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5일 서울둘레길 개통과 함께 서울둘레길이 인연이 되어 시작한 자유길동무 서울 둘레길 길동무 팀의 2019~2020 시즌 동행(同幸) 세 번째 도보여행으로 지붕없는 박물관, 강화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이야기가 있는 겨울에 걷기 좋은 강화나들길을 시작합니다.
1906년. 강화 선비 화남 고재형(1846∼1916)은 세상사 시름 내려놓고자 섬 순례를 시작합니다. 환갑의 화남은 섬을 돌며 보고 들은 감상을 7언 절구 한시로 남겼습니다. 그 256수가 화남의'심도 기행'이라는 기행문집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심도(沁島)’는 강화의 옛 이름입니다. 한 세기가 흘러 2008년. 강화도 시민연대는'심도 기행'에 적힌 여정에 따라 걷기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강화나들길의 첫걸음입니다.
강화도는 삼국시대에서부터 백제·고구려의 중요한 요충지로서 자리잡아왔다. 특히, 고구려와 백제의 최대 격전지로 생각되는 관미성이 강화군 교동도로 추정될 정도 강화도는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백제 개로왕이 죽고 수도인 한성이 함락되었는데, 이로써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완전히 차지하게 되었고, 강화도 또한 이때 고구려에 귀속되었으며,
그 후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어 한강 유역을 되찾았고, 다시 신라의 영역을 들어가게 되었다. 신라는 한강 유역을 장악함으로써 풍부한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을 확보하여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
강화도는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우리 민족사에서 잊지 못할 항쟁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고려는 1231년에 몽고의 침략을 당했고, 다음해인 1232년 고종은 왕실 귀족을 비롯한 조정관료들과 함께 모두 강화로 천도하였다. 그 후 강화도는 1270년에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 동안 몽고군과 대치하면서 나라를 지킨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때부터 강화를 강도(江都)로 불렀으며, 지금도 강화도에는 고려시대 별도인 강도의 왕궁터가 남아 있고 몽고와 항쟁하던 흔적들도 성곽 곳곳에 남아 있다. 한편 고려 무인 정권의 군사적 배경이 되어 몽고와 항쟁해 왔던 삼별초는 개경 환도가 알려지자 즉시 대항하고 나섰다. 그들은 배중손을 중심으로 개경 정부와 대립하는 새로운 항몽 정권을 수립하였으나 곧 진도로 남하하고 말았다.
고려가 몽고와 항쟁하는 와중에서 남긴 가장 훌륭한 업적이라면 팔만 대장경을 조판하였던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당시의 조판을 진행했던 장소와 그 경과를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이 있다. 한편 고려 청자를 비롯한 고려시대의 보물들도 이곳 강화도에서 출토된 것이 많은데, 고려 청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국보 제133호 청자진사연화문표주자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것은 일제시대 강화도의 최충헌 묘에서 도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고려시대 강화도에서는 남쪽 마니산 정상에 참성단을 다시 쌓아 하늘과 단군에 제사지냈다. 이는 우리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국난을 당해 나라를 지키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조선시대 1627년 금나라 3만 군사의 침입을 받은 인조는 평복 차림으로 강화로 피신하여 100일 동안을 머무른 적이 있는데 이 사건이 바로 정묘호란이다. 1636년 청나라 태종이 쳐들어왔을 때는 인조가 미처 강화로 피란하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퇴각했는데, 강화가 청에게 넘어가고 봉림대군과 빈궁 및 여러 대신등 200여 명이 포로로 잡혀가자 항복하고 말았다. 이것이 병자호란이다. 이때 강화도는 종묘 사직을 지키기 위한 수도가 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뒤 효종은 인조 때 당한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을 계획하고 강화 해안에 월곶진, 제물진, 용진진, 광성보, 인화보, 승천보 등과 같은 방어시설을 새로 쌓거나 고쳤다. 그리고 숙종은 강화도 해안 전역의 돌출부에 큰 톱니바퀴를 움직이는 작은 톱니바퀴 모양으로 53개(2개는 얼마뒤에 폐지되었다)의 돈대(墩臺)를 설치하여 강화도 전지역을 요새화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서양 세력이 조선을 넘보기 시작했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먼저 항강 어귀 강화에까지 쳐들어온 병인양요와 1871년 미국 함대가 강화를 침략한 신미양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때마다 강화의 백성들은 외세에 대항하여 번번이 나라를 구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875년 일본 군함이 강화에 침입하여 이른바 운양호사건을 일으켰고, 다음해(1876년)에 강화도 조약이 강요되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병자수호조약이다. 그로부터 35년 뒤인 1910년 조선은 일본에 의해 완전히 병합되고 말았다.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섬 강화도는 우리나라 5대 섬으로 강(江)을 끼고 있는 좋은(華) 고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서해안 한강 어귀에 위치한 강화도는 지리적으로 고려의 서울인 개성과 조선의 서울인 한양과 가까이에 있어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을 간직한 강화도는 섬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유적과 명승지가 많습니다. 올 겨울 강화나들길에서 추억거리 많이 남겄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응원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자료: 네이버)
다음일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1월 2일(토) 강화나들길 1코스 심도역사문화길
11월 9일(토)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11월 16일(토) 강화나들길 3코스 고려왕릉 가는 길, 4코스 해가지는 마을길
11월 23일(토) 강화나들길 5코스 고비고개길
11월 30일(토) 강화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
12월 7일(토) 예비일 - 평화누리길 종주 행사
12월 14일(토) 낙조 보러 가는 길
* 세부 진행사항은 일주일 전에 공지합니다.
* 상기 계획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9C81495DB6050511)
☞ 동행(同幸), 2018~2019 시즌 강화나들길
☞ 서울 둘레길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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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스케쥴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들여다보겠습니다
수고하십시요^^
그래요. 강화나들길은 매주 토요일 4개월에 걸쳐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겁고 행복한 종주 되시길바랍니다
저는 2017,4,3~6,30까지 왼주했습니다 볼거리, 깊은역사 많이 담겨있는 지역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추억거리 만들어 보겠습니다 ^^*
지붕없는 박물관이고 역사와 문화 갯벌과 볼거리 먹거리가 즐겁게 해주는 언제가도 좋은곳 강화도 이지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즐겁게 겨울 트레킹을 계획하고 계시는군요.
함께걷는 즐거움을 맘껏 누리시고 올해도 무사히 기쁨과 환희가 가득한 완주 되시길 응원드립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어쩌다보니 7년째 겨울만 되면 강화도를 찾게되는군요. 올 시즌도 즐겁고 행복한 추억거리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
수명산님 ! 이번 시즌도 어김없이 11월 2일부터 강화나들길 종주가 시작되는군요 ~
행복하고 많은 추억이 만들며 안전한 도보 여행을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되실때 응원도보 부탁드립니다^^*
수명산께서 또 한번의
봉사을 하여 주시는군요.
수명산님 감사합니다.
함께동행하시는 서울둘레길동무 길벗님들,
강화나들길 완주를
화이팅으로 응원합니다.
응원 늘 감사합니다. 이번 시즌에도 죽산 님의 응원과 동행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축하드립니다.가능하면 동참코자 합니다만...
11월 2일(토)부터 시작합니다. 이왕이면 첫 코스부터 참여하세요. 링크된 주소로 들어오셔서 확인하세요. 환영합니다. ^^*
http://cafe.daum.net/songjukgil/8edb/269
강화나들길
4개월 대장정 출발
축하합니다
즐겁고 건강한 트레킹을
응원합니다
화이팅!!!
감사합니다. 어쩌다보니 다시 강화로 발걸음이 옮겨지는 군요. 시간이 되시면 한 번씩 응원 도보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