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16~17 / ’내 양을 먹이라’라고 하신 예수님
(요 21: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한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매일 혼내고 동네방네 욕을 하며 다녔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만 만나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무섭습니다.
며느리는 죽을 것 같아서 의원을 찾아갔습니다. 의원은 시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물었습니다. 인절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100일 동안 아침마다 인절미를 새로 해드리면 시어머니가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며느리는 기뻐서 말랑말랑한 인절미를 매일매일 만들어 시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저년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안 하던 짓을 다 하네’라고 하였습니다.
두 달을 해 드렸더니 시어머니는 감동하여 동네를 다니며 며느리 칭찬을 하며 다녔습니다.
석 달이 지나서 시어머니는 진심으로 며느리를 사랑하고 며느리를 칭찬하였답니다.
100일이 다가오니 며느리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제 정말 시어미니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며느리는 다시 의원을 찾아가서 시어머니가 죽지 않게 하는 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의원은 너를 미워하던 시어머니는 이미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아가페는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랑으로 베드로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고기를 많이 잡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베드로도 예수님을 그 사랑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사랑의 고백을 들으신 후에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표시로 예수님의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양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떡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세가 되면 밥이 없어 주림이 아닙니다. 물이 없어 갈증 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근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생수를 마시지 못하는 갈증이 옵니다.
베드로는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생수를 마시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랑으로 떡도 먹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의 양이 있고 예수님의 양이 아닌 자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6~27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양이 아닌 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양이 아니요. 염소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예수님의 양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양이 아닌 자를 먹일 필요는 없습니다.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자를 먹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 순종하는 자들을 골라서 먹여야 합니다.
우리는 양들이 나의 양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양이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먹여야 합니다. 베드로의 양을 돌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양을 돌보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양을 돌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양은 절대적으로 보살핌이 필요한 양입니다. 어머니가 먼 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기를 놓고 가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아이를 맡기고 갑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양들은 말 그대로 양입니다. 그들은 연약합니다. 무지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죄와 사망 권세와 싸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어린 양들을 책임감으로 먹여야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후에 예수님은 두 번째와 세 번째로 시몬에게 물으셨습니다.
16~17 예수님은 두 번째로, 세 번째로 다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이 이렇게 반복하여 물으신 것은 다시 생각해 보고 마음 깊은 곳에서 대답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 번째 물으실 때 베드로는 근심하였습니다.
다른 성경에는 불안하다고도 나오고 슬펐다고도 나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슬펐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여서 못 믿으시는 것이 아닌가 근심하였습니다. 또다시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도 밀려왔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렇게 근심하는 것을 알면서도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우리에게 물으신다면 네가 나를 사랑했느냐일 것입니다.
헌금을 얼마나 했는가? 주일날 빠진 날은 몇 번인가 이런 질문이 아닙니다.
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는가? 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한 가지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십계명에서 네 가지 계명은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는 계명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살기를 원하고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