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을 뚫고 '인천 출입국 외국인청'에 도착했어요. 어제와 달리 쪽문 하나만 오픈해놓고 당번 병 도 한 명뿐입니다. 오늘 볼일은 불법체류자로 추방 명령을 받은 아이에게 여권-비행기 삯(500.000)-캐리어 백-쌕 팩을 전달하는 업무입니다. 현금은 불가, 월요일에 다시 와서 전하라고 해서 욕 나올 뻔했지만 가방에 넣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를 보았어요. 당번병이 알바라 어리바리해서 영 맘에 들지 않았지만 짐마저 안 받는다고 할까 봐서 워워.
-
단속된 불법체류자들은 경찰 혹은 출입국 관리 팀에서 직접 체포/인계를 통해 보호시설에 감금됩니다. 교도소처럼 절차를 거처 수형복을 입고 시설(유치장)에 갇혀 있는데 거기 있으면 철학부터 때늦은 후회, 복수 등등 오만 생각이 든다는 걸 아는 사람만 알 것입니다. 윤 대통령 부부가 감옥에서 더위와 싸울 것이고 자괴감도 들 것입니다. 잘잘못을 떠나 강제 구인이나 창피주기식 복수는 하수들이 하는 짓입니다. 제발 그먼 멈추시라. 똑같이 했던 그대로 복수할 것입니다. C8!
-
아무리 빨라도 내년 총선까지는 징역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열이 형은 김진홍 목사가 친필 사인해 준 성경 1독을 강추합니다. 물론 '반야 심경'도 괜찮고 '차라투스트라'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내가 송산에서 미결 살 때 6개월 동안 일간지 7개-매일 성경-공격적인 글쓰기-상실의 시대 등등 100 여권의 책을 읽었고, 옥중일기 2권을 기록해서 출소했습니다. "이/민주당 vs 윤/국 힘'의 전반전은 꾹 힘의 참패입니다. 절치부심-와신상담하시라. 고난의 때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후반전을 좌우할 것입니다.
-
2025' 아시아프 참석을 위해 서울역에 1시 반쯤 진입했는데 롯데마트-주차장 코스를 인간 바리케이드를 쳐놓아서 주차장까지 진입하는 데 무던히 애를 먹었지만 내가 누굽니까? 옥탑에 적토마를 매어놓고 릴랙스하게 옛 서울역을 향해 걸어갔어요. 마이크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성조기/태극기가 펄럭거리는 것이 오른손 집회인가 봅니다. "주체 측이 누굽니까?" "기독교 단체에요. 왜요?" 서울역 역사 1-2층을 아시아프가 몽땅 전세를 낸 걸 보니 빵빵한 후원(LG-조선일보) 덕에 규모도 역대급입니다.
-
들려오는 노랫소리만 들어도 진보인지 보수인지 다 압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농민가'-'아침 이슬'-'아시나요'가 나오면 진보인데,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겠노라"(충성가)나 "생사를 같이 했던 전우야/정말 그립구나 그리워/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정말 용감했던 전우다"(전우가 남긴 한 마디)가 들리면 보수 집회입니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이 대목에서 소 오름이 끼치면 당신은 보수 꼴통입니다. 예, 나는 보수 맞습니다.
-
1층은 전시장 빨간 벽돌과 암갈색 나무에 눈이 갔고 설치미술-조소가 좋아 보였어요. 2층에 올라서면서부터 거만+교만스럽게 작품 감상을 하였는데 다들 고만고만합디다. "김예주 작가 작품이 어디에 있나요?" "죄송해요. 알바라서 잘 몰라요" 커브 길에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힘찬 물결에 시선이 꽂힌 순간, 장원 이름이 작가 김예주 이름으로 적혀있습니다. 오! 감동! "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쾅"
-
개인적으로 '그 바다에 숫자들이 토할 것처럼' The sea of numbers(gasping)이 내 스타일입니다. 미술 시작 9년, 100호 작품을 예주가 했다니 대견합니다. <고작 두 음 only two notes> 형태-컬러-구성은 80점-메타포( D.C와 음계)는 100점을 주고 싶습니다. 엄마를 관찰하는 메주의 눈이 날카롭다 못해 잔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슬픈 공백의 느낌을 26살의 메주가 닮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포스트모더니즘의 씨앗은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세 사람의 도끼질에서 나왔습니다. 니체는 ‘신’을 무너뜨렸고, 프로이트는 ‘자아’를 흔들었으며, 마르크스는 ‘사회 구조’를 드러냈습니다. 신이 죽고, 주체가 무너지고, 구조가 폭로되었지만 해체의 주인공들은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창조자가 아닙니까? 포스트모던은 완전한 무질서가 아니라, 부서진 질서 위에서 머무는 시선입니다. 관찰자는 급히 질서를 세우지 않고. 부서진 파편이 어떻게 빛나는지를 오래 봅니다. 진짜 힘은 답보다 시선에 있습니다.
-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창조해야 하는 낯선 광야에 던져졌습니다. 프로이트는 ‘자아’를 겨냥했어요. 그는 인간의 이성적 주체가 실은 무의식의 거대한 빙산 위에 떠 있는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했지요. 인간은 생각보다 자유롭지 않고, 욕망의 흐름 속에서 끌려다니는 존재라는 진단은, 근대의 ‘합리적 인간상’을 흔들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사회 구조’를 겨냥했어요. 그는 역사를 계급 투쟁의 이야기로 읽으며, 인간의 사유와 가치관마저도 경제적 토대의 산물이라고 보았습니다.
-
개인의 사상과 자유는 단단한 이데올로기의 틀 속에서 길러진 식물과 같았습니다. 이 셋이 남긴 것은 해체의 연속이었어요. 신이 죽고, 주체가 무너지고, 사회 구조가 드러났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해체의 잔해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관찰자’의 자리에 서면, 흥미로운 장면이 보입니다. 니체는 신을 없앴지만, 그는 인간의 창조성을 신성한 위치에 올려놓았어요. 프로이트는 자아를 무너뜨렸지만, 무의식을 해석하는 분석가의 시선은 여전히 권위를 가졌습니다.
-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했지만, 그 역시 새로운 해방의 설계도를 제시했으니 해체의 주인공들이 사실은 또 다른 질서를 세우는 창조자였던 셈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래서 순수한 ‘무질서’라기보다, 부서진 질서 위에 서성이는 시선입니다. 관찰자는 판단하지 않고, 단지 보며, 흐름 속에 서 있습니다. 신 없는 세계, 무의식의 세계, 구조가 만든 세계 속에서, 우리는 완벽히 자유롭지도, 완벽히 구속되지도 않은 채, 그 사이를 오갑니다.
-
결국 관찰자의 역할은 무너진 것 위에서 새로운 질서를 성급히 세우기보다, 부서진 파편들이 어떻게 빛나는지를 오래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포스트모던의 진짜 힘은 ‘답’보다 ‘시선’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이미 ‘부서진 질서’ 위에 서 있다면, 당신은 그 파편 속에서 무엇을 오래 바라볼 것인가?
2025.8.16.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