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사 할머니가 죽었다
"할머니, 그 할머니가 죽었데요.."
"? 뭐, 누구 말이야?"
"그 할머니 있잖아요. 당신 절임 배추 도와주시던....망사 할머니.."
"아! 꽃분이 할머니..."
"어제, 아침 갑자기 피를 토하시고 병원에 갔는데 하루만에......"
"왜?"
"그 동안 기침을 했는데 동네 약국에서 약만 사다 드셨데요. 속병 깊은 줄 모르시고..."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살짝 고여 있었다.
"............"
나는, 그녀의 죽음으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꽃분이 할머니가 죽다니. 며칠 전까지 정정하게 어판장에서 그물 손질을 했었는데.....노인네들은 하루 밤에 안녕이라는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2 년전 그녀는 내가 인터넷 쇼핑몰로 파는 절임배추 작업을 도와주셨고, 그 해 겨울 금진항 여자들의 파업을 주도했었다. 그녀와의 파업 이야기는 글로 기록해 두었다.
그녀와 절임배추 일을 같이 할 때 나는 그녀를 위해 앞치마를 사다 준 적이 있다. 나는 망사 옷을 주로 입고 다니는 그녀의 여성성에 감동을 했었고, 아내에게도 사다주지 않았던 앞치마를 선물했던 것이다.
"조카...고맙네...."
망사 할머니는, 내가 사다 준 앞치마에 몹시도 감동을 했다. 그녀로서는 그러고도 남을 일이었다. 4000 원짜리, 앞에 아기 돼지와 엄마 돼지가 그려져 있고 빨간 색깔의 2, 30 대의 젊은 새댁에게나 어울릴, 앞치마를 사 주었다. 그녀의 칠 순 나이에 비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짓거리를 했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모르시는 말씀.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안다면 이것은 약과에 불과하다. 그녀의 옷은 망사가 많다. 가끔 하늘거리는 그물 같은 옷을 입기도 한다. 도무지 이곳 어촌 여자들의 패션에 비해서는 유별나다. 그녀의 윗도리의 대부분은 이런 식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고모 앞에서는 그녀를 망사 할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녀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된 것은, 한 달 전 쯤이다. 낮에 횟집에 점심을 먹으러 왔는데, 강릉에서 한 노인네가 회덮밥을 먹으면서 동네 여자를 찾고 있었다.
"여기, 이 동네에....최 화분......이라는 여자...나이가 칠 십 좀 넘었는데...."
마친 내가 그 앞을 지나 가다가 그 얘기를 들었고, 나는, 그 얘기를 고모에게 전했다.
"최 화분......처음 듣는 이름인데......"
고모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가, 마침내 뭔가 생각이 난 듯, 주방을 나가 노인네에게 다가갔다.
"혹시....화분이가 아니고 꽃분이 아닙니까....나이 칠십 여덟에......목소리 야리야리 하고...정동진에 살던..."
"아! 맞네....꽃분이가 호적 올릴 때 한자로 화분이가 되었지..맞아요. 여기 삽니까?"
바로, 그 꽃분이가 망사 할머니였다.
그 노인네 덕분에 나는 망사 할머니의 지겨운 과거를 알게 되었다. 도무지 그녀의 망사하고는 전혀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다.
노인네는 그녀의 호적 상의 오빠였다. 무슨 소리냐 하면, 그녀는 정동진에서 아버지 없이 태어났고, 동네서 화냥년이라고 놀림 받던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호적을 동네 이장에게 부탁을 했는데, 동네 이장이 그만 자신의 딸로 호적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도 모른 채 산을 넘어 이곳 금진항으로 시집을 왔고, 그 이장은 강릉에 나가 살게 되었고, 얼마 전에 돌아가시면서 이장 명의의 오래된 아파트를 하나 유산으로 남기게 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호적 상 딸로 되어 있는 망사 할머니에게 유산인 아파트를 포기해 달라는 각서를 받으러 온 것이다. 망사 할머니는 틀림없이 쉽게 각서를 써 줄 것이다. 여느 사람 같았으면, 떡 고물 하나라도 얻어 먹으려고 하겠지만, 우리의 순진한 망사 할머니는 그런 생각은 꿈도 꾸지 못 할 것이다.
그녀의 지난한 과거는 시집을 와서도 끝날 수 없었다. 고모는 어릴 때 부터 그녀의 결혼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술 주정꾼에다 난폭한 남편에게 결혼 생활 내내 얻어 맞으면서 보냈다는 것이다. 도망 갈 친정도 없는 덕분에 남편의 폭행을 고스란히 받을 밖에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호적에만 올리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녀는 정동진에서 이 집 저 집 흘러다니면서 밥을 얻어 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녀로서는, 그런 남편이라도 있는 것이 감지덕지였는지도 몰랐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녀는 약을 세 번이나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의 위장은 다 녹아 없어지고 식도와 십이지장을 수술해서 바로 이어 놓았다고 들었다. 그녀는 덕분에 하루에 밥을 열번도 더 먹었다. 물론 한끼 식사는 새모이 정도 먹는 수준이었다. 그런 남편이 3 년 전에 죽었는데, 그녀는 그런 남편을 5 년 간 병수발을 들었다. 2004 년 태풍 루사 때도 꼬박 병원에 있느라 자신의 집이 다 떠내려 갔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남편이 죽고, 그녀도 역시 위장 절제 수술을 받았고, 집으로 돌아 오니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천막에서 살다가 겨우 동네 사람의 도움으로 지금의 오막살이 한채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그런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3 남 1 녀 중, 딸만 정상적으로 서울에 시집 가서 그런데로 살고 있고, 아들 놈들은 전부 엉망이었다. 막내는 사랑에 실패해서 행방불명이 되었고, 둘째는 이혼해서 아이 하나를 그녀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돈 벌러 간다고 해놓고 감감 무소식이고, 장남은 아직 장가도 못가고 집 밖으로 절대로 나오지 않는 이상한 정신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동네 여자들과 이야기 하다가도 식사 때면 어김없이 집으로 가서 그녀의 생때 같은 큰 아들 놈에게 밥을 차려주고 나오기도 하고, 둘째가 버리고 간 손자를 위해 학교까지 쫓아 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망사 옷을 즐겨 입었다. 그녀를 따라 온 그 지겨운 칠 십 년 인생살이도 그녀의 소박한 여성을 망가뜨릴 수 없었다. 주무실 때도 팩을 한다는 그녀. 외모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고모에게 여자가 그러면 안된다고 나무라는 그녀. 나는 그녀의 그 아름다운 여성성에 감동을 하여 무엇인가 작은 선물이라도 해 주고 싶어 4000 원 짜리 빨간 앞 치마를 사 준 것이다. 아마, 그녀로서는 오랜만에 남자에게 선물을 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 처음으로 남자의 선물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또, 그녀의 삶에 비해 그다지 나을 것 없는,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횟집이 바쁘면 그녀를 언제든지 불러내 도와달라고 때를 쓰고 그녀의 생활비를 도와주는, 내 고모에게도 그녀와 비슷한 앞 치마를 사다 주었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질투를 해도 충분 하건만 아내 역시 흐믓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인간이 죽어서도 지 마누라 델고 갔어....."
"무슨 소리예요?"
"그 인간 술 먹고 마누라 두드러패고 집안 살림 다때려부수고, 그것도 모자라서 50 년 동안 방문 꼭꼭 걸어잠구고 지 새끼 마누라 가두어 놓고 담배를 그렇게 피워댔으니, 멀쩡한 허파가 성할리가 있나.....
"허파 때문에 돌아가셨데요?"
"폐암이란다. 그 언니는 그것도 모르고 미련하게 약국 약이나 먹었으니...아마, 알고도 그랬을 거야..그 언니는..."
고모 역시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돌아가신 꽃분이 할머니 남편을 입에 게거품을 물고 욕을 했댔다.
"살아서 그렇게 고생시키더니, 죽고서도 지 마누라 제 명에 못살게 하는 인간....."
나는, 그녀의 죽음을 듣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열 여덟 소녀가 보퉁이 하나만 달랑 들고 정동진에서 심곡항을 거쳐 금진항으로 넘어 왔을 그 고개를 생각했다. 기마봉 능선을 따라 생긴 작은 산길, 소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난폭한 술주정뱅이 남자에게 시집을 왔을까? 아버지도 모르고 고아로 자라면서 지독히도 가난했던 정동진에서도 구걸을 해서 살았다는. 세상에 믿을 사람은 오로지 남편 하나 뿐이었는데. 어쩌면 그녀는 그런 남편일지라도, 그녀의 지독한 외로움을 달려줄 수 있는 힘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모진 그녀의 세월은 그녀의 외로움을 그나마 덜어줄 수 있는 힘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망사 옷은 말할 것도 없이........
"꽃분이 누나........"
나는 가슴 속으로 그녀를 가만히 불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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