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사람은 살면서 즐거운 일보다 괴로운 일을 당할 때가 더 많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 되지 않을 때의 불만족, 병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찰, 구설수 등 인간을 괴롭게 하는 일들이 무수히 많다.
고통이 생기는 이유는 인간의 삶 자체가 누군가에게 베풀고 헌신하는 것보다 욕망이 더 많기 때문이다.
곧 손해 보지 않으려는 이기심도 한몫한다.
그러나 꼭 갈망하지 않더라도 고통은 이유 없이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특히 연예인들을 보면 그들의 학력이나 외모, 가족까지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그들이 잘못해서 그런 것보다는 일종의 마녀사냥처럼 그들을 왜곡하고, 없는 일조차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백을 흑으로 믿도록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로 어떤 연예인들은 자살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심각한 후유증으로 병을 얻기도 한다. 이는 마치 어린애들이 장난으로 연못에 돌을 던지지만, 연못에 사는 개구리들은 생사를 넘나들며 고통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일은 일반인도 많이 겪는데, 왜 우리는 남의 고통을 즐기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많은 고통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특히 근거 없는 구설수나 사람들과의 마찰을 염두에 두고, 2가지로 해결점을 제시할까 한다.
첫째는 고통과 힘겨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이다.
달마도로 유명한 달마 스님의 좋은 가르침이 있는데, 보원행이라는 법문이다.
보원행이란 남으로부터 받고 있는 증오, 육체적 고통, 정신적인 번뇌, 상실감 등 고통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이것을 비관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과거 자신이 지어놓은 좋지 못한 업보로 인해 현재 고통받는 것이라 여기고 잘 참고 인내하라는 뜻이다.
혹 어떤 이는 이 보원행을 팔자소관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내게 생기는 그 고통스러운 일을 거부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요, 타인과 부딪친다고 원만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 고통을 감내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의미이다.
타인과의 마찰을 수용하는 자세도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길이요, 인생을 헤쳐 나가는 데 좋은 보약이요, 지혜로운 방법이 될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는 10명의 훌륭한 제자들이 있었는데, 목련 스님은 신통력이 뛰어났다. 당시 인도에는 여러 교단이 있었는데, 불교교단이 점점 커지고 출가자들이 많아지자 이교도들이 불교교단을 해코지하려고 했다. 신통이 뛰어난 목련은 교단을 보호하기 위해 신통력으로 이교도들의 침입을 막았다. 이러다 보니 이교도들은 목련에게 앙심을 품고 목련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교도들은 산 정상에서 목련에게 돌을 던졌지만 목련은 신통력으로 위험을 피했다.
이와 같은 일이 세 번째 생겼을 때, 목련은 이교도들이 산 위에서 던진 돌에 맞아 결국 죽임을 당했다.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도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죽임을 당하는 업보가 있건만, 범부 중생들의 삶에 고통이 따름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목련은 신통력으로 자신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지만, 과거에 나쁜 일을 행한 업보라는 생각으로 죽음을 수용하였다. 지나친 예를 드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고통에 대해 수용하는 자세를 갖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예 무시하는 방법인데, 특히 사람과의 마찰이 있을 때 쓸 수 있다.
<사십이장경>에 이런 내용이 전한다.
“어떤 사람이 그대를 괴롭히고 힘들게 할지라도 참고 견딜지니라. 그에게 성을 내거나 꾸짖지 말라.
그가 와서 너를 꾸짖고 미워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다.
객관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화를 낼 필요가 없다.
결국 그가 와서 꾸짖음은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니, 무시해버릴 일이다.
무시한다고 해서 그의 인격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사건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단지 맞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마련이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마다 자신에게만 이런 일이 생긴다고 힘겨워하고 좌절한다면 인생에서 패배자가 된다. 억만금을가진 부자나 장관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나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는 법이다. 인생의 아픔도 수용할 줄 알고, 어느 단계에서는 적당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들 때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적당히 무시하는 일도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정운 스님 / 그대와 나, 참 좋은 인연입니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