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횟수 96만 건, 즐겨찾기 등록 4만여 건, 페이머스지수 36만. 연예인 김혜수(http://www.cy world.com/claire0905)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6월15일자 통계다. 각종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드레스를 입을까’ 하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그에 대한 왜곡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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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연속극 <한강수타령>을 촬영할 때의 사진을 비롯해 거의 매일 올라오는 미니홈피의 포토 메뉴는 게시물당 수백여 개의 “퍼가요~♡”라는 짧은 답글이 달려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싸이의 인기 연예인 순위에는 여배우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깨끗한 이미지로 사랑받는,‘안티(거부감)’가 전혀 없다고 알려진 배우 조승우(http://www.cyworld.com/ edward80). 그와 <올드보이>의 히로인 강혜정의 공개 연애가 처음 밝혀진 것도 싸이월드에서였다.
조승우가 직접 운영하는 미니홈피에 누군가 처남이라는 이름으로 일촌평을 남겼고, 이를 호기심 있게 본 네티즌이 링크를 따라가 강혜정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런 가십은 그야말로 진부한 이들의 연예계 뒷이야기일 뿐이다. 보이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가 추석 때 외갓집 강아지와 찍은 사진은 스크랩 수만도 3만3,421건, 답글은 5,800여 개에 달한다. 5,000여 개의 답글이 달린 게시물을 한번 읽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요즘 조승우는 ‘지구 끝에서도 함께하는 사이 되기’라는 제목의 싸이월드CF 미니홈피(http://www.cyworld. com/cycf)를 통해 또 다른 그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싸이월드는 ‘국민 놀이터’
이렇듯 싸이월드는 멀게만 느껴졌던 연예인들조차 가까이 느끼게 만들고 있으며, 넓고 넓은 우리네 세상을 아주 좁은 공간, 옆집에 사는 친근한 이웃으로 바꿔 놓고 있다. 클릭 한 번이면 옮겨갈 수 있는 친구들. 싸이의 모든 친구들은 바로 이런 ‘원 클릭’으로 맺어져 있다. “스킨 잘 받았어. 선물 고마워.” “뭘 그 정도 가지고…. 이따가 싸이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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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볼 때 국민 4명 중 한 명은 하고 있다는 싸이질. 이제 연예인 아무개가 싸이월드에 미니홈피를 마련했다는 것은 더 이상 화제가 되지 못한다. 개점휴업 상태의 미니홈피는 오히려 망신스러울 뿐이다. 얼마나 잘 운영하는지, 팬들과 일촌들이 찾아와 답글을 달고 스크랩을 해 가는지, 구체적이고도 실증적 자료만이 주목받을 뿐이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혹은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의 능력이나 역할 못지않게 인간적인 면을 높이 평가하는 국민이 많다는 점은 싸이를 감추어진 인간미를 보는 장으로 만든 동시에 진정한 의미의 ‘인기’를 평가하는 공간으로도 바꾸어 놓고 있다.
이렇듯 이 땅의 거의 모든 국민이 즐기는 인터넷의 중심 싸이월드는 인기만큼이나 수많은 신조어를 만들며 한국의 디지털 문화를 선도해 왔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꾸미거나 일촌들의 미니홈피를 방문하는 행위를 말하는 ‘싸이질’, 미니홈피와 싸이월드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인 ‘싸이홀릭’은 이미 표준용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그런가 하면 싸이월드에서 사용하는 사이버 머니인 도토리는 그간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사이버 머니를 현실로 이끌어 냈다.
사이버 공간의 또 다른 나를 의미하는 아바타 ‘미니미’는 멋지게 꾸민 ‘미니룸’이 있어야만 빛을 발하는 싸이월드의 또 다른 세계!이 같은 싸이월드에 대한 국민적 성원은 2004년을 정점으로 현재는 다소 꺾인 양상이지만, 그렇다고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이미 중국·일본·미국에서도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그대로 베낀 서비스가 등장했는가 하면, 국내에서 싸이월드를 운영 중인 SK커뮤니케이션즈는 중국과 일본 진출을 선언하며 국내의 인기를 해외로 보급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제 남은 일은 싸이월드 서비스가 국내에서의 뜨거운 반응처럼 외국으로도 보급될 수 있을지, 그래서 디지털 한류열풍의 주역이 될지 지켜보는 것뿐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미니홈피로
그렇다면 이렇게 싸이월드와 미니홈피가 경제적 성공을 넘어 국민적 디지털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싸이월드에 대한 분석은 성공의 그늘에 가려 다소 지지부진한 편이다. 오히려 올해의 베스트 상품이 되면서 경제적으로만 읽혀졌기에 ‘모두 하는 싸이, 이제는 접자’는 사용자들의 반발을 가져오기도 했고,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신생아 희롱 사진을 찍었다는 간호조무사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키자, ‘진짜 싸이시대는 막을 내렸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싸이월드가 가져온 반향에 비하면 지극히 피상적이며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싸이를 읽어야 제대로 된 디지털 문화와 경제, 달라진 세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답 찾기는 계속돼야 한다. “우리 스타나 한 판 하고 갈까?”“아냐. 지금 붙들면 나 또 밤새워. 나 그러면 회사에서 잘려.”우리 젊은이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스타크래프트’. 미니홈피의 인기를 이해하려면 IMF 외환위기 시절로 잠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국민게임으로 사랑받으며 정보통신시장을 키워가던 몇 년 전,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지금의 싸이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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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단맛에 빠진 일부는 생업을 팽개치고 스타크래프트에만 매달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모든 국민이 패배감을 맛보던 외환위기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같은 스타크래프트 광풍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임요환 같은 스타 플레이어의 등장과 억대 연봉의 프로 게이머도 한몫했고, 짧은 유행으로 끝나지 않은 채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리니지’ ‘뮤’ 등으로 이어지며 계속되고 있고, 그 결과 대한민국 20~30대 남성 가운데 온라인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고 하면 유행에 뒤진 사람 취급받는 것이 요즘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소외된 계층이 있었으니, 이들은 상대적으로 기술에 어둡고, 복잡한 테크닉을 익히기도 싫어하는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물론 온라인 게임을 사랑하는 맹렬 여성도 적지 않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했을 뿐이다. 엄밀히 말해 이들은 온라인 게임에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뿐, 디지털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언론에서는 ‘남성들은 온라인 게임, 여성들은 인터넷 쇼핑에 열을 올린다’는 식으로 보도하며 분위기를 몰고 나갔지만, 게임은 매일 할 수 있어도 쇼핑은 그럴 수 없는 노릇이고 보면 이들 여성의 인터넷 사용은 고작해야 커뮤니티에 머무르는 정도였다.
하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티도 세분화·차별화를 통해 기능을 부여하다 보니 ‘커뮤니티=커뮤니케이션의 장’이라는 공식은 내버려둔 채 정보성을 높이는 데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며칠 자리를 비웠다 들어오면 분위기가 바뀌어 있거나, 뭔가 큰 부담과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만이 높이 평가받는 남성 위주의 우리네 커뮤니티 문화는 여성을 배려할 만한 여유도 또 방법도 알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는 무언가 여성을 배려한 서비스를 기대하는 대기수요를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예쁘면 다 용서된다
이즈음 싸이월드가 미니홈피를 선보였다. 인맥관리라는 비즈니스 모델로 시작한 싸이의 ‘일촌 맺기’는 벤처 1세대 기업의 작품이라는 제법 오래된 역사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후발 사업 주자와의 차별화 실패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미니홈피의 개설과 함께 상황은 일순간에 역전되었다. 싸이를 처음 접한 여성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시대적 코드 때문일까? 모처럼 여성을 타깃으로 한 서비스가 등장했기 때문일까?
싸이월드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그간의 대기수요를 빠르게 흡수해 나갔다. ‘예쁘다’ ‘마치 소녀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는 초창기 고객의 반응은 단순히 말뿐만이 아니었다. 현실적인 지출로도 이어졌다. 개당 100원이면 살 수 있는 도토리는 500원, 2,500원이라는 현금 단위를 잊게 만들었다. 그저 도토리 다섯 개, 스물다섯 개씩으로 인식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템을 사고 스킨을 사게 만들었다.
이론으로는 전부터 존재했지만, 알 듯 말 듯한 개념이었을 뿐인 아바타와 아이템, 사이버 머니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등장으로 생명력을 얻었다. 작고 앙증맞은 나를 만들기 위해 미니미 만들기에 몰두했던 네티즌들은 텅 빈 방에 홀로 세워져 있는 또 다른 나를 가여워하며 방 꾸미기에 돌입했고, 도토리는 엄청나게 팔려나갔다. ‘몇만 원짜리 선물을 사줘도 반응이 시큰둥하던 애인에게 도토리 100개만 선물하면 두고두고 사랑받는’ 아이로니컬한 현상은 이 같은 싸이의 높은 인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니홈피 꾸미기가 혼자만의 게임이었다면 지금처럼 인기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조금만 바뀌어도 금방 티가 나는 구성, 배경음악을 선별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바꾸어야만 하는 불편함은 오히려 사용자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비결로 작용했고, 친구의 미니룸에서 같이 사진을 찍는-엄밀히 말하면 내 아바타가 포함된 화면 저장을 말한다-기능 등을 통해 가상의 공간이 현실 못지않은 교류의 장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입하면 무조건 해당 아이디로 홈페이지 주소를 부여하던 방식과 달리, 미니홈피는 사용자가 미니홈피 이름부터 선택이 가능한 개방형 시스템을 채택했다. 게다가 언제든지 변경 가능한 스킨과 아이템의 사용까지 스스로 결정하게 한 즐거움은 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있는 놀이였다.
‘아이러브스쿨’ ‘디시인사이드’ 그리고 싸이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한창 인기를 끌던 무렵에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러브송을 부르는 모습의 스킨이 등장했고, 재빠르게 박신양 버전의 <사랑해도 될까요>가 나오는 등의 미니홈피 변신술은 딱히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감각과 약간의 비용을 투자할 생각이 있다면 최고의 방을 꾸밀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만든 작품은 친구에게 감탄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온 국민의 싸이질은 바로 이런 다양한 상승효과를 불러오며 탄탄대로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싸이는 개인 홈페이지라고 보아야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본다면 잘 구분된 커뮤니티와 같다.
커뮤니티가 몇몇 메뉴 게시판에서 차례로 글을 읽는 형태라면, 싸이는 일촌 ‘파도타기’를 통해 다른 홈페이지에 오른 게시물을 읽는 형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렇듯 변형된 개인 ‘홈피’+ 커뮤니티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싸이월드만의 독특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단언컨대 이런 발전은 기획 주체들도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간단하게 커뮤니티의 변천사를 짚어보도록 하자. 국내 최초의 커뮤니티는 아니지만, 가장 단기간에 많은 사랑을 받은 커뮤니티는 ‘아이러브스쿨(http://www. iloveschool.co.kr)’이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대학·군대에 이르기까지 동창생을 만나게 해 주는 역할을 한 아이러브스쿨은 1세대 커뮤니티의 대표 격으로, 오프라인의 연계를 온라인으로 옮겨 주었다. 때문에 아이러브스쿨이 사랑받던 시기에는 저녁에 대형 음식점 예약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임이 많았다.
온라인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궁금한 서로의 얼굴을 찾아 삼삼오오 동창회를 열었고, 이는 한동안 계속되는 듯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헤어졌던 친구들의 만남이 가져다준 즐거움도 잠시뿐, 단절로 인한 대화 소재의 고갈과 예상하지 못했던 부탁·청탁 등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불씨는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2세대 커뮤니티는 태생부터 달랐다.
좋아하는 것은 같지만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마니아들 간의 모임으로 생겨난 것이다. 김유식의 ‘디시인사이드(http:// www.dcinside.com)’가 그 대표적 예로, 디지털 카메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신제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정보도 얻어가는 모습으로 기능 중심의 커뮤니티가 발전해 나갔다. 주제를 두고 모인 2세대 커뮤니티는 이전과 다르게 불특정 다수가 함께한다는 점에서 혈연·지연·학연에 뿌리를 두지 않은 차별화된 모임으로 낯선 사람들 간의 교류가 갖는 흥미진진함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1세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문제점도 드러났다.
익명성에 토대를 둔 커뮤니티에서는 일상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언어폭력이 자행되는가 하면, 누군가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비난을 퍼붓는 색다른 놀이(?)마저 생겨났다. 게다가 일부 강압적인 운영진과 통제 위주의 운영 규칙에 반발하는 회원이 등장했다.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동호회 활동에 회의를 느끼는 네티즌이 점차 늘어났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한동안 커뮤니티를 유지시키기도 했지만, 인터넷에 쓸 만한 정보의 양이 늘면서 이들은 더 이상 커뮤니티에 매달릴 이유가 없게 되었다.
이즈음 등장한 pe.kr의 개인 도메인은 동호회를 떠나 개인 홈페이지를 꾸미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홈페이지 만들기는 생각보다 복잡한 기술력이 요구되고 또 뛰어난 디자인 감각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기에 꾸준히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았다. 이로 인해 어렵게 만든 개인 홈페이지 역시 개점휴업 상태에 놓인 곳이 늘어났다. 이렇게 커뮤니티가 발전의 답보 상태를 보이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을 때쯤 미니홈피가 등장했다.
은은한 음악이 깔리고 순정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예쁘고 화사한 디자인, 이제까지의 홈페이지와 달리 작고 깔끔한 구성은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방명록을 통해 연계되는 일촌 메뉴는 홈페이지 주인과 일촌 관계를 설정한 사람들의 미니홈피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배려했다. 그 결과 파도타기는 복잡한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를 외울 필요 없이 가까운 이들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게 만들었고, 이렇게 뛰어난 디자인과 기능적 접근이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시작부터 성공은 보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다시 여성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여성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들여다볼 것이다. 요즘은 메트로 섹슈얼이 세계적 추세가 되면서 남성들 역시 거울 보기에 열을 올린다고 하지만, 여성과 비교할 수는 없다. 심리학자들은 여성이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이유 중에는 다른 여성과의 경쟁에서 뒤지기 싫다는 이유도 큰 몫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반응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오늘 먹은 점심, 스스로 찍은 내 귀여운 모습, 내가 사고 싶은 소품 등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그때그때 올리는 색다른 게시물 작성은 시작부터 경쾌했다. 또, 많은 생각을 하고 조심스레 글을 올려야 하는 여느 커뮤니티보다 부담없이 게시물을 작성할 수 있는 장점은 답글을 다는 사람들에게도 편안함을 가져왔다. “그냥 재미있잖아요? 누가 왔는지도 궁금하고….”
시간이 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아이템을 구입하고 미니룸을 꾸민다는 스튜어디스 A양(28)의 싸이를 하는 이유가 바로 ‘모범답안’이다. 게시물을 올리고, 누군가 답글을 쓰면 그 친구의 미니홈피를 찾아 게시물이나 방명록에 가볍게 몇 줄 적는다. 그야말로 거울 한 번 꺼내 괜찮은가 잠시 살펴보는 일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모두 같은 문으로 들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새 게시물을 살펴보는 대신, 각자에게 마련된 미니홈피로 접속해 살펴보고는 다른 이의 미니홈피로 파도타기를 하는 행동은 별다른 수고 없이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얘가 오랜만에 왔네. 또 뭐 샀다고 자랑인 모양인데 얼마나 잘 꾸며 놨는지 봐야지.’‘어? 이 친구도 미니홈피가 있었나? 내 이야기를 어떻게 해 놓았는지 한번 볼까?’궁금증과 약간의 시샘을 가진 채 찾아가 보면, 예상했던 모습 혹은 예상 밖의 멋진 모습에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는 다시 내 미니홈으로 돌아와 오늘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을 올리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초창기 미니홈피의 발전은 이렇게 여성 사용자들 간의 활발한 교류에 의해 진행되었다.
정보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그리고 친구와의 교류와 함께하는 즐거움도 제공하는 싸이의 특수성은 ‘친구 초대하기’로 구체화된다. 자신의 미니홈피로 찾아오도록 일촌으로 초대하는 것도, 또 에로틱·페이머스·프랜들리·카르마·카인드로 구성된 점수 매기기를 통해 사이버 공간의 나를 사랑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커뮤니티 아닌 커뮤니티
이런 흐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간 각종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남자친구들을 불러들이게 만들었다. 여자친구를 사귀려면 싸이에 멋진 미니홈피를 만들라는 이야기도 남자들 사이에 나오게 되면서 싸이는 다음 단계로 변화하게 된다.
자의 반 타의 반 싸이에 들어와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들을 통해 싸이는 여성들만의 전유물이라는 공식 역시 깨지게 되었다. 남성성을 강요당하며, 무겁고 강직하며 절대 울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교육받은 젊은 남성들의 감추어진 적응력이 돋보이면서 감수성과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맛보게 된 모두의 공간이 된 싸이는 이제 20~30대로 국한된 사용층마저 뛰어넘으며 10대에서 60대까지 사용하는 범국민적 서비스로 사랑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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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홈페이지에 누가 왔다갔나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파도타기로 몇몇 집을 돌고 나면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요즘 어떤 문제가 있으며 어떻게 즐기는지를 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 한몫한 것은 ‘펌’이다. 예전 같으면 사진을 찍고 현상해 나눠 주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찍은 친구의 미니홈피에 접속해 내가 나온 사진이 있다면 단추를 눌러 퍼오면 그만이다.
사진과 글에 대한 저작권 운운할 사이도 없이 괜찮은 글이나 사진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무분별하게 펌질을 당했고, 상업적 용도가 아니면 상관없지 않으냐는 적당한 관련 지식은 펀글 자체가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게 만들었다. 또 다른 문제는 직장에서 나타났다. 근무시간에 싸이월드 접속을 막아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논쟁이 뜨거워질 때쯤, 원년 싸이 멤버들은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을 하나 둘 느끼게 되었다.
일촌이 많아지면서 하룻밤에도 몇 시간씩 친지 방문을 해야 하고, 또 어렵게 멋진 글을 써 놓으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 퍼가는가 하면, 엄연히 실명제로 운영됨에도 다른 사람을 사칭하거나 악의로 자신을 모함하는 등의 ‘세상에 늘 있어 왔던 대인관계의 부작용’들이 하나 둘 싸이에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일부는 아예 싸이를 떠나기도 했고 ‘개인적 사정으로 미니홈피 문을 닫습니다’라는 글도 속속 등장하며 집을 버려둔 채 떠나는 이들도 나타났다.
열심히 싸이질을 하는 과정에서 그간 누적되었던 피로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싸이질을 하는 이중생활을 털어내려는 이들도 생겨났다. 계속된 경기침체로 ‘남들은 재테크도 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하루하루 살고 있는데, 나는 이게 뭐 하는 건가’ 하는 자조 섞인 반성도 한몫했음은 분명한 일이다.이런 사회적·구조적 변화는 탄탄하게만 보였던 싸이월드를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 조금씩 인상되던 아이템 가격과 ‘네이버’를 비롯한 ‘블로그’와 유사 개인 홈페이지의 등장으로 차별성을 잃어버리면서 매력이 반감됐고, 앞서 말했듯 2004년을 정점으로 싸이월드의 인기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반면, 진정한 의미의 개인 홈페이지로서의 싸이월드는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남들 하니 나도 해 보자는 류의 참여자들이 줄어들고, 일촌으로 인연은 맺었지만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엉터리 일촌은 정리되는 자연스러운 수순을 통해 진정한 싸이홀릭만이 살아있는 싸이를 이끌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커뮤니티로서의 기능보다 열심히 미니홈피를 꾸미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자신의 인맥을 관리하고 삶을 나누는 모습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자신과 실제 자신의 간극을 메우는 도구로 싸이를 사용하는 이들도 많다.
그 혹은 그녀 바로보기
어느 정도 연세가 드신 분들이라면 ‘일기장에 곱게 적어 자물쇠를 채워 보관할 내용’들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개되도록 올리는 일조차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 사적 내용이 이야기되고, 또 위로받고 이해되는 현상은 싸이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역할극 놀이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렇지만, 싸이세대는 다르다. 선생님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기를 썼던 경험 때문인 듯, 이들은 공개되면 좋을 것과 안될 것들을 잘 정리해 감정의 비상구로 싸이를 즐기기도 한다. 여섯 단계만 지나면 모두 아는 사람이라는 인간관계의 법칙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싸이는 이렇듯 희망과 꿈을 점차 잃어가는 우리 사회에 가녀린 빛으로 확고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적셔 주는 <내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김선아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방송사의 공식 홈페이지도 주목받고 있지만, 그의 미니홈피(http://cyworld.nate. com/ sunasdiary)는 “삼순이의 도발이 시작됐다 ^^”는 제목으로 옷을 갈아입고 팬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 정말 감사 드립니다…. 마지막 회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할께여….^^ 삼순이, 삼식이를 비롯한 전 배우 스태프 분들에게 따뜻한 응원 바래엽.
아자아자!”멋진 필모그래피가 가득한 멋있는 홈페이지보다 현재 촬영하는 작품, 과거 출연작들을 만들 때의 땀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김선아의 미니홈피는 ‘그저 웃기는 배우’가 아니라 열심히 하는 배우 김선아를 만나게 해 준다. 이렇듯 우리 시대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자리매김한 싸이는 다면적으로 분석해야 하며, 그 잠재력과 가능성은 어느 무엇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사용자의 피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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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초창기 싸이월드는 ‘툴은 제공하되 룰을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커뮤니티 기본론에 충실했기에, 이를 통해 사용자와 운영진이 모두 행복하고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보통신업계의 1년은 다른 업계의 10년에 해당할 만큼 바쁘게 변화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싸이월드가 얼마나 더 높은 인기를 누릴 수 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방송국 라디오 PD B씨는 미니홈피에 둥지를 튼 지 2년이다.
초창기에는 수많은 사람과의 낯선 만남, 직장 동료들과의 색다른 만남에 반가워하며 싸이질을 즐겼지만 요즘에는 예전에 비해 싸이를 하는 시간도 많이 줄었고, 느낌도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싸이를 완전히 떠날 생각은 없지만, 열정적으로 뛰어들었던 과거의 모습을 되찾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이는 일부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다수의 사용자가 공통으로 보이는 모습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비즈니스를 위해, 또 초창기 사용자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라도 고려해야 할 첫번째 사항은 ‘어떻게 사용자들의 누적된 피로감을 풀어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상당수의 사용자가 2~3년 정도 싸이질을 해 왔다. 처음 싸이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틈만 나면 모니터 앞으로 달려가 게시물을 작성하고 댓글을 달며 일촌을 넓혀 나갔지만, 쉼없이 달려온 사람들일수록 기운이 빠질 만한 시점이다.
빈집이 늘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 모른 척 짐짓 외면하고, 그저 국내외의 새로운 사용자들을 확보하는 것은 싸이를 이끌어온 초창기 원천을 저버리는 일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까지 한국의 벤처기업은 초창기에 제공하던 서비스가 성공하고 나면 성공을 이끌었던 힘은 외면한 채 그저 외형적 성장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성공해 사용자가 늘면 자금이 유입되고, 심할 경우 돈이 넘쳐나다 보니 이 돈으로 뭔가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도약 그리고 재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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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는 얼마 전 대폭적인 개편을 통해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형태로 변환을 꾀하고 있다. 또한 휴대전화와의 연계성을 높이고 국내 최대 사용자를 자랑하는 메신저 ‘네이트온’과의 연결을 강화해 클릭 한 번으로 미니홈피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사실 지금은 명실상부한 1위 자리를 지키는 싸이 역시 초창기에는 원하는 형태의 커뮤니티를 쉽게 만들 수 있는 ‘프리챌’에 밀려 쉽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프리챌이 유료화 논쟁을 겪으면서 그 틈새를 비집고 사용자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뒤집어 보면 싸이월드 역시 언제고 틈을 보이면 다른 사이트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는 말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싸이의 미래는 외부 환경 면에서도 다소 불투명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내부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는 형용준(현 쿠쿠커뮤니케이션 대표)과 이람(네이버C&C 유닛장)을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싸이월드의 일본 TF를 담당하고 있는 이동형 SK커뮤니케이션즈 상무가 회사를 매각하며 사실상 자리를 비웠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제까지와는 다른 철학과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싸이월드는 왜 떴을까?>의 저자인 <디지털타임스>의 채지형 기자는 책에서 싸이월드의 일곱 가지 성공 요인을 분석하며 “일터의 체온을 높여라! 회사에 꼭 놀러 오는 거 같아요”라는 말을 언급했다.
싸이월드의 성공 여부를 알고 싶다면 SK커뮤니케이션즈의 싸이월드팀을 찾아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현재 싸이월드를 이끌고 있는 유현오(http://www.cyworld.com/nateplus)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성격이 다른 네 개의 조직을 통합해 1위 자리를 고수해야 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싸이월드를 비즈니스 마인드에서 접근해 다른 형태로 변형할 수 있으리라는 점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도 하지만, 싸이에 대한 애정은 그가 쓴 사원 채용에 관한 글에서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기존의 개인면접이나 집단면접 등은 준비도, 논리력, 분석력, 의사소통능력, 조직적응력 등을 주로 판단했던 것 같다. 열정과 혁신, 창의성 등을 판단할 수 있도록 개발돼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아직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 방법으로 우리 회사는 이번에 미니홈피를 통한 자기표현 능력을 파악하기로 했다. 우리 회사의 주력 서비스인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얼마나 열정적으로 쓰고 있는가, 그 사용 방법이 얼마나 새롭고 창의적인가등을 파악해 다른 기준과 함께 채용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2005년 이후 싸이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해답 찾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월간중앙 2005년 06월 01일 356호 / 2005.07.04 12:41 입력 / 2005.07.04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