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제봉 숲속으로
올여름 장마는 초반에 잠시 비를 뿌리다가 종적을 감추고 연일 폭염이 지속되는 칠월 초순이다. 한낮 더위와 열대야를 식혀줄 소나기조차 내리지 않아 소환이라 할 수 있다면 실종된 장마전선을 끌고라도 왔으면 싶다. 칠월 첫째 수요일 집안에서 마냥 무덥다는 더위 타령만 하고 있을 수 없어 반나절 산행을 감행하려고 이른 아침 집 앞에서 대방동으로 가는 101번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는 창원대학과 도청을 둘러 대방동 뒷길로 들었는데 차도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단지는 계속 이어지고 단독주택지가 끝난 성당 인근에서 내렸다. 대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들머리에서 성주동 아파트단지를 돌아 용제봉으로 드는 등산로로 향했더니 이른 새벽에 산행을 마치고 나오는 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나는 생활권과 거리가 떨어진 곳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갈 수 있었다.
아까 버스에서 내리면 대암산 등산로가 먼저 나왔는데도 그쪽으로 오르지 않음은 산세가 가팔라 여름에는 힘이 들어서다. 반면 성주동 아파트단지 뒤를 돌아가는 용제봉 등산로는 임도처럼 평탄한 길이 길게 이어져 산행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산 아래 아파트단지 사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네들도 새벽녘 산책 삼아 숲으로 들어갔다가 나와도 되는 코스라 나도 여름이면 가끔 찾는다.
예산이 넉넉해서인지 산림 녹지 부서 공무원의 열정이 있어선지 등산로가 잘 정비되고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거기다 재작년에는 길섶에 산수국을 조경용으로 심어 인공이 가미되었음에도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루었다. 산수국은 잎줄기가 싱그러웠고 유월부터 피던 꽃은 이제 거의 저무는 즈음이었다. 장마가 오고 폭염이 지속되어도 철 따라 꽃은 피었다가 때가 되니 저물어갔다.
등산로 들머리 삼정자동 마애불상 위쪽 샘터는 식수 음용하기 부적합 판정으로 이끼가 낀 채 방치되어 있었다. 농바위는 불모산동 원주민들이 100여 년 전 한자를 음각으로 새긴 성묫길 안내문이다. 15개 성씨들의 조상 산소 위치를 산등선 지명과 함께 무덤 방향을 자연석 암벽에 새겨 놓았다. 나는 용제봉을 자주 찾아 수원 백 씨, 곡부 공 씨, 김해 김 씨 등은 무덤 위치까지 훤하다.
농바위를 지나니 대암산 허리를 돌아온 숲속 길이 용제봉 임도와 합류했다. 평바위를 지나 상점령 갈림길에서 용제봉으로 오르는 숲길로 드니 계곡에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용제봉은 바깥에서 보기보다 산속으로 들어서면 산자락의 품이 넓고 골이 깊어 웬만한 가뭄에도 계곡물이 마르지 않았다. 올해처럼 장마가 시작되어 비다운 비가 오질 않아도 용제봉 계곡에는 물이 제법 흘렀다.
계곡에는 이맘때 피는 분홍 자귀나무꽃이 시선을 끌었다. 목책 교량을 건너니 낙엽활엽수인 참나무가 우거진 숲이 나왔다. 쉼터에서 얼음 생수를 마시면서 명상에 잠겼다가 다시 발걸음 떼어 등산로를 벗어난 숲속으로 들었다. 내가 개척 산행을 감행함은 여름 활엽수림에서 만날 수 있는 영지버섯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참나무가 고사목이 되어 삭은 그루터기에 붙는 영지버섯이다.
높이 자란 활엽수림이 우거진 숲에서 두리번두리번 영지버섯을 찾아봐도 신령스러운 버섯은 실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삼림욕을 한다는 심산으로 아무도 없는 숲속을 느긋하게 누볐더니 발품을 판 보람은 있었다. 갓을 완전하게 다 펼치지 않았지만 아기 손바닥 만한 영지버섯을 서너 개 찾아냈다. 청정한 숲속을 한 시간 넘게 거닐면서 음이온을 가득 흡입한 호사까지 누렸다.
숲에서 나오다 후손이 다녀갔을 무덤에 비비추가 꽃대를 밀어 올려 꽃을 피워 있었다. 장맛비와 뙤약볕에도 때가 되면 꿋꿋하게 꽃을 피우는 야생화였는데 봄날 연한 잎사귀는 산나물로도 대접을 받았다. 숲속을 빠져나온 하산길에 뒤늦게 산을 찾아오는 이들을 더러 만났다. 헬스장이나 골프장과 비교할 수 없는 자연산 땀을 흘리려는 사람들이기에 나와 같은 동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22.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