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오대산 월정사에
매년 여름이면 세 자녀의 가족과 우리 부부까지 네 가족이 나들이를 간다. 손자와 손녀가 일곱 명이니, 우리 가족은 모두 15명이다. 대가족의 여름 이동인 셈이다.
요즘에는 중학교에 다닌 손자-손녀는 가족 나들이에 참여는 하였지만 시무룩했다. 이제는 가족 여행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리라. 그래서 금년에는 중학교에 다니는 3명이 바쁘다는 핑계로 빠져서 12명이 떠나기로 했다. 손자-손녀는 초등학생만 따라나셨다.
솔직히 말해서 노인네인 나도, 집사람도 재미가 없기로는 마찬가지이다. 행선지부터, 놀이까지의 일과가 모두 아이들 중심으로 짜여있기 때문에 노인네들이 즐길만한 곳이 못된다. 또 노인들이 즐길만한 데가 있는 곳도 없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손자-손녀들이 노는 모습을 그늘에서 쉬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금년은 평창의 봉평에 있는 리조트를 예약해두었다고 했다. 봉평은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생원의 장삿길인 봉평장이 있다. 어쨌거나 금년 여름의 나들이 계획도 손자-손녀 중심으로 짰나보다.
‘평창이면 오대산 월정사가 가깝네.’ 했더니 30km 쯤의 거리라고 했다. 사위가 운전을 하고, 딸이 동행하겠다고 하여 뜻밖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막내 아들이 강릉서 근무할 때 여러 번 방문하면서, 월정사도 들린 일이 있었다. 바로 어제 일처럼 생각되는데, 따져보니 10년 도 더 전의 일이다.
월정사는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 중의 하나인 동대산(東台山) 기슭에 있다. 대한 불교 조계종의 25 본사 중의 제 4 본사이다. 신라의 왕자인 자장율사가 중국의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직접 만났다. 그때 석가의 진신사리를 받아서 귀국할 때 가지고 들어왔다. 오대산은 일반적으로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양산 통도사를 창건하여 진신사리를 모셨고, 또 오대산 비로봉 아래에 사리를 모시고 적멸보궁을 창건했다. 이곳도 불교신자라면 들려야 할 곳이지만, 나는 들리지 않았다. 한 여름에 햇볕 쏟아지는 산길을 걸어오르기에 염두가 나지 않았다. 포기했다.
월정사는 워낙 유명한 절이라서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온다. 절까지 이르는 전나무 길 1km 쯤은 건강-보행길로 아주 인기가 높다.
많은 사람이 이 절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월정사 구층탑 때문이기도 하다. 고려말-조선 초에 나타나는 탑의 양식의 하나로, 장식성이 강하여서 아주 화려하다. 서울 파고다 탑을 위시하여, 이 탑과 공주의 마곡사 탑이 대표적이다. 문화 유산 답사팀이 이 절을 찾는 이유는 이 탑과 상원사의 신라종 때문일 것이다.
오대산은 강원도에서도 깊은 산골이다. 1951년 4월에는 인민군이 이 절을 본부로 사용할 수 있다 하여 국군이 불을 질러버리기로 했다. 그때 절이 모두 소실되었다. 절에 불지르기를 명령한 장군이(김백일 장군) 몇 달 뒤에 헬기가 사고로 추락하여 사망하자, 응보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응보라기보다는 6.25 전쟁 중에 겪었던 여러 사찰들의 비극적 사건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월정사는 깊숙한 산골 절이지만 영동 고속도로가 바로 앞을 지나면서, 편리해진 교통망 덕택에 휴가철이면 전국에서 몰려오는 피서객과 관광객으로 분잡해진다. 절은 언제나 부산하고 시끄럽다. 오늘도 절 마당은 사람들로 부산하다.
내가 요즘 절집을 다녀보면 사람들로 붐비는 사찰은 법당을 화려하게 손 봐 두었다. 월정사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더 심하다. 하기야 6.25 전쟁 중에 법당이 모두 소실되고 , 새로 지었으니 법당 건물에서 옛 맛을 느끼기는 어려우리라. 그런데------,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청동기와가 눈이 너무 부셔 눈거풀이 저절로 내려온다.
월정사에 들린다면 반드시 참배를 드려야 할 곳은 국보 48호인 구층석탑이다. 고려 중기에 건립되었다. 고려가 원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던 시기라서, 탑의 양식도 티벧 불교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 탑의 세부도 신라 탑보다는 백제 탑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탑은 금년 봄부터 수리 단장을 한다면서 최 창살로 덮어 씌워서 외부에서는 탑이 잘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물 크기만한 탑의 사진을 걸어두어서 탑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 절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탑이 국보로 지정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모를 것이다.
탑을 향해 손을 모우고 있는 보살상도 특이하다. 나는 강릉 한송사지에 있는 보살상과 너무 닮아서 그 보살상을 모방 복제하였나 싶었는데, 고려 때 본래 2기의 보살상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이 보살상은 모조품이 아니고 진품이다.
북대고우암의 모조 석가여래상과 여러 점의 복장 유물이 유명하지만, 1700년 대의 작품이라 하였다.
6.25 전쟁 중에 불타버렸으므로 1964년에 탄허 스님이 법당을 짓고 적광전(寂光殿)이라 하였다. 그후로 연이어 여러 전각을 지어서 오늘의 절 모습이 되었다.
절의 입구 쯤에 성보박물관과 조선사고 의궤박물관이 있다. 오대산은 이조 실록을 보관한 4대 사고의 하나임도 소개해야 겠다. 집 사람은 민화를 그리므로, 의궤 그림을 보고 싶다고하여 박물관에 들렸다. 전시품에는 조금 실망했다.
이제 다시 봉평으로 나가서 가족들과 만나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박물관에 들리느라 시간을 조금 더 잡아먹었지만, 월정사에 들린 오늘 하루는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