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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飮食男女)
남자와 여자를 먹고 마신다는 뜻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먹고사는 인생을 또는 음식과 남녀 간의 애정이 주된 소재라는 의미를 일컫는다.
飮 : 마실 음(飠/4)
食 : 밥 식(食/0)
男 : 사내 남(田/2)
女 : 여자 녀(女/0)
출전 : 예기(禮記) 예운편(禮運篇)
이 성어는 예기(禮記) 예운편(禮運篇)에 나오는 말로,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다.
飲食男女, 人之大欲存焉,
死亡貧苦, 人之大惡存焉.
식욕(음식)과 성욕(남녀관계)은 사람이 바라는 큰 욕심이 이고, 죽음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故欲惡者, 心之大端也.
따라서 바라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마음의 큰 단서이다.
人藏其心, 不可測度也.
사람이 그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속에 감추고 있어서 헤아릴 수 없다.
美惡皆在其心, 不見其色也.
아름다운 것도 악한 것도 그 마음속에 있어, 그 색깔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欲一以窮之, 舍禮何以哉?
하나하나 궁구하려면 예를 버리고 무엇으로 하겠는가?
(禮記/禮運)
음식과 남녀관계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으로 통제하기가 극히 힘들어, 잘 다루어야 성공할 수 있다.
음식남녀(飮食男女)
음식과 남녀관계, 식욕과 성욕
마시고 먹는 음식(飮食)과 남자와 여자 남녀(男女)를 합친 이 말은 성어로 보다 제법 오래됐어도 영화로 더 친숙할 듯하다. 대만 출신의 감독 이안(李安)이 미국 할리우드로 건너가 연출한 영화는 제명도 그대로 번역한 'Eat Drink Man Woman'이었다.
1995년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던 이 영화는 중국 전통 요리사 출신의 아버지와 장성한 세 딸과의 결혼관, 가족관 등 세대 간의 갈등을 다뤄 화제를 모았다.
같은 이름의 드라마가 나오고, 유명 맛집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친숙한 이름의 이 성어가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는 말이라 하니 의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오욕(五慾)은 재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의 다섯 가지다.
이 중 재물과 명예에 대한 욕심은 다른 것이 이뤄진 연후에 따르는데 비해 수면과 함께 마시고 먹는 식욕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것이고, 남녀 간의 본능인 색욕은 종족 보존을 위한 근원적인 욕망이다.
식욕을 말하는 음식과 색욕의 근원인 남녀를 합친 이 성어가 인간의 본성을 뜻한 것은 아주 오래된 '예기(禮記)'에서 비롯됐다.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는 예의 근본정신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다뤄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이 사서(四書)로 독립되기 전에는 여기에 포함됐다.
모두 49편 중 제도와 관례의 변화를 언급한 예운(禮運)편에 공자(孔子)가 한 말로 나온다. 인간에겐 희(喜), 노(怒), 애(愛),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의 칠정(七情)이 있다면서 이어진다.
飲食男女, 人之大欲存焉.
死亡貧苦, 人之大惡存焉.
음식과 남녀의 관계에는 사람이면 누구나 크게 탐하고, 죽음과 고난은 누구나 크게 싫어한다
맹자(孟子)에도 '식욕과 색욕이 인간의 본성이다(食色性也)'란 말이 실려 있다. 인간의 본성이라고 모두 본능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면 난장판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힘이 있다고 재물이 많다고 욕심대로 살아가려다 끊임없는 싸움이 일어난다. 짐승과 다른 것이 인간은 절제를 안다는 것이다. 절제를 잘 하는 자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본을 무시하고 욕심이 더 큰 욕심을 불러 결말이 비참해지는 것을 수시로 본다. 모든 방면에 본보기가 돼야 할 지도층에서 추문이 잊을만하면 잇따르니 더 문제다.
음식남녀(飮食男女)
음식과 남자와 여자로, 음식은 식욕을 말하고 남녀는 성욕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말한다.
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
음식과 남녀에는 사람이 크게 탐내는 바가 그 안에 존재한다.
死亡貧苦, 人之大惡存焉.
죽음과 빈고(貧苦)에는 사람이 크게 싫어하는 바가 그 안에 존재한다.
故欲惡者, 心之大端也.
그러므로 하고자 하는 바와 싫어하는 바는 마음의 큰 실마리이다.
人藏其心, 不可測度也.
사람이 그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 헤아릴 수가 없고,
美惡皆在其心, 不見其色也.
아름다움과 악함이 모두 그 마음에 있으니 그 얼굴의 표정에 나타나지 않는다.
欲一而窮之, 舍禮何以哉.
일일이 살펴 알려 한다면 예가 아니면 무엇으로 하겠는가?
이 이야기는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나오는 공자의 말로, 여기에서 유래하여 '음식남녀'는 식욕과 성욕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식색성야(食色性也)'가 있는데 이는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자(告子)가 말했다. "식욕과 색욕이 인간의 본성이다. 인(仁)은 내재하고 있는 요인이지 외재 요인이 아니다. 의(義)는 외재 요인이지 내재 요인이 아니다."
告子曰: 食色, 性也. 仁, 內也, 非外也. 義, 外也, 非內也.
음식남녀(飮食男女)
제법 오래 전에 '음식남녀(飮食男女)'라는 대만 영화가 있었다. '오천련'이 등장하고, 음식과 남녀 간의 다양한 연애이야기로 가득한 영화였다. 검색하니 1995년의 일이었다.
'음식남녀'라고 하니 '남자와 여자를 먹고 마신다'는 풀이도 되고 남녀 간의 사랑을 먹고사는 인생이란 풀이, 또 음식과 남녀 간의 애정이 주된 소재라는 의미도 된다.
그런데 이 '음식남녀'란 말이 언젠가 접한 적이 있다는 느낌이 지워지질 않았다.
작년 말, 미국 발 금융위기로 세상이 한창 뒤숭숭할 때, 이 난세를 어떻게 해야만 궁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궁리에 빠져 지냈다. 케인즈의 책도 다시 읽어보고, 하이예크의 글도 다시 읽어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글 속에 오늘날의 문제, 돈이 너무나도 많아서 생겨난 지금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아이디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이 문제는 어쩌면 돈을 대하는 우리 인간들의 예의(禮義)가 어긋나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그래서 예기(禮記)를 꺼내어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없을까 싶어 처음부터 찬찬히 살펴보았다.
오늘날과 같은 고도 자본주의 세상에 일어난 문제를 놓고 고리타분한 유교 경전 중의 하나인 예기를 들추고 있다니 어쩌면 의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은 말이 된다고 본다.
책을 읽다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소득을 건졌다. 아주 작은 것이지만. 책 중의 예운(禮運)편을 읽다가 '음식남녀'라는 문구를 발견한 일이었다.
그 내용은 '음식과 남녀간의 사랑은 사람들이 크게 바라는 일이고, 사망과 빈고(貧苦)는 사람들이 크게 싫어하는 일이다'고 되어 있다.
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
死亡貧苦 人之大惡存焉.
먹고 마시는 일과 남녀 사이의 애정 문제가 가장 중대하다고 남도 아닌 공자님께서 말씀하고 계셨으니 재미난 일이다.
생각해보면 실로 그러하다. 좋은 짝을 만나서 잘 먹고 잘 살면 행복한 것이다. 더하여 우리가 싫어하는 바는 죽어 없어지는 일 그리고 빈곤이다. 이야말로 세상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더 이상 세상에 중요한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니 '음식남녀'야말로 세상을 다스리는 근본 중에 또 근본인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다툼도 궁리해보면 내 배를 불리기 위해선 더러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하고, 마음에 끌리는 새로운 짝을 만나려다 보니 남의 짝을 앗아 올 때도 있다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나아가서 배가 불러도 더 맛있는 것을 탐하는 우리의 마음이요, 좋은 짝을 만나 살다가도 싫증이 나서 버리게도 되니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니 이 세상은 시작부터 지금껏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툼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은 환상이자 영원한 이상인 것이다.
다툼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결국 우리의 감각적 취향과 변덕을 통제하거나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서야 수양을 통해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다지만,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야 할 것이니 환상이라 해도 그리 무리는 아닌 것이다.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배분받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공산주의라고 어릴 적 학교에서 배웠다. 생각해보니 이룰 수 없는 이상에 가깝다.
능력껏 일하게 하려면 능력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누구나 대충 일하는 척 할 것이다.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고 하는데, 필요량에 대한 기준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결국에는 필요 이상을 가져갈 것이다.
결국 능력과 필요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합리적으로 설정할 수 없는 이상 공산주의는 자칫 인간의 본성에 대한 환멸만을 가져다 줄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란 그런 기준을 설정할 수도 그리고 그것을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다는 '상대적 인간관'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능력껏 일해라, 그러면 많이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니. 포만을 느껴서 많이 가져가기 싫다면 적당히 일하든지. 당신의 마음에 달린 것이라고 하는 것이 자본주의인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란 것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자유에 맡기다보니 너무 심한 불평등이 생겨나는 바람에 그 또한 인도적 견지에서 용인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실은 이 문제는 자본주의라든가 공산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을 어떤 식으로 다듬어낼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에 대해 공자는 분명하게 자신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을 禮(예)와 樂(악)으로서 이끌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어떤 체제가 좋은 지 따지기 이전에 인간의 심성을 순화시키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말이 있다. 동물은 수치를 모르지만 만족할 줄 알고, 인간은 수치는 알아도 만족은 모른다. 생각하고 새길 필요가 있는 말이라 여긴다.
수치를 알지만 만족을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 왜 이런 것일까? 인간은 사회를 만들어 그 속에서 살아가기에 수치를 알게 되었다고 본다.
구성원으로서 남들에게 민망한 일을 하기가 어렵기에 수치를 알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인간은 가치 있는 것을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었기에 만족을 모르게 되었다고 본다.
비유하자면, 사자가 영양 한 마리를 잡았다고 하자. 배부르게 먹고 나면 다른 동물들이 먹도록 내버려둔다. 어차피 놔둬봤자 부패하고 썩어버릴 것이니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만족하게 된다.
다음에 배가 고프면 어려워도 다시 사냥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사슴을 사냥했을 때 일단 주린 배를 채우면 남은 고기를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을 지녔다. 훈제하거나 서늘한 장소에서 말려서 나중에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저장할 방법이 없다면 나중에 배가 고플 경우 다시 사냥에 나서야 할 것이고 그러다가 사냥에 성공하지 못하면 배를 곪거나 또 다른 먹이를 찾아야 할 것이다.
결국 먹을 것, 다시 말해 가치 있는 그 무엇을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인간이 개발하면서 만족을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린 셈이다.
올 한해 농사가 잘 되었다 하더라도 내년에 가뭄이 들 수도 있으니 다 먹지 않고 비상시에 대비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 남았다고 남에게 다 주는 법은 드물다.
3년 가뭄이 있을 수도 있고 9년 수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3년 농사가 잘 되어도, 나아가서 9년 농사가 잘 되어도 저축한 식량을 다 소비하는 법은 없다.
먹을 것이 떨어진 옆 동네 사람들이 당신네 농사가 몇 년간 잘 되었으니 좀 나눠주시오 하고 와서 구걸을 하면 도리 상 약간은 줄 수 있겠지만 다 내어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바로 '위기관리'라는 개념이 우리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당초 저장기술이 없었다면 위기관리 자체도 없을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은 그저 하늘에 달린 것이라 체념하고 받아들일 밖에.
저장기술이 있기에 사람은 야무지게 살아가는 법도 배운다. 저장할 수 없다면 여물고 단단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누구는 가르친다. 그런 삶의 자세에 공감하는 이도 상당하다.
그것은 동물처럼 오늘 먹을 것을 얻었으면 내일의 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로 귀착된다. 옛날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그런 청빈의 삶을 살고자 했으며, 선승들 또한 그런 삶을 지향한다.
한 때의 히피들도 결국 그런 삶을 살고자 했었다. 사실 히피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도 있으니 바로 귀농이다. 귀농하고자 하는 자는 본질에 있어 히피인 것이다. 그런 삶을 인정한다. 하지만 영원히 소수에 머물 것이라 여긴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미 가치를 저장하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가치의 저장은 잉여를 낳고 잉여는 풍요를 낳는다. 풍요는 문명을 일구고 우리는 그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산다.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원히 다툼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덜 다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예와 악으로 세상을 순화시켜야 한다는 공자의 말은 실로 탁월한 대안이다. 세상이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구조화되기 이전의 한가로운 생각이 아니다. 2 천년전 이전에도 이미 세상은 짜여질 대로 짜여져 있었다.
다시 말해서 예악을 강조한 공자의 哲言(철언)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가 아닌 것이다. 여전히 세상은 '음식남녀'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칼럼을 쓰지 못 한 지도 무척 시간이 흘렀다.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세상이 워낙 어지럽고 필자의 마음도 무거워 여러 번 쓰다가 그만 두었다. 나머지 두 번은 가급적 빨리 마무리하고자 한다.
▶️ 飮(마실 음)은 ❶형성문자로 飲(음)은 통자(通字), 饮(음)은 간자(簡字), 㱃(음), 淾(음)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밥식변(飠=食; 먹다, 음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欠(흠;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는 모양, 음)이 합(合)하여 마시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飮자는 '마시다'나 '음료'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飮자는 食(밥 식)자와 欠(하품 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欠자는 입을 벌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 飮자는 식기에 담긴 것을 먹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飮자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갑골문에서는 술병을 그린 酉(닭 유)자 앞에 혓바닥을 내밀은 사람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술병에 담긴 술을 마시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飮자의 본래 의미는 '술을 마시다'였다. 그러나 후에 酉자가 食자로 바뀌면서 단순한 의미에서의 '마시다'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飮(음)은 ①마시다 ②호흡하다 ③마시게 하다 ④먹이다, 먹게 하다 ⑤머금다, 품다 ⑥숨기다 ⑦음식, 음식물의 총칭(總稱) ⑧음료(飮料), 마실 것 ⑨술자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실 흡(吸)이다. 용례로는 술 마시는 데 쓰는 기구를 음구(飮具), 약을 마심을 음약(飮藥), 독약을 먹음을 음독(飮毒), 물이나 술 등 마시는 것의 총칭을 음료(飮料), 제사를 마치고 제관이 제사에 쓴 술이나 다른 제물을 먹음을 음복(飮福), 더위를 먹음을 음서(飮暑), 마심이나 먹음을 음용(飮用), 흑흑 느끼어 욺을 음읍(飮泣), 저자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은 글을 음장(飮章), 술을 마시고 받는 화를 음화(飮禍), 술을 마시며 즐거워함을 음락(飮樂), 마시는 분량을 음량(飮量), 말에게 물을 먹임을 음마(飮馬),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음식(飮食), 술을 마심을 음주(飮酒),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음호(飮豪),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할 때에 먼저 돈을 물 속에 던져서 물 값을 갚는다는 뜻으로 결백한 행실을 이르는 말을 음마투전(飮馬投錢), 물을 마실 때 수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음수사원(飮水思源), 먹고 마시고 할 뿐인 사람 또는 음식만을 즐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음식지인(飮食之人), 물이 많이 있더라도 마시는 분량은 실상 배를 채우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이 제 분수의 넉넉함을 알아야 한다는 비유의 말을 음하만복(飮河滿腹), 재를 마셔 위 속의 더러운 것들을 씻어낸다는 뜻으로 악한 마음을 고쳐서 선으로 돌아감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음회세위(飮灰洗胃) 등에 쓰인다.
▶️ 食(밥 식/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은 ❶회의문자로 饣(식)은 동자(同字)이다. 사람(人)이 살아가기 위해 좋아하며(良) 즐겨먹는 음식물로 밥을 뜻한다. 사람에게 먹이는 것, 먹을 것, 먹게 하다는 飼(사)였는데 그 뜻에도 食(식)을 썼다. 부수로서는 그 글자가 음식물 먹는데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食자는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食자는 음식을 담는 식기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食자를 보면 음식을 담는 식기와 뚜껑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食자는 이렇게 음식을 담는 그릇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도 대부분이 '음식'이나 먹는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모양이 바뀌어 飠자나 饣자로 표기된다. 그래서 食(식)은 ①밥 ②음식 ③제사 ④벌이 ⑤생활 ⑥생계 ⑦먹다 ⑧먹이다 ⑨현혹케하다 ⑩지우다 그리고 ⓐ먹이, 밥(사) ⓑ기르다(사) ⓒ먹이다(사) ⓓ양육하다(사) ⓔ사람의 이름(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음식을 청해 먹은 값으로 치르는 돈을 식대(食代), 부엌에서 쓰는 칼을 식도(食刀),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 일을 식사(食事),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음식점이나 식당에서 먹을 음식과 바꾸는 표를 식권(食券), 밥을 먹기 전을 식전(食前), 식사를 마친 뒤를 식후(食後),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을 식기(食器), 음식만을 먹는 방 또는 간단한 음식을 파는 집을 식당(食堂), 뜻밖에 놀라 겁을 먹음을 식겁(食怯), 음식에 대하여 싫어하고 좋아하는 성미를 식성(食性), 음식(飮食)을 만드는 재료를 식료(食料), 남의 집에 고용되어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를 식모(食母), 음식(飮食)을 먹고 싶어하는 욕심을 식욕(食慾), 한번 입 밖으로 냈던 말을 다시 입속에 넣는다는 뜻으로 앞서 한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을 식언(食言), 각종 식품을 파는 가게를 식품점(食品店), 음식을 먹은 뒤에 몸이 느른하고 정신이 피곤하며 자꾸 졸음이 오는 증세를 식곤증(食困症),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식이위천(食以爲天), 식량으로 옥을 먹고 계수나무로 밥을 짓는다는 뜻으로 물가가 비싸 생활이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식옥취계(食玉炊桂), 생선을 먹을 때에 한쪽만 먹고, 다른 쪽은 남겨둔다는 뜻으로 민력을 여축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식어무반(食魚無反), 근심 걱정 따위로 음식 맛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식불감미(食不甘味), 집게손가락이 움직인다는 말로 음식이나 사물에 대한 욕심 또는 야심을 품는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식지동(食指動), 먹을 것은 적고 할 일은 많음이라는 뜻으로 수고는 많이 하나 얻는 것이 적음을 일컫는 말을 식소사번(食少事煩), 사방 열 자의 상에 잘 차린 음식이란 뜻으로 호화롭게 많이 차린 음식을 이르는 말을 식전방장(食前方丈), 식량이 떨어져 기운이 다함을 일컫는 말을 식갈역진(食竭力盡), 음식을 잘 차려 먹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식불이미(食不二味), 맛있는 고기만 먹고 지내면서 누리는 부귀를 일컫는 말을 식육부귀(食肉富貴), 식객이 삼천 명이라는 뜻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음을 이르는 말을 식객삼천(食客三千), 나라의 녹을 받아먹음을 일컫는 말을 식국지록(食國之祿), 나라의 녹봉을 받는 신하를 일컫는 말을 식록지신(食祿之臣), 소라도 삼킬 정도의 기개라는 뜻으로 어려서부터 기개가 뛰어남을 이르는 말을 식우지기(食牛之氣) 등에 쓰인다.
▶️ 男(사내 남)은 ❶회의문자로 侽(남)의 본자(本字)이다. 田(전; 논밭)과 力(력; 농기구)의 합자(合字)이다. 논이나 밭을 가는 사람,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❷회의문자로 男자는 '남자'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男자는 田(밭 전)자와 力(힘 력)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力자는 밭을 가는 쟁기를 그린 것으로 '힘'이나 '힘쓰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쟁기'를 그린 力자에 田자가 결합한 男자는 밭과 쟁기를 함께 그린 것이다.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고대의 농사일은 모두 남성의 몫이었다. 男자는 그러한 인식이 반영된 글자로 힘을 들여 농사를 짓던 사람인 '남자'를 뜻하고 있다. 그래서 男(남)은 (1)어떤 명사(名詞)의 앞에 쓰이어 사내 남자(男子)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2)어떤 명사(名詞) 뒤에 쓰이어 사내 남자(男子)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3)남작(男爵) 등의 뜻으로 ①사내 ②아들 ③남자(男子) ④남작(男爵: 작위의 이름) ⑤남복(男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내 랑(郞),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女), 아가씨 유(妞), 예쁜 여자 년(姩), 예쁠 왜(娃), 여자 랑(娘), 예쁜 여자 오(娪), 여자 원(媛), 아리따울 교(嬌), 여자 애(嬡), 아가씨 양(孃)이다. 용례로는 아내의 배우자로 혼인하여 사는 남자를 그 아내를 기준으로 일컫는 말을 남편(男便), 남성으로 태어난 사람 또는 한 여자의 남편이나 애인을 이르는 말을 남자(男子), 오라비와 누이를 남매(男妹), 아기를 직접 낳을 수 없는 성性에 속하는 사람을 남성(男性), 사내 아이를 일컫는 말을 남아(男兒), 남자의 성기를 남근(男根), 음경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을 남경(男莖), 사내 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을 남색(男色), 열다섯 살이 넘은 사내로 젊은 남자를 남정(男丁), 아버지 쪽의 핏줄 계통을 남계(男系), 여자가 남자처럼 차림을 남장(男裝), 사내 얼굴과 같이 생긴 여자의 얼굴을 남상(男相), 맏아들을 일컫는 말을 장남(長男), 둘째 아들을 일컫는 말을 차남(次男), 사내 아이를 일컫는 말을 동남(童男), 아내의 남자 형제를 처남(妻男), 아름답게 생긴 남자를 미남(美男), 나이가 젊고 기운이 좋은 남자를 정남(丁男), 보기 흉한 남자나 못생긴 남자를 추남(醜男), 아들을 낳음을 득남(得男), 남자와 여자와 늙은이와 젊은이 곧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을 남녀노소(男女老少), 남자와 여자와는 분별이 있다는 말을 남녀유별(男女有別), 남자는 짐을 등에 지고 여자는 짐을 머리에 인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것을 이르는 말을 남부여대(男負女戴), 음양설에 왼쪽이 양이고 오른쪽은 음이라 하여 남자는 왼쪽이 중하고 여자는 오른쪽이 중하다는 말을 남좌여우(男左女右), 남자는 높고 귀하게 여기고 여자는 낮고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남자를 여자보다 존중한다는 말을 남존여비(男尊女卑), 남자의 얼굴이 썩 뛰어나게 잘 생김 또는 그러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남중일색(男中一色), 남자가 앞에 나서서 서두르고 여자는 따라만 한다는 말을 남창여수(男唱女隨), 남녀가 좋아한다는 뜻으로 부부가 화락함을 이르는 말을 남흔여열(男欣女悅), 갑이라는 남자와 을이라는 여자라는 뜻으로 신분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아니한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을 갑남을녀(甲男乙女),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남쪽 지방은 남자가 잘나고 북쪽 지방은 여자가 곱다는 뜻으로 일러 내려오는 말을 남남북녀(南男北女), 아들을 많이 두면 여러 가지로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많다는 말을 다남다구(多男多懼),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라는 뜻으로 불교에 귀의한 남녀 또는 신심이 깊은 사람들을 이르는 말을 선남선녀(善男善女) 등에 쓰인다.
▶️ 女(계집 녀/여)는 ❶상형문자로 여자가 손을 앞으로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계집, 여자를 뜻한다. 보통 연약한 여성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옛날엔 여자나 남자나 모두 人(인)과 같은 모양으로 쓰고 또 女(녀)라는 자형으로 써도 그것은 남녀의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신을 섬기는 경건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女자는 '여자'나 '딸', '처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女자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여성'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女자의 갑골문을 보면 무릎을 꿇고 단아하게 손을 모으고 있는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女자는 단아한 여성의 자태를 그린 것으로 부수로 쓰일 때는 여자와 관계된 의미를 전달한다. 다만 女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부정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가부장적이었던 고대 중국 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이 문자형성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女(녀/여)는 ①여자 ②딸, 처녀 ③너 ④작고 연약한 것의 비유 ⑤별의 이름 ⑥시집보내다 ⑦짝짓다 짝지어 주다 ⑧섬기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내 남(侽), 아들 자(子), 사내 랑/낭(郎), 어머니 모(母), 사내 남(男), 사내 랑/낭(郒)이다. 용례로는 아기를 직접 낳을 수 있는 성에 속하는 사람을 여성(女性), 결혼한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을 여사(女史), 여성인 사람을 여자(女子), 남에게 자기 딸을 이르는 말을 여식(女息), 호걸스러운 여자를 여걸(女傑), 사위나 딸의 남편을 여서(女壻), 여자 직공을 여공(女工), 여자와의 성적 관계를 여색(女色), 여성으로 태어난 딸 자식을 여아(女兒), 어른이 된 여자를 여인(女人), 여자가 지켜야 할 떳떳하고 옳은 도리를 여덕(女德), 여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여도(女道), 여자가 잘 따르는 복을 여복(女福),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뜻을 좇아야 한다는 말을 여필종부(女必從夫), 호협한 기상이 있는 여자를 일컫는 말을 여중호걸(女中豪傑), 여자는 존귀하고 남자는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여자를 남자보다 존중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여존남비(女尊男卑), 아침 이슬과 같이 덧없는 많은 백성을 일컫는 말을 여로창생(女露蒼生), 여자는 정조를 굳게 지키고 행실을 단정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여모정렬(女慕貞烈), 여자는 무슨 생각에 잠기기를 잘한다는 말을 여자선회(女子善懷), 여자가 먼저 나서서 서두르고 남자는 따라만 한다는 말을 여창남수(女唱男隨), 갑이라는 남자와 을이라는 여자라는 뜻으로 신분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아니한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을 갑남을녀(甲男乙女),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남쪽 지방은 남자가 잘나고 북쪽 지방은 여자가 곱다는 뜻으로 일러 내려오는 말을 남남북녀(南男北女), 남자는 짐을 등에 지고 여자는 짐을 머리에 인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것을 이르는 말을 남부여대(男負女戴), 남자는 높고 귀하게 여기고 여자는 낮고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남자를 여자보다 존중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남존여비(男尊女卑), 마음씨가 고요하고 맑은 여자 또는 마음씨가 얌전하고 자태가 아름다운 여자를 일컫는 말을 요조숙녀(窈窕淑女), 남의 여자를 쫓다 제 아내를 잃는다는 뜻으로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 자신이 지닌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추녀실처(追女失妻), 하늘이 낸 열녀란 뜻으로 절개가 굳은 여인을 일컫는 말을 출천열녀(出天烈女)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