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08/30 [글로벌 칼럼] (64) 제2차 세계대전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 /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 - 75년 전,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이 야기한 위협은

[성기화 요셉]

[글로벌 칼럼] (64) 제2차 세계대전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 / 윌리엄 그림 신부

75년 전,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이 야기한 위협은 남아
여전히 평화 희망하는 상황
핵무기 없는 세상 되려면 세계인의 호소 전달돼야

발행일2020-08-30 [제3209호, 6면]

예전에 신문이 인쇄공의 손이나 라이노타이프로 인쇄됐을 때, 인쇄공들 사이에는 ‘재림체’라고 불리는 활자가 있었다. 인쇄공들이 갖고 있던 활자 중 가장 큰 것으로, 예수의 재림과 버금가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쓰였다.

요즘에는 편집자가 뉴스룸에서 컴퓨터로 지면을 조판하고 활자 크기를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조절할 수 있어, 예전처럼 재림체 활자를 담고 있는 서랍을 여는 경험은 하지 못할 것이다.

한 지인이 재림체로 된 한 단어의 제목이 실린 신문을 한 부 보내준 적이 있다. 제목의 활자는 9㎝ 크기로 모두 대문자로 돼 있었다. 이 신문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로 1945년 8월 15일자였고, 제목은 ‘평화’(PEACE)였다. 이 제목은 편집자가 ‘승리’라는 말 대신 선택한 것이었다.

전 세계 다른 신문들도 이 단어를 썼다. 당시 미국 군사전문 일간지 ‘성조지’(Stars and Stripes)도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형제애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필라델피아의 이 신문은 안도한다며 진심어린 감정을 표출했다.

이 제목은 길게 한숨을 쉬며 읽혔을 것이다. 평화라는 이 말은 독자가 어떤 편에 서든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75년 전, 일본이 항복을 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이 전쟁은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파괴적이었다. 전쟁동안 전투와 학살, 질병, 기근으로 7000만 명에서 8500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당시 전 세계 인구의 약 3%에 해당하는 숫자다.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 어린이였다.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었으며, 형제자매, 배우자, 친구였다. 성스러운 이들도 있었고, 죄인도 있었으며, 영웅이기도, 겁쟁이기도, 악당이기도 했다. 이들은 희망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고, 재능이 있는 가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있었다. 폭격과 전투, 배의 침몰 혹은 몰살, 포로수용소에서 한날한시에 죽은 이들도 있었겠지만, 한 명씩 한 명씩 목숨을 잃었다. 그 누군가는 그들의 죽음을 슬퍼했으며 여전히 그리워 하고 있다.

이 신문 첫 페이지에는 전쟁과 전쟁의 끝 외에도 맑고 선선한 뒤 소나기라는 날씨예보가 있었고, 제호 옆 왼쪽 상단에는 이탤릭체로 ‘주님께 감사드리자’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쟁으로 찢긴 이 세상에 평화를 회복시켜주신 전능하신 주님께 감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진실한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마침내 전쟁이 끝났음에 주님께 감사드린다. 총성은 멈췄고, 죽음을 부르는 폭탄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 어머니들과 아내들, 연인들은 자유롭게 숨 쉴 수 있게 됐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집에 돌아올 것이다. 원수들이 고꾸라졌다. 하지만, 오늘 이 커다란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의 오늘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영원히 감사를 전하며 이들이 죽음으로 지킨 이상을 소중히 간직할 것을 약속하자. 그리고 승리로 얻은 이 평화에 대해 자비로운 주님께 감사하자.”

하단부에는 미 해군 순양함 인디아나폴리스 호의 침몰 소식이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이 전함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실어 날랐으며, 티티안 섬의 폭격기 기지에서 괌으로 귀환하는 중 일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 제목은 ‘해군 순양함 침몰로 전원 실종 혹은 부상’이었다.

이 신문 한 페이지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평화를 기쁘게 알리는 소식, 감사의 기도 당부와 함께 전후 주요 군사위협이 될 핵무기에 관한 소식을 함께 볼 수 있다.

75년이 지난 오늘날, 이 신문의 1면은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평화를 희망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에 안도하며, 감사를 드린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전쟁이 야기한 위협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해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본을 방문했다. 지난 교황의 사목방문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만으로 비도덕적이라는 자신의 입장을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응답이었다. 교황은 인디아나폴리스 호가 실어 날랐던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찾아 연설했다.

교황은 히로시마에서 “더 깊은 확신을 갖고 전쟁을 목적으로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은 인류의 존엄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의 집을 위한 미래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다시금 선언하고자 한다”면서 “전쟁을 위해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도적적이며, 이 일로 우리는 나중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핵무기의 위협 없는 평화로운 세계에 대해 감사기도를 할 수 있으려면, 핵무기를 가진 나라의 국민들은 목소리를 내 세상에서 핵무기를 없애도록 투표라도 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 신자라면 교회 지도자들이 교황의 가르침에 따르도록 압력을 넣어야 할 것이다.

성공한다면, 그때서야 우리는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이 진짜 끝났다며 주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