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2021. 9. 21(한가위 추석). 화요일.
아내는 주방에서 차례 음식물을 만들 때다.
나는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는 방과 거실바닥을 또 쓸고 닦았다. 전날에도 두 번이나 청소를 했는데도 또 했다. 방바닥과 거실에 머리카락이라도 떨어져 있을까 싶었다.
나는 냉장고 뒷편에 있는 큰 제례상을 꺼내서 행주로 닦아냈고, 제기 그릇도 조심스럽게 닦아낸 뒤에 거실에 차례상을 설치했다.
아내가 만든 음식물을 조심스럽게 상 위에 올려놓고...
벽시계를 올려다보면서 '큰아들네가 올 시각인데...'하면서 그네들을 기다렸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에서 10분 거리에서 사는 큰아들네는 오전 10시가 넘어서자 아파트에 들어왔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녀, 올해 일곱살인 손자의 시끄럽고 쾌활한 웃음소리도 들렸고.
다 진설한 차례상 앞에서 나는 절을 했다.
아내, 큰딸(큰사위는 지금 외국에 나가 있고), 큰아들네, 막내아들과 함께 했다.
'차례 음식물을 조금만 장만하라'고 거듭 말을 했는데도 아내는 잠실 새마을시장에 몇 차례네나 다녀오면서 푸짐하게 차렸다.
큰 둘레반상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며느리는 설겉이를 하고...
올 추석은 조금 일러서 일까?
과일맛이 조금은 부족했다. 포도알은 무척이나 크고 싱싱해 보이는데도 맛은 별로 없었고, 서양 과일인 멜론도 크고 무거웠으나 맛은 밍밍했고, 사과, 배, 대추도 그렇고...
시장에서 사 온 송편은 두 종류. 물감을 들였는지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웠다.
하나를 입안에 넣었더니만 맛은 별로이다. 찹쌀로 빚은 송편은 외모만 두껍기만 했지 송편 속의 고물은 별로였다. 맛도 그저 그렇다. 이게 먹어, 말어? 할 정도로 맛은 밋밋햇다.
수십 년 전... 추석때 어머니, 누나가 빚었던 송편이 훨씬 낫다.
일전 아내가 잠실 새마을시장에서 사 온 송편은 기계로 만들었는지 정말로 맛대가리가 없고, 성의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안 먹을 내가 아니다.
'안 먹는 것보다는 먹는 게 낫다'는 논리로 송편 몇 개를 더 먹었다.
차례를 지낸 뒤는... 둘째딸네가 왔다.
이제 4살인 외손자. 내종사촌 남동생을 반기는 내 친손녀와 친손자.
큰아들네와 작은딸네가 자기네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아내는 음식과 과일을 챙겨서 건네주었다.
'또 와' 라고 할아버지인 내가 목소리를 높혔다.
친손녀는 자기네 집에서 되돌아가지 않겠다고 남았다.
하룻밤을 자겠지.
올해도 무탈하게 한가위 추석을 보냈다.
나는 수십년 전의 고향을 떠올린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푸짐하며 풍성했던가?
지금은 서울에서 한가위를 보내나 무척이나 조용하고 조금은 쓸쓸하다.
내가 차례상에 음식물을 올려놓고는 절을 한다고 해도... 상 위에 놓은 제수물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는다.
* 조상들의 영혼, 혼 등이 전혀 없다는 뜻.
나는 아무런 종교가 없어도 제사/차례를 지낸다. 내가 돌아가신 그분들을 한번이라도 더 생각한다는 정도이다.
고향에 있었으면 산소에 올라가서 무덤마다 절을 올렸을 게다. 봉분에 문제가 없는지를 둘러보았을 터. 하지만 지금은 서울에서만 머무니...
나한테는 전통제례의 의미가 자꾸만 더 희미해진다. 언제인가는 설과 추석, 제사문화가 점차로 간소화되다가는 아예 사라지겠지.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1950 ~ 70년대 초까지 내가 서해안지방 산골마을에서 보고 겪었던 명절의 풍속이 2020년대인 지금에는 자꾸만 희미해져간다.
그 당시 옛일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아쉽다. 예전의 전통이 더 정감이 많았기에.
그 당시에는 모두가 가난했고, 어렵고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많은 집안식구 친척들과 동네사람들이 한데 어울려서 득실벅실거렸다. 음력설, 정월대보름, 한가위 추석 등을 지낸 그 다음날부터는 사물놀이 징 꽹가리, 장구, 북을 치고 두들기면서 명절 뒷풀이를 했다. 어디 명절뿐이랴? 5월 단오절, 7월 백중날 등에도 동네사람들이 함께 어울렁 더울렁 했다.
1.
추석날 차례를 지낸 뒤에 자기 집으로 돌아갔던 큰아들이 손자(이제 7살)을 데리고 다시 잠실 할머니네로 왔다.
간밤 손녀(8살)은 혼자 떨어져서 할머니와 하룻밤을 보냈다.
오늘 손자가 다시 온 이유는 있었다.
어제 낮에 내가 손녀와 손자한테 작은 화분에 마늘을 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손녀 손자가 직접 꽃삽을 들고는 흙을 퍼 담고, 마늘 두 쪽씩을 심었다. 흙이 베란다 바닥에 흘리면 할아버지인 내가 빗자루로 쓸어서 쓰레바기에 담았다. 손녀 손자한테 흙이 무엇인지, 손발이 없는 식물을 어떻게 키우는지를 조금 알려주었다.
흙속에는 작은 벌레가 있었다. 할아버지인 내가 '흙이 살아 있기에 벌레도 산다'고 알려주었다. 살충제 농약 등을 쳐서 죽은 흙에서는 벌레가 살지 못한다는 것도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은 작은 벌레를 덜 무서워할 게다.
작은 화분에 마늘을 심고는 흙을 꽃삽으로 퍼서 담으면서 직접 체험한 손녀 손자는 자기네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할아버지. 화분 가져갈 게요'라고 거듭 말했다.
나는 흙이 쏟아지지 않도록 비닐봉투에 담아서 건네주었다.
아이들이 제 집으로 가져가서 물을 주면서 키우기 시작할 게다.
마늘에서 새싹이 틀런지는 모르겠다.
농사가 무엇인지를 아직은 전혀 모르는 아린아이들이라도 무엇인가를 배우고, 직접 체험하려는 습관은 길들였으면 싶다.
그렇게 하면서 자연의 이치, 동식물의 생명존중 사상을 조금씩이라도 배울 게다.
나는 지금 서울에 올라와서 산다.
텃밭농사를 짓다가는 하나뿐인 어머니가 아흔여섯 살 치매노인이 되어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뒤로는 나는 농사를 포기한 채 오로지 어머니가 있는 병원에서만 맴돌았다.
어머니는 다음해인 2015년 2월 말. 음력설을 맞이한 지 며칠 뒤에 돌아가셨기에 고향의 서낭댕이 앞산에 있는 아버지 무덤에 합장하고는 그참 서울로 올라왔다. 자연스럽게 텃밭농사는 방치되기 시작했다.
나는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내 마음은 늘 시골에 내려가 있다. 동네 한가운데 마을회관이 딸린 텃밭 세 자리에 나무와 풀로 가득 찼기에 나는 식물한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자연의 고마움도 함께... 자연의 소중함도 더불어 배운다.
오늘 오전에는 비가 내렸고, 오후에는 날이 개어서 햇볕이 났다.
추석연휴는 오늘까지. 내일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서 열심히 일을 할 게다.
아이들은 신나게 무럭무럭 자라나고...
1.
'자유게시판' 방에 <용서받지 못할 조선 왕실>제목으로 퍼온 글이 떴다.
이 글을 보고는 내가 아래처럼 댓글 달았다가는 견해차이가 생길 것 같기에 얼른 지웠다.
대신 여기에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조선조에 대한 내용이 무척이나 그렇습니다.
자식들이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역사부도(헌 책)를 내가 아직도 갖고 있기에 인류사, 중세사, 근현대사 등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지요.
조선조는압록강 너머로 옛 고구려땅을 회복하러 군대를 동원했는데 1388년 부하인 이성계가 군사반란을 일으켜서 총대장인 최영장군을 죽였고, 1392년에 고려를 멸망시키고는 조선을 세웠지요. 그래서 제 입말에는 '쪼다 조선조'라고 말하지요.
이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선조.. 1636년 병자호란 당시의 인조. 26대 고종(흥선 이하응의 아들 명복)는 3대 쪼다이다.
마지막 27대 왕 순조는 일본에 반항하지 못하고는 나라를 그냥 넘겨주고는 일제의 보호 아래서 호의호식했지요.
과거 역사를 생각하면 정말로 '잘 거꾸러졌다'는 게 역사관입니다
사회부도, 세계지도, 역사부도, 국사... 등에서 깡그리 지우고 싶은 이씨조선 왕조.
1910년 8월에 숨을 완전히 거뒀지만 ... 그 이전부터 목이 졸려서 헐떡거렸지요.
서해안 바닷가에 가면 해안을 지키는 성들이 있었는데 일본군대가 성을 부수고, 수군을 해체하고....
외교권도 없는 허깨비, 쪼다, 머저리, 등신, 바보의 대명사가 바로...
2021. 9. 22.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