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공연] 글로벌 문화 현장
피카소·자코메티…
'神의 손'에 경의를 표하다
"- 佛 그랑팔레 '로댕 100주기 전'
로댕의 '걷고 있는 남자' 옆에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 배치…
원작과 후대 작품 비교하는 재미, 마티스·클림트 등 거장 총출동
이 향연(饗宴), 100년 뒤에나 다시 맛볼 수 있을까.
현대 조각의 아버지 오귀스트 로댕(1840~1917) 사망 100주년을 맞아 20세기 미술사를 장식한 거장들이 총출동했다. 피카소, 마티스, 클림트를 비롯해 브란쿠시, 자코메티, 요제프 보이스까지 면면이 화려하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오직 하나. 건축물 장식에 불과했던 조각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로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다.
지난 22일(현지 시각) 파리 그랑팔레에서 개막한 로댕 100주기 전시에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과 이를 변주한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사람 물건 제로(Volk Ding Zero)'가 나란히 선보였다. 조각을 신화와 성서의 영역에서 인간의 삶으로 데려온 로댕식 표현주의가 후대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만끽할 수 있는 전시다. /EPA 연합뉴스 |
지난 22일 오전 9시 프랑스 파리. '로댕 100주기 전시(Rodin:The Centennial Exhibition)'를 보기 위해 그랑팔레 입구엔 개막 한 시간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사후 100주년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전시가 열리지만 그랑팔레는 특별하다. 로댕미술관과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이 공동 주최하는 최대 규모 전시로 로댕은 물론 그에게서 영향받은 예술가들의 걸작 200여점을 망라한다.
◇피카소, 자코메티 그리고 요제프 보이스
센강에서 부는 찬바람을 한 시간 넘게 맞은 보람은 적지 않았다. 첫 전시실부터 관람객은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몰라 잠시 숨을 골랐다. 왼쪽엔 '세례 요한', 정면엔 '생각하는 사람', 오른쪽엔 '칼레의 시민'이 우뚝 섰다. 걸작 행진은 '지옥의 문' '대성당'에 이어 한때 '비대한 괴물'로 조롱받았던 '발자크' 석고상으로 이어진다.
(왼쪽 사진)로댕의‘걷고 있는 남자’(오른쪽)와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 (오른쪽 사진)로댕의‘잠’(오른쪽), 브란쿠시의‘잠’. 콘스탄틴 브란쿠시는 조수가 되어 달라는 로댕의 요청에“큰 나무 아래에선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며 거절한 일화로 유명한 루마니아 작가다. /김윤덕 기자 |
그러나 이번 전시의 백미는 따로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배치한 빌헬름 렘부르크의 '애도하는 사람'과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사람 물건 제로(Volk Ding Zero)'를 비교하며 음미하는 맛이다. 원작과 후대 작품들의 화려한 '랑데부'는 전시장 곳곳에서 이뤄진다. 두 팔을 번쩍 든 채 절규하는 로댕의 '탕아'는 자드킨의 조각상 '파괴된 도시'와 더불어 게오르그 콜베의 '가을', 렘부르크의 '여인'과 일렬로 배치돼 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또한 로댕의 후예다. 허벅지 근육 힘차게 꿈틀대는 로댕의 '걷고 있는 남자' 옆에 휘청휘청 말라 비틀어진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이 극한 대조를 이루며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전위예술가 요제프 보이스도 로댕과 하모니를 이뤘다. 로댕이 석고로 빚은 '발자크의 실내복' 옆에 보이스의 낡고 헐렁한 '펠트 양복'이 나란히 걸린 모습은 73년 세월을 관통하는 묵직한 감동을 자아낸다. 조각을 신화와 성서의 영역에서 인간의 삶으로 데려온 로댕식 표현주의가 후대 작가들에 의해 어떻게 변주되고 발전했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로댕의 '입맞춤', 브란쿠시의 '입맞춤'
사랑하는 여인을 번쩍 들어 올려 애무하는 로댕의‘나는 아름답다’. 관능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
"몸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했을 만큼 평생 누드 조각상을 고집했던 로댕은 '사랑'이라는 주제로 숱한 걸작을 발표했다. 대중에 널리 알려진 '입맞춤'을 필두로 남녀의 사랑을 관능적으로 표현한 조각상들이 모여 있는 방은 단연 인기다. 사랑하는 여인을 번쩍 들어 올려 애무하는 '나는 아름답다'는 소름 돋도록 달콤하고, 도망치는 연인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달아나는 사랑, 지나가는 꿈'은 육감적이면서도 애절하다. 로댕을 변주한 브란쿠시의 '입맞춤' 앞에선 미소 짓게 된다. 로댕의 입맞춤이 구상 조각의 정수라면, 브란쿠시의 입맞춤은 사각 돌덩어리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표현으로 키스하는 남녀를 포착한 또 다른 명작이다.
로댕의 드로잉을 대거 감상할 수 있는 건 100주년 전시의 또 다른 별미다. 일명 '블랙 드로잉'이라 불린 로댕의 누드 드로잉은 "에드가르 드가를 능가한다"는 평을 받을 만큼 단순하고도 에로틱한 선으로 유명하다. 드로잉 방에는 피카소, 클림트, 실레, 콜비츠 등 로댕과 교류했거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누드 드로잉도 함께 전시돼 눈을 호사시킨다.
한때 로댕의 비서로 일했던 시인 릴케는 파리 근교 뫼동의 로댕 작업실을 이렇게 묘사했다. "수천 점 작품 사이를 거닐다 보면 창조주의 두 손에로 이끌리게 된다." 그랑팔레는 지금 신(神)의 숨결로 가득하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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