만큼 더 큰 책임을 물으십니다. 예수님 당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사업을 경영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맡은 바가 클수록 주인이 입는 피해도 크기 때문에 그에 따른 책임과 징벌도 더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용: 당신에게 맡겨진 일을 책임감 있게 감당하며 진실한 청지기로 살고 있습니까?
빛과 어두움이 명백하게 구분되어있듯, 하나님께 속한 자와 마귀에게 속한 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와 마귀에게 속한 자를 얼른 구별해낼 수 없지만 하나님은 완벽히 구별하십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속성을 가졌기에 사랑하고,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마귀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온갖 핑계를 대며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지만 마귀의 자녀들은 미워하며 시기와 질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이 귀한 말씀을 되새깁시다.
< 설 교 >
성실한 청지기
눅 12장 36~48절 / 김상복목사
사람의 일생을 살펴볼 때 그 결과가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서부의 큰 철도회사에 사장이 새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취임식에 참석한 한 직원은 새 사장이 30년 전에 자기와 같이 일했던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앤더슨! 자네가 우리 회사 사장이 되었군. 30년 전에 우리는 하루 5불을 벌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었나!” 라고 말했습니다. 사장은 “아, 정말 오래 전 이야기야! 그런데 나는 5불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 철도사업의 발전을 위해 일했다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사람의 출발은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죽도록 일하고 하루에 5불 버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국가의 철도를 위해서 헌신하였기에 30년 뒤 그 회사의 사장으로 돌아왔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실한 청지기”와 “악한 청지기” 두 종류의 사람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신실한 청지기이며 어떤 사람이 악한 청지기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신실한 청지기는 첫째, 자기가 청지기인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인생은 청지기다. 내 것은 존재하지 않고 나에게 맡겨진 것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부잣집에 청지기로 들어간 어느 사람은 주인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멀리 잔칫집에 가자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지만 주인의 마음에 맞도록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서 주인이 올 날을 기다립니다. 이경은 밤 12시, 삼경은 새벽 3시인데 주인이 이경에 돌아오든 삼경에 돌아오든 언제나 주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을 비롯해서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제가 어디선가 보니 건강을 위해서 좋은 환경을 가꾸는 분이 환경활동 중에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공기와 아름다운 산천초목 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지요. 한번은 비행기에서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이 제 옆자리에 앉았는데 끝도 없이 뭔가를 계속 먹더군요. 기내식까지 다 먹은 후 마실 것은 ‘다이어트 콜라’를 찾아요. 뭔가 맞지 않습니다. 내 몸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기 때문에 청지기 의식으로 하나님 앞에서 잘 돌봐야 합니다. 아무거나 몸에 해로운 것을 마구 먹어서 될 일입니까? 요즘 한국에는 암이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지 모릅니다. 모든 암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유전적인 것뿐 아니라 먹는 음식, 사는 방식 등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긴 몸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남용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어진 24시간을 최선의 결과를 얻도록 지혜롭게, 생산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냥 낭비하고 써 버리면 가버린 시간을 다시 주어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에 대해서도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도 그렇습니다. 어떤 은사든지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뭔가 재능 하나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할아버지가 목사님께 “저에게는 아무 은사가 없어요. 찬양도 못하고 주일학교에서 가르치지도 못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할아버지께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은사가 있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제일 먼저 오셔서 맨 앞자리에 앉아 제 설교를 듣는 그 모습을 보면 제가 얼마나 은혜가 되는 줄 아십니까! 듣는 은사가 있잖아요.” 하셨답니다. 나의 능력, 재능마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알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선하게 잘 사용하는 것이 청지기입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잔뜩 쌓아 놓은 채 죽어버리면 큰일입니다. 그 재물은 나에게 주신 것이지 자식들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식들은 하나님께서 그 자식의 형편에 따라 주실 것입니다. 지금 재산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연세 드신 분들, 여러분이 결혼할 때 뭐 있었어요? 별로 없었지요. 어떤 분들은 “목사님, 우리는 단칸방 셋방살이부터 시작했어요.”라고 하셔요. “지금은요?” “지금은 아파트가 있지요.” 하나님께서 몇 배를 주셨습니까? 계산이 안 됩니다. 물질도 나한테 주신 것이니 끝까지 책임지고 가장 선하게, 훌륭한 목적을 위해 다 쓰고 가야지요. 주님께서 “내가 너에게 10억을 주었는데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실 때 “아, 글쎄, 주님께서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시지 않고 갑자기 데리고 오시는 바람에 제대로 처리를 못하고 왔습니다.” 하실 겁니까? 아니면 “아, 그거요, 우리 아들한테 다 주고 왔습니다.” 하실 겁니까? 아들은 아들 몫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었지만 평생 신실하게 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듯이 아들들은 여러분이 공부만 시키고, 그들이 여러분 살아온 모습대로 열심히 산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적합한 은혜를 주십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에덴동산과 같은 아름다운 가정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잘 가꾸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망가뜨리면 되겠어요?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셨다고 하는 소신이 가슴에 있어야 여러분의 삶에 성공적인 모습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잘 준비된 삶을 산 사람입니다. 주인이 언제 봐도 그 청지기는 신실하고 충성스럽게 일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신실한 마음으로 하라.”(골3:22) 직장에서 일을 해도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직장을 주신 것이므로 내가 반드시 이 직장의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고 잘 준비된 삶을 삽니다.
셋째로, 언제나 종말적인 삶을 산 사람입니다. 언젠가는 인생이 끝난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요. 인생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놓고 따지는 날이 옵니다. 그래서 언제 종말이 오든지 하나님 앞에 신실한 모습으로 살다가 가고 싶다는 겁니다. 제 마음의 소원 가운데 하나는 예배드리는 도중에 예수님께서 오시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할렐루야 교회 교인들이 몽땅 하늘나라에 가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 골프 치러 간 사람들은 큰일이지요. 허튼 생각과 허튼 소리를 하며 잘못된 삶을 사는 중에 주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시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종말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은 도적같이 임한다 하셨습니다. 늘 긴장감과 기대감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리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말과 행동이 다 달라집니다. 언제든지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주님이 조금 지체하신다면 우리가 금방 갈 수도 있습니다. 이번 휴가 기간 동안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교회 수련회 갔던 차가 굴러 몇 사람이 죽은 사고도 있었습니다. 언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지 모릅니다. 매일이 주님 만날 시간인줄 알고 신실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신실한 종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서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밤중에 돌아온 주인이 이 신실한 사람을 보며 복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37절) 하나님께서 특별대우를 해 주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신실한 사람들의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실한 사람들을 땅에서도, 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언제나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중국의 어느 왕이 부하에게 우물물을 길어 독을 가득 채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부어도 독에 물이 차지를 않습니다. 밑이 빠진 독이었습니다. 그래도 신하는 계속 물을 부었습니다. 어느덧 우물이 말라버렸어요. 그런데 그 바닥에 누런 것이 보였습니다. 꺼내 보니 큰 금덩어리였어요. 그것을 왕에게 가지고 가서 “폐하, 죄송합니다. 제가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우물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우물 바닥에서 이 금덩어리가 나왔습니다.” 왕은 웃으면서 “참 잘했다. 자네가 얼마나 충성하는지 보려고 깨진 독인 줄 알면서도 물을 채우라고 했네. 이 금덩어리는 자네같이 충성스런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니 자네가 가지고 가서 편안하게 잘 살게.”라고 말했습니다. 왕의 명령에 끝까지 순종하여 우물을 팠을 때 왕이 일부러 넣어놓은 금덩어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부하가 “왕이 정신이 나갔어. 밑 빠진 독을 어떻게 채우라는 거야?” 불평을 했더라면 마지막 칭찬도 없고 마지막 금덩어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면서 청지기로서 언제든지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내가 받은 모든 것들이 주님이 주신 것인 줄 알고 신실하게 살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저 우물 밑 금덩어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신실한 삶이 우리의 삶이되길 바랍니다.
넷째로,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42절). ‘진실하다’는 신실하다 또는 충성스럽다(faithful)는 말입니다. 주님의 말을 믿고 신실하게 사는 모습입니다. 사람을 보고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42절) 이 메시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베드로가 물었지요. “예수님, 지금 이 비유가 우리를 위한 것입니까?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까?” 물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비유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학생은 학생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학생으로서 할 일이 있습니다. 직장인으로서, 가정주부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 있습니다. 청지기입니다.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성장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언젠가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한 평가가 있습니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44절) 예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하라. 사람을 보지 말고 나를 보고 충성하라. 그러면 더 큰 것을 맡기리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땅의 축복과 영원한 축복이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건축회사를 다니다가 은퇴를 하게 되었을 때 사장이 마지막으로 집을 하나 더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기를 써먹는다는 생각에 속이 상해서 뚝딱뚝딱 대충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은퇴하는 날 사장이 말했습니다. “참 수고했습니다. 이 집은 평생 이 회사에서 수고한 당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 사람은 ‘이럴 줄 알았으면 비싼 재료로 잘 지을 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주인에게는 다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생각이 없겠습니까? 신실한 여러분을 향한 축복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실한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특별대우를 해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반면에 악한 청지기가 있습니다. 악한 청지기에게는 몇 가지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고방식이 잘못되었습니다.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45절). 주인이 언제 올지 어떻게 압니까? 그런데 ‘주인이 아마 천천히 올 것이다. 올 날이 며칠 더 남았으니 아무렇게나 하자.’고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생각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잘못 생각하면 결과도 잘못되고 잘 생각하면 결과도 좋습니다. 생각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만들면 모든 것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의 생각을 주관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을 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찾게 하여 주옵소서.”
둘째는 대인관계가 잘못되었습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대인관계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 이기적으로 남을 이용해먹으려 해서는 절대로 잘될 수가 없습니다. 본문의 이 사람도 대인관계가 아주 나쁩니다. 노비를 때렸습니다. 직장에 일할 사람들을 두었으면 사랑하고 베풀고 잘 돌봐야 합니다.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인정해줘야 합니다. 자기 밑에 있는 사람이라고 마구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에서는 약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이가 두어 살만 어려도 말을 놓습니다. “내가 선배 아닌가!” 그건 학생 때 이야기지요.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서로 존중해야지요.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성공하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 기술과 능력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연구를 보면 성공한 사람들의 80%가 대인관계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은 20% 정도랍니다.
악한 청지기는 원문에 따르면 “남자 종들과 여자 종들”을 때렸습니다. 특별히 여자를 때리는 사람입니다. 제가 제일 고약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지 입은 남자가 치마 입은 여자와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힘이 좀 세다고 여자를 싸워 이기는 것은 진짜 치사한 일입니다. 악한 청지기는 자기 밑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남자, 여자 상관없이 때렸습니다. 여러분의 밑의 사람도, 나이 적은 사람도, 여자처럼 약한 사람도,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어리다고 마구 대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아이인데 부모라고 해서 막 하면 되겠습니까? 옛날에는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부모가 화나고 짜증이 나면 막 대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자녀가 적어서 그러고 싶어도 할 아이가 없어요.
셋째는 정신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노비를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해서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술 취해서 정신없이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에 취해서 자기 인생을 방치하고 균형을 잡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무엇에 취해 있습니까? 조심해야 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시간과 물질, 가족과 직장, 교회, 우리 사회를 잘 섬기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축복하시고 또 영원히 축복하실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을 알면서도 허송생활하고 불충성하는 사람은 주인에게 맞을 것이라고 합니다.(47절) 의도적으로 불충성하고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은 크게 맞지만, 고맙게도 몰라서 실수한 것은 주인이 감싸준다고 합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48절) 정확하게 말하면 “will be bitten few blows"입니다. ‘few blow'는 맞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연약해서, 실수로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신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맥킨리 국회의원이 워싱턴에서 전철을 타고 국회로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한 할머니가 어느 사람 앞에 섰는데 앞에 앉은, 할머니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할머니를 못 본 척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맥킨리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임명하는 중에 어느 날 대사 추천 명단이 올라왔어요. 가만히 보니 예전에 전철에서 얼굴을 가리고 앉아있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편하겠다고 힘든 할머니를 못 본 척하고 좋은 선을 베풀 기회에 선을 행하지 아니한 사람은 나라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은 절호의 기회를 놓쳤지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언제 어디서나 늘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충성스런 사람이 되어 마지막까지 우리의 최선을 주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성취하면서 이 땅에서 잘 되는 축복, 하늘에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복된 청지기가 되는 길
눅 12장 41~48절 / 이한규목사
< 복된 청지기가 되는 길 >
성도는 욕망을 잘 절제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돈과 권력을 평안과 평화의 도구로 쓰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많이 잃는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삶은 복을 잘 활용하지 못해 저주로 만드는 삶이고 제일 고독한 삶은 복을 나눠줄 곳이나 나눠줄 사람이 없는 삶이다. 열심히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을 잘못 사용하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때까지 돈을 벌려고 투자했던 시간은 어디서 보상받는가? 부자에게도 언젠가 고독한 순간이 찾아온다. 열심히 부를 쌓고 한숨을 돌릴 때쯤 다가오는 것은 이웃의 칭송보다 이웃의 시기다.
부를 지켜야 하는 고통도 크다. 신경 쓸 일이 많아 불면증이 생기기도 한다. 전도서 기자의 고백대로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지만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한다(전 5:12). 부를 지키는 고통보다 이웃의 시기 대상이 되는 고통은 더 크다. 결국 심한 피해의식으로 주변과 담을 쌓으면서 고독해진다. 어떻게 그 고독을 벗어나는가? 복을 나눔으로 이웃을 친구로 삼을 때다. 많은 소유보다 많은 친구가 소중하다. 결국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부자는 고독의 가능성을 잘 극복한 위대한 부자가 된다.
“얼마나 잘 버느냐?”보다 “얼마나 잘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의미 있게 쓸 줄 모르면서 돈을 버는 것은 탐욕이지만 의미 있게 쓰면서 돈을 버는 것은 소명이다. 그런 소명의식을 가지라. 참된 행복은 욕망의 충족보다 소명의 충족을 통해 온다. 성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소명적인 목적을 이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 복된 청지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맡은 사명을 잘 관리하라
본문의 청지기는 주인 대신 재산과 종을 관리하는 리더 종을 뜻한다. 그가 맡은 사명은 진실과 지혜로 주인의 가정을 잘 꾸리고 하위 종들을 관리하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일이다. 그 일을 잘 감당한 청지기는 복이 있어서 결국 주인이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긴다(43-44절). 세상에서 청지기 성도가 충성스럽게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면 복도 주어지고 천국 권세가 주어진다는 비유다.
사명대로 살면 하나님이 신기하게 필요를 채워주시지만 사명을 외면하고 축복만 바라면 오히려 축복이 끊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성도들은 선교사를 최고로 예우하고 대접하고 후원했다. 그러나 선교사가 크게 증가하면서 교회나 교인이 선교사를 무조건 지원하기보다 옥석을 가려 지원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한인 목회를 하는 선교사나 선진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는 재정 후원 기도제목을 내놓아도 성도들이 잘 반응하지 않는다. 선교의 본래 사명에 충실할 때만 후원하겠다는 뜻이다.
오지나 험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도 옛날처럼 무조건 돕지 않는다. 개중에는 ‘선교 사명’에 충실하기보다 ‘선교 보고’에 충실한 선교사도 있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선교 보고를 듣고 감동했는데 근처에서 사역하는 다른 선교사들로부터는 전혀 다른 얘기가 들린다. 선교 사명에 불성실한 선교사가 오히려 과장하거나 남의 사역을 도용하거나 혼자 사역을 다 한 것처럼 홍보하면서 후원을 받으러 여기저기 선교 집회를 다닌다는 얘기다.
어느 날 오지의 A 선교사가 B 목사에게 선교지 방문을 종용했다. “비행기 표만 끊고 오세요.” B 목사가 정말 비행기 표만 끊고 갔다. 그런데 선교지를 돌면서 수많은 헌금 압박을 받았다. 패키지여행 갔다가 물품 구매 압박을 받는 심정이었다. 대부분 선교지에 갈 때 그냥 가지 않고 헌금과 선물을 가지고 가는 것을 노리고 비행기 표만 끊고 오라고 한 것 같았다. 결국 B 목사는 A 선교사와의 관계를 끊었다. 사명에 충실하기보다 홍보에 충실해서 후원에 집착하면 대개 후원이 더 끊긴다.
하나님은 사명에 충실할 때 복과 격려를 주신다. 그처럼 사명이 중요하기에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기도할 때는 꼭 세 가지를 물으라.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교회에 유익이 되느냐? 내게 기쁨과 보람을 주느냐?” 그 질문에 “예!”라는 확신이 들면 돈과 시간을 아까지 말고 사명감을 가지고 그 일을 하라. 사명을 외면하면 몸은 편해도 마음에 힘든 일이 수시로 생기지만 사명에 충실하면 잠깐 힘들어도 수많은 축복이 신기하게 주어진다.
2. 맡은 사람을 잘 관리하라
리더 종이 주인이 늦게 올 줄 여기고 하위 종들을 때리면서 먹고 마시고 취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인이 와서 합당한 벌을 내린다(45-46절). 이 비유는 주님의 재림이 더디 이뤄질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사람의 생각을 초월해 오시고 그때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때를 위해 방탕을 삼가고 특히 맡은 사람을 지혜롭게 잘 관리하라. 사람을 만들겠다고 너무 강요하거나 서두르지 말라. 기다리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의 속성에는 ‘찾아감’도 있고 ‘기다림’도 있고 ‘외면함’도 있고 ‘멀리함’도 있다. 그 모든 사랑의 속성을 때에 맞게 지혜롭게 펼치라. 어떤 사람은 묻는다. “다른 속성은 이해되어도 멀리함이 어떻게 사랑인가? 모순이 아닌가?” 그러나 ‘멀리하는 사랑’도 필요하다. 부모가 자녀에게 “얘야,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하는 것은 나쁜 친구를 차별하거나 사랑하지 않아서 하는 말이 아니고 자기 아이만 생각해서 하는 말도 아니다. 그것도 사랑이 내포된 말이다.
나쁜 친구와 어울려서 자녀가 물들면 자녀가 나빠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욕하는 친구와 어울리면 같이 욕하게 되고 음행하는 친구와 어울리면 같이 음행하게 된다. 그때는 자녀도 망치지만 자녀를 물들게 한 나쁜 친구의 영향력도 커지면서 더 나빠진다. 갈등이 고조되면 언어를 끊는 침묵으로 갈등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히듯이 나쁜 친구와는 관계를 끊는 결단으로 나쁜 기운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사귀라.”는 말은 결과적으로 나쁜 친구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말이다.
‘사랑의 사도’로 불리는 사도 요한이 요한이서 10-11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쉽게 말하면 “이단은 상종도 하지 말라.”는 냉혹한 말씀이다. 그 명령을 보고 어떤 사람은 “그가 정말 사랑의 사도인가?” 하고 반문한다. 왜 그런 반문이 있는가? 사랑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나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멀리하는 행동적인 침묵으로 나쁜 영향을 차단해야 언젠가 그가 돌아올 가능성이 커진다.
사람을 잘 관리하는 지혜를 구하라. 그 말은 인맥을 추구해 넓히라는 말이 아니다. 인맥을 계산적으로 추구하고 이용하면 역효과가 생긴다. 인간관계를 할 때는 그 관계를 자기 유익을 위해 이용하지 말라. 자기 십자가를 지려고 해야 인간관계도 견고해지고 축복 가능성도 커진다. 직장에서도 꼭 해야 할 정당한 일이지만 그 일이 부담스럽고 욕먹는 일일 때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욕을 먹고 이미지도 망가지고 악역을 감당하려는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있어야 공동체와 리더의 인정을 받고 결국 리더가 된다.
3. 맡은 시간을 잘 관리하라
주인을 기다릴 때는 주의 뜻을 따라 준비하면서 기다려야 한다(47절). 준비하면서 기다리라는 말은 소중한 시간을 아깝게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시간을 낭비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큰 형벌이 주어진다. 인생 관리는 시간 관리와 관련이 깊다.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복된 청지기가 된다. 소중한 시간을 다 허비하고 나중에 “내게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이라고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시간처럼 강력한 힘은 없다. 시간이 물결을 막거나 되돌릴 것은 이 땅에 없다. 사람에게는 조만간 마지막 때가 찾아온다. 시간이 지나면 대단한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이 도망자 신세가 되고 부자가 쪽박을 찰 때도 많다. 건강도 얼마 후에는 잃는다. 지금도 이 땅에서의 남은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보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시간 관리를 하라. 인생은 무대 공연과 같다. 곧 공연 시간이 끝난다. 남은 시간을 관람자나 구경꾼으로 지내지 말고 끝까지 좋은 공연자나 경기자로 보내려고 하라.
남을 부러워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말라. 부러워하면 한이 없게 된다. 자녀가 없으면 외롭고 자녀가 있으면 괴롭다. 힘써 좋은 대학 보내고 잘나게 키웠는데 그런 자녀가 오히려 불효할 때도 많다. 시간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나이가 들수록 심난해지고 서글퍼진다. 철이 지나도 철이 들지 않은 것은 시간 관리를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 관리를 잘하면 젊음은 잃어도 인생은 잃지 않고 심신은 피곤해도 인생 자체가 고단하지는 않다.
4. 맡은 소유를 잘 관리하라
많이 받아서 소유가 많으면 책임도 크다(48절). 많이 받았으면 많이 드리고 나누고 베풀라. 그런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더 큰 추락을 맞게 된다. 무엇인가를 소유하게 되면 스스로 물으라. “왜 내가 이것을 소유하게 되었는가?” 근면해서 혹은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 그것을 소유하게 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그것을 주셨기 때문이다.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선물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누구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그 소유를 위탁받은 청지기다.
청지기가 가진 것은 자기 것이 아닌 주인의 것이기에 주인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 그것을 자기 것처럼 자기만 위해 사용하면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꼴불견은 부잣집 대문을 지키는 수위의 거드름이다. 수위는 그 집에 있는 나무 한 그루나 개 한 마리도 자기 것이 아니다. 그런데 거드름 피면 방문자들이 다 역겹게 본다. 가진 자의 거드름도 부잣집 대문을 지키는 수위의 거드름과 같다. 하나님이 잠시 맡긴 것으로 거드름 피면 하나님께 찍힌다.
하나님의 뜻은 나눔으로 사회가 조화롭게 유지되는 것이다. 그 뜻을 거역하면 사회에 갈등과 분규가 끊이지 않는다. 나중에는 사회적 대혁명이 일어나 소유한 것을 다 잃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조만간 사회 혁명보다 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하나님은 많이 받은 종에게는 많이 찾는다. 많이 베풀려고 하면 많이 받아도 좋지만 나눔을 거부할 생각이면 차라리 적게 받는 것이 낫다. 하나님이 많이 주신 것은 많이 베풀라고 주신 것이다. 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잘 수행해 마지막 심판 때에 칭찬받는 성도가 되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
눅 12장 47~48절 / 정필도목사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데에 매우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또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잘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으니까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지 돕는 사람이 많아서 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은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 부부관계, 시부모와의 관계, 친척들과의 관계,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잘하므로 이런 사람이 있으면 가정과 직장이 좋은 곳이 됩니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아름다운 교회, 좋은 교회를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질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면, 항상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고,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삽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 양심을 버리고, 진실을 왜곡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사니까 얼마나 악해지는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큰 고생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아도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아도 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사람들은 자연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되고,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다가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게 됩니다. 불의를 행하고, 불의한 짓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계속 되다 보면 생활이 되고, 습관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줄 압니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모르고, 따라서 회개도 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회개도 하지 않고 살다가 죽게 되어, 결국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회개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미 목욕을 했어도 손이 더러워지면 여러 번 씻는 것처럼, 날마다 크고 작은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마음으로 범죄한 것, 말에 실수한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날마다 회개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살면서도 회개하지 않다가 죽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집사, 장로는 되었지만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영접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복음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해도 100% 완전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결단하고, 소원하며, 간구하는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큰 복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이었던 헨리 포드는 믿음이 독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간 적이 있는데 그 곳에 머무는 동안 한 고아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고아원생들을 위해서 강당을 하나 지어줄 것을 약속하고, 그 일을 위해 2천 파운드를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 헨리 포드가 고아원에 2만 파운드를 기증하기로 했다고 기사가 실렸습니다. 고아원 측에서는 헨리 포드를 찾아와 정중하게 사과를 하면서 신문에 정정 기사를 내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헨리 포드는 웃으면서 “그대로 두세요.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2만 파운드를 내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강당이 완공되면 그 입구에 ‘하나님의 뜻으로 드려진 헌금으로 지은 강당’이라고 써 붙여 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동차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얼마든지 교만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 사람은 신앙생활을 잘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매사에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려고 했기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날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할 수만 있다면 이 십자가를 지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면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모범적인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길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만 이뤄지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똑바로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절대주권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예비해 주시는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버지의 뜻이면 되게 해주시고,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면 제발 막아주세요.”라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아는 사람은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만 이루어지길 소원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알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읽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교역자들에게 물어보아서 성경 전체를 똑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는 성경을 통해서 다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무식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6절에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왜 거룩하게 살라고 합니까? 아버지 하나님이 거룩하시니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1장 45절 하반절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거룩하게 살기 원하신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기뻐해야 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영생을 얻었고, 천국백성이고, 오늘 죽으면 천국에서 눈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쉬지 말고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롬 8:28)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만 붙잡으시면 모든 것이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까지 전부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가 없는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결혼상대를 결정할 때, 이 사람인가 저 사람인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직장으로 가야 할지,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할지 모를 때,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런 때에는 ‘믿음으로’ 결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서 간증을 하셨던 다니엘 명 장로님은 모든 사람들이 가길 원하는 직장에 합격했지만, 주일을 지킬 수 없어서 그 직장을 포기하고,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으로 가기로 믿음의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포기하고 가지 않았던 그 좋은 회사가 부정 사건에 연루되어 문을 닫게 되었고, 장로님이 들어간 회사는 다른 회사와 합병을 하여 그 업계에서 1위 회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믿음으로 결정하는 사람을 축복하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어떤 분은 부산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어디에 집을 구해야 할지 몰라 막연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으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첫째 조건은 수영로교회가 은혜가 많다고 하니 수영로교회에 나가야겠다는 것, 다음 조건은 새벽기도를 꼭 가야 하니 교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집이어야 한다는 것, 세 번째 조건은 교통, 학군, 가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복덕방에 가서 수영로교회 근처에 있는 집을 알아보고, 가 보았더니 세 가지 조건이 다 맞는 집이있어서 한 번에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결정을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여러분도 믿음으로 결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과 목표를 가지고 결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의 관심이 다른 데에 없습니다. 나의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좋으니까 하나님의 뜻대로만 이루어주세요!’라는 것이 저의 기도제목입니다. 제가 35년 전에 우리 교회를 개척할 때에도, 서울에서 오라는 곳이 5군데가 넘었는데, 저는 뒷조사를 하거나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니까 하나님의 뜻만 가르쳐 주시면 무조건 그곳으로 가겠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서울의 교회가 아니라 부산에 가서 개척하라는 환상을 보여주시고, 말씀해주셔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부산으로 내려와서 개척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시작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큰 손으로 저를 붙잡고 인도하셔서, 만사형통이고 모든 것을 채워주시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해주시는지 저는 수지맞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듣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못 사는 것이 깨달아진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시고, “아버지, 이제는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뜻 대로만 살기를 원합니다. 뜻 대로만 하옵소서. 뜻 대로만 순종하기 원합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앞길을 하나님이 책임져주시고, 가장 좋은 길,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