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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만 왕(南蠻王) 맹획(孟獲)을 세 번 잡았다 놓아준 사연(事緣) 下 -
삼만(三万)에 이르는 대군(大軍)이 공명(孔明)의 본진(本陣)으로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어이된 일인가? 등불은 군영 곳곳에 휘황찬란(輝煌燦爛)하건만 촉병(蜀兵)은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맹우(孟優)와 그의 부하들만이 곤죽이 되어 쓰러져 잠만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마신 술은 보통의 술이 아니라, 정신(精神)을 잃게 하는 독주(毒酒)였던 것이다.
맹획(孟獲)은 영내(營內)에 달려들어와 술에 곯아떨어진 맹우(孟優)를 두들겨 깨웠다.
"네가 미쳤는냐? 지금이 어느 때라고 잠만 자고 있느냐!"
그러나 맹우(孟優)는 일어나 앉으면서도 정신(精神)을 못 차린다.
"아차! 너희들이 공명(孔明)의 계략(計略)에 말려들었구나!"
맹획(孟獲)은 그제서야 모든 것을 깨닫고 절치부심(切齒腐心)하였다.
그러나 그런 사정(事情)을 알 길없는 만병(蠻兵)들은 미리 명령(命令)을 받은 대로 사방(四方)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군영(軍營)은 온통 불로 휩싸이는 것이 아닌가?"
"불을 꺼라! 촉병(蜀兵)은 죄다 달아나고 영내(營內)에는 우리 군사들만 있다! 속히 불을 꺼라!" 맹획(孟獲)은 부하들을 향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바로 그때였다. 저편 어둠 속에서 일군(一軍)이 바람처럼 달려나오며,
"이놈 맹획(孟獲)아! 게 섯거라!" 하고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에그머니나!" 이때 만큼은 맹획(孟獲)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도록 놀랐다.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나타난 사람은 촉장(蜀將) 왕평(王平)이었다.
맹획(孟獲)은 기겁(氣怯)하게 놀라면서 왼편으로 달아나려니,
위연(魏延)이 군사(軍事)를 몰고 막아서며,
"이놈 맹획(孟獲)아! 네가 어디로 달아나려는 것이냐!"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맹획(孟獲)이 또 한번 질겁(窒怯)하며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달아나려고 하니,
거기서도 역시(亦是),
"맹획(孟獲)을 사로잡아라!" 하고, 소리치는데 그는 다름아닌 상산(常山) 조자룡(趙子龍)이었다.
맹획(孟獲)은 이제 독안에 든 쥐의 신세(身世)가 되었다. 그러나 그냥 앉아서 붙잡힐 맹획이 아니었다.
그는 적군(敵軍)이 있든 말든 눈을 딱 감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始作)하였다. 말에 채직을 가하며,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적의 포위망(包圍網)을 화살 처럼 빠르게? 뚫고 나와, 노수 강변(江邊)로 말을 달렸다. 이렇듯 맹획(孟獲)이 어찌나 맹렬(猛烈)히 달렸던지 따라오는 장졸(將卒)은 하나도 없었다.
맹획(孟獲)이 노수 강에 이르니 마침 강(江)에는 병선(兵船)이 한 척(隻)이 떠 있었다.
"여봐라! 어서 강(江)을 건너라! 나는 대왕(大王)이다, 적(敵)의 추격(追擊)이 맹렬(猛烈)하니 급(急)히 강을 건너라!" 맹획은 병선(兵船)에 오름과 동시(同時)에 따짜고짜 소리를 냅다 질렀다.
그런데 병선(兵船)이 금방 강(江)위로 둥실 뜨기가 무섭게, 십여 명의 장사(將士)들이 별안간(瞥眼間) 나타나 맹획에게 덤벼들어, 순식간(瞬息間)에 밧줄로 결박(結縛)을 지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앗! 너희들은?..." 맹획(孟獲)이 깜짝 놀라며 큰소리로 외치며 둘러보니, 그 군사(軍士)들은 자기 부하가 아니라 촉장(蜀將) 마대(馬岱)의 군사(軍士)들이었다.
"하하하! 어리석은 놈아! 우리가 누군 줄 알고 큰소리를 쳐댄 단 말이냐? 내가 촉장 마대(馬岱)라는 것도 모르고 있단 말이냐? 하하하하~!" 결박(結縛)진 맹획(孟獲) 앞에서 통쾌(痛快)하게 웃어대는 사람은 촉장(蜀將) 마대(馬岱)였다.
"......." 맹획(孟獲)은 원한(怨恨)의 입술을 깨물며 무겁게 눈을 감았다.
이날 밤 싸움에서 촉군(蜀軍)은 맹획(孟獲)을 사로잡는데만 열중하고 그의 부하들은 대부분 달아나 버리도록 퇴로를 열어 놓았다.
그래도 붙잡힌 맹획(孟獲)의 부하들은 수백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공명(孔明)은 그들을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그들에게 술과 고기를 주면서,
"너희들은 그동안 무리(無理)한 싸움을 하느라고 고생들 많았다. 오늘은 너희에게 술과 고기를 내릴 터이니 맘껏 먹고 마셔라.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 군사들과 싸울 생각을 말거라. 너희들 대왕 맹획(孟獲)은 이미 우리 장수(將帥)에게 사로잡혔다." 하고, 마치 친동생을 타이르는 큰형처럼 자애(慈愛)롭게 타이르는 것이었다.
잠시 후(暫時後) 공명(功名)은 맹획(孟獲)과 맹우(孟優) 형제(兄弟)를 불러내었다. 맹획(孟獲)은 마대(馬岱)가 붙잡았고, 맹우(孟優)는 조운(趙雲)이 사로잡았다.
공명(孔明)이 결박(結縛)진 맹획을 굽어보며 껄껄 걸 웃었다.
"하하하! 맹획(孟獲)아! 너를 두 번씩이나 놓아 보냈는데, 또 잡혀왔느냐?"
맹획(孟獲)이 이를 '부드득!' 하고, 갈면서 대답(對答)한다.
"나는 싸움에 져서 붙잡힌 것이 아니라, 내 아우의 실수(失手)로 붙잡힌 것이다."
"하하하하! 처녀(處女)가 아이를 배어도 핑계가 있다더니, 과연 네가 그 모양이로구나?"
"아우가 실수(失手)한 탓이니 분하기 짝이없다!"
"그렇다면 네가 마음껏 싸워서 지기 전에는 항복(降伏)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냐?"
"그렇다!"
"그러면 다시 한번 놓아 줄 테니 마음껏 싸워 보거라. 그러나 또다시 포로(捕虜)가 된다면 그때는 어떡할 것이냐?"
"....." 맹획(孟獲)은 그 소리에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려 버린다.
"이번에도 놓아 줄 것이니, 다시 돌아가서 유감(遺憾)없이 싸워 보거라. 네가 소원(所願)이라면 몇 번이라도 놓아 보내마 !"
맹획(孟獲)은 세 번째의 석방(釋放) 특전(特典)을 받고 면목(面目)없이 공명(孔明)의 앞을 물러나왔다.
그리하여 노수로 나와보니, 노수 강변(江邊)은 마대군(馬岱軍)이 이미 점령(占領)을 한 뒤라 강변(江邊)은 온통 촉기(蜀旗)로 뒤덮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맹획(孟獲)이 강을 건너 본진(本陣)으로 돌아와 보니, 그곳은 조운(趙雲)이 이미 점령(占領)하고 있으면서, 맹획이 나타나자,
"승상(丞相)께서 세 번씩이나 놓아 주셨거늘 너는 아직도 너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느냐?" 하고, 큰소리로 꾸짖는 것이었다.
맹획(孟獲)은 하는 수 없이 험한 산속에 있는 산파(山坡)라는 곳으로 피해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은 장군(將軍) 위연(魏延)이 이미 점령(占領)하고 있으면서 맹획(孟獲)이 나타나자 성문(城門) 위에서 칼을 뽑아 들고 꾸짖는 것이었다.
"맹획(孟獲)아! 너는 여기까지 빼앗겼거늘, 아직도 어리석게 싸울 생각만 한다는 말이냐?" 맹획은 어쩔 수가 없어 이번에는무작정( 無酌定) 멀고 먼 남쪽 산 속으로 도망(逃亡)쳐 가고 말았다.
촉국(蜀國) 장수(將帥)들은 공명(孔明)이 맹획(孟獲)을 세 번씩이나 붙잡았다가 놓아준 것에 대해 불평(不平)이 많았다.
"맹획(孟獲) 한 놈만 없애 버리면 전쟁(戰爭)이 끝날 판인데, 승상(丞相)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그자를 번번히 놓아주시며 전쟁을 길게 끄는 것인가?"
"누가아니래! 승상(丞相)의 처사(處事)는 암만해도 알 길이 없군!" 휘하(麾下) 장수(將帥)들의 그런 불만(不滿)을 공명(孔明)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기에 공명은 어느날 장수들을 한테 모아 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맹획(孟獲) 한 사람만 없애버리면 전쟁(戰爭)은 바로 끝날 것을 나는 알고 있소. 그러나 우리가 고국(故國)에서 수만 리 떨어진 이곳까지 원정(遠征)을 온 목적(目的)은 맹획 한 사람을 죽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眞實)로 우리 천자(天子)의 은덕(恩德)을 깨우치고 만족(蠻族) 모두가 스스로 우리를 마음으로 따르게 하는 데 있는 것이오. 다시 말하면 미개(未開)한 그들에게 왕화(王化)의 덕(德)을 베푸는데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우리의 참된 목적(目的)을 달성(達城)하기 위해서는 맹획을 살려주어서 그가 진심(眞心)으로 우리에게 항복(降伏)하도록 해야하오. 맹획은 남만(南蠻) 지역(地域) 전체(全體)를 아우르는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能力)이 있는 자요. 그러기에 그가 진심으로 항복할 때가 되기까지는 수고스럽지만 여러 장군들은 앞으로도 싸움을 더 계속(繼續)해야 한다는 말이오. 그래서 맹획을 세 번씩이나 놓아주었던 것이고, 맹획을 없애 버리고 새로운 군주(君主)를 세우기에는 맹획의 지명도(知名度)와 지도력(指導力)을 능가(凌駕)하는 새로운 남만의 군주의 자격(資格)이 있는 사람이 없었던 탓이오. 그런 점을 장군(將軍)들은 깊이 헤아려 주시오." 모든 장수(將帥)들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공명(孔明)이 맹획(孟獲)을 세 번씩이나 살려보낸 깊은 연유(緣由)를 깨닫고 제각기 감탄(感歎)해 마지않았다.
이런 뒤에도 맹획(孟獲)은 전열을 정비하여 공명(孔明)에 대항(對抗)하여 싸웠으나, 번번히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로잡힌 맹획의 핑계가 뻔뻔하여 도무지 감화(感化)가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명(孔明)은 번번히 맹획을 놓아주었다.
그러나 불굴(不屈)의 의지(意志)인가? 무식(無識)한 것인가? 맹획(孟獲)은 그때마다 다시 남만(南蠻)의 지역(地域) 추장(酋長)들의 지원(支援)을 설득(說得)하여 다시 군사를 일으켜서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공명(孔明)의 적수는 아니었다.
번번히 공명의 계략(計略)에 말려들어 패하였고, 용케도 그때마다 맹획(孟獲)은 죽지 않고 사로잡혔다.
마지막으로 맹획(孟獲)이 잡혀왔을 때, 공명(孔明)은 결박(結縛)을 지운 그를 끌어 내어 평소(平素)와 다르게 크게 호통을 치며 꾸짖었다.
"너는 도대체 몇 번을 붙잡혀야 네 잘못을 깨닫겠느냐!... 여봐라! 저놈의 얼굴은 두번 다시 보기도 싫으니 영문(營門)밖으로 끌어내어 쫓아보내라!"
그러자 맹획(孟獲)이 돌연 큰소리로 외친다.
"승상(丞相)! 제 말씀을 한 마디 들어주소서!"
"네가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맹획(孟獲)이 머리를 조아라며, 눈물을 흘린다.
"승상(丞相)! 제가 죽일놈이었습니다. 자고(自古)로 일곱 번 사로잡혀서 일곱 번 용서받은 일은 역사상(歷史上) 없었던 일이니, 제가 아무리 불학무식(不學無識) 하기로 승상(丞相)의 은공(恩功)으로 어찌 모르겠습니까, 승상(丞相)은 이 미련한 맹획(孟獲)을 용서(容恕)하소서!"
【글 중간에 잠깐! 부제(副題)를 왜? "세 번 잡았다 놓아준"이라 했는지...?
말 보기 링크 https://cafe.daum.net/wpdlfgktkrhks/Ebxb/3971 】
공명(孔明)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지금 그 말은 진심(眞心)으로 항복(降伏)하겠다는 뜻이냐?"
"그러다마다요.! 이젠 이심(貳心없이 승상(丞相)과 천자(天子)의 명(名)에 절대(絶對) 복종(服從)하오리다! 심복(心服) 하오리다!..."
맹획(孟獲)은 그렇게 말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니, 함께 붙잡혔던 그의 처(妻)와 처남(妻男)을 비롯한 맹우(孟優)도 한결같이 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공명(孔明)도 그런 모습에 탄복(歎服)해 마지 않았다.
"그대들이 진심(眞心)으로 우리와 화합(和合)한다면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리오. 그러면 내 이제 공(公)을 남만왕(南蠻王)에 봉(封)하고, 빼앗은 땅도 모두 돌려줄 터이니 그대는 백성(百姓)을 사랑하며 왕화(王化)의 덕(德)이 만천하(滿天下)에 미치도록하오!"
맹획(孟獲)은 관대(寬大)한 처분(處分)을 받자, 또다시 감격(感激)해 하며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소리 내어 울었다.
그리하여 공명(孔明)이 추구(追求)하던 남만(南蠻) 땅에서의 왕화(王化)의 대업(大業)은 드디어 완수(完遂)되었다.
맹획(孟獲)이 공명(孔明) 앞을 물러나가자, 장사(長史) 비위(費褘)가 공명(孔明)에게 간(諫)한다.
"승상(丞相)께서 수만 리 떨어진 남만(南蠻)으로 친(親)히 군사(軍事)를 거느리고 오시어 평정(平定)하고 가시면서 이제 감독관(監督官) 한 사람도 남겨두지 아니하고 모든 권력(勸力)을 맹획(孟獲)에게 맡겨버리고 귀국(歸國)길에 오르신다면 후일 맹획이 후환(後患)을 일으킬까 염려(念慮)되옵니다. 하오니 관리 몇 사람을 남겨 두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공명(孔明)이 그 소리를 듣고 머리를 흔들며 대답한다.
"나도 그 점을 생각지 않은 것은 아니오. 그러나 우리가 감독관을 남겨 두면 새로운 폐단(弊端)이 생기오. 첫째는 감독관(監督官)이 오히려 왕화(王化)의 덕(德)을 등에 지고 권세(權勢)를 부리려 할 것이고, 둘째는 그로 인해 남만(南蠻)에는 감독관(監督官)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勢力)을 형성(形成)하는 무리(無理)가 생기게 되오. 셋째는 외인(外人)이 머무르면서 만인간(萬人間)에 당파(黨派)가 생겨서 인화(人和)를 도모(圖謀)하기 어려운 폐단(弊端)이 생길 것이오. 그러니 지금까지 만왕 맹획(孟獲)을 중심으로 잘 살아왔듯이 그들끼리 화합(和合)하며 살도록 놔두는 것이 가장 이상적(理想的)이라 할 것이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한결같이 감탄(感歎)하였다.
더구나 만인(蠻人)들은 공명(孔明)의 자비(慈悲)에 감탄(感歎)하여 모두들 그를 <자부(慈父) 승상(丞相)> 또는 <대부(大父) 공명(孔明)>이라는 존칭(尊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공명(孔明)이 곧 본국(本國)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은 저마다 남만(南蠻) 특유(特有)의 진귀(珍貴)한 구슬인 진주(眞珠)와 칠보(七寶), 약재(藥材) 등을 선물(膳物)을 가지고 왔다. 뿐만 아니라 공명(孔明)을 위해 사당(祠堂)을 짓고 그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 마다 네 차례씩 제사(祭祀)까지 지내기로 결정(決定)하였다.
공명(孔明)은 논공행상(論功行賞)이 끝나자, 곧 본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모두가 이역만리(異域萬里)에서 오랫동안 전쟁(戰爭)에 시달린 장병(將兵)이었다. 이들은 이제 왕화(王化)의 대업(大業)을 완수(完遂)하고 본국(本國)으로 귀환(歸還)하려 하니, 이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충만(充滿)하였다.
위연(魏延)을 선봉(先鋒)으로 좌군(左軍), 우군(右軍)이 공명(孔明)의 사륜거(四輪車)를 호위(護衛)하며 촉국(蜀國)을 바라고 남만(南蠻)을 떠나는데, 개선군(凱旋軍)의 기쁨과 위용(威容)은 말로써 이루 형용(形容)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게다가 맹획(孟獲)을 비롯한 남만(南蠻)의 모든 장수(將帥)들과 지역(地域)의 추장(酋長)들이 휘하(麾下)의 만졸(蠻卒)을 거느리고 석별(惜別)을 아쉬워 하며 전송(餞送)을 나오니, 일행(一行)의 행렬(行列)은 꼬리를 찾아 보기가 어렵도록 길고 화려(華麗)하였다.
일행이 노수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때까지 청명(淸明)하던 날씨가 홀연 일진광풍(一陳狂風)이 몰아치며 강물이 넘실대며 여간 스산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공명(孔明이 맹획(孟獲)에게 물었다.
"물결이 금시(今時)로 심해지니 이 어인 일인고?"
맹획(孟獲)이 말에서 내려 강(江)을 가르키며 대답한다.
"이 강(江)에는 워낙 원혼(冤魂)에 서린 귀신(鬼神)이 있어서 누구나 이 강(江)을 건널 때에는 제사(祭祀)를 지내야 합니다."
"무슨 물건(物件)으로 제사(祭祀)를 지낸단 말이오?"
"인두(人頭) 사십구(四十九)와, 흑우(黑牛), 백양(白羊)으로 제사를 지내야만 물결이 잔잔해지옵니다." 요컨데 사람 사십구 명의 머리와 물소, 백양을 통째로 잡아서 제사(祭祀)를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명(孔明)은 그 소리를 듣고, 안색이 매우 언짢았다.
"살아 있는 우리가 강(江)을 건너기 위해서 귀중(歸重)한 생명(生命)을 희생(犧牲)시켜서야 되겠소."
그러자 옆에서 듣고있던 토착민(土着民)인 고로(古老 : 노인)이 말한다.
"승상(丞相)께서 이곳을 지나가신 이후(以後)로 밤마다 귀신의 울음소리가 낭자(狼藉)하고 물결이 사나워져 지금은 아무도 이 강(江)을 건너지 못하옵니다."
공명(孔明)이 그 소리를 듣고 개탄(慨歎)한다.
"오오, 모두가 나의 죄(罪)로다. 전자(前者)에 마대(馬岱)가 이곳을 지나면서 많은 만병(蠻兵)을 죽였으니, 귀신(鬼神)인들 어찌 원한(怨恨)이 없겠는가? 그러니 내 오늘 몸소 물가에서 제사(祭祀)를 지내로리로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제사(祭祀)를 지낼 때는 인두(人頭) 사십구(四十九)를 반드시 바쳐야 하옵니다."
그러나 공명(孔明)은 고로(古老)를 조용히 꾸짖는다.
"귀신(鬼神)을 위로(慰勞)하고자 어찌 또다른 원귀(冤鬼)를 만드리오? 내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모든 것을 내게 맡기라."
그리고 공명(孔明)은 요리사(料理師)를 불러 밀가루 반죽에 소고기와 양고기를 넣어 사람의 머리 형상(形象)으로 마흔아홉 개를 빗도록 하여 사람을 대신(代身)하게 하였다. 그때 밀가루를 빗어 만든 인두(人頭)를 만두라고 불렀는데,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만두(饅頭)란 말은 이때에 생겨난 것이었다.
어쨋든 공명(孔明)이 이른 대로 만두(饅頭)를 위시(爲始)로 많은 제물(祭物)을 차려 놓고, 공명(孔明)이 직접 제주(祭主)가 되어 몸소 제사(祭祀)를 지내는데, 그가 읽은 제문(祭文)은 다음과 같았다.
<대한 건흥(大漢 建興) 삼년 구월에 무향후 제갈량(諸葛亮)은 제물(祭物)을 갖추고, 노수에서 왕사(王事)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된 촉군(蜀軍)과 무고(無故)한 남만(南蠻) 사람들의 원혼(冤魂)을 위로(慰勞)하는 제사(祭祀)를 지내오. 이제 남만(南蠻)의 백성(百姓)들은 황제(皇帝)의 홍은(鴻恩)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충심(忠心)으로 제왕(帝王)을 섬기며 살아가기로 약조(約條)한바, 우리는 평화(平和)의 뜻을 널리 펴고 본국(本國)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그대들은 슬기로운 영혼(靈魂)으로 우리가 가는 길을 방해(妨害)하지 말고, 기꺼운 마음으로 제사(祭祀)를 받은 뒤에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들어가 영원(永遠)한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오. 이에 정성(精誠)을 다해 고혼(孤魂)을 위로(慰勞)하나니, 이역(異域)의 혼령(魂靈)들이어! 기쁜 마음으로 이 제사(祭祀)를 받아주소서.>
공명(孔明)이 제문(祭文)을 낭독(朗讀)하고 끝내 눈물을 보이며 통곡(痛哭)하기에 이르니, 맹획(孟獲)의 무리도 또한 따라 울기를 마다치 않았다. 공명이 제사(祭祀)를 끝내고 제상(祭床)의 제물(祭物)을 조금씩 떼어, 반봉을 만들어 강물에 뿌리니, 이게 무슨 기적(奇跡같은 일인가? 여태까지 거칠게 출렁이던 물결이 잠잠해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촉군(蜀軍)은 남만욍(南蠻王) 맹획(孟獲)의 전송(餞送)을 뒤로하고 아무런 사고(事故)도 없이 강(江)을 무사(無事)히 건너게 되었다.
공명(孔明)은 노수를 건너 영창성(永昌城)에 당도(當到)하자 왕항(王伉)과 여개(呂凱)를 그곳에 머무르게하여 사군(四郡)을 선정(善政)으로 다스리도록 당부(當付)한 뒤, 성도(成都)를 향하여 먼 여정(旅程)에 올랐다.
[※ 전편에 등장했던 태수(太守) 왕항(王伉)은 영창성(永昌城) 성주(城主)이고, 여개(呂凱)는 남방(南方)의 지세(地勢)를 그린 지도(地圖)를 건네준 그지역의 현사(顯士)]
공명(孔明)이 군사(軍事)를 거느리고 여러 날에 걸쳐, 성도(成都)로 돌아오니 장안(長安 : 수도)의 백성들이 저마다 제갈(諸葛) 승상(丞相)의 개선(凱旋) 만세(萬歲)를 외치며 거리로 달려나와 천지(天地)가 진동(振動)하는 만세(萬歲)를 불러제쳤다.
뿐만 아니라 천자 유선(天子 劉禪)도 봉련(鳳輦 : 꼭대기에 황금 봉황을 장식한 임금이 타는 가마)을 타고 멀리 삼십 리 밖까지 영접(迎接)을 나왔다.
공명(孔明)은 후주(後主)의 봉련(鳳輦 : 연(輦)이 보이자 수레에서 내려 땅에 엎디어 아뢴다.
"신(臣)의 남방(南方) 평정(平定)이 너무 더디어, 주상(主上)의 심려(心慮)를 오랬동안 번거롭게 하였습니다. 용서(容恕)하소서."
후주(後主)는 얼른 난간에서 뛰어내려 땅에 엎드린 공명(孔明)을 몸소 붙들어 일으키며,
"상부(尙父)께서 대업(大業)을 이루시고 이처럼 무사(無事)히 돌아오셨으니, 천하에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있겠습니까. 원로(遠路)에 고단하신 몸, 어서 수레에 오르십시오." 하고, 천자(天子)의 수레에 함께 타기를 권(勸하였다.
이윽고 후주(後主)와 공명(孔明)을 실은 봉련(鳳輦)이 성도(成都)의 정문인 화양문(華陽門) 안으로 들어오니, 만백성(萬百姓)들이 거리 거리로 몰려나와 만세를 외치고 궁성(宮城)의 모든 누각(樓閣)에서는 삼현 육각(三絃六角)의 음악(音樂)이 일시에 울려퍼져, 천지에는 환희(歡喜)와 화락(和樂)의 기운(氣運)이 충천(衝天)하였다.
일행이 궁중(宮中)으로 들어오자 이내 태평(太平) 연회(宴會)가 시작되어 황제(皇帝)와 모든 신하(臣下)들이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뒤이어 공명(孔明)은 생사고락(生死苦樂)을 같이해 온 장수(將帥)와 병사(兵士)들에게 골고루 상(賞)을 베푸니 나라의 기쁨이 더할 나위 없었다. 더구나 만백성들이 한결같이 감격(感激)해 마지않았던 점은, 연회(宴會)가 끝나자 공명(孔明)은 남만(南蠻)에서 전사(戰死)한 장병(將兵)의 유가족(遺家族)에게 일일이 사람을 보내 조문(弔問)과 함께 위문품(慰問品)을 전달케 하였고, 그들의 생활(生活)까지 길이 도와주기를 약속(約束)하였으니, 이것은 후일 보훈 정책(報勳 政策)의 효시(嚆矢)가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삼국지 - 349회로 계속~
[남만(南蠻의 뜻 → 남쪽의 오랑캐) 지역은 어디를 말하는지 궁굼해서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남만(南蠻)은 중국의 역대 왕조가 남방 민족을 멸시하여 일컫던 이름이고, 중화사상(中華思想 : 중국이 세상의 중심)에 빠져 있던 중국은 주위에 있는 사방(四方)의 사이(四夷) 민족을 만족(蠻族 : 오랑캐족)으로 불렀는데, 북방 민족은 북적(北狄), 서방 민족은 서융(西戎), 남방의 민족 남만(南蠻), 동방 민족은 동이(東夷)라 하였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동쪽에 있으니 동이국에 해당된다. 동이(東夷)는 현재 중국 만주의 길림성(吉林省), 흑룡강성(黑龍江省), 한국, 일본, 등이라 해도 정답일 수도...
마찬가지로 중국 남방의 지금의 운남성 또는1800여 년 전 시대적 배경과 제갈량(諸葛亮)이 말하기를 남만(南蠻)의 미개(未開)한 그들이란 표현을 볼 때 중국 땅과 연결된 동남아시아 즉 현재의 베트남(월남越南), 라오스 , 타이 : 태국(泰國) 등 북부 지역? 또는 이보다 더 광범위한 지역?... 다만 맹획(孟獲)이라는 자의 남만국(南蠻國)은 현재 중국의 운남성(雲南省)이라는 설(說)이 있지만, 기타 중국의 사료에 나오는 남만국(南蠻國)은 현재의 베트남 일대를 지칭하고 있다. 이보다 앞선 < 전에 연재한 초한지에도 내용이...> 때의 진나라 시황제는 영생불로초를 찾아 동쪽바다 건너의 나라 해동국 조선(海東國 朝鮮) 땅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해동국을 이후에는 동이(東夷 : 뜻을 보자면 동쪽 오랑캐 또는 동방(東方)의 야만인이라고 쓰여 있음), 이노무의 되놈 스키, 짱궈이 스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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