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문사에는 은행나무가 있다
옥계면내에서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탔는데,
“오빠야! 오빠 맞제! 오빠 진짜 오랜만이다.”
“.................누구시죠?”
나는 술 취해 게슴츠레한 눈을 겨우 뜨고, 진한 경상도 사투리의 여자 목소리에 놀라 운전석을 보니 그녀였다. 정동진 역 앞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던........
나는 그녀를 보면서 또 그 용문사 은행나무를 생각했다. 처음 심곡으로 들어와 가끔씩 그녀의 카페에 술 마시러 가곤했었다.
작년이었다.
1.
“오빠야! 오늘 끝나고 약속 있나?”
“없어. 왜?”
“그럼 11시쯤 가게로 술 먹으러 와”
“무슨 일 있냐?”
“어......”
헌화로를 지나는데, 자동차를 지나치면서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어느새 나는 그녀의 경상도 사투리에 많이 익숙해 있었다. 대답을 하는 그녀의 얼굴은 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 있잖아.......누가 가게 보러 온데....”
그녀는 차를 세우고 나에게로 고개를 내밀고 목소리를 낮추어서 그렇게 소곤거렸다.
“아! 알았다! 그럼 가야지.”
그녀의 표정과 말투로 나는 쉽사리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정동진 역 앞 허름한 건물 2층에서 술집을 하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정동진에 관광객들이 줄어들면서, 팔려고 내놓는 가게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 가게를 싼값에 인수하게 되었다. 2 년 동안 그녀의 가게에 들락거리면서 그녀와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대부분 술이 취해 이야기를 해서 그녀의 과거에 대해 많이 잊어버렸지만, 어떤 이야기는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듣게 되어 이제는 꽤 많이 그녀의 과거에 대해 기억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2 학년 때 사고를 쳐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다행히 잠수부를 하시는 아버지 도움으로 서울 신설동에 방을 얻어 놓고 검정고시 학원에 다녔다는 이야기, 그러나 영화를 몹시도 좋아했던 그녀는, 학원에는 잘 나가지 않고 싸구려 극장만 다녔다는 이야기, 그래서 1 년을 못채우고 다시 고향에 내려와 또 다시 빈둥거리다가 아버지의 도움으로 민속주점을 했다는 이야기, 술집을 해서 돈을 엄청 벌다가 그만 술집에 불이 나서 빛까지 지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그녀에게서 몇 번이나 들은 것들이어서 어쩔 수 없이 기억이 나지만, 그녀의 이야기 중에서 유일하게 단 한번, 그것도 술이 엉망으로 취해서도 잊어버리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였다. 교과서에 표지 그림인가에 나왔다던 용문사 은행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로서는 사실 별거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흘러가는 이야기로 무심코 한 것들이지만, 나로서는 그 이야기가 그녀가 고향을 떠나 문득 아무 생각 없이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러 가야 했던 것처럼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술집에서 손님을 태우려고 사 놓았던 봉고차를 끌고 무작정 북쪽으로 차를 몰던 그녀가 용문사 표지판을 본 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학교 다닐 때 공부에 등한시 했던 그녀이지만, 그녀는 교과서에 실렸던 은행나무를 생각해 내었던 것이다. 아무 대책도 없었던 그녀는 그 은행나무가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황량한 마음으로 고향을 떠났던 그녀의 머릿속에 기억에도 까마득한 교과서의 사진이 생각났던 것은 우연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녀의 이야기 중에서 내가 그 이야기를 유일하게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인생은 원인과 결과가 항상 존재해서 사건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어쩌면 그녀가 느닷없이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러 간 것처럼 말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기 마련인 것이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고 우연하게 영동고속도로를 타게 되었고 표지판에 동해 강릉이 보이기에 가까운 강릉으로 무작정 왔다는 것이다. 강릉에서 다방 아가씨 생활을 해서 돈을 벌다가 직접 다방을 운영해서 돈을 벌었으나 친하게 지내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벌어 놓은 돈을 전부 날렸다는 것이다.
용문사 은행나무 전후의 이야기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이다. 불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그런 흔한 이야기 인 것이다. 약간의 자기 포장과 약간의 합리화와 약간의 과장으로 누구나가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용문사 은행나무 이야기는 나에게 다르게 다가왔다. 용문사 은행나무에서는 합리화와 포장과 과장이 있을 수 없었다. 그냥 문득 떠올랐던 기억 하나만으로 목적도 없이 은행나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치스런 것들이 숨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그런 것들 속에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힘든 인생살이는 누구에게나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다. 울고 웃고 아파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배신하고, 누구나가 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나가 자신을 합리화 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약한 인간인 것이다. 누구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삼류 신파처럼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야 거친 인생살이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이라도 받지 않을까?
나는 아무래도 이야기꾼이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녀의 이야기 중에서 그렇고 그런 이야기는 자연스레 흘러버리고 이야기가 될 만한 진실이 숨어 있을 만한, 용문사 은행나무만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소설을 쓰나 보다. 소설은 너절한 삼류인생 이야기 일지라도 그럴듯하게 꾸며야 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녀와의 추억이 서린 곳이니까.
다방을 해서 번 돈을 사기 당하고, 그녀는 막내 여동생에게 돈을 빌려 그 술집을 하게 되었다. 경기가 좋지 않아 여동생 돈을 갚을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른 것이다. 술집을 팔아서라도 여동생 빛을 갚고 싶지만 살려는 사람이 도통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녀가 나를 술 마시러 오라는 이유는 뻔했다. 사려는 사람에게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눈속임을 하기 위해서 인 것이다. 나는 그녀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내가 하는 일이 치사스럽고 못난 짓인 줄 알지만, 어쩔 것인가. 나도 삼류인생인 것을. 나도 남들처럼 그렇고 그렇게 살다가 가면 그만인 것을. 다만, 그녀가 용문사 은행나무를 찾았던 것처럼, 나도 가끔씩 그런 것들을 기억하고 글로 표현하고 살면 그만인 것을.
2,
“오빠야.......가게 팔렸어!”
“와! 잘 됐다.”
그녀가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 했다. 그 동안 막내 여동생의 빛 때문에 마음 졸이던 그녀는 모처럼 활짝 웃었다. 물론 전부 갚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절반이라도 갚고 가게를 그만두고 식당에라도 나가 일하면서 천천히 갚을 희망이라도 생겼으니 말이다.
“13 일까지 하고 넘겨 줄 거야”
“왜? 빨리 넘겨버리지 그래..”
“외상 수금 좀 할려고......”
“외상 많이 깔렸어?”
“많진 않은데, 더러운 인간들이 좀 있어서.....”
“누구야?”
“요기 산위에 군인 하사관인데, 6 개월 전 양주 처먹고 아직 않갚고 있어. 근데 말이지 돈이 없어 안 갚는 건 할 수 없는데, 그 인간 봉급쟁이잖아. 그리고 그 인간 전화번호도 엉터리로 알려주어서 내가 그 사람 아는 사람에게 물어서 겨우 알아내었어.”
“그래?”
“그리고 그 인간 어제 전화했더니, 당장 갚으로 온다고 큰소리치더니, 그리고 욕설까지 퍼부어 대더니 오지도 않았어.”
그녀는 몹시 흥분해서 말했다.
“알았어. 내가 받아 줄게”
“오빠야가?”
“그 새끼 군인이라면서, 군바리 새끼들이야 국방부 홈페이지에다 올린다고 겁주고, 집에 찾아가서 아작을 내버린다고 하면 된다. 걱정마라, 받아주마”
어느새 나는 또 한 번의 어설픈 짓을 하기로 약속을 해 버렸다. 그러면서 황망한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 용문사 은행나무 밑을 거닐었을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물론 밑바닥으로 꺼져 가는 정신 상태였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그때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공허한 마음, 모든 것을 비워버리고 아무 욕심도 없는 상태, 아마 그때 그녀는 늦가을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에 심취해 있었을 것이다. 마음은 온통 노란 물이 들어 행복했을 것이다. 비록 빈 몸뚱이로 고향을 떠나, 갈 곳도 없는 몸이었겠지만, 용문사 은행나무는 그녀를 한 동안은 행복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xxx 씨죠? 당신......정동진에 있는 술집 술 값 안 갚았지?”
“누구세요?”
“나.....그 술집 주인여자 기둥서방이다. 당신 오늘 중으로 술 값 갚아. 알았어?”
“근데 왜 말을 함부로 하시죠?”
“야.....씨발놈아 너 같은 새끼는 인간 취급 받을 자격도 없어! 개 새끼야!”
“이 양반 심하네......그래 안 갚으면 어떻게 할거야.”
“씨발 놈아.....안 갚으면 국방부 홈페이지에다 니 놈 사기 친 거 다 올린다. 니 새끼 전화번호도 거짓말로 알려줬다며? 그건 외상 값 안 갚은 게 아니고 사기 친 거야 씨발 놈아!”
전화를 끊고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놈이 외상값을 갚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내 스스로 삼류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자조의 웃음은 더욱 아니었다. 위악적인 행동도 물론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 마음속에는 용문사 은행나무가 있었으니까.
“오빠야......그 인간 돈 가지고 왔더라. 오빠야...고마워....”
“지가 안가지고 오고 배겨?”
“와...우리 오빠야 대단하네....”
“대단하긴....나도 소시적에 한가닥 했잖어..”
나는 어느새 어설픈 양아치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기분 좋게 활짝 웃었다.
“오빠야, 술 한잔 할래?”
“그래 가지고 와봐라.”
술 기운이 온몸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나를 벗어던지고 있었다. 온갖 번거로운 명예나 사치스런 예절이나 그런 것들은 나의 몸속에서 전부 빠져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오로지 내 스스로 존재 할 뿐이었다. 나만이 오롯이 살아 취해 갈 뿐이었다.
“우리 오빠야....이제 자주 몬보겠네.”
“그래, 그럼 이따금 보면 되지. 그보다도 니 살 궁리나 해라.”
그녀의 얼굴은 섭섭함으로 잠시 슬픈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치스런 것도 우리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거칠고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냥 살면서 가끔씩 용문사 은행나무 같은 것만을 느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무턱대고 삼류인생처럼 살면 그것이 정답일 터.
“오빠야, 나 한번 안아줘라.”
“...............”
나는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술자리가 끝나고 그녀의 가게를 정리하고 나서 썬크루즈 언덕을 막 넘기 전이었다. 썬쿠르즈 호텔 조명 빛을 받으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까, 그녀는 가볍게 흥분된 얼굴로 수줍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심곡항까지 가자면 서둘러야 할 거 같았다. 눈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과거를 알듯이 그녀도 내가 저지른 사랑 놀음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너, 그 남자는 어떻게 하려고....”
“알게 뭐야, 그래도 오빠야 마지막이잖아...”
그녀에게는 포크레인 기사인 착한 애인이 있었다. 언젠가 나도 본적이 있었는데, 우직하고 착하게 생긴 남자였다.
“나, 이제 힘들게 살고 싶지 않어....너, 내 여자 얘기 알잖어.”
“그래, 오빠 말이 맞다. 우리 오빠야 이제 힘들게 살지 말아야지.”
그녀는 실망한 듯한 얼굴이었으나 쉽게 포기를 하고 말았다. 골목길로 들어서는 그녀의 발걸음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이었다.
“자네, 그 남자 어떻게 됐어. 포크레인 한다던....”
“어, 오빠야, 지금 같이 살잖아, 그때 술집 그만두고 바로 합쳤어.”
“그래, 잘됐다. 행복하냐?”
“그렇지, 뭐. 지금은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아. 힘들지만 어쩔 수 없지 뭐.”
그녀의 억척을 알아줄만 했다. 다방 아가씨로 돈을 벌어 술집을 하고, 여자의 몸으로 택시 기사를 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역시 그녀였다. 나는, 용문사 은행나무의 늠름한 모습을 믿듯이 그녀를 믿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헤어지던 눈 오는 날, 그녀를 안지 않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내렸다. 그러나 쪽지를 바람에 날려버렸다.
용문사 은행나무만 생각이면 그만인 것을.
|
첫댓글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