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미사보 꼭 써야 하나요?
왜 남자는 안 쓰는걸, 여자만 써야 하죠?
[가톨릭 교리 상식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가톨릭교회에서 미사보 착용은 의무가 아닙니다. 개별 성당에서 사목적인 목적으로 착용을 권할 수는 있겠지만, 미사보를 써야만 영성체를 할 수 있다거나 전례에 참여할 수 있다거나 하는 규정은 교회법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미사보가 원래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가 현대에도 오해 없이 유지될 수 있도록 고민해 보는 것은 필요하겠습니다. 미사보를 여성만 쓴다는 점에서, 미사보가 여권 신장의 가치와 상충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없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미사보의 시작에 ‘여성’에 국한되는 문화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구약의 레베카의 사례만 봐도 그렇죠. 남편이 될 이사악이 가까이 오자 너울을 꺼내어 얼굴을 가렸다는 이야기(창세 24,65 참조)는 미사보의 시작에 면사포와 비슷한 문화적 맥락이 있었음을 추정케 합니다.
그러나 머리를 가리거나 혹은 머리에 쓰던 것을 벗는 행위는 ‘남녀 상관없이’ 거룩함을 마주하는 경건한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모세도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자신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탈출 3,6)는 구절을 통해 이를 살펴볼 수 있지요. 엘리야도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1열왕19,13)고 합니다.
이러한 실천이 초대 교회 시대로 넘어오면서 당시의 문화적 맥락에 따라, 남성은 머리에 쓴 것을 벗고 여성은 머리를 가리는 관습으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바오로 사도께서 그렇게 요청하셨죠. 그러나 이는 남녀 간에 차이를 두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코린토1서 11장 4, 5절에 해당 말씀이 나오는데, 바로 이어지는 11절과, 12절에서 사도께서는 이 모든 실천이 하느님을 위한 것임을 명백히 밝히십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여자를 통하여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사보를 쓰는 것과 모자를 벗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온전히 하느님을 위한 실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사도의 말씀은 미사보가 당시의 그리스도교 풍습이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신앙의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닙니다.(미사보 착용의 방식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당시 유다교의 풍습을 반영한 것인데, 현재 유다교는 다시금 변화가 생겨 남성들도 머리에 키파를 씀으로써 무방비 상태에서 하느님의 보호에 온전히 의지한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우리 교회도 그러한 이유로, 20세기 들어 미사보를 더 이상 의무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여성만 쓰느냐 남성도 쓰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점은 미사에 임하는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미사보를 썼다고 하더라도 온통 분심으로 미사 시간을 다 보낸다면, 하느님 앞에 나왔음을 되새기는 미사보의 의미가 무색하겠지요. 동시에, 미사보를 거부하고 현대적 의미만 새롭게 하겠다고 하다가, 중요한 것을 놓치지는 않는지도 함께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5년 1월 26일(다해)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해외 원조 주일) 서울주보 5면, 박진수 사도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