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우 / 서울대 사회학 박사,캔자스 대학교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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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과 12일 2회에 걸쳐 방영된 첫 번째 에피소드를 통해 멀더는 시리즈에서 일단 퇴장하고 대너 스컬리의 새로운 파트너로 특수 요원 존 다깃이 빈자리를 메꾸었다. 해병대 출신으로 전 뉴욕시경 형사였으며 FBI 내에서 동료들 사이에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이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는 사내는? [터미네이터 2]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끝까지 쫓아오며 괴롭히던 바로 그 감정 없고 무표정한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의 로버트 패트릭!
1999년 말 [Entertainment Weekly]가 1950년대 이래의 100대 엔터테이너(지극히 미국 중심적인 명단) 가운데 하나로 [X파일]을 선정하면서 이 TV 프로그램을 규정한 첫마디는 '90년대를 정의하는 드라마'. 사실 돌이켜 보건대, 이 시리즈는 인터넷과의 제휴를 통해 처음부터 전세계적 규모의 컬트 프로그램이 된(말하자면 'global cult'?) 그 수용양태의 면에서도 90년대 적일 뿐만 아니라 92년 첫 전파를 탄이래
지금까지 계속된 그 방영기간 면에서도 실제 90년대를 거의 모두 커버한다. 그러나 이제 [X파일]은 중요한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할리우드 연예산업- 그곳에도 고전적인 노사대립이?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듀코브니의 '부분적' 퇴장(즉, 멀더/듀코브니가 시리즈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원인은 [X파일] 안에 있다기보다는 할리우드의 제작환경과 노사관계라는 잘 보이지 않는 막후장면(behind-the-scene)에 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듀코브
니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한가지 역에 고정되는 것과 장기간 지속된 드라마의 일정한 매너리즘에 회의와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더군다나 그는 20세기 폭스사(이 유서 깊은 영화사는 현재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뉴스 코퍼레이션의 자회사로서 같은 계열사인 폭스 네트워크를
위해 [X파일]을 제작한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듀코브니의 변호사에 따르면 이 회사는 [X파일]의 재방영권을 다른 경쟁사들을 제쳐두고 역시 같은 계열사인 FX 채널에 (따라서 실제 받을 수 있는 가격보다 훨씬 싼값에) 팔아 넘김으로써 모든 이윤의 5%를 받기로 되어있는 듀코브니에게서 수백만 달러를 가로챈 셈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듀코브니는 그와 그 동료들이 [X파일] 제작을 위한 격무에 비해 보상을 적게 받고 있다고 호소하였다. 실제 텔레비전 쇼 촬영은 영화촬영에 비해 일정이 훨씬 빡빡하며 [X파일] 제작진들이 각자 많은 시간을 이 시리즈에 투여해야 했다는 것은 스컬리 역의 질리안 앤더슨도 확인하는 바였는데, 그녀 역시 주당 70시간 이상을 여기에 갖다 바쳐왔다. 게다가 듀코브니에 따르면, [X파일]은 지금까지 폭스사에 10억 달러 이상의 이윤을 안겨준 것으로 추산되는 데 비해 자신이 집에 가져가는 것은 에피소드 한편 당 20만 달러일 뿐(!)이고 [ER]의 노아 와일은 그 두 배를 받는다.
소송으로 인해 듀코브니의 잔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5월경 방영된 시리즈 7번째 시즌의 마지막회는 멀더가 외계인에게 납치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제작자 크리스 카터는 이 에피소드의 대본을 쓰는 순간까지도 이것이 한 시즌의 마지막이 될지 시리즈 전체의 마지막이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폭스사가 광고주들에게 가을 시즌 프로그램들을 공개하기 바로 전날인 5월 17일 듀코브니는 8번째 시즌 출연계약서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전체 20여 개 에피소드 중에서 11편에만 출연하기로 했고 그 대가로 에피소드당 35만-40만 달러씩의 출연료와 소송취하 합의금을 포함하여 총 2천만달러 이상(보도에 따라선 거의 3천만달러에 육박한다)을 받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노동조건은 개선되었다! 할리우드 연예산업의 규모가 규모니 만큼 과연 착취로 여겨지는 수준도 다른 셈이다. 그러나 물론 스타와 스튜디오의 이해대립이 고전적인 노동과 자본의 갈등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지난 1940년대 이후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공장식제작체제에서 벗어나 개봉관 배급용 고급영화제작에 주력하기 시작하면서 현장 제작자나 감독, 극작가 등 고급인력의 힘이 세졌고, 최근 들어서는 톰 크루즈나 마이클 더글러스가 대표하듯 제작까지 겸하는 배우들이 스튜디오와 맞먹는 실력자로 등장했다. [X파일]의 이번 소송 역시 이런 배경에서 파악될 수 있다(실제 [X파일]은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캐나다 뱅쿠버 등지에서 제작됨에도 불구하고 한 에피소드당 평균 제작비가 3백만 달러가 들어가는 최상급 프로그램이다). 듀코브니와 앤더슨은 부분적으로 몇몇 에피소드의 각본도 쓰고 연출을 하기도 하며, 게다가 인기 있는 메이저급 드라마의 도상이라는 그들의 지위만으로도 드라마 제작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을 아직 거물급 배우/제작자에 비교할 수는 없을 뿐 아니라 계약에 묶여 듀코브니와 달리 적어도 9번째 시즌까지는 꼼짝없이 출연을 계속해야 하는 앤더슨의 지위 등을 고려한다면, 폭스사와 그들의 대립은 비록 거래되는 돈이 엄청나다 해도 역시 자본과 노동의 갈등에 속하는 편이다. 그러나 자본에 대한 스타의 대립은 종종 더 낮은 수준의 노동자들이 벌이는 싸움에서 주의를 분산시키기 쉽다.
9월에는 할리우드의 무명배우들이 파업에 돌입했지만 언론의 주목은 영 시원찮았다. 게다가 노동현장에서의 성적 불평등은 할리우드 스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X파일]의 다른 배우들과 스탭들 역시 새로운 계약을 통해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되었지만, 앤더슨의 출연료는
그럼에도 여전히 에피소드당 25만-30만 달러에 머물기 때문이다. 이런 출연료 격차는 그 동안 많이 줄어들었는데(97년의 극장 판 [X파일] 제작 당시 듀코브니의 절반에 해당하는 출연료 제시 때문에 벌어진 그녀와 폭스사 간의 갈등은 유명하다) 이번에 다시 벌어지게 되었다고 앤더슨은 투덜댄다.
어쨌든 우여곡절 속에 재개된 [X파일]은 드라마 속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다. 일단 새 시즌 첫 회에서 멀더는 돌아오지 못했다. 멀더가 사라진 상태에서, 더욱이 지난 몇몇 시즌들을 통해 음모와 수수께끼들이 많은 부분 해명됨으로써(예컨대 멀더의 누이동생 사만
사는 아이들의 영혼의 세계에 평화롭게 거주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암에 걸려 죽어가는 담배 피우는 사나이는 자신들의 기획이 파괴되었다고 한탄했다. 그는 새로 음모를 재건하려 획책하다 휠체어에 앉은 상태에서 크라이첵에 의해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야기의 초점은 멀더를 찾기 위한 스컬리의 대장정으로 옮겨갔다.
스컬리의 임신, 그리고 멀더의 실종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스컬리/앤더슨 자신이 멀더와 같은 일종의 '믿는 자'가 된 것. 이것은 지난 몇 시즌에 걸
친 그녀의 수난과 모험에 의해 그녀의 태도가 변화해온 점진적인 진행의 결과다. 게다가 지난 시즌 마지막회에서 불
임의 스컬리가 임신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것 역시 멀더의 실종과 더불어 이번 시즌을 이끌고 갈 양대 수수께끼의 하나다.
외계인 실험에 의한 결과? 아니면 그 동안 진전되어온 관계로 볼 때 아이의 아버지는 폭스 멀더? 이를테면 지난 시즌, 연말에 방영된 에피소드
"밀레니엄"편 (크리스 카터가 제작한 또 다른 시리즈 [밀레니엄]과의 상호 텍스트적인 관계가 여기서 설정되었다)에서 멀더와 스컬리는 신년을 맞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다 처음으로 키스를 하기도 했고, 앤더슨이 연출한 한 에피소드는 스컬리가 멀더의 침대에서 일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끝났다. 카터 역시 아버지 멀더의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때로 암시하기까지 하지만,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스컬리에게 균형추 역할을 해 주는 인물이 바로 멀더를 찾는 임무를 부여받았다가 아예 X파일에 배치된 존 다깃 요원이다. 그는 멀더와 스컬리의 수사에 의심 또는 회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전의 제프리 스펜더 요원에 비해 그들에게 훨씬 공감적이
고 시즌 초반부터 이미 스컬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패트릭은 제작진의 우려와 달리 비교적 성공적으로 듀코브니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듯한데, 이 점과 더불어 극중상황은 남녀주인공들의 관계가 매력적인 상호 대등성에서 보다 남성에 대한 심적, 정서적 의존으로 변해갈 조짐을 비치기도 한다. 또한 하드보일드한 다깃/패트릭의 등장으로 [X파일]은 지난 몇 시즌 동안 수 차례 시도했던 코믹하고 본궤도에서 다소 일탈한 듯 보이던 접근들에서 초기의 보다 공포와 미스터리에 집중하는 원래의 주조로 돌아가는 쪽으로 제작방향을 다시 부여잡았다.
X 파일은 계속된다.
듀코브니가 이미 주연배우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방편으로 제안한 바 있듯이 월터 스키너나 알렉스 크라이첵 또는 마리타 코바르비아스 등 다른 캐릭터들의 비중 또한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멀더의 실종현장에 같이 있었던 스키너 부국장은 자신이 본 것 때문에 역시 '믿는 자'의 일종이 되었고 따라서 스컬리의 강력한 우군이다. 하지만 '파트타임'으로 등장한다 해도 역시 드라마를 지배하는 것은 폭스 멀더이다. 크리스 카터는 이 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그는 여전히 쇼의 부재하는 중심(the absent center)이다. 그의 현전(presence)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지어 그가 거기에 없을 때조차 그렇다. 그것은 그의 상징적 현전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드라마의 내러티브를 추동하고 [X파일]의 편집증적 세계를 지탱해주는 역할, 즉 '실재계의 구멍'에 위치해 있는 역할은 외계인에게서 이제 멀더에게로 이동한 것이다.
타이틀 시퀀스에서 멀더가 끝없는 검은 심연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새로 추가된 부분은 이 점을 매회 반복해서 재 확언해 준다. 더욱이, 무엇보다 지난 시즌들을 통해 멀더는 'X파일' 그 자체가 되지 않았던가? 초기 시즌들에서 '신체적' 수난이 스컬리에게 다소 집중되었다면
지난 몇 개 시즌에선 그것이 멀더에게 집중되었다. 특히 7번째 시즌은 멀더의 수난에서 시작해 멀더의 수난으로 끝난 셈이다. 그 시즌은 두뇌의 이상과잉활동으로 멀더가 병원에 갇히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2번째 또는 3번째 시즌에서 외계에서 온 검은 기름에 노출되었던 데서 기인한 이 두뇌이상활동은 천재 소년 깁슨 프레이저의 경우처럼 멀더의 몸 안에 외계인화와 같은 어떤 변형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하며 그가 납치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담배 피우는 사나이의 말처럼 멀더 "그 자신이 증거"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X파일]은 계속 제작되고 방영된다. 새삼 다시 확인되는 사실은 그것이 여전히 상당한 정도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한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연예산업계의 법칙이다. 인기 있던 드라마들이 속속 막을 내리고 지난 봄 시즌 성공적인 새 시리즈가 [Malcom in the Middle]뿐이었던 절박한 폭스사로선 8번째 시즌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비록 지난 3개 시즌 동안 시청률이 26%나 떨어졌지만 [X파일]은 여전히 폭스 채널의 가장 시청률 높고 엄청난 현금을 안겨주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 '쇼의 생존'에는 제작책임자 크리스 카터의 집념 역시 큰 몫을 했다. 비록 그가 멀더/듀코브니 없는 [X파일]은 생각할 수 없다고 늘상 말해 왔지만 소송이 해결되기 전에 이미 멀더 없는 8번째 시즌을 기획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듀코브니와 앤더슨 및 많은 출연배우들이 [X파일]의 우아한 은퇴를 바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카터에 따르면 "그러나 아직 할 이야기들이 있다." 그는 다른 인터뷰에선 한 술 더 뜨고 있다. 원래의 외계인 지구 식민화 계획이 불가피하게 실현될 것이라는 그의 언급에 기자가 그럼 모든 이들이 가만 앉아서 죽는 거냐고 묻자 카터가 보여주는 너스레를 보라. "글쎄, 당신은 [인디펜던스데이]를 상상하고 있다. 나는 뭔가 다른 것을 생각중이다...." "어떤 것 말인가?" "당신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16번째 시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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