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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가 민주주의, 새로운 시작을 기원하는 시국 미사를 봉헌했다.
지난 3일 비상 계엄과 해제 뒤로 윤석열 탄핵과 내란죄 처벌 절차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마지막 시국 미사가 30일 저녁에 봉헌됐다. 이날 미사는 의정부교구 주교좌 성당에서 총대리 이정훈 신부가 주례하고, 사제 64명과 신자, 수도자 300여 명이 함께했다.
미사에 앞서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을 함께 추모하고, 그동안 탄핵 집회에 참여한 30대, 60대 여성 신자와 성소수자 신자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정훈 신부는 미사 시작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기원하는 지향과 함께 불의의 사고로 희생당한 여객기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미사로 봉헌되기를 바라는 교구장 메시지를 전했다.
30일 의정부교구가 올해 마지막 천주교 시국 미사를 봉헌했다. ©경동현 기자
이날 원동일 신부(의정부교구 1지구장)는 강론에서 지난 21일 남태령에서 전국농민회 전봉준투쟁단 트랙터와 경찰 대치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영하 8도 추위에 밤샘 대치했을 때, “백남기 어르신이 떠올랐다. 남태령에서 혹시 살수차가 오면 어쩌나 괜한 노파심을 가졌다가 문득, 백남기 어르신이 돌아가시면서 살수차가 금지됐다는 걸 깨달았다”는 한 시민의 말을 들으면서, 한강 작가의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말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원 신부에 따르면 전봉준투쟁단은 백남기 농민의 희생 뒤 결성됐다. 농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트랙터 투쟁은 전에도 있었지만 매번 서울을 눈앞에 두고 경찰이 막았고, 이번 서울 진입은 첫 성공이었다.
그는 “특히 20-30대 여성들의 도움으로 130년 만에 거둔 승리였다”면서, “1984년 마가렛 대처 수상이 산업 중심축을 서비스업에 맞추면서 광부들의 파업을 일으켰을 때, 성소수자들이 광부들과 연대한 일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남태령 연대와 관련해, 결국 12.3 내란 사태 이후 여성, 노동자, 농민, 성소수자들이 새롭게 연대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서로 돌보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이는 새로운 연대, 새로운 공동체 출현"이라고 말했다.
강론하고 있는 원동일 신부. ©경동현 기자
그는 “우리 신앙인들도 바로 이러한 새로운 연대에 함께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내란 사태 이후, 탄핵 너머 하느님나라를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의 세 가지 열쇠말은 기도와 저항, 새로운 공동체"라고 짚었다.
이어 “우리는 기도로 정치체제를 바꾸거나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지만, 오히려 기도로 계엄, 전쟁, 폭력, 혐오, 차별이 있는 이 세상에 우리가 속하지 않는다는 진리, 우리는 이 세상에 죽음으로써 어떤 인간적 권력도 결코 하느님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확신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저항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죽음 세력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 그 결과 우리가 만나는 것이 어떤 모습이든지 상관없이 모든 생명에 대해 ‘예’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원동일 신부는 “우리는 단순히 나쁜 놈들을 처단하기 위해 여기 모인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고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으면 한다"면서, "자기혐오의 목소리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의 가장 큰 적이다. 이것은 우리를 영적 자살로 유혹하는 목소리이므로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하고, 탄핵 광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하고 저항하자. 누구도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날 미사 중에 성체 성사 모습. ©경동현 기자
영성체 뒤에 지난 탄핵 집회에서 성가를 불러 화제가 된 고하나 씨(리디아, 오류동 성당)가 '아무것도 너를'와 넬라 판타지아'를 불렀다. ©경동현 기자
한편, 이날 영성체 뒤 묵상 시간에는 계엄 해제된 4일 국회 앞 집회에서 “천주교인입니다”라고 자기 소개하고, 성가 '아무것도 너를'을 불러 참가자들을 위로한 고하나 씨(리디아, 오류동 성당)가 같은 곡과 ‘넬라 판타지아’를 열창해 박수를 받았다.
이날 미사를 주관한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재영 신부는 미사 말미에 계엄 사태로 분노와 슬픔, 불안이 엄습한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고, 청년들이 맞서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들 그리고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신 순교 성인들, 민주화 운동 선배들, 숭고한 희생과 죽음으로 우리를 지켜준 모든 이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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