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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잔]
힐튼서울 자서전
출처 중앙SUNDAY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72098
Archive of closure (Facade), 2023. ⓒ최용준
건축물을 전시하는 법. 그것도 거대하고 역사적인 호텔을 통째로. 최근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는 ‘힐튼서울 자서전’ 전시가 화제다. 자신의 온 생애를 드러내는 이 전시의 주인공 힐튼서울은 그러나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사라져 가는 중이다. 1983년 완공된 힐튼호텔은 한국의 건축 역량을 온전히 드러낸 모더니즘 건축의 이정표로 꼽힌다.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제자인 김종성의 설계에 대우그룹과 힐튼인터내셔널의 협력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운영사인 대우그룹이 와해하면서 2번에 걸쳐 매각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2022년 영업이 종료되었다. 현재의 운영사는 주변 건물을 추가 매입해 오피스, 호텔 등으로 구성된 복합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이 복합단지 조성 사업을 위해 힐튼서울은 철거에 들어갔다.
전시는 아카이브부터 힐튼 호텔 건축물의 일부까지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최용준이 찍은 힐튼호텔의 정면은 이 건축물이 남긴 마지막 초상사진이다. 마치 광고사진인 듯 성업 중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 사진의 반전은 디테일 속에 있다. 외관도 주변의 정원도 그대로인 근사한 호텔. 그러나 창 안으로 보이는 텅 빈 객실들은 긴 잠에 든 건물을 비현실적으로 드러낸다. 도시 경관에 관심이 많은 최용준은 그동안 건축과 장소, 도시 문명의 관계에 대해 탐색해 왔다. 그는 구글 맵과 같은 다양한 지도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지형을 분석하고 장소를 특정한 뒤, 촬영에 나선다. 그래서 대표 연작 제목도 현장 촬영을 뜻하는 ‘로케이션’이다. ‘기념비적 장소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하는 논란 속, 안타깝게도 힐튼서울에서는 더 이상 로케이션을 할 수가 없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빛명상
나의 연인, 호텔
나의 사회생활은 호텔에서 시작되어 총지배인으로 끝을 맺었다.
그 속에서 나는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의 첫 번째 사회생활은 호텔에서 시작
되었다. 그리고 호텔 생활을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청산했다.
내가 호텔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다른 인생의 목표가 있었고 호텔에서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었다.
어느 날 성당 신부님이 미사를 끝내고 돌아가려는 날 불러 세웠다.
“자네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구에서 처음으로 무궁화 4 호텔이 생긴다네. 한일호텔이라고, 아직 공사 중이지. 그 호텔 회장님이 우리 성당 신자 분이신데, 사람을 하나 추천해달라고 내게 부탁하더군.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한 모양일세. 그래서 내가 자네를 추천할까 하는데….”
그때까지 대구에는 1급 관광호텔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호텔이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 호텔 일에 나를 추천하신다니, 신부님 말씀이 얼른 납득되지 않았다.
“제가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합니까? 더구나 호텔이 완전히 지어진 것도 아닌데….”
“그렇기는 하지만, 그 회장은 지금부터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야. 최고급으로 짓느라 외국 자재도 많이 들어오고 생각보다 공사가 커지는 모양일세. 그러다 보니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더군…. 맏을 만한 사람을 골라 자재 관리도 맡기고 개업할 때를 대비해 미리 교육도 시키자는 생각이겠지.”
신부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난 내키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호텔은 일반인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 이제 20대 초반, 처음 시작하는 사회생활을 그런 곳에서 출발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는 이미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지 마시고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시죠. 저는 좀 그런데요….”
“왜? 싫은가? 그러지 말고 생각 좀 해보지 그러나, 나도 나지만 사실 회장님이 은근히 자넬 원하고 있거든? 아마 그동안 성당에 나오면서 자네를 유심히 보신 모양이야. 믿을 만한 사람을 소개해 달라기에 자네 이름을 댔더니 아주 반색을 하시더군. 어쩌면 자기하고 보는 눈이 그렇게 똑같냐고 하면서 말이야. 그런 판에 자네가 싫다고 하면 실망이 크실 텐데…. 나도 말씀 전하기가 민망하고 ….”
“죄송합니다.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성당에서 복사를 하고 있었던 나는 신부님의 말씀을 쉽게 거절할 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호텔이라면 어쨌던 싫었다. 그만큼 호텔이라는 인상이 나에겐 부정적이었다.
“허허…, 그것 참! 좋아, 내 강요하지는 않을 테니 그럼 김 회장님을 한번 만나보는 건 어떻겠나?”
그것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신부님과 함께 김 회장이라는 분을 만나게 됐다.
“자네 기분은 충분히 알겠네만, 그건 틀린 생각이야. 호텔은 여관이 아니에요. 최고의 서비스 산업이라구. 굴뚝 없는 산업이란 말도 못 들어봤나? 호텔은 서비스 관광산업의 꽃이란 말일세.”
회장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는 입지적인 양반이었다. 양말 공장부터 시작해 건설업으로 가세를 일으켰고, 극장을 소유하고 고등학교 재단 이사장 등을 지내는 대단한 재력가였다. 고생을 해 본 사람답게 말투에서 막걸리같이 걸걸한 냄새가 풍겼다.
“내 월급은 두둑이 줌세. 1만 8천 원 정도면 되지 않겠나? 거기다가 플러스 알파를 더 얹어 주지.”
1만 8천 원이라니!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당시 보통 월급쟁이들이 받는 돈이 6천 원에서 많아봐야 1만 원 안팎이었다. 거기에다 플러스 알파라니….
“난 회장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네. 호텔이라고 무조건 나쁘게만 볼 건 아니지. 열심히 하면 나름대로 보람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이런 것도 모두 천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네.”
신부님도 거들고 나섰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릴 때부터 난 큰 부자가 되어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인생 목표가 된 이상 나쁜 짓만 아니라면 어떤 일을 해서라도 그 뜻을 이루고 싶었다.
“자네가 정히 호텔이란 곳이 싫다면 내 오래 있으라는 소리 안하겠네. 와서 6개월 만이라도 좀 도와주게. 공사 기간만이라도 말이야. 그러다 호텔이 완공되면 그때 가서 또 생각해 볼 수도 있는 문제니까….”
내가 고민을 하자 회장은 한 발 물러섰다.
결국 나는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직장생활이란 게 꼭 내 입맛에 맞을 수는 없을 것이다. 호텔 아니라 그보다 더한 곳을 간다 해도 나만 열심히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했는데, 1만 8천 원의 월급 자리라면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였다. 더구나 호텔 회장이 강력하게 나를 희망하고 있고 신부님도 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눈 딱 감고 6개월 동안만 가서 일을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좋습니다. 일단 6개월 동안만 가서 일을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20년 동안 이어질 호텔 생활에 첫발을 내디뎠다. 가서 보니 정말 대단한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온갖 물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사용되는 자재는 정말 호화스럽기 짝이 없었다. 나는 자재의 관리와 출납을 담당했는데, 신부님과 회장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꼼꼼히 기록하고 관리해 나갔다.
공사가 완료되고 개관이 임박하자 회장은 다시 간곡히 말했다.
“호텔이 자리 잡을 때까지만 조금만 더 일해주게 공사 기간 동안 쭉 자네를 봐 왔네만, 내겐 자네같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내 간곡히 부탁함세.”
나 역시 그동안 높은 급료와 과외 수당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저축도 해 나가고 있던 터라 6개월 만 더 근무하면서 목표 저축액을 채우기로 했다.
그러나 나의 호텔 근무는 6개월, 6개월씩 자꾸만 연장되면서 3년이 넘게 계속되었다. 회장은 그동안 없는 직급도 만들고 급료도 올리고 하는 방법으로 끈질기게 나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애초 생각과는 달리 3년 넘게 호텔 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회장에게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뜻을 강력히 밝혔다. 그러자 회장은 뜻밖의 제의를 해 왔다.
“내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가? 조만간 난 자네에게 이 호텔 총지배인 일을 맡길 생각이네. 생각해 보게, 일류호텔 총지배인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아무 때,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인 줄 아나? 그러니 딴 마음일랑 먹지 말게.”
그때 나이가 20대 후반, 파격적 제의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전 경험도 부족하고 자격증도….”
“경험은 중요하지 않아. 요는 성실성과 능력이지. 자격증 문제도 내가 교통부에 선처를 해 놓았으니 어렵지 않을 거야.”
얼마 뒤 회장은 나를 교통부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일에서부터 내가 총지배인이 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세세하게 배려해줬다. 이렇게 해서 나의 20년간의 호텔 총지배인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행복을 주는 남자
초판 1쇄 인쇄일 2002년 6월 07일
초판 1쇄 발행일 2002년 6월 20일 P. 35-39
새로운 길을 찾아
빛VIIT의 실체를 확인하고 내게는 생각지 못했던 고민이 생겼다. 빛VIIT에 대한 소문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근무하는 호텔로 각종의 고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심신이 불편한 사람, 집 나간 아이를 찾아달라는 이, 시험을 잘 치게 해달라는 입시생… 등으로 호텔 로비가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쯤 되고 보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은 고객들 보기에 미안했다. 호텔이라는 곳이 조용하고 안락해야 하는데, 이렇게 별별 사람들로 어수선 하니 어느 고객인들 좋아하겠는가. 그렇다고 찾아오는 이들을 쫒아낼 수도 없는 문제고 정말 난감했다.
뿐만 아니라 찾아온 사람을 마냥 기다리게 방치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을 맞이하다 보니 자연 내 호텔 업무에도 지장이 생겼다.
무엇보다 사주 뵙기에 면목이 없었다. 호텔 분위기는 어수선하게 흐르는데다가 나는 또 나대로 근무 시간에 열중하지 못하니 어느 사주라고 좋아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자꾸 호텔을 옮겨 다니게 됐다. 물론 사주는 괜찮다고 하며 더 근무 할 것을 권했지만 내가 그럴 수 없었다. 면목도 없었지만 눈치를 보아가며 사람을 만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내게 능력이 있다면 힘든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기껍게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호텔을 옮길 때마다 이런 나의 처지를 이해해 줄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그럼요. 좋은 일을 하시는 건데. 정 선생만 오신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정 선생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가 문제겠습니까? 더구나 저절로 호텔 광고가 되는 건데요. 좋고말고요.”
대부분의 사주들은 처음에 이렇게 말하며 환영의 뜻을 표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런 것인지 시간이 좀 지나면 처음의 입장에서 후퇴된 모습들을 보이곤 한다.
“좋은 일 하시는 거니깐 기왕이면 앞으로 사람들을 만날 때는 내 방에서 만나도록 하세요. 그게 여러 모로 좋겠어요.”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데, 그때마다 사장실을 불쑥불쑥 들락거려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내가 하는 일을 통제하겠다는 소리였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럴 때가 되면 미련 없이 호텔을 옮겼다. 그러나 옮기는 데도 정도가 있지 조금씩 그런 생활이 피곤해졌다.
사실 이런 직장 문제 말고라도 내게는 진작부터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이 힘을 우주의 뜻에 더욱 합당하게 널리 나눌 수 있겠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 힘이 언제까지 나에게 머물지는 사실 나 자신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 버릴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내게 머물 것인지는 우주의 마음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어찌됐든 이 힘이 내게 머물러 있는 동안만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하여 더 많은 분들에게 우주마음의 숨결을 알게 하는 일이 빛VIIT의 원뜻에 충실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 부족했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호텔을 그만두고 빛VIIT을 전하는 일에만 매진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자주 고개를 들었다. 이것저것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빛VIIT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도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직장을 걷어 버릴 수는 없었다.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망설였지만, 결국 내 마음은 호텔을 떠나는 쪽으로 굳어갔다. 하지만 가족들의 생계가 끝까지 내 발목을 붙들었다. 아무리 가장이라고는 하나 가족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손님들한테도 미안하고 사주 뵙기도 그렇고……. 난 또 나대로 서운해요.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남 고통 해결해 주는 사람으로만 생각들을 하니…….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하오. 직장을 그만두든가 무슨 소리를 내야지, 이거야 원…….”
고민이 계속되던 어느 날인가 작심을 하고 아내에게 은근슬쩍 내 속뜻을 비쳐보았다. 혼자 끙끙 앓고 있느니 말이나 한 번 꺼내 보자는 심사에서다.
“그렇게 그 일이 하고 싶으세요?”
펄펄 뛸 줄 알았는데 아내는 의외로 차분했다.
“꼭 하고 싶다기보다……. 생각해 봐요. 그렇다고 사람 찾아오는 걸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 아니야? 얼마나 절실하면 물어물어 호텔까지 찾아올까…….”
“하긴 찾아오는 사람들 모른 체하는 것도 사람 할 일은 아니죠.”
“그럼, 아니고말고. 나한테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해 줘야지. 안 그래요? 그런데 여러 면에서 직장 일이 발목을 잡아요.”
“ …….”
아내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기로는 아내도 빠지지 않았다. 아내는 팔공 재건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의 교육과 재활을 위해 설립된 그 학교에서 아내는 결혼 전까지 교편을 잡았었는데, 교사 노릇뿐만 아니라 월급을 털어 학생들의 뒤를 보아 주는 후견인 역할도 했다. 월급만으로 부족할 땐 커튼 등의 인테리어 소품을 만드는 부업을 해서라도 후견인 역할을 했다. 아내뿐만 아니라 장모님까지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는 등 처가 식구 모두가 재건학교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처가의 가풍이었다.
그런 아내였기에 더 쉽게 말을 꺼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진작부터 호텔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소.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게 좀 그랬거든. 이 힘이 내게 온 참뜻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닌가 해서……. 여보, 사실 우리 형편에 물질적으로 남들에게 베풀 것이 뭐가 있겠소? 안 그래요? 그나마 내게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오.”
“그래요, 한 가지라도 남에게 베풀 것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요.”
아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여보, …내 털어 놓고 말하겠는데, …솔직히 나 호텔을 그만두었으면 좋겠소. 그 분의 뜻에 따라 전적으로 매달렸으면 해서…….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소. 하지만 이런 문제를 나 혼자 결정할 수도 없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내친걸음이라고 해도 아내에게는 충격적인 소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러세요.”
아내는 이 소리뿐이었다.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워졌다.
“아니, 여보. 내 말은, 직장을 그만뒀으면 하는데…….”
“알아들었어요, 당신 말. 나쁜 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난 당신 뜻에 따르겠어요.”
“당신, 정말 괜찮겠어?”
오랫동안 끌어온 고민이 이렇게 한 순간에 결론 나다니 싱거운 기분까지 들었다.
“그럼 제가 길길이 뛰기라도 할 줄 아셨어요? 사실 그동안 당신 얼굴 보면서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당신이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잘 생각했어요. 저도 찬성이니깐 당신만 좋다면 그렇게 하세요.“
아내는 은근한 힘으로 내 손을 잡아 주며 말했다. 얼굴엔 살풋한 미소가 돌았다.
“고맙소.”
“고맙기는요. 대신 그만둘 땐 적어도 두 달 전에 나한테 구체적으로 통보를 해 주세요. 그래야 저도 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까요.”
“대책이라니?”
“그럼, 당신 호텔 그만두고 나면 우리 가족 손가락만 빨고 살아요? 당신 성격에 그 힘을 돈벌이로 연결하진 않을 테니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 둬야죠. 다행히 인테리어 소품 만드는 기술이라도 있으니 그걸로 가게라도 하나 내면 그럭저럭 먹고는 살 수 있을 거예요.”
고맙게도 아내는 내가 가장 곤혹스러워 하던 부분까지 헤아리고 있었다. 이런 아내는 배려에 힘입어 희망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수순을 본격적으로 밟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나는 대구 금호 호텔의 총 매니저 겸 관리 이사직을 끝으로 20여 년간의 정든 호텔 생활을 마감했다.
94년 새해, 우리 부부는 동해안의 영덕 부근에 있는 선비치 호텔로 해맞이를 떠났다. 지난 20년의 생활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떠난 여행이었다.
우리는 동이 채 트지 않은 진보랏빛 여명 속의 해변을 걷고 있었다. 아내와 이런 저런 말들로 덕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여, 여보, 저거 봐요!”
아내가 갑자기 수평선 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뭐가? 어디?”
나는 아내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유난히 밝고 선명한 해가 바람개비 돌 듯 빙글빙글 돌면서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빛은 또 얼마나 환상적인지 마치 서치라이트처럼 확연하게 줄기를 이룬 광선 자락들이 하늘과 땅과 바다 위로 뻗어나며 천지를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어! 어…….”
주위에 있던 관광객들도 할 말을 잃은 채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주위에서 또 한 번 소동이 일었다.
“어, 어? 얘 좀 봐라! 너 손이 왜 그러냐?”
“그러는 너는 어떻고? 얼굴에 온통 황금가룬데?”
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손, 다리에서 금분과 은분들이 생겨났다. 내 손바닥에도 금분들이 빽빽하게 솟아나 있었다.
“당신이 이 길로 나선다고 하니깐 하늘이 축복해 주는 것 같아요.”
아직도 일출의 황홀한 광경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아내가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의 말처럼 그건 분명 우주의 마음이 내게 내려 준 환영과 축복의 빛VIIT이었다. 직장을 떠났다고 조금도 위축되거나 불안해하지 말라는 격려의 미소임에 틀림없었다. 그 일은 실제로 나에게 커다란 격려가 되었으며, 오직 빛VIIT과 함께 하는 길에만 정진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출처 :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초판 1쇄 1996년 11월25일
개정판 2쇄 발행 2009년 12월 21일 p.110-117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호텔일을 시작하고 호텔을 떠나게 된 과정과 우주마음의 축복이 내리는 경이로운 빛현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호텔로의 인연, 그 시작과 끝, 과정에 대한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에 잘 담습니다.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에 우주마음님과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호텔로의 인연, 그 시작과 끝 과정에 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장님의 첫직장 호텔맨...빛책속의 귀한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호텔에서 사회의 첫발을 내딛게 된 과정과 빛VIIT을 전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 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호텔과의 인연과 빛을 전적으로 시작하는
학회장님의 이야기 감사합니다
빛과함께 해오신 여정 학회장님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역사이야기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호텔에서 근무하시게 되신 이야기 감사합니다.
학회장님의 첫 사회생활, 호텔이야기와 새벽 하늘에 태양이 바람개비 돌듯 빙글빙글 떠오르는
우주마음이 내려주신 환영과 축복의 신비로운 빛현상~ 귀한 빛역사이야기 감사드리며
현존의 빛과 함께 하시는 학회장님께 무한한 공경의 마음 가득 올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