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개는 외로웠다
"오빠............"
"..............."
"오빠, 저예요. 잘 계셨죠?"
"어디냐? 훈춘이냐?"
"아니예요. 한국이예요. 한국 왔어요."
"왜? 벌써........"
"그렇게 됐어요."
그녀의 전화였다. 온 몸의 세포가 열리도록 가슴 벅찬 그녀의 전화를 받고, 나는 문득 내 소설 '청수원'을 생각했었다.
분명, 청수원 속에도 그녀가 있다. 청수원이라는 강릉의 작은 술집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녀는 그 소설의 주인공 중에 하나였다. 게다가, 허구의 이야기 속의 그녀가 소설 처럼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청수원 속의 작은 제목 '그녀!'와 똑 같은 제목으로. 그녀와의 신파는 상상과 현실을 가리지 않고 나에게 닥쳐 온 것이다.
절대로 한국에 오지않겠다던 그녀가, 1 년도 되지 않아 돌아왔다. 당장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으나, 파국으로 끝나는 지독한 신파극이 떠올라서 주저했다. 그런 결말은 신파이기에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신파가 아닌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기가 겁났다.
"뭐 하러 왔어?"
"어쩔 수 없이 왔어요."
그녀의 귀국을 타박한 것은 진심이었다. 고향을 떠나 한번도 살아 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고향은 지독한 형벌이 되었다. 그 고향에 있는 만큼 그녀가 당해야 하는 것은 고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의지할 곳 없는 그곳이 그녀에게는 그때로서는 안식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곳에는 그녀의 딸아이가 있었다.
그녀의 전화를 받는 중에 어판장 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들이 보였다.
"나중에 통화하자. 내가 전화하마..."
"네......."
어판장에 도착했을 때, 물개가 죽어있었다.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어판장으로 사람들이 점점더 많이 몰려왔다. 오랜만에 벌어진 새로운 일이 동네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무슨 일이예요?”
“정치망 그물에서 물개가 걸려 죽었다네.”
“물개요?”
“내 생전에 고래가 걸려 죽었던 것은 본적이 있지만, 물개는 첨일세.”
정치망 홍사장은 기분 좋아 벌써 한잔을 했는지, 불콰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자네가 저번에 물에 들어가 그물 기둥을 튼튼하게 해 준 덕분에 내가 횡재를 했잖은가. 고마우이.”
“고맙긴요. 근데 죽은 지 얼마 되는 놈입니까?”
“눈깔을 보니 얼마 안돼, 그럭저럭 돈 백은 받을 거 같아.”
얼마전 스쿠바 샵 김사장과 홍사장네 정치망 작업을 해 준적이 있었다.
나는 동네 사람들 뒤에서, 어판장 바닥에 어름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물개를 혹시나 해서 유심히 지켜 보았다. 내 눈은 물개의 몸에서 꼬리 부분으로 내려갔다. 꼬리 부분에 얼음이 덮여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물개에게 다가가 꼬리 부분의 얼음을 치웠다. 며칠 전 스쿠바샵 김사장과 같이 본적이 있던 녀석이었다. 틀림없이 꼬리 부분에 속살이 벌겋게 갈라져 나와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정치망 그물에 걸려 신음하는 녀석이 눈에 아른거렸다. 내가 작업을 해 놓은 곳에서, 녀석은 고향을 떠나 고통에 시달리다 죽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마치 오랜만에 동네잔치라도 참석한 것처럼, 입가에 즐거운 웃음이 가득했다. 그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장사장, 오늘 저 놈 거시기 안주로 해서 한잔 할까?”
인파 속에서 나오자, 홍사장은 나에게 징글맞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슬며시 녀석의 그곳을 살펴보았다. 녀석의 성기는 수축이 되어 가죽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녀석의 성기는 암컷인지 수컷인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빈 가죽일 뿐이었다.
“형님이나 많이 먹고 힘 열심히 쓰세요”
“자네, 왜 그래? .......허허.......”
나는 멋쩍어 하는, 홍사장 말을 뒤로 하고 어판장을 떠나고 말았다.
물개를 본 것은, 일주일 전 정치망을 하는 홍사장의 부탁 때문이었다. 정치망을 지탱하는 기둥의 밧줄이 끊어져 고기가 빠져 나간다고, 다시 좀 튼튼하게 고정시켜달라는 부탁이었다. 배를 몰아 정치망으로 다가 갔을 때, 정치망 부표위에 뭔가 커다란 것이 앉아 있었다. 사람이 그 위에 앉아 있을 리는 없었다. 의문을 품고 점점 다가가자 녀석은 갑자기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뭐지?”
“뭘까?”
김사장과 나는 얼굴을 마주보며 서로에게 물었다. 갈색 빛의 몸체로 유연하게 물 속으로 뛰어 드는 동물은 동해안에서는 난생 처음이었다. 생긴 모습은 분명 물개였으나, 정치망 부표 위에서 물개를 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김사장과 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배 엔진을 끄고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후, 녀석이 다시 부표 위에 올라왔다. 이번에는 갈색 털이 물에 젖어 좀더 짙은 검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다시 한번 확인했을 때, 물개임이 분명했다. 이상했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 물개는,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놈이었다. 수많은 암컷들을 데리고 수컷임을 마음껏 뽐내는 대단한 놈이었다. 그런데 혼자라니.
언젠가 뉴욕 타임즈 과학 란에서 북대서양에서 서식하는 회색 물개의 교미상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사를 보면, 케임브리지대 에이모스 교수팀은 스코틀랜드 북서부에 있는 노스로나에서 여러 해에 걸쳐 물개 새끼들을 유전학에 근거하여 조사했는데 상당히 많은 수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물개의 가족생활 방식은 일부다처제로 알려져 있다. 암컷을 독점하는 수컷도 소수가 있다. 그들 알파메일(Alphamale:우두머리 수컷)은 많은 싸움을 거쳐 왕좌를 차지하고 암컷들을 독점한다. 그러나 여성 물개들이 분만하는 새끼들은 알파메일의 소생은 적었고 다른 수컷의 소생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해마다 같은 수컷의 씨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천마리의 물개가 운집하여 사는데 어떻게 해마다 자기 짝을 찾아서 사랑을 할까? 이 수수께끼는 아직 어느 물개 전문가도 풀지 못하고 있다. 로나 섬의 연구의 경우 수컷 새끼 48 마리, 암컷 새끼 48마리를 조사했는데 오직 네 마리(암컷 둘, 수컷 둘)만이 다른 수컷(아마도 알파메일)의 소생이었고 나머지는 같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수컷 물개는 방랑벽이 심해서 가정적이지 못하다. 아내와 새끼들 주변에 있지 않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습성이 있다. 그런 수컷을 기어이 찾아내 정을 통하는 암물개의 충성심은 감탄할 만하다.
그날 본 물개도, 방랑벽 때문에 멀리 이곳 동해안 까지 온 것일까? 그런데 방랑벽 치고는 이상했다. 그들의 서식지, 러시아 부근의 북극해나 캄차카 반도나 아니, 가장 가까운 곳, 울릉도나 독도라 해도 너무 멀리 왔다. 그 물개가 수컷인지 암컷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그 물개는 수컷이라고 단정 지었다. 암컷은 틀림없이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 서식지를 떠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해도, 그 당시 나로서는 그렇게 밖에 단정지울 수 없는 심정이었다.
물개는 그들의 서식지에서 생존경쟁에서 밀려나 외톨이가 되었다. 어쩌면 그의 아내나 자식들에게 조차 외면되어 먹이를 찾아 남하하다가 여기 까지 오게 된 것일지도. 그것은 방랑벽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쓸쓸하고 애처로운 것이다. 그에 대한 증거는 곧 발견할 수 있었다. 물개가 다시 올라 와 우리에게 경계의 눈빛을 띠며 부표 위에 앉아 있을 때, 나는 물개의 꼬리 부근에 난, 커다란 상처를 볼 수 있었다. 날카로운 것에 의해 갈라졌는지, 갈색 털 사이로 벌건 속살이 벌어져 있었다. 가끔씩 그 부분이 아픈지, 물개는 혀로 쓰다듬기도 했다. 혼자 떠돌다가, 배의 스크루나 날카로운 바위에 상처가 났을 것이다.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날씨 좋은 봄날, 해바라기라도 하려고 낯선 곳, 이곳 동해안 작은 어촌, 정치망 부표 위에 올라 왔을 것이다.
다음 날, 온 동네가 다시 한번 발칵 뒤집어 졌다. 물개 거시기가 잘려서 사라진 것이다. 인근 부대 연대장 당번병이 현찰 이백만원을 싸들고 와 거래가 단박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물론 그 거래의 요점은 물개 거시기임이 분명했다. 동네에는 이미 연대장이 젊은 여자를 데리고 횟집에 나타난 것을 두고 쉬쉬하던 차였다. 연대장이 물개를 산 것은 필히 젊은 여자 때문이 분명하다고 사람들은 단정지울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물개 거시기가 사라지다니. 희희락락 하던 홍사장은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짤라 갔을까?"
"뭐, 홍사장 같은 분이시겠지요"
"이 양반, 불난 집에 부채질 하나...."
"................"
나는 홍사장의 속을 또 한번 뒤집어 놓고 서둘러 영식의 집으로 향했다. 문득, 며칠 전 영식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가 너무 약해서 그래, 그 여자가 그럴리가 없어...."
영식과 같이 살던 조선족 여자가 한 밤중에 돈을 훔쳐 도망간 것을 두고 스스로 자책을 했던 것이다. 순진한 영식은 같이 살던 그 여자에게 그토록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못된 점은 다 접어 두고 스스로 감추어 두었던 약점으로 문제를 왜곡 시키고 있었다. 그녀의 못된 점은 동네에서 이미 소문나 있던 터였다. 영식이 돈 말고도 작은 돈을 꾸어준 사람이 너댓명은 넘었다. 그리고 어촌계장 마누라가 딸 결혼식 잔치 때 입으려고 햇빛에 말려두었던 한복이 없어진 것도 그녀의 짓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와 어촌계장 마누라의 몸집도 비슷하였다.
그런데도 영식은 자신의 탓으로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식의 그 말을 혹시 들은 마을 사람들이 영식을 의심할 수도 있다는 노파심에 영식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영식은 사라지고 없었다. 도망간 마누라를 찾아 떠난 것이다. 물개 거시기의 범인은 그래서 오리무중이 되었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홍사장의 찌그러진 얼굴이 고소했다.
몇달 간 떠돌던 영식은 바짝 마른 몸에 꺼매진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도망간 여자 대신에 다른 여자를 데리고 나타났던 것이다. 유라네였다. 영식의 까만 얼굴은 모처럼 화색이 돌았다. 물개 거시기는 영식이 훔쳐간 것이 틀림없다고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것도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xx이가 한국으로 도망쳤어요?"
"응?"
내가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했을 때, 몸서리 치는 일들이 벌어질 예감이 들었다. 그곳도 역시 그녀의 피난처가 아니었다.
"애 아빠는 뭐 하고......"
"애 아빠도 연락이 안되요....."
"이런.....어쩌냐......"
그녀와 이혼을 하고, 서울 바닥에서 노숙자 처럼 떠돌던 그녀의 전 남편은 다행히 조선족 돈 많은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 결혼이 정략결혼이니 아니니 말들은 있었지만, 그녀로서도 다행이었다. 혼자 키우기도 벅차던 딸아이까지 조선족 여자가 맡아 주었다.
"xx이 찾았어?"
"아니, 못 찾았어요. 그런데, 어디 있는지는 알아요. 나를 만나려고는 안해요."
"어디 있데? 애는 괜찮어?"
"지금 애 집 앞인데......들어 갈 수도 없고, 들어오게 하지도 않아요."
"어딘데? 못 들어가?"
"중국서 남자 아이와 채팅을 통해 알게 되었고, 지금 그 아이와 동거하는데, 무슨 일 날까봐 겁이 나서 못 들어가겠어요"
그래서,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의지할 사람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래서, 절대로 만나서는 안될 나에게 어쩔 수 없이 전화한 것이다. 그녀로서는 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딸아이가 마지막 삶의 희망인것을.
나와의 불륜이 들통이 나고, 잠시 그녀의 집에서 같이 살다가 내가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시내에 우리의 추잡한 이야기가 들불 처럼 퍼져가고.....
그때, 그녀가 택한 것은 그녀의 딸아이가 있던 훈춘 행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딸아이는, 그녀의 전 남편의 조선족 부인이 사는 훈춘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 시내에 그 아이를 두기에는 우리의 소문이 부담이었다. 딸아이가 간 후 3 개월만에 그녀도 따라갔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났다. 그녀와의 질긴 인연이 비로서 마무리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래......내가 가마...어디냐?"
나는 드디어 본격적인 신파의 늪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그 깊은 수렁은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고 있다. 지독하고도 천박한 삶의 방식에서 나는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신파극은 누구라도 결말을 미리 알 수 있지만, 나의 신파는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그 결말을 나는 두려워한다. 아내가 가여웠다. 어쩔 수 없었다.
|
첫댓글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