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개 거시기를 잘라간 범인이 밝혀졌다.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로 경찰이 개입했을 리는 없고, 김씨 노인의 집안싸움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온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석병산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의 동해바다로 향한 가지가 남쪽으로는 망상해변으로 향하고 북쪽으로는 옥계해변으로 뻗어갔는데, 그 사이를 주수천과 북동천이 흐른다. 두 강 사이와 주변과 삼각주에 꽤 넓은 비옥한 농토가 형성되었다. 아마, 그 농토를 지키기 위한 해안 방풍림으로 옥계해수욕장의 해송림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 해송림은 강원도에서 보존림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대단히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그 주변 농토들이 드디어 거대한 탈바꿈을 시작하는 것이다. 한라 시멘트가 들어서고, 그것 때문에 오로지 시멘트를 싫어 나르기 위해 정부에서 옥계항을 만들어 한라시멘트에 장기 임대를 주었다가, 건설 경기가 후퇴하고 시멘트 사업이 불투명해지자, IMF 시절 프랑스 다국적 기업 라파즈에 넘어갔던 한라시멘트를 포스코가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스코가 주목한 것은, 옥계항을 한라시멘트처럼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고 그 주변의 대단히 넓은 공장용지와 동해 바닷물과 주수천과 북동천이라는 공업용수였던 것이다. 주수천은 이미 한라시멘트 때문에 오염이 되었는데, 포스코 때문에 그나마 깨끗하게 남아있던 북동천 마저 그 꼴이 나게 생긴 것이다. 玉谿라는 이름이 명실상부 이름값을 못하게 생긴 것이다. 포스코는 그곳에 첨단 산업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사실은 오염되지 않은 옥계 앞바다 바닷물을 공업용수에도 이용하고 그것이 또한 그들이 필요한 신소재 마그네슘 제조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릉시에 넌지시 의견을 타진했을 것이고, 강릉시 입장에서는 그것은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생각하고 잽싸게 덥썩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강릉시에서는 포스코에서 공장을 건설하기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도록, 농지를 매입하고 공장을 짓기 위한 기반시설을 마련하게 된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 소식이 언론에 알려지자 농민들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배추를 사들이기도 하고 땅을 빌려 배추를 심기도 하는, 그곳에 땅을 가지고 있는 곽씨도 그 소식을 듣고 안절부절하였다. 당장 그 힘든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고, 당장 목돈이 생긴데서야. 농민들로서는 지겨운 농사일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행복감에 젖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부터다. 마을에 고급 승용차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하더니 땅 값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헌화로에 산책을 나갔다가 땅값이 얼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곤 했다. 조용하던 동네에 작은 파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파문의 징조는 금진항 사람들에게서 먼저 일어나기 시작했다.
금진항에서 총대를 했던 구두쇠 김씨 집안에 형제끼리 난리가 난 것이다. 총대라는 제도는 어촌계가 있기 전에 어촌의 자생 조직으로, 배를 가진 선주들을 총대라고 불렀고, 과거에는 어촌의 대부분의 일들을 총대 회의에서 결정을 했다. 과거 가난한 어촌에서 배를 가졌다는 것은 그 마을 유지에 다름 아니었다. 구두쇠 김씨는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대부분의 선주들은 돈을 벌어서, 앞 묵호 색시집 아가씨들 치마폭에 던졌거나 노름판에서 탕진을 했는데, 김씨 노인은 계집질도 안하고 노름질도 하지 않고 돈을 모아서 금진리 벌판의 농토를 사들인 것이다. 그래서 쉰 살이 넘어서는 배를 팔아치우고 농사를 지었다. 그 땅 값이 폭등을 하자, 김씨 노인네 두 형제가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묵호에서 장사를 하던 맏아들과 포항에서 작은 공장에 다니던 둘째 아들이 뻔질나게 금진항에 드나들더니, 옥계벌판 땅 주인들 중에 제일 먼저 김씨의 땅이 처분이 된 것이다. 그 돈이 문제가 된 것이다. 장사를 하다 빚을 진 맏아들과 작은 공장이지만 착실하게 봉급쟁이로 푼푼히 아껴 작은 아파트라도 장만한 둘째 아들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급한 것은 첫째 아들이 저지른 빚이 문제였다. 그런데 그 빚을 갚고 나면 둘째 아들에게 돌아갈 돈이 얼마 안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첫째 아들은 그 동안 수차례에 걸쳐서 김씨 노인의 땅을 팔아서 몇 번의 사업을 말아먹었다. 그것 때문에 둘째 아들이 더욱 울화통이 터진 것이다. 첫째 아들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금진항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구두쇠 김씨를 구슬려서 땅을 팔아왔던 것이다. 아들 싸움이 급기야는 며느리 싸움으로 번졌다. 공장일이 바쁜 둘째 아들을 대신해서 포항여자인 둘째 며느리는 친정에 아이들을 까지 맡겨놓고 금진항에 아예 눌러 앉아 버렸다. 시아버지를 닦달하던 둘째 며느리는 그 동안 첫째 아들이 저지른 비리를 하나하나 밝혀내기에 이른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물개 거시기 사건인 것이다.
구두쇠 김씨는 옥계면내에 소실을 하나 두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젊을 때부터 착실하게 돈을 벌면서 한 눈 한번 팔지 않았지만, 늙어서 돈을 벌어놓고 보니 주변에 아무 소용도 없었다. 아들놈들은 뿔뿔히 흩어져 자기 살 궁리만 하고, 그나마 같이 사는 마누라는 당뇨병 합병증으로 다리가 퉁퉁 붇고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맏아들의 소개로 옥계면내에서 혼자 살고 있는 벙어리 여편네를 방 하나 얻어주고 살게 된 것이다. 맏아들이 구두쇠 김씨의 땅을 팔아 사업을 마구 벌일 수 있었던 이유도 아버지의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재주였는지도 몰랐다.
하여간 둘째 마누라는, 첫째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야밤에 어판장을 습격해서 물개 거시기를 잘라 아버지에게 줬다는, 확실한 증거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입방정으로 소문은 좁아빠진 금진항에 순식간에 퍼졌고, 산 위 군대 연대장에게 선금 이 백 만원을 미리 받았다가, 거시기 없는 물개를 팔지도 못하고 그 돈을 도로 물려준 억울한 정치망 송사장은, 김씨네 집으로 들이닥쳤다. 송사장도 그 동안 동네 사람과 같이 영식을 의심했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가슴앓이만 했지, 영식에게 대놓고 따지지는 못했던 것이다. 아들 싸움이 며느리 싸움으로 그것이 동네 싸움으로 번질 징조가 보였다. 그 동안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쉬쉬하던 영식이는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 역시 영식을 의심은 했으나 평소 영식의 품성으로 보아 남의 것을 손 댈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영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증거가 많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물개 거시기가 없어진 날 새벽에 영식이 사라졌다는 것이고, 게다가 영식의 거시기가 거시기 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너무나 자명한 증거였던 셈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동네사람들은 영식의 품성에 대해 너무나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미안하네. 영식이.......”
“뭐가.......”
“그거 있잖아. 내가 자네를 의심해서....... 그때 자네가 새벽에 없어지지만 않았어도......”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나........”
“그래도 그렇지 내가 자네를 의심하다니.......평소의 자네를 잘 알고 있으면서.......”
영식은 나보다 서 너 살 위지만 자주 만나 술자리도 하고 친하게 지내다보니 말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보다, 자네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는가........훈춘에 갔다면서.......”
“응, 다시 한국에 왔어.........시집 갔어.......”
“뭐, 시집? 왜?” 딸 따라서 중국 갔었잖아.“
“딸 때문에 다시 한국 와서 돈 때문에 돈 많은 노인네에게 가버렸어.”
“그 놈의 돈이 뭔지........하여간 다들 잘 살아야 하는데........”
영식은 금진항에서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사이다. 그래서 가끔 술자리에서 그녀에 대해 영식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런 나를 영식은 많이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얼마 전에 그 여자 집에 갔었네........”
“시집 갔다면서........왜?”
“그냥....... 가봤지.”
“................”
문득, 영식에게 OK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그 여자 집 이야기를, 그만 하고 말았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구두쇠 김씨 노인네가 벙어리 여자를 소실로 얻은 사실 때문에, 돈 많은 노인네에게 팔려간 그녀가 생각나게 되어서였다. 영식은 OK길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에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옥계 OK길 북동 길 일부를 포장도로에서 마을길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다가, 그녀 집에서 나와서 산책을 하던, 피래산을 넘어서 북동 저수지를 끼고 가는 산 능선길은, 나의 제안이 받아들여졌지만, OK길이 그녀 집 앞으로 지나가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그래서 옥계면 사무소로 들어가지 않고 북동천을 따라서 사 오 백 미터 더 내려가다가 다리를 건너 다시 왕고개와 이어지는 산 능선을 넘어서 마을 농로를 지나서, 조순 총리 생가 옆으로 나오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내 바램과 달리 느닷없이 옥계면 사무소 앞으로 가더니 꺽어져서 북동천 보를 선택을 했다. 거기를 건너서 작은 언덕길을 오르면 바로 그녀 집 앞인 것이다.
송사장이 드디어 김씨 노인네와 첫째 아들을 절도죄로 고소하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당사자인 김씨 노인네와 첫째 아들과 송사장은 물론이고 비밀을 발설한 김씨 노인네 둘째 며느리를 비롯하여 동네 사람 여러 명이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에 갔다 왔다. 그런데, 갔다 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과연 물개 거시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재산상의 가치가 얼마나 달라지느냐에 이 사건의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결정짓는 것은 물개의 거시기가 의학적으로 과연 거시기에 효험이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아무래도 물개 거시기 절도 사건이 법정으로 날아간다면, 물개 거시기의 의학적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서 전문가라도 모셔야 할 입장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은 더 이상 진행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참고인 조사 중에서 산위 부대 연대장을 조사해야 했는데, 연대장이 벌써 전출을 가버렸고, 또 고위 장교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도저히 그런 일로 경찰에 출두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은 마지막에 유야무야 끝나게 되었고, 들리는 소문으로는 송사장이 연대장으로부터 돌려 준 이 백만원을 다시 받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송사장은 물개 거시기가 사라졌다고 해도 물개 값은 톡톡히 받은 셈이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에 힘을 입어 시아버지 앞에서 큰소리 탁탁 치던, 김씨 노인네의 둘째 며느리는, 물개 거시기의 비밀을 터뜨린 이유로, 동네에서 몹쓸 며느리로 찍혀서, 찍 소리도 못하고 포항으로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땅 판 돈은 고스란히 첫째 아들에게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물개 거시기의 효험은 의학적으로는 밝혀질 수 없었지만, 그것이 사실일 거라고 동네 사람들이 믿을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그 사건이 나고 반 년정도 후에, 김씨 노인네 소실인 벙어리 여자가 임신을 한 것이다.
첫댓글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