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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귀 턱뼈 같은 인생 삿15:14-17
여러분, 혹시 이 책을
읽어 보셨을까요? “목적이 이끄는
삶’ 이 책은 새들백 교회를 섬기는 릭 워렌 목사님이 쓴 책으로2003년도에
처음 발행된 뒤 지금까지 전 세계 50여개 언어로 출간하여 3천만부
이상 판매되었고, 우리나라도 100만부이상 판매된 베스트
셀러입니다.
이 책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이런 타이틀이 나옵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인가?”
이 제목은 누구나 한번은 고민하고 생각해봤던 주제입니다.
저는 이 제목을 이렇게 바꾸어 보았습니다.
“나는 00교회에 왜 존재하는가? 나는 00교회에 어떤 존재인가?”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저의 삶의 태도와 자세,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보면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부터 우리를 마음에 품으시고, 당신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계획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다섯가지 인생의 목적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다섯가지 목적 중
첫번째 목적이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두번째 목적은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세번째 목적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네번째 목적은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 받았다.
다섯번째 목적은 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 받았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우리 인생의 첫 번째 목적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여기서 계획이란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여 기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주기도에서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요즘 저의 기도제목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저희 교회에서도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을 다른 말로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비전에 따라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비전의 책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책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특히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신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찾아 갔습니다. 이 세상의 죄가 극에 달하자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것을 근심하시며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결정했습니다. “노아야 나를 위해 방주를 만들지 않겠니? 내가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리라” 노아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응답했습니다. 그래서 방주를 짖기 시작했습니다.
방주를 지을 때 사람들이 조롱하고, 정신 이상자라고 놀렸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방주 짖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10, 20년 그렇게 100년이 지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안에 하나님의 비전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가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찾아갔습니다. ‘내가 너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라” 모세는 그의 나이 80세.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에서 삶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비전을 받고, 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짚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비전이 있는 사람이 곧 사명자입니다. 사명자는 내 마음대로 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한 사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피곤해도 비전을 생각하는 사람은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달려가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날마다 새 힘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마다 이 부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삼손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아침 여러분과 함께 삼손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삼손 그 사람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임을 깨닫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이 무엇인지 깨닫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삿13:5절 “….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삼손이 태어난 것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리라” 이것이 바로 삼손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었고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여기서 ‘나실인’란 ‘네지르’ 즉 구별하다, 바치다, 신성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로 특별히 서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삼손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도무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나실인으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삼손은 끊임없이 자기 욕망에 사로잡혔고, 자기 혈기에 따라 살아갑니다. 성적인 유혹 앞에 쉽게 넘어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삼손은 결국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도 블레셋이라는 한 여자 때문에 블레셋 사람에게 체포되어 끌려가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 동안 골치 아팠던 삼손을 죽이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그 순간에 갑자기 삼손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삼손을 묶고 있던 줄이 끊어지면서 삼손은 나귀의 턱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죽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은 자신의 비전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허물과 약점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연약한 존재라도 때로는 귀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삼손이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죽일 때에 사용한 것은 나귀 턱뼈입니다. 나귀 턱뼈는 대략 25센티미터에 무게가 약 400그램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귀는 초식동물이기에 그 뼈는 그리 단단하지도 않고, 길지도 않기에 무기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나귀 턱뼈로 1000명을 죽였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능력으로는 설명될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블레셋 족속은 그 당시 철을 사용하던 민족이었습니다. 칼이나 창, 방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턱뼈를 가지고 천명을 죽였다는 것은 도무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기 나오는 나귀 턱뼈는 그 자체가 강한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특별한 하나님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삿15:14절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영은 히브리어로 “루아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을 다시 번역하면 ‘성령께서 삼손에게 능력을 주시니’ 입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의 힘으로 이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삼손의 일대기를 묵상하는 가운데 삼손의 인생에 관해 두가지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삼손 인생의 최대 축복은 그의 삶에는 늘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반대로 삼손 인생의 최대 비극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전해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향하여 큰 계획과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큰 그릇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지만, 삼손은 전혀 하나님의 그 뜻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과 정욕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블레셋 이방 여인을 사랑하다 블레셋 사람에게 결박되어 눈이 뽑히고 옥에 갇히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삼손이 조금이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풀고 계시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깨닫게 된다면 결코 헛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삼손은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육체의 소욕에 따라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이런 삼손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들어 주시고, 그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그와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삼손과 함께 하시고 떠나지 않으시고 그에게 능력을 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삿16:28절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이 구절은 삼손이 인생에 마지막 기도입니다.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해달라는 기도.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이쯤 되면 하나님은 두 번 다시 용서하지 않으시고, 당장 버리실 것입니다. 결코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을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들은 강하게 붙들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연약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삶을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능력 있는 삶. 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마 28:20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끝날 때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 임마누엘 되신 주님은 지금도 저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이 이 순간, 이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될 때에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할지라도, 그 사람이 어떤 환경이든 상관없습니다. 몸이 아파도 상관이 없습니다. 지식이 없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하기로 작정하고 하나님의 영, 성령 하나님과 함께 하실 우리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내 자신이 바로 나귀 턱뼈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지난 날 저의 삶을 돌아보면 저는 부족함과 허물투성이였습니다.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실수도 많았고, 때로는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었고, 내 개인 욕심 때문에 교회를 어렵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스스로 나는 왜 이것 밖에 안될까? 그렇게 실망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한번도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사랑해 주시고, 더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때로는 능력도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내가 잘났거나, 똑똑해서, 능력이 있어서 아니라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내 세울 만한 학벌이 없습니다. 배운 것이 별로 없고, 공부도 잘 못했습니다. 학점도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니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한 어느 날 한동대학교 청빙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서를 냈더니 역시나 서류 전형에서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고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박사 학위도 없었습니다. 지원자들 대부분 좋은 학교, 유학파, 박사 학위자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무지 한동대학교에 들어갈 자격이나 능력도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괜히 지원서를 냈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총장님과 마지막 인터뷰를 하는데 저희 학교에 지원서를 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마음으로 학생들을 지도하실 것입니까? 이렇게 묻더군요. 그때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총장님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한동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부족한 것도 많고, 실력도 학벌도 없고, 저는 자격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잘 가르칠 자신이 없습니다.” 그때 총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 됩니다. 처음부터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수하고, 좌절을 맛보고 그러면서 점점 배워가는 것입니다.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저는 은혜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쁨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제 마음속에서 많은 부담과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과연 잘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실력도 없고, 아무런 능력도 없는데 ……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01년 1월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에 들어가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중 어느 날 새벽 주님께서 한구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슥4:6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나의 힘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힘과 능력으로 사역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능력 주십시오. 지혜를 주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동대에서 12년간 성령의 힘으로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삼손의 위대함이 무엇입니까?
삿14:6절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맨 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였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삿14:19절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아스글론 사람 30명을 죽일 때도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이 삼손에게 계속해서 임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승리도 삼손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삼손을 향한 영적 비밀입니다. 삼손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님께서 끝까지 삼손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지 50일째 되는 이날은 유대 절기로 오순절입니다.
사도행전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120여명의 성도들은 한곳에 모여 열심히 기도하던 중 오순절이 되었을 때 하늘에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님이 임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모든 성도들은 다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체험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재 무장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체험한 성도들은 담대하게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외쳤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도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었고, 내 안에 성령님께서 새 힘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가장 약하고 연약한 자들입니다. 불쌍한 자들 같았지만 성령을 체험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달랐습니다. 가장 행복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럽지가 않았고, 늘 기쁨이 넘쳤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맡겨주신 사명을 기쁘게 감당했습니다.
저는 우리 00교회가 그런 교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