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와 함께 하는 산행 이야기
바람이 멈춰선 섬 강화 석모도 해명산 낙가산 산행기
(부처의 머리 위 미끄러지는 바위 하나 바람이 간신히 잡고 있다)
*** 산행 개요 ***
일시 : 2011년 4월 24일 오전 9시 20분 ~ 오후 1시 40분 (4시간 20분)
산행지 : 강화 석모도 해명산, 낙가산
산동무 :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14명
날씨 : 맑음. 온도 15도 정도.
5시 30분. 아내와 나의 핸드폰에서 동시에 알람 벨이 울린다. 머리는 무겁고 눈은 안 떨어지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내를 흔들어 깨우고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7시 집결이므로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은 부활절. 어제 부활 성야 미사를 드리고 성당 ME식구들과 안양1번가 중앙닭발에서 뒷풀이를 가졌다. 그리고 집에 오니 새벽 2시 반. ME 모임은 부부모임이라 모이면 재잘재잘 시끄럽다. 별 일도 아닌 수다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래도 재미있다. 아내가 내일 산에 가자면 술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지만 내일일은 내일일이고 오늘 내가 막걸리 한잔에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않겠는가? 예수는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날인데......
(부활 성야 미사 - 천주교 미사의 시작이며 으뜸이다. 소망을 담은 부활계란이 참 예쁘다.)
(2월말이면 피어나던 우리집 앞의 동백꽃이 이제 겨우 한송이 꽃망울을 내민다)
조금 힘들게 시작했지만 일어나 세수하고 배낭을 챙기니 어느 정도 정신이 든다. 대문을 나서는데 대문 밖 동백나무가 눈에 띈다. 2월말에서 3월초면 꽃을 피워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 골목으로 꽃구경하러 왔었는데, 올해는 지난겨울 얼마나 혹독한 겨울을 보냈는지 이제야 간신히 꽃망울 두어 송이 보이고 있다. 얼어 죽은 것 같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제부터 꽃망울이 올라온다. 얼마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올 겨울에는 보온재로 단단히 싸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따뜻한 남쪽에서 자라는 나무가 이곳에서 추운 겨울을 보냈으니 그 생존을 위한 동백나무의 부단한 노력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 동백꽃이 나에게는 부활절 선물이 되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부지런히 집결장소인 2001아울렛 사거리로 가니 버스와 산동무들이 모여 있다. 반갑게 인사하고 금정역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을 마저 태우고 강화도로 향했다. 오늘은 24인승 버스에 14명. 20명은 되어야 하는데 부활절 탓인지, 결혼식이 많은 탓인지 산행신청을 하신 분이 많지는 않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강화도 가는 길은 조금 막힌다. 김포 양촌과 통진 사이에 공사를 하기 때문이다.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들어가니 온통 고려산 진달래 축제 안내가 보인다. 재작년에 고려산 진달래 보러 왔다가 봄 가뭄에 먼지만 뒤집어쓰고 진달래도 생각만큼 화려하지는 않아 실망했던 곳이다. 외포리에 도달하니 배가 막 들어와서 출발하려고 한다. 부지런히 매표를 하고 바로 버스채로 배에 올랐다. 석모도 석포리 부두까지는 불과 5분거리이다. 배 위로 올라가 갈매기에게 새우깡도 주고 사진도 찍고 짧지만 즐거운 항해를 하였다.
(석모도로 가는 배 위의 갈매기- 저 갈매기들의 주식은 새우가 아니고 새우깡이다)
배에서 내려 산행 출발지인 전득이 고개에 9시 15분 도착. 배를 기다리는 시간을 생각해 10시쯤 도착하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다. 산동무들에게 산행 코스를 설명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피곤이 덜 풀린 탓일까? 처음 오르막이 힘들게 느껴진다. 아내도 힘이 많이 부치는 모양이다. 산길에는 진달래가 제법 근사하게 피어있는데 산 아래 부분은 살짝 지고 있는 형상이고 산 위 부분은 활짝 피고 있는 형태이다.
(산행을 시작하는 전득이 고개에서 오늘 함께 산행 할 산동무 14명과 함께)
(산행을 시작하자 마자 진달래가 반갑게 맞아주고 있다 - 아내와 함께)
(해명산에는 봄 야생화가 많지 않다. 노란 양지꽃은 흔하고 제비꽃은 드문드문 보인다. 다른 꽃들은 보지 못하였다)
20분 정도를 오르니 드디어 쫙 펼쳐진 석모도 논과 바다가 보인다. 항상 아쉬운 것은 오늘 같이 맑은 날에도 스모그 현상 때문에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시대에 청명을 기대하는 꿈은 접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산에 올라도 멀리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체가 뿌연 스모그에 점령당한 느낌이다. 그래도 진달래와 노란 산수유가 멋들어지게 어울려 피어있는 바위 위에서 바다를 배경삼아 폼을 잡아보았다. 오르는 길 내내 연분홍 진달래와 푸른 소나무가 멋진 바위와 어우러지고 시원하게 펼쳐진 석모도의 논과 그 뒤의 바다는 가슴을 뻥 뚫어주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은 금상첨화. 내 어깨 뒤에 숨겨진 날개를 펼치고 창공을 날아볼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능선을 올라서자 시원하게 트인 바다와 바위와 진달래가 어울린다)
해명산의 바위들은 참 제멋대로이다. 어떤 바위는 조각가가 잘 다듬어 놓은듯하고 어떤 바위는 탑 석공이 잘 쌓아 놓은듯하고 어느 바위는 커다란 거인이 뭉퉁뭉퉁 던져놓은 듯하다. 바위산인 듯 하면 흙길이 나타나고, 흙길의 편한 오솔길인가 하면 어느새 바윗길이 나타난다. 바위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똑바로 자라지 못한다. 해명산 소나무도 해명산 바위의 제멋대로 쌓아진 바위처럼 제멋대로 자랐다. 그 제멋대로가 우리가 보기엔 그저 일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 소나무가 저리 배배꼬며 자라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마음이 짠하다. 시원하게 하늘로 쭉쭉 뻗은 소나무도 나름 멋이 있지만, 해명산 소나무처럼 바위에 뿌리를 딛고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갈구하며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소나무의 삶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하늘에서 보기엔 사람들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잘나가고 성공을 해서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사람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며 배배 꼬여진 삶의 한자락한자락을 풀어가는 가난한 서민들의 삶도, 이 꼬여진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바위소나무처럼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제멋대로 올려진 바위위에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다)
조그만 산봉우리를 몇 개 넘자 드디어 해명산의 모습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지도상으로는 230고지와 250고지가 표시되어 있지만 봉우리와 능선길이 연속인지라 생각도 못하고 그냥 지나게 된다. 그래도 해명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긴 오르막이다. 앞서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산동무들을 불러 뒤를 돌아다보게 하고 손을 흔들라하고 사진을 찍어준다. 산에 오르면 나는 항상 맨 꽁지이다. 산을 잘 못타고 통통한 탓도 있겠지만 아내의 사진에 모델을 하다보면 어느새 뒤로 쳐지게 된다.
(해명산을 오르는 수사사 산동무들)
산을 오를 때는 앞에 있는 것 보단 뒤에 있는 것이 더 낫다. 앞에 있으면 마음이 급해져서 자꾸만 빨라지게 된다. 우리 <수사사> 산행 때 가끔 선두대장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평소에는 항상 꼴찌로 천천히 산행을 하지만, 선두대장의 역할을 맡으면 자꾸만 빨라지게 된다. 혼자 오르다 보면 뒤에서 천천히 가라는, 회원들 못 따라 온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또 앞에서 가면 세세한 풍경을 놓치기 십상이다. 앞만 보고 가기 때문에 옆과 뒤를 잘 돌아보지 않는 까닭이다. 선두대장을 하고 나면 그 산에 대해서 남는 것이 거의 없다. 산에 오르면 가끔 뒤를 돌아다보아야 한다. 그러면 생각지도 못한 멋진 풍경이 뒤에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반겨주곤 한다.
(해명산 가는길 소나무 아래에서 산마루님과 태산님이 쉬고 있다)
또 산에 오를 때에는 천천히 올라야 한다. 특히 나이가 쉰을 바라보는 우리 나이에는 무릎 보호를 위해서도 천천히 걸어야 하고, 산과 산에 있는 나무며 풀이며 곤충들과도 대화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물론 그 산과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짜장 좋다. 내가 시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산에서 살짝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산의 기를 느끼려 한다. 그러면 내 귓전 뒤로 묵직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데 큰 산에 가면 그 기가 절절히 느껴짐을 알 수 있다. 그 때 살짝 말을 걸어본다. “해명산! 너는 정말 멋진 산이구나.” 이렇게 3번 정도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하게 되면 산이 나에게 기로써 화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산에 오를 때 뒤에서 살짝 밀어주는 힘을 느끼게 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우주를 형성하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본디 하나의 원료이다. 그것이 갈라져 어떤 것은 내가 되고, 어떤 것은 네가 되고, 어떤 것은 나무가 되고, 산이 되고, 바다가 되었다. 또 어떤 것은 빛이 되었고, 어떤 것은 파동이 되었고, 어떤 것은 색이 되었고, 소리가 되었고 전파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주에는 나와 너의 구분이 없다. 우주에는 두 개의 큰 원칙이 있다. <보존>과 <순환>이다. 우주 안에는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이 없다. 또 우주 안에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한 시라도 가만히 고정되어 있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움직이며 섞이며 화합하고 분리된다. 대저 나를 구성하는 것은 어제는 돼지였고, 그제는 시금치였으며, 물고기였고 밀가루였고 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몸에서 나가는 이산화탄소가 내일은 어느 풀의 몸이 되었을 것이고, 어느 동물이 그것을 먹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다시 네가 되기도 하였다가 다시 나로 돌아올 날도 있을 것이다. 내 것과 네 것을 따지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치졸한 규칙이다. 우주엔 너와 내가 없고 그저 우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부활로 영원히 살고 싶다는 개인적 욕심과는 달리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이다.
(진행방향 오른쪽 강화도 방향의 모습)
제법 긴 오르막과 바위를 타고 오르며 10시 10분 드디어 해명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특별한 상징은 없고 자그마한 정상석이 놓여 져 있다. 정상에서 바다를 보니 참으로 일품이다. 아직 10시밖에는 안 되었지만 이른 아침에 출발한터라 다들 배가 고프다. 산을 내려가면 맛있는 것도 먹어야 되겠기에 여기서 아침 겸 점심을 하기로 한다. 마침 정상 바로 아래 몇 사람 앉을 만한 제법 큰 바위가 몇 개 연이어 있다. 각자 가져온 도시락을 꺼낸다. 김밥에 컵라면 하나 달랑 가져온 분도 있지만, 고기에 각종 쌈을 가져오신 분들도 있다. 박이쁜여사는 비빔밥먹자고 커다란 양재기와 각종 비빔 재료를 가져오셨다. 모두 다 한자리에 펴 놓고 맛있게 먹고도 음식이 남았다. 이것이 그 옛날 예수께서 오천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의 재현일 것이다. 해명산 정상에서 서해를 바라보며 먹는 점심.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지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렇게 멋진 풍경을 굽어보면서 식사를 하기는 참 처음이다. 잘 정비된 논과 염전, 그리고 커다란 낚시터와 멀리 서해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한가로운 고깃배며 섬들의 모습, 그리고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먹는 즐거움에 보는 즐거움을 한껏 더해준다. 어느 스카이라운지가 이보다 더 멋진 풍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해명산 정상에서 황소님과 함께)
(해명산 정상 바로 아래 - 여기서 저 풍경을 보며 멋진 점심을 먹었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다시 산행을 재촉하였다. 해명산에서 낙가산까지는 제법 길이 멀다. 지도상으로도 몇 개의 산봉우리와 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가는 길은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양편으로 펼쳐진 멋진 풍광은 그 멋을 뽐내며 연이어 있고, 어느 곳은 편안한 오솔길이고 그런가하면 금방 밧줄을 잡아야 하는 험한 바윗길이 나온다. 어떤 바위는 날랜 무사가 큰 칼로 한칼에 자른듯하고, 땅에 박힌 부분이 더 작은 역삼각형의 바위도 있고, 온몸을 배배꼬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멋진 소나무도 등장한다. 아내가 진달래를 몇 잎 따서 진달래 향을 맡아보라고 한다. 무공해 진달래이어서인지 그 향이 향긋하다. 따라오시던 산마루형님은 진달래 화전을 이야기하고 산적님은 진달래술을 이야기한다. 나는 진달래 한 잎을 따서 살짝 맛보았다. 처음에 아무 맛도 안 나다가 조금 씹다보니 향긋한 진달래의 맛이 느껴진다. 어릴 적에는 참 진달래도 맛있게 먹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맛이나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길을 재촉하며 몇 잎 더 따먹어보니 이제는 처음 맛이 아니고 텁텁하다.
(칼로 자른듯한 바위 앞에서)
(아래가 더 좁은 역삼각형 바위)
(오늘 만난 소나무 중 가장 멋진 소나무에서 산적님과)
지도에 낙가산 바로 전 230고지는 바위로 뒤덮여 있어서 멀리서 보아도 흰색의 봉우리가 신비하면서도 웅장하게 느껴진다. 모두들 그 봉우리가 낙가산인 줄 알고 열심히 올랐지만 낙가산은 거기에서 조금 더 가야한다. 이곳에서 보니 아차도를 거쳐 주문도와 볼음도로 가는 송전 철탑이 소송도와 대송도로 연이어 갯벌위로 진행된다. 지금은 썰물 때라 철탑이 드러나 있지만 밀물이 되면 바다위에 철탑만 점점이 떠 있을 것 같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문명의 끈이 서해바다 끝까지 연결되어 있다.
(낙가산 오르는 길에 만난 붉은 열매 - 새 잎에 작년의 열매가 맺힌 것 같다)
(앞 소송도와 대송도를 거쳐 뒤에 아차도 주문도 볼음도로 송전탑이 이어져 있다)
230고지에서 3,4분 더 진행하니 드디어 산 아래로 보문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산 위에서 보는 보문사는 그리 크지도 않고 소나무에 둘러싸여 담백하며 한가하게 느껴진다. 낙가산의 정상은 커다란 바위이다. 정상석도 없고 지도에 표시된 보문사로 내려가는 길은 위험해서인지 철조망으로 막아놓았다. 바위위에는 철로 된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고, 배수를 위해서인지 벽돌로 수로를 만들어 놓았다. 이 수로는 마애보살상의 기도 제단으로 빗물이 바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인 것으로 보인다. 바위를 오르기 전에 밧줄을 잡고 힘들게 오르는 척 폼을 내며 사진을 찍었다. 이 바위가 보문사의 유명한 마애보살이 있는 눈썹바위 바로 위이다. 보살 머리 위 바위에 서니 바람이 불어온다. 지금까지 불던 솔솔바람이 아니라 마음의 번뇌를 씻어내라는 듯, 날개를 펴면 바로 하늘로 날라 갈 듯 경건하면서도 강한 바람이다. 한동안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는다. 시원함. 상쾌한. 짜릿함. 이 세단어가 가슴과 머릿속에서 맴돌다 바람에 씻겨 나가는 것 같다. 기도를 하듯 관상을 하듯 그렇게 바람맞이를 한 후, 바위 끝을 보니 족히 2~3M는 되어 보이는 바위 하나가 본 바위에서 끊어져 밧줄하나에 의지해 내리막에 아스라이 매달려 있다. 바위 간격이 1.5M는 되어 보이니 이미 그만큼은 미끄러진 것이다. 저 바위를 끌어 올리자니 너무 위험하고, 가만히 두자니 보살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 같고, 긴급조치인지 원 바위와 끊어진 바위에 징을 박고 쇠줄로 묶어 놓았다. 낙가산의 바람과 저 끊어진 바위를 소재 삼아 시를 한 수 써 본다.
(낙가산 오르는 바위에서 밧줄을 잡고 폼 잡아보았다)
(원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가 밧줄 하나에 의지해 간신히 버티고 있다)
--- 낙가산에서 ---
낙가산 정상에 서 보아라!
보문사 부처의 바람이 불어온다.
부처가 내게 무슨 바람이 있어
바람을 일으켜 나에게 보내는 것이냐.
행여
번뇌를 풀어 줄 소망 하나씩 안고
바다를 두 번 건너 낙가산에 올라
영험한 눈썹바위 돌보살 아래
합장하고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는
부처의 중생들 소망풀이를
나에게 떠넘기려는 속셈 아니냐?
에혀
부처여 정녕 그러지 마소.
밧줄 하나에 아스라이 매달린 바위처럼
부처도 위험하고 나 또한 세상살이 위험하오.
중생들 소망풀이는 부활한 예수에게 넘기시고
오늘은 황해 넓은 바람으로 술상을 펼쳐
번뇌를 안주삼고 해탈을 곡차 삼아
신선들도 모셔오고 천사들도 불러 모아
다 같이 어울려 넷째하늘 도솔천 경계까지 올라
낙가보살춤이나 신명나게 추어 보십시다.
(낙가산에서 본 보문사)
바위를 살짝 지나니 능선 왼쪽으로 보문사로 내려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상에는 절고개까지 가거나, 낙가산 정상 바위 전에 내려가야 되지만, 낙가산 전 길은 위험해서 철조망으로 막아 놓을 것 같고 사람들이 자꾸만 보문사로 바로 내려가려 하니 길이 아닌 곳을 길로 급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길 양옆으로 말뚝을 박고 밧줄을 걸어 놓아 밧줄에 의지해 간신히 급경사를 내려온다. 이렇게 바위도 없는 가파른 오르막을 길로 만들어 놓으면 금방 패이고 빗물에 씻겨 내려간다. 계단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덜 위험하고 산길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급경사를 어느 정도 내려가니 마애관음보살의 눈썹바위와 보문사로 가는 길은 왼쪽이라는 화살표가 나온다. 종이로 글을 써서 코팅을 한 것이 이것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화살표를 따라 좁다란 길을 가로질러 5분정도 진행하니 드디어 눈썹바위와 마애관음보살이 보인다.
(낙가산 바위를 올려다 본 모습 - 저 위에 낙가산 정상이다)
(눈썹바위를 전망으로)
이곳은 2년 전에 둘째동서내외와 한번 와 보았던 곳이다. 그 때는 보문사를 통해 계단으로 올라왔었는데 오늘은 거꾸로 정상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눈썹바위는 참으로 신비롭다. 저 큰 바위의 무게를 어떻게 지탱하고 있을까? 바위가 저런 모양이 되려면 아래바위와 윗바위가 필경 끊어져 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윗바위가 미끄러져 내려오다 걸려있는 것인데 참으로 아슬아슬하며 신기하다. 일본처럼 큰 지진이라도 나서 윗바위가 미끄러지면 참으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마애관음보살상은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무릎위에 올려놓아 참 편안한 모습이다. 이 보살의 크기는 높이 9미터 20센티미터, 너비 3미터 30센티미터에 달하며, 1928년 보문사의 주지인 배선주 스님이 보문사가 관음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강산 표훈사의 이화응 스님과 함께 관음보살좌상을 새겼다한다. 부처를 새기지 않고 보살을 새긴 것은 이 산이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이기 때문이리라. 낙가산은 보타낙가산의 준말이라고 한다. 이 눈썹바위와 마애관음보살상은 강화8경에 드는 명승지이고,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2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 보는 서해 낙조의 석양은 참으로 일품이라 하는데 오늘은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마애보살상 앞에는 시주를 할 수 있는 대가 마련되어 있고, 그 앞에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소망을 빌며 절을 올리고 있다. 나는 두 손을 합장하고 경건하게 경배하였다. 부처가 그리던 세상이 예수께서 죽음으로 이루려했던 바로 그 세상일 것이고 그것이 또한 내가 바라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보문사 눈썹바위 마애보살 좌상)
보문사로 내려가는 길은 끝없는 계단길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얼마 안 남아서인지 연등이 계단 길을 따라 끝없이 매달려있고 연등 아래에는 시주를 한 불자들의 이름과 소원이 들어있다. 예수도 그렇지만 부처도 이 소망을 하나하나 다 들어주려면 얼마나 바쁠 것인가? 그냥 인간들의 일은 신이나 부처에게 너무 의지하지 말고 인간들이 알아서 하는 것도 그 분들을 진정으로 편안하게 하고 경배하는 일이리라. 잘 다듬어진 돌계단을 한동안 내려오니 드디어 보문사이다.
(보문사로 내려가는 돌계단 - 연등이 끝없이 이어지고 연등 하나마다 소망 하나씩 달려있다)
보문사는 양양의 낙산사, 남해 금산의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해상 기도 도량으로 꼽히는 곳이다. 흔한 말로 기도발이 잘 듣는 곳이란 뜻이다. 그러니 불자들이 자기 소망을 이루어달라고 쉼 없이 바다를 두 번 건너 이곳을 찾는다. 신라 선덕여왕 4년인 서기 635년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을 하다 이곳에 절을 지었다 한다. 이 정도 오래된 절이라면 으레 국보나 보물이 한두 개 쯤은 있어야 하는데 앞에서 말한 마애보살좌상이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28호, 향나무 옆에 있는 맷돌과 절구가 인천광역시 민속자료 1호, 600년 된 향나무가 인천광역시 지방기념물 17호로 등재되어 있고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한그루가 각각 군지정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정도이다.
(보문사 600년 된 향나무)
그래도 오대산 상원사 동종과 성덕대왕신종을 조화시켜 만들었다는 종은 높이 215센티미터, 밑지름 140센티미터, 무게 5톤에 달하는 크고 멋진 종이다. 범종각에는 종은 나무에 대롱대로 매달려 있는데 나무가 5톤이나 되는 쇠 종을 매달고 버티고 있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보문사 범종각의 모습)
대웅전 부처님께 합장을 하고, 종을 둘러본 다음, 마애보살좌상과 더불어 보문사의 상징인 석실로 향했다. 석실 앞에는 600년 된 향나무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석실은 자연동굴을 확장하여 내부가 약 30평정도 되고 내부에는 23불의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석실을 돌아 나오니 향나무 옆에 보통 맷돌보다 훨씬 큰 맷돌이 자리 잡고 있고, 맷돌 위에는 앙증맞은 아기 동자승과 보살님 부처님이 자리 잡고 있다. 보문사 마당에서 마애보살상이 있는 눈썹바위를 올려다보니 그 모습이 참으로 멋있고 수려하다. 수백의 보살을 모셔 놓아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탑과 부처가 누워있는 와불전을 둘러보고 보문사를 나섰다.
(보문사 석실 - 바위를 뚫어 만들었다)
보문사 앞에는 식당가이다. 여기서 뒷풀이를 해야 하는데 일행 중 산행을 잘하시는 소옥영님과 3분이 상봉산으로 갔다가 되돌아온다고 해서 아까 해명산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하니 길을 잘못 들어 상봉산에서 바로 내려가 바닷가로 내려선 모양이다. 걸어서 온다고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상봉산을 가로질러 내려갔으면 도저히 걸어올 거리는 아니다. 바닷가에서 나와 차가 다니는 길로 올라오면 우리가 데리러 가겠다고 하였다. 할 수없이 뒷풀이를 여기서는 못하고 쑥부침에 새우튀김을 안주삼아 보문사 동동주를 잔술로 맛보았다. 대추와 인삼을 넣어 조제한 보문사 막걸리. 2년 전에 여기 왔을 때에는 그 맛이 천하일품이었다. 오늘은 이 막걸리도 세속에 물들었는지 향과 맛이 그때만은 못하다. 그래도 다른 곳의 막걸리보다는 훨씬 더 맛있다. 아내가 어머니 드린다고 동동주 2병과 마른 새우를 샀다.
(보문사 맷돌)
원래 계획은 소옥영님 일행을 태우고 근처의 식당에서 뒷풀이를 하려고 했으나, 일행을 만난 장소가 음식점 밀집되어 있는 곳을 한참 지난 도로상이었다. 되돌아오려고 했는데 길을 잘못들어 이곳까지 얼떨결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지도를 보니 석모도 북쪽 해안로 앞이었던 것 같다. 차를 되돌릴까 했는데 선착장 앞에 음식점이 있을 것이라고 그냥 선착장으로 직진하자고 한다. 그러나 선착장 근처에 도착하니 배를 타기위해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 줄을 이탈해서 선착장에서 식사를 하기는 좀 그렇다. 할 수 없이 강화로 나가서 뒷풀이를 하기로 결정하고 슈퍼에서 강화인삼막걸리라고 쓰여 있는 큰 막걸리를 두 통 샀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차에서 이 막걸리를 내 놓으니 모두 혀를 내두른다. 나도 맛을 보았는데 너무 맛이 없다. 석모도에서 파는 막걸리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시라면 석모도에 가시면 꼭 보문사 앞의 음식점에서 파는 막걸리를 맛보셔야 후회하지 않을 듯싶다.
(보문사에서 올려다 본 눈썹바위)
한 30분여를 기다려 드디어 배에 올랐다. 내가 밖으로 나가자고 해도 모두 차 안에서 꼼짝도 안한다. 5분이면 가는 길을 내렸다 탔다 하기가 귀찮아진 것이다. 강화풍물시장으로 가는 길, 강화의 안양대학교 뒤 퇴모산, 헐구산에는 진달래가 붉게 물들어 산에 불이 붙은 것 같다. 강화 풍물시장에 차를 대고 2층 식당 ‘밴댕이가 가득한 집’으로 몰려가 밴댕이 회, 밴댕이 무침, 밴댕이구이가 나오는 밴댕이 모듬을 특으로 시켜 인삼 대추 막걸리와 함께 신나는 뒷풀이를 하였다. 밴댕이 무침은 인천 터미널 앞 유명한 밴댕이 무침집(중국산 밴댕이 써서 ‘소비자고발’인가 매스컴 한번 재대로 탔는데 지금도 영업하는지는 모르겠다)에서 한번은 큰동서와 한번은 황소님 내외와 먹어본 적이 있지만 회와 구이는 처음이었다. 회는 별 맛을 모르겠고, 구이는 참 맛이 있었다. 하긴 어는 생선이든 구우면 다 맛이 있기는 하다. 공기밥을 시켜 무침에 쓱싹쓱싹 비벼먹으니 그도 참 맛이 있었다. 이 집의 특징은 그릇과 수저가 전부 유기로 만든 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유기 놋그릇에 밥과 술을 먹으니 그도 또한 별미였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식당을 나오니 아내가 쑥떡을 사 달라 한다. 넓적하게 펼쳐놓아 제법 먹음직스럽다. 쑥도 많이 들어갔는지 쑥 향이 싱그럽다. 한판을 사서 안양에 도착하니 저녁 7시 20분. 중앙시장에서 산적님과 소머리국밥 한 그릇씩 먹고 헤어져 집에 돌아오니 8시 30분이었다.
(보문사 천불상?)
석모도 해명산, 낙가산. 참으로 아름다고 예쁜 산이다. 바닷물이 동해처럼 파랗거나 남해처럼 초록색이라면 참으로 좋겠지만 서울 가까이에 바다를 즐기며 멋진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다. 해명산 낙가산 지천에 널려진 진달래 재잘거림이며 고된 삶의 흔적이 아름다운 바위 위의 소나무, 아기자기한 바위들의 합창과 탁 트인 바다와 잘 정비된 석모도 논의 모습. 해명산 정상에서의 멋진 점심. 눈썹바위의 신묘함과 세상을 굽어보는 마애보살의 인자함. 보문사 600년 향나무의 향과 바위를 뚫어 만든 석실. 그리고 맛있는 보문사 동동주와 쑥 부침. 강화도 밴댕이 모듬까지 우리 부부의 부활절은 그렇게 많은 자연의 선물과 추억을 만들며 지나갔다.
2011년 4월 24일 부활절에 강화 석모도 해명산 낙가산을 산행하고
글 : 하늘바다 여운종 사진 : 가을햇살 김은경
첫댓글 하늘바다님의 본명이 궁금합니다?
맨밑에 써 있잖아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