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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분규에 시달리는 한국경제의 돌파구로 북방정책 추진하여 새로운 活路를 열겠다." |
趙甲濟 |
1989년 11~12월 東歐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는 가운데 서독, 영국, 헝가리, 프랑스를 방문, 정상회담을 갖고 귀국길에 오른 盧泰愚 대통령은 12월4일 새벽, 특별기가 미국의 시애틀 공항을 이륙하자 기자들을 불러 20분간 간담회를 가졌다. 질문은 거의가 그를 기다리는 5공 청산 문제였다. 대통령은 내키지 않는 대답을 해야 했다. 마지막에 그는 북방정책의 앞날을 전망하였다. “북방정책의 출발은 올림픽이었어요. 올림픽 때 서울에 와 본 공산국가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20~30년만에 이런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이야말로 모델 케이스다 해서, 결국 오늘의 헝가리, 폴란드, 유고 등과 이 같은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 경제가 지금 노사분규, 환율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많아요. 이와 관련하여 무슨 돌파구가 없겠는가 하고 생각해보면 바로 북방정책이 그 돌파구가 될 수 있으리라고 느껴져요. 잘하면 북방정책을 통하여 우리 경제에 새로운 活力(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나 생각 됩니다.” 북방정책을 한국경제의 돌파구로 설정한 盧 대통령의 대전략은 근사하게 성공하였다. 1989년의 동구권 국가 수교, 1990년의 韓蘇 수교, 1991년의 유엔 남북한 동시 가입, 그리고 1992년의 韓中수교. 한국인의 활동공간이 북한만 뺀 지구 전체로 넓어졌다. 특히 韓中 수교는 한국경제의 돌파구이자 생명줄이 되었다. 韓中 수교 17년만에 韓中 무역액은 韓美, 韓日 무역액을 합친 것만큼 많아졌다. 국내적으론 민주화의 소용돌이, 국제적으론 공산권 붕괴라는 二重(이중)의 전환기를 맞아 盧泰愚 대통령이 國家(국가)대전략으로 추진한 북방정책의 혜택을 모든 한국인들이 보고 있지만 盧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는 매우 인색하다. 퇴임 후에 터진 비자금 사건 때문이다. 그는 또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처럼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해주는 세력을 육성하지 못하였다. 1989년의 격변기에 盧 대통령이 상대하였던 지도자들의 운명도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동서독 통일작업을 성공적으로 주도하였던 콜 독일 총리는 16년간 재직한 뒤 1998년에 물러났고 2002년에 政界에서 은퇴하였다. 은퇴 이전부터 기독교민주당의 비자금 사건에 휘말렸고 그 가운데서 부인이 身病(신병)을 비관, 자살하였다. 레이건 대통령도 말년에 치매로 고생하다가 죽었고, 착한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독일통일 과정에서 양보를 많이 한 여파로 실각하였으며, 대처 총리는 독일통일 직후 보수당내 권력투쟁에서 패배하여 총리직에서 밀려났고 지금은 치매를 앓고 있다. 미테랑은 퇴임한 지 1년 만에 암으로 죽었다. 盧泰愚(노태우) 전 대통령도 病床(병상)에 있는 날들이 많다. 그에 대한 평가는 當代(당대)에선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레이건, 콜, 고르바초프, 대처, 미테랑이 모두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인물에 대한 평가는 인물의 수준과 함께 국민들의 수준도 반영한다. 李承晩(이승만)과 金庾信(김유신) 같은 대인물의 위대성을 알아보는 국민들이 많아져야 나라도 위대해질 수 있다. 민주화의 실천, 서울올림픽, 북방정책, 주택 200만 호 건설, 영종도 공항-KTX 건설, 서해안 개발시대 개막 등 盧泰愚(노태우) 정부가 남긴 업적들이 최종적으로 그를 변호하게 될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조국은 연말까지 全斗煥(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증언을 둘러싸고 시끄럽다가 12월31일 전 대통령의 국회증언이 있었다. 이날 그를 향하여 명패를 던진 이가 盧武鉉(노무현) 의원이었다.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이 행동 하나로 그는 정치적으로 매장되었겠지만 12년 뒤 유권자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1989년 12월31일의 全斗煥 증언으로 과거문제를 역사의 章(장)으로 넘기는 데 합의하였던 金泳三(김영삼)씨는 대통령이 되어 궁지에 몰리자 소급입법으로 12ˑ12 사건, 5ˑ18 사건을 다시 수사하여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김대중 정권의 탄생에 카펫을 깔아주었다. 비자금 사건으로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집어넣고 있던 바로 그때 金泳三(김영삼) 정부가 일으킨 사건이 안기부 예산(혹은 안기부 예산으로 위장한 정치자금)을 선거자금으로 轉用(전용)하였다는 이른바 安風(안풍) 스캔들이었다. http://www.chogabje.com/ |
[ 2009-10-17, 17:10 ] 조회수 : 442 |
첫댓글 북방정책(개성공단) 파탄직전, 중국과의 북방정책 ... 기업은 망신창이 야반 도주가 늘어나는 판국,,공산당과 손잡기는 여기서 끝을 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