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평화
[가톨릭 신학]
‘평화’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관심사 중의 하나이지요.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화는 어떠한 모습의 평화일까요? 고대 세계에서 이해하고 기다렸던 평화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를 비교해 보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평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이해했던 평화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그리스 신화를 살펴봅니다. 그리스 신화를 대표하는 신들에는 올림푸스의 열두 신이 있지요. 하늘과 천둥을 지배하는 제우스, 전쟁과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 예언의 신인 아폴로 등이 유명합니다. 신화를 대표하는 신들인 만큼,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을 보여줄 텐데, 흥미롭게도 평화를 담당하는 신은 여기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평화’를 담당하는 신은 ‘호라이’라고 하는 여신들 중의 한 명입니다. 제우스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테미스(θέμις) 사이에서 태어난 ‘호라이’(Ὧραι) 여신들은 세 명의 자매로 구성되는데, 그들은 ‘에우노미아’(Εὐνομία), ‘디케’(Δίκη), 그리고 ‘에이레네’(Ειρηνη)입니다. 그리스어로 표기한 여신들의 이름이 가진 뜻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테미스는 ‘법, 질서, 정의’를, 호라이는 ‘시간’을, 에우노미아는 ‘질서’를, 디케는 ‘정의’를, 그리고 에이레네는 ‘평화’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우스는 법과 질서 그리고 정의(테미스)를 바탕으로 시간(호라이)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원리들을 잘 지켜나간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세상에도 질서(에우노미아), 정의(디케), 그리고 평화(에이레네)가 있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인들은 법과 정의를 바탕으로 질서가 이루어질 때 평화가 가능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는 평화는 어떤 평화일까요? 루카복음을 보면, 즈카르야는 예수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합니다.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주실 것이다.”(루카 1,77-79) 즈카르야의 노래에 따르면, 죄의 용서를 통한 구원을 행하시는 분도,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분도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평화는 다음과 같이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용서를 통해 우리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리스 신화에서 말하는 평화와는 사뭇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법과 정의’를 바탕으로 한 평화(그리스 신화)와 ‘용서’를 바탕으로 한 평화(복음). 여러분들은 어떠한 평화를 추구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모두 예수님이 초대하시는, ‘용서를 통한 평화’를 살아갈 수 있다면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2025년 1월 26일(다해)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해외 원조 주일) 서울주보 5면,
박진수 사도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