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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연합회 서장Ⅱ 특강 1강-4 (2013.10.14.)
答 富樞密 季申 (三).
答 李叅政 別紙 漢老.
한자에는 음이 두 가지 내지 세 가지 경우도 있으니까요.
省力이 곧 得力處임을 纔覺함이라. 막 깨달음이라.
亦不着做靜中工夫(역불착주정중공부)하야도,
또한 힘써서 靜中工夫. 고요한데서 공부를 짓지 않더라도
只遮便是工夫(지차변시공부야)니라.
이것도, 遮 : 차라고 되어 있는데, “막는다.” 고 할 때는 차지만,
“이것이다.” 고 할 때는 자라고 해야 됩니다. 자라고 해야 옳습니다.
지자변시공부야니라. 다만 이것이 곧 공부다. 이것이 바로 공부다.
그런 뜻입니다. 득력과 생력. 생력과 득력. 득력처가 생력 처고, 생력처가 득력 처다. 그런 표현을 대혜스님은 참 자주 하십니다. 그 다음에
이참정 이라는 사람이름이 나오는데요. 이사람 하고, 부추밀하고 이참정하고는 잘 아는 사이입니다. 모두 아주, 참정벼슬이라면 상당한, 예를 들어서 추밀이나 참정이나 거의 정승, 지금 우리 입장으로 표현하면 장관. 또는 총리. 이런 급의 중국 천하에서 그 정도 급의 벼슬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개인의 신도를 가지고 우리가 이야기하기로 하면, 부처님신도보다도 대혜스님의 신도가 수준이 높은 신도가 많았습니다. 부처님은 파사익 왕이라든지 등등, 왕이 한둘이 있긴 있었습니다만, 왕이 있으면 무슨 장관급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기록이 없고, 기록이 이렇게 분명한 사람으로서 대혜스님의 신도같이 당대에 최고 지식인들ㆍ최고 벼슬이 높은 사람들, 정승이 여럿이 있었으니까요.
그 다음에 무슨 장관급은 수두룩했고요. 그래요.
신도로 보면 제일 부러운 스님이 사실은 대혜스님입니다. 그만치 수준이 높았던 스님이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 사회에서 제일 수준 높은 사람들만 대혜스님이 편지를 주고받았고, 신도로서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대혜스님이 참 뛰어난 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식이 얼마나 출중하고, 또 지혜가 뛰어났으면, 그런 사람들을 자유자재로 그렇게 가르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생각까지도 우리가 해야 될 그런 입장입니다. 참정벼슬이라는 것이 이것이 상당한 벼슬입니다.
李叅政이 頃在泉南하야 初相見時에 見山僧의 力排黙照邪禪이
瞎人眼하고 渠初不平하야 疑怒相半이러니 驀聞山僧의
頌庭前栢樹子話하고 忽然打破漆桶하야 於一笑中에
千了百當코사 方信山僧의 開口見膽이라 無秋毫相欺하며
亦不是爭人我하고 便對山僧懺悔일러니라 此公이 現在彼하니
請試問之호대 還是也無아하라 道謙上座가 已往福唐이러니
不識커라 已到彼否아 此子參禪喫辛苦更多호대 亦嘗十餘年을
入枯禪이러니 近年에 始得箇安樂處하니 相見時어든
試問渠호대 如何做工夫오하라 曾爲浪子라 偏憐客이니
想必至誠吐露也리라
李參政(이참정)이, 이참정 이라는 사람이
頃在泉南(경재천남)하야, 泉南이라고하는 곳에 지난 날 있었는데,
初相見時(초상견시)에 見山僧(견산승)의
力排黙照邪禪(역배묵조사선)이 瞎人眼(할인안)하고,
山僧이 힘써 力排黙照邪禪. 묵조의 삿된 선을 힘써 배척하는 것을,
黙照邪禪이 瞎人眼이라.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을 힘써 배척하는 것을 보고, 이런 말입니다.
옛날에 泉南에서 이참정하고 대혜스님이 만났습니다.
그 때에 대혜스님이 법문하시면서 아주 사정없이 묵조선을 비판을 했어요.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을 했습니다. “내가 구업을 지어서 지옥을 가는 한이 있어도, 이 삿된 견해만은 내가 물리치리라.” 이런 원력을 세운 분이 대혜스님입니다. 그래서 묵조선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니까 이 이참정이라는 사람이,
渠初不平(거초불평)하여, 그 사람이 처음에는 불평해요.
‘스님이 저렇게 남을 욕을 하면서 그렇게 하는가?’ 그러면서
疑怒相半(의노상반)이러니, 그랬습니다.
‘저 대혜스님이 제대로 알고 하는 것인가?’ 그리고 또 남을 너무나도 비판하니까 이참정이라는 사람이 분노까지 일으킨 겁니다. 스님한테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저런 큰스님이 어떻게 남을 저렇게 비판하고 욕을 하는가?’ 그래서 疑怒가 相半이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이참정 이라는 사람이 의심도하고 분노도 일으켰다. 참정벼슬 하는 대단한 분입니다. 그랬는데
驀聞(맥문), 문득 들었다. 뭘 들었는가하면,
山僧(산승)의
頌庭前栢樹子話(송정전백수자화)하고,
정전백수자 화두를 게송 하는 것을 듣고, 정전백수자 화두에 게송 지은 것을 듣고는
忽然히 打破漆桶(홀연타파칠통)하여,
홀연히 漆桶을 타파했다. 이것 선가의 용어인데요.
漆桶은 뭡니까? 옻. 옻이 새카맣잖아요. 옻을 담은 통. 이런 말입니다.
아주 검디검다는 뜻이지요. 옻, 그 자체도 검은데 그것을 통 안에 담았으니까 얼마나 캄캄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칠통ㆍ칠통” 하는 것은 도대체 무식하고, 지혜가 없고, 아무 것도 모르고한 사람을 “저 칠통 같은 놈” 이라고 그렇게 표현하잖아요. “칠통 같은 놈” 캄캄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우리의 의식이 그야말로 그와 같이 됐는데, 그 게송을 이 참정이 듣고는 그리고 자기의 漆桶을 홀연히 타파했다. 이 말입니다.
於一笑中(어일소중)에, 한 번 웃는 가운데
千了百當(천료백당)코사, 천 번 요달하고 백 번 알고는, 깨달았다. 이 말입니다. 알고는, 方信(방신), 바야흐로 믿는다. 무엇을?
山僧이 開口見膽(개구견담)이라.
산승이 입을 열어서 말하는 것. 또 내 쓸개를 환히 다 들여다보는 것을 비로소 바야흐로 믿게 되었다. 그리고
無秋毫相欺(무추호상기)하며,
추호도 서로 속임이 없다는 것을 또 알게 되었다. 믿게 되었다. 그리고는
亦不是爭人我(역불시쟁인아)하고, 또한 人我 다투는 것도 아니고,
便對山僧懺悔(변대산승참회)일러니라. 곧 산승을 대해서 참회 했더니라.
“아~ 스님, 제가 그동안 스님을 의심했고, 또 스님이 너무 묵조선 비판하고 욕하는 것에 대해서 사실은 분노도 느꼈습니다.” 하면서 참회를 했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此公(차공)이 現在彼(현재피)하니,
이 사람이, 이참정이 바로 너의 동네에 살지 않느냐? 네가 사는 그 도시에 사니까, 거기에 있으니까 請試問之(청시문지)호대, 청컨대 시험 삼아 그 사람에게 한번 물어보아라.
還是也無(환시야무)아하라.
또한 그런 일이 있었느냐? 라고 직접 한번 물어보아라. 실지로 그런 일이 있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 옆에 있으니까 가서 한번 물어보시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산승이 庭前栢樹子화두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게송을 지었는가? 책에 나와 있습니다. 35쪽 봅시다.
↓ 35쪽 다섯 번째 주.
言激發者(언격발자)는, 이것은 紹興五年乙卯正月(소흥오년을묘정월)에 江給事少明(강급사소명)이 時爲泉州給事(시위천주급사)하야, 泉州給事 = 도지사 쯤 됩니다. 천주급사가 돼가지고서 刱新庵於小溪之上(창신암어소계지상)하고, 새로운 암지를 小溪위에다 창건하고, 延師居焉(연사거언)이라. 스님보고 거기에 사시도록 그렇게 했다. 一時(일시)에 名士李叅政(명사이참정)하고 江給事(강급사)하고 蔡郞中等(채랑중등)이, 이러한 등등 사람들이 登山扣擊(등산고격)할새. 산에 올라와 가지고 불법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叅政이 見師力排黙照邪禪(견사력배묵조사선)하고, 이참정이 대혜스님이 힘써 黙照邪禪 배척하는 하는 것을 보고, 疑怒相半(의노상반)이러니, 의심과 분노가 상반이었는데, 一日(일일)에 師示衆曰(사시중왈), 대혜스님이 어느 날 법문을 했어 요. 庭前栢樹子(정전백수자)를, 화두지요? “여하시조사서래의닛고?” 그랬지요? 거기에 정전백수자니라. 일종의 화두지요? 庭前栢樹子를 今日重新擧(금일중신거)라. 금일 거듭 새롭게 들게 되었다. 破打趙州關(파타조주관)하고. 조주의 관문을 타파하고, 特地尋玄話(특지심현화)로다. 특별히 깊은 이야기를 찾게 되었다. 敢問大衆(감문대중)하노니, 감히 대중에게 묻노니, 旣是打破趙州關(기시타파조주관)인댄, 이미 조주관을 타파했다면, 조주스님이 내놓은 화두 그것을 “조주의 관문”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을 타파했을 진댄, 爲甚麽特地尋玄話(위삼마특지심현화)오? 무엇 때문에ㆍ무엇 때문에 특별히 玄話. 깊은 도리ㆍ깊은 이야기를 거 기서 찾으려고 하느냐? 良久(량구)에, 가만히 있다가 云當初只疑茅長短(운당초지의모장단)터니, 처음에는 풀이 길고 짧은가? 저기 들판이 움푹질퍽하니까, 밑에 내려 간것도 있고, 위로 올라 온 것도 있고, 그런 현상을 두고 하는 소리다. 처음에는 풀이 짧고 길구나. 하는 것을 의심했더니, 燒了方知地不平(소료방지지불평)이로다. 풀을 태우고 나니까 땅이 본래 그렇게 不平. 평탄하지 아니한 것을 비 로소 알게 되었다. 이런 말입니다. 叅政이 聞之(문지)하고, 이참정이 그 법문을 듣고는, 忽然히 有省(홀연유성)하야,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어, 省자가 이럴 땐 깨달은 바입니다. 깨달은 바가 있어서 謂師曰(위사왈), 대혜스님에게 말하기를 若無後語(약무후어)런들, 만약에 뒷말이 없었던들, 뒷말이 뭐라고요? 當初只疑茅長短. 당초에 다만 풀이 길고 짧은가를 의심했더니, 태우고 나니까 方知地不平이라. 바야흐로 땅이 평탄하지 아니한 줄을 알겠더 라. 라고 하는 그겁니다. 그 말이 만약에 없었더라면 邴亦幾乎蹉過也(병역기호차과야)라하다. 邴이라는 것은 이참정 이름입니다. 또한 거의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
이것이 앞에서 가리킨 庭前栢樹子에 대한 화두. 그것을,
거기에서 이 법문을 했을 때, 이참정이 깨달았다는 것이지요. 이참정이 그 때야 깨닫고는 알게 됐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여기 각주에 그런 것이 다 올려져 있습니다. 그 다음에
道謙上座(도겸상좌)가, 도겸상좌는 대혜스님의 상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깨달음을 이룬 분입니다. 그런 상좌입니다.
도겸상좌가 已往福唐(이왕복당)이러니,
福唐. 아마 이것도 지명입니다. 이미 福唐에 갔으니
不識(불식)커라 已到彼否(이도피부)아?
이 사람들 사는 곳이 아마 복당이라는 도시인가 봐요? 알지 못하겠다.
이미 거기에 이르렀으니까 此子가 = 도겸상좌가, 이 말입니다.
參禪을 喫辛苦更多(참선끽신고갱다)호대,
참선하는데 辛苦를 또한 많이 먹었다. 喫辛苦更多라.
고생 많이 했다 이 말입니다. 내 상좌. 이 도겸이라는 사람이 참선하면서 참 고생 많이 한 사람이다. 그러니
亦嘗十餘年(역상십여년)을 入枯禪(입고선)이러니,
또한 일찍이 10여 년 동안을 枯禪 = 바짝 마른 선에 들어갔었다.
바짝 마른선 = 枯禪에 들어갔었다는 말은 이것은 “묵조선” 을 하고 있었다. ‘10여 년 동안묵조선을 하고 있었다.’ 이 뜻입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도 대혜스님을 만나가지고 제대로 깨달았다는 겁니다. 그런 사연이 있는 스님입니다.
近年(근년)에 始得箇安樂處(시득개안락처)하니,
근래에 와서야 비로소 안락처를 얻게 되었다.ㆍ비로소 안락처를 얻게 됐다. 지금에 와서 근래에 깨닫게 되었다.
相見時(상견시)어든, 그 상좌하고 서로 보게 되거든,
(가서 찾아보라고 그랬어요.) 그 때는 교통이 불편하고,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편지를 보낸다 하더라도 그 편지 도착하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립니까? 그럼 곳곳에, 그 도시에 이 상좌를 보내가지고 그 공부 인을 점검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부산이라고 하는 곳에 보냈다면, 부산에서 대혜스님하고 편지거래로써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보게 하는 겁니다.
찾아보게 해가지고 공부를 어떻게 했고, 그 다음에 무슨 소견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전부 물어서 대혜스님에게 갖다 바치는 겁니다. 그럼 또 대혜스님이 그것을 듣고는 지시하는데, 대혜스님 심부름을 하려면 최소한도 그 수준이, 깨달음의 수준이 대혜스님 정도는 돼야 됩니다. 대혜스님 정도 돼야 깨달음에 대한 그런 지시를 하지요. 보통 물건 갖다 주는 그런 심부름꾼이 아니잖아요. 공부하는 사람을 점검하고, 바로잡아주고 하려면, 그만한 수준이 돼야 되니까요. 이 도겸이라는 상좌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다니면서 만나서 지시합니다.
그래 그 사람을 보거든 = 相見時어든,
試問渠(시문거)호대, 시험삼이 그 사람에게 묻되,
如何做工夫(여하주공부)오하라.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 어떻게 공부를 짓느냐? 라고 한 번 물어보시오.
曾爲浪子(증위낭자)라 偏憐客(편린객)이니,
일찍이 그 사람은 나그네. 浪子라는 말은 나그네라는 뜻입니다.
흘러 다니는 나그네 노릇을 했다. 일찍이 나그네 노릇을 했으니, 치우쳐서 객을 또 불쌍히 여긴다. 그렇지요. 나그네 노릇 많이 한 사람은 객스님 사랑할 줄 알고, 객스님 거둘 줄 알아요. 나그네 노릇 많이 한 사람은 객스님 사정을 안다고요. 그런 표현입니다. 아주 근사하지요?
曾爲浪子라 偏憐客이니, 치우쳐서 객을 어여삐 여기니,
想必至誠吐露也(상필지성토노야)리라.
아마도 지성으로, 반드시 지성으로 吐露할 것입니다.
지성으로, 지성껏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러니까 꼭 내 상좌 만나서 공부하는데 대해서 법담을 좀 나누기를 바랍니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아주 뭔가 글이, 직접 사람에게 주고받은 내용이고 하니까 글이 참, 경전하고는 다르게 살아있는 느낌이 들고, 어떤 실재적인 그런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가 옆에서 지켜보는 그런 분위기가 돼놔서 이것은 경전하고는 아주 또 경전하고는 다른 맛이 있습니다. 그리고 견해가 워낙 출중한 분이 돼놔서, 우리나라 보조스님이 이 서장을 항상 옆에다 두고 읽었다니까요.
그런 스님이 옆에다 두고 읽을 정도면 오죽 하겠습니까?
또 이 분의 신도들을 보면, 신도들의 면면을 보면 그냥 알 수 있습니다.
신도들 수준이 보통수준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대혜스님에게 이렇게 편지로써, 또는 찾아와서 법을 묻고 그 지도를 받았으니, 대단한 분이지요. 그 다음에 이참정이 바로 나오네요. 이 사람입니다.
한 사람을 제대로 제도하기 위해서요?
대혜스님은 엄청 공을 많이 들입니다. 참~ 공을 많이 들입니다.
그래 자기 상좌를 보내기도하고, 또 옆에 이참정에게 편지, 別紙(별지)라고 했잖아요. 저 앞에 이참정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오지 않고 뒤에 이 사람을 위해서, 부추밀 때문에 보낸 편지기 때문에, 따로 부추밀 옆에다가 붙여놓은 편지입니다. 부추밀 하나 제도하려고 이참정에게 또 편지 보내는 겁니다. 한 사람 제도하려고 이렇게 공을 들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저는 신도들에게,
법회 나오도록 옆의 도반들 권할 때, 데려오는 사람이 1년 회비를 “꼭 대신 내주라ㆍ차도 태워주라ㆍ차비도 대신 내주라ㆍ회비도 내주고 교재도 전부 챙겨주라ㆍ1년간 그렇게 공을 들여서 신도하나 만들어라.” 그 얘기를 저는 항상 합니다. 신도하나 만드는데도 그렇게 공을 들여야 됩니다. 신도가 신도를 그 절에 데려오게 하려면, 그 사람 1년간 회비내주라 이 말입니다. 1년간 공들여서 그 사람이 확실한 불교신도가 된다면 그것은 크게 번겁니다. 사실은 크게 제도한 것이지요. 안 그래요? 1년간 교재비내주고, 회비내주고 하는 것, 그것 얼마 된다고... 한사람 제도하는데 그것은 공짜지요.
사실은 거의 공짜지요. 불교에 관심 없는 사람을 1년간 사찰 회비 내주고해서 정말 진정한 불자가 되게 했다면, 이것은 아주 큰 소득인겁니다. 저는 늘 그렇게 권합니다. “꼭 1년간 회비내주고, 차 태워다 주고, 그렇게 공을 들여서 1년간 해서 한사람 건지면 그것은 큰 다행이다.” 그것도 어려운 겁니다. 쉽지 않은 것입니다.
答 李叅政 別紙 漢老
富樞가 頃在三衢時에 嘗有書來問道어늘
因以打葛藤一上하야 落草不少호대 尙爾滯在黙照處하니
定是遭邪師의 引入鬼窟裡無疑로다 今又得書호니 復執靜坐爲佳라
其滯泥如此어니 如何叅得徑山禪이리요 今次答渠書호대
又復縷縷葛藤하야 不惜口業하고 痛與剗除어니와
又不知肯回頭轉腦하야 於日用中에 看話頭否아
先聖이 云寧可破戒를 如須彌山이언정 不可被邪師의
熏一邪念이니 如芥子許나 在情識中하면 如油入麪하야
永不可出이라하니 此公이 是也라 如與之相見이어든
試取答渠底葛藤一觀하고 因以作箇方便하야 救取此人이어다
四攝法中에 以同事攝으로 爲最라 强左右하노라
當大啓此法門하야 令其信入이면 不唯省得山僧一半力이라
亦使渠로 信得及하야 肯離舊窟也리라
漢老(한노)라고 하는 것이 이참정 이름입니다.
富樞(부추)가 頃在三衢時(경재삼구시)에,
앞에서 말한 부추밀입니다. 부추가 지난날 삼구에 있을 때,
嘗有書 來問道(상유서래문도)어늘, 일찍이 편지를 보내와서 도를 물었는데,
因以打葛藤一上(인이타갈등일상)하야,
그로 인해서 以打葛藤一上하야, 갈등을 한 번 쳤다 이 말입니다.
잔소리를 많이 했다 이 뜻입니다.
落草不少(낙초불소)호대, 떨어진 풀이 적지 않았다.
말을 많이 했다. 말이 적지 않았다. 그 말입니다.
尙爾滯在黙照處(상이체재묵조처)하니,
그런데도 오히려 그는 黙照處에 막혀있으니
定是遭邪師(정시조사사)의, 결정코 삿된 스승의
引入鬼窟裡無疑(인입귀굴리무의)로다.
귀신 굴속에 이끌려 들어감을 만난 것이 의심이 없더라.
今又得書(금우득서)호니,
지금 또 그 사람 = 부추밀의 편지를 받으니
復執靜坐爲佳(부집정좌위가)라.
고요한데 앉아있는 것을 집착해서 아름다움을 삼음이라.
其滯泥如此(기체니여차)어니,
그 滯泥하는 것이, 막혀있고 빠져 있는 것이 이와 같으니,
如何叅得徑山禪(여하참득경산선)이리요?
어떻게 徑山禪을 참구할 수 있겠는가? 徑山禪은 대혜스님입니다.
대혜스님이 경산사에 계셨습니다. 대혜선사의 간화선을 참구하겠는가?
今次答渠書(금차답거서)호대, 이번에 그 사람에게 답한 편지에
又復縷縷葛藤(우부루루갈등)하야,
또다시 縷縷葛藤. 아주 어지럽게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앞의 편지를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不惜口業(불석구업)하고 痛與剗除(통여잔제)어니와,
口業을 아끼지 아니하고, 口業, 까짓 것 지으면 짓고, 구업 짓더라도 사람하나 바르게 인도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痛與剗除하야, 아주 심하게 깎아서 제거해주었거니와,
又不知肯回頭轉腦(우부지긍회두전뇌)하야,
또 다시 기꺼이 回頭轉腦할 줄을 알지를 못해, 좀 머리를 돌이켜서 이 간화선 쪽으로 와야 되는데, 계속 묵조선만 하고 있다 말입니다. 그러니
於日用中(어일용중)에, 일용 가운데에
看話頭否(간화두부)아? 화두를 보는가?
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것이 간화선이니까요.
先聖이 云(선성운), 선성이 말하기를, 먼저 성인이 말하기를
寧可破戒(영가파계)를 如須彌山(여수미산)이언정,
차라리 파계하기를, 수미산처럼 파계할지언정
不可被邪師(불가피사사)의 熏一邪念(훈일사념)이니,
가히 삿된 스승의 삿된 생각 훈습하는 것을 입지 아니함이니,
그렇습니다. 아~ 무서운 말이지요. 차라리 파계를 수미산처럼 한다 하더라도, 삿된 생각가지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계를 파하는 것은 금생에 끝나지만 삿된 사상이 한번 들어가면, 그 삿된 사상은 정신적인 문제기 때문에 영원히 가는 겁니다. 세세생생 삿되게 사니까 그래서 이것이 통하는 소리입니다. 안 그러면 통하는 소리가 아니지요. 하나의 삿된 생각 훈습함을 입지 아니함이니,
如芥子許(여개자허)나, 개자씨만치라도
在情識中(재정식중)하면, 우리 의식 가운데 들어 갈 것 같으면
如油入麪(여유입면)하야, 마치 기름이 밀가루 속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永不可出(영불가출)이라하니, 영원히 가히 나오지 못한다. 라고 했으니,
옛날 사람이 그런 이야기했다 이 겁니다.
此公(차공)이 是也(시야)라. 이 사람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如與之相見(여여지상견)이어든,
그 사람과 만약 더불어서 서로 보게 되거든
試取答渠底葛藤一觀(시취답거저갈등일관)하고,
그 사람에게 내가 답한, 갈등ㆍ잔소리. 잔소리를 취해서 한번 살펴보고,
因以作箇方便(인이작개방편)하야, 그로 인해서 방편을 지어서
救取此人(구취차인)이어다. 그 사람을 구제하라.
“그 사람을 좀 구제합시다.” 이 말입니다.
四攝法中(사섭법중)에 以同事攝(이동사섭)으로 爲最(위최)라.
최고로 삼는다. 말입니다.
强左右(강좌우)하노라. 굳이 左右에게 권하노니, 그대에게 권하노니
當大啓此法門(당대계차법문)하야, 크게 이 법문을 열어서
令其信入(영기신입)이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믿어 들어가게만 한다면
不唯省得山僧一半力(불유생득산승일반력)이라.
오직 이 산승의 한 반의 힘을 덜게 할 뿐만 아니라,
省 : 살필 성ㆍ덜 생. 여기는 생이라고 했네요.
“내 반 힘을 덜게 할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이 합작해서 한사람을 제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내 반 힘을 덜게 할 뿐만 아니라,”
亦使渠(역사거)로, 또한 그 사람으로 하여금
信得及(신득급)하야, 믿음이 미쳐서.
믿게 되어서, 이 말입니다. 믿게 되어서
肯離舊窟也(긍리구굴야)리라. 기꺼이 옛 굴택에서,
옛 굴에서 = 舊窟. 舊窟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 말입니다. 이것은 [이참정 별지]는 순전히 부추밀을 위해서, 이참정. 옆에 사는 사람에게 “이 사람 제도하는데 같이 합작을 해서 이 사람 제도합시다.”하는 그런 권고의 편지였습니다. 참 이 만치 대혜스님은 중생구제에 자기의 어떤 선법으로써 중생을 구제하는데 이렇게 공을 들이고, 간절한 그런 심정으로 애를 썼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첫 시간, 여기까지 공부 하겠습니다.
첫댓글 삼보에 귀의합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