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The Heaven Sword and Dragon Saber)

신조협려로부터 100여년 후대의 이야기로, 원나라-명나라 교체기를 다룬다. 신조협려나 사조영웅전의 세계관과 이어지지만 줄거리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 두 작품은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겹치고 스토리상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의천도룡기는 시대가 지난 만큼 전작 등장인물들은 직접 등장하지 않고 전작 주인공들의 행적이 본작의 사건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식이다. 신조협려 마지막에 나오던 듣보잡 동자승이 의천도룡기에서는 최강자가 되어 있긴 하며, 가끔씩 전작들에서 나왔던 사람들의 후예를 보면 반가워진다.
아울러 원나라 말기이기 때문에 몽골는 물론이고, 작품 내 활약하는 주요 조직인 명교로 인해서 페르시아까지 개입하면서 사조삼부곡 가운데서 가장 이국적인 색채가 강하고, 스케일도 굉장히 크다. 전체적으로 중동적인 요소가 작품 큰 줄기에 많이 반영되어 있는 꽤 이색적인 작품.
장취산과 은소소의 아들인 장무기를 주인공으로 그의 유년 시절과 명교의 교주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이 장무기라는 주인공은 사조 삼부작의 다른 두 주인공과 달리 심히 우유부단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신이 진정으로 뭔가를 원해서 그것을 이루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1997년 고려원 판 작가후기에 보면, 김용은 장무기라는 주인공을 통해 한 인간이 무예가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장무기의 우유부단함은 여성 문제에 극에 달해 그만큼 안티도 많지만 장무기라는 캐릭터는 김용 작품의 주인공을 통틀어 손꼽을 수 있는 선량하고 순박한 주인공이고, 그런 순수한 캐릭터가 이리저리 휘둘린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
'의천도룡기'라는 제목은 작품 속에서 천하무적의 병기로 알려진 의천검과 도룡도로부터 유래했다. 장삼봉의 제자 유대암이 도룡도에 얽힌 사건에 말려드는 것이 이 소설의 발단이 된다. 이 두 무기를 모두 얻으면 무림지존이 될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지라 작중에 등장하는 많은 무림인들이 의천검과 도룡도에 열을 올린다. 실제로 두 무기로부터 비롯된 온갖 사건들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그리고 중반부에 의천검과 도룡도는 곽정, 황용이 양과에게 받은 현철중검과 서방의 강철들을 이용해서 만든 것임이 언급된다. 몽골의 힘이 강대해지며 훗날을 도모하고자 의천검과 도룡도에 각각 무공비급인 구음진경, 항룡십팔장과 병법서인 무목유서를 넣어둔 것.
김용의 작품 중에서 실제 역사와 가장 거리가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장무기는 사실상 원나라를 멸망시킨 주역으로등장한다. 이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말미에 주원장에게 속아 정권을 빼앗기는 부분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이 부분은 개정판에서 욕심 없이 물러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무협으로서의 묘사가 자체는 전작인 사조영웅전이나 신조협려와 비교해서 상당히 이질적이고, 장무기나 장삼봉 이외에는 천하오절이나 곽정, 양과, 금륜법왕 등에 필적할 만한 고수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세 작품의 최후반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며 주인공의 영웅화를 유도하는 '몽고병 격퇴'
장면에 있어서도 웅장한 스케일과 넘쳐흐르는 긴박감을 자랑하는 신조협려나 칭기즈 칸과의 재회를 통해 감동을 자아내는 사조영웅전에 비해 포스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장무기의 찌질한 애정행각 덕분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되지만 반대로 주조연과 정사를 불문하고 세세하게 그려진 인물들간의 정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김용의 작품인 만큼 재미는 상당하며, 정사의 대립과 문파 상호간의 각축 위주의 구성은 두 전작과는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특히 남녀간의 애정 묘사씬이 아주 훌륭하여 '역시 신필은 야설도 꼴리게 잘 쓴다.'는 평가를 듣는다(...) 다만 직접적인 정사 묘사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쳇
또한 이전까지의 나름대로 독특하긴 하지만 고전적이던 연애 노선이 비해, 이 후의 작품부터 본격 하렘/속성별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물론 그 끝은 녹정기의 7인 하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는 사조삼부작 중 백미라는 평을 받고 인기도 가장 많다. 다소 밋밋한 사조영웅전이나, 주인공은 물론 사건들 모두 자극적인 신조협려와 달리 유대암, 장취산이 등장하는 초반부나 주인공 장무기의 유년 시절의 고생, 이후 명교의 교주가 되고 주변인들에게 끊임없이 휘둘리는(...) 청년기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는 인간관계에 대한 묘사는 여지없는 신필의 솜씨이다. 또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주제는 '부모애'로 사조영웅전의 '영웅이란 무엇인가' 신조협려의 '남녀의 사랑'과 대비되어 진중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사손의 장무기에 대한 애착이나 장삼봉의 제자 사랑 등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의 애정과 고뇌가 김용의 저서 중에도 가장 잘 묘사되었다.
하나 특기할 만한 사실로, 김용은 자기가 쓴 작품들을 10년마다 한번씩 결말이나 전개를 고치기로 유명해 악명아닌 악명(?)을 떨치는데, 의천도룡기를 쓸 때마다 한참을 고민하는것이 '장무기 세컨드로 누굴 넣어줄까?'라고 한다. 일단 조민은 본처 확정이고. 그 다음을 누구로 하느냐를 고민하는 것 같은데. 심지어 애들 다 데리고 페르시아로 날라버리는 결말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확실하지 않음. 그러나 중간에 페르시아로 날아가버린 '성녀'가 돌아가지 않는 걸로 고칠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하다.)
다만 비교적 최근의 개정판(2004년판)에 따르면 세컨드 없이 걍 조민 온리루트로 몽고로 간 다음 애 낳아서 잘 먹고 잘 살았다. (장무기 항목 참고.) 하렘의 꿈은 안드로메다로...
그렇지만 장무기가 마지막에 애정사에 해탈했는지 몰라도 그녀들이 어떻게 되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망상생각하는 모습이 있어서 결국 알 수 없다. 소소가 서역의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오는 거라든가. 은리가 제정신을 챙기는 거라든가.
구파일방과 마교의 대립, 하렘물, 기연등 소오강호와 의천도룡기는 한국형 무협세계관의 기본 베이스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비판
• 맨발을 만지는 것이 '간접적인 검열삭제'라는 의미라고 해도, 칠충칠화고의 약방문이 담긴 진주장식과 흑옥단속고가 든 금합을 미리 내주는 조민은 애초에 취향이 독특하다고 봐야 할 듯. 이 시점에서는 음욕을 뺀다면 굳이 장무기가 요청하기도 전에 건네준 의도를 알기 어렵다. 칠충칠화고를 준비해두었다가 장무기가 아이, 아삼을 골절시키자 칠충칠화고를 바르고 장무기가 훔쳐가도록 수를 쓴다. 장무기로 하여금 빚을 지게 만들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게 만드려는 철저하게 계산된 책략이라고 해석할 수는 있으나 작가는 아무런 말이 없다. 다만 사손의 복수가 끝나고 영사도의 흉수가 주지약이란 것을 확인한 후, 장무기와 조민이 발애무를 즐기는 걸로 때운다. 조민의 성감대가 발이었나 보다.
• 사조영웅전이나 신조협려도 그랬지만, 의천도룡기는 줄거리를 전개하고 나서 수습하기를 반복한다. 3인칭 전지적 작가가 보는 관점에서 나중에 장황하게 늘어놓는 상황 설명은 불편하다. 신문 연재용이었음을 감안해도 '숨겼다가 알려준다.'는 드라마식 전개 반복하는 김용의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있다. 애초에 전개를 한 이후에 알려주더라도 등장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반지의 제왕에 비하면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4.1. 영화
이연걸이 주연한 영화도 있는데... 광명정 전투와 무당산의 대결 이후 1부 완결로 끊어져버렸다. 이후로 제작비가 부족해서(...) 2부가 안 만들어지고 있다. 웃긴 건 잊혀질만하면 케이블 채널에 틀어주는데 끊기는 부분에 자막으로 현재 2부가 홍콩에서 촬영 중이네 뭐네 나오기 때문에 낚이지 말자. 참고로 배우 구숙정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나온 영화라서, 구숙정의 팬들은 대부분 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천도룡기(영화) 항목 참조.
다른 또 한편의 영화 태극권 역시 이연걸이 주연. 장삼봉이 소림사에서 파문당하고 무당파를 세우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은 시대도 다르고 엄청난 각색을 거쳤기 때문에 의천도룡기와 같은 갈래로 봐 주기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4.2. 드라마
드라마 중에는 1986년 양조위 출연판을 거의 대부분 팬들이 '더 말이 필요한지?' 하며 본좌 취급을 해준다. 그 다음 작품들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라진다. 판단은 알아서. 86년도 오프닝 곡인 '검반수재'는 영화 동방불패의 오프닝인 '창해일성소'와 함께 무협팬들에게 인정받는 명곡이다.
4.3. 게임판
올드 게이머들에게는 동명의 게임과, 그 외전이 유명하다. 의천도룡기는 DOS판으로 발매되었고, 원작을 제법 각색, 축약하여 원작을 아는 독자에게는 약간 생뚱맞을 수 있지만 그런대로 할 만하다. 효과음이 없고, 오로지 맞을 때와 죽을 때의 강렬한 비명 소리가 무척 인상적이다. 풍운삼사와 마귀파, 성곤과의 대결은 이걸 에디트 없이 깨라고 만들었나 욕이 나올 정도로 어렵다. 각종 미로와 함정이 나오지만 별다른 단서가 없어 그냥 몸으로 뚫어야 하는 전형적인 90년대 게임이다.
의천도룡기 외전은 지관의 고전게임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작. 정식 명칭은 김용군협전. 이름은 의천도룡기 외전이지만 김용 소설의 전체를 아우르는 작품으로 많은 MOD가 있고 지금도 카페가 돌아가는 작품이다.
직접적인 미디어믹스화는 아니지만, 2000년대에 발매된 악튜러스는 곳곳에서 이 작품을 패러디했다. 성화령, 오성왕, 성녀 등등.. 의천도룡기 독자들이라면 흥미를 가질 만한 요소가 많다.
한국에는 들여오지 않아서 잘 알려지진 않은 게임도 상당히 많은 듯하다. 스마트폰 게임만 확인된 것이 2작품이나 있으며,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RPG도 1 작품 있는듯.
최근에 등장한 카카오 게임및 원스토어에서 서비스 하는 의천도룡기 스마트폰 게임도 있다.
풍운으로 유명한 마영성이 그린 만화가 있다. 국내에 번역발매도 되었다. 그런데 안 그래도 괴수인 장무기를 아주 우주괴수로 그려 놓았다(...) 그래도 김용과 마영성인 만큼 재미는 확실. 초반부 장취산의 활약과 장무기의 시련 등을 원작보다 훨씬 짧게 그려놓아 장무기의 성장 후 시기에 집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