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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
(2021년 1월 10일/둘째 주일/오전 11시)
찬 송 (#415장)
묵 상 기 도 (묵도/시 1:1-3)
예 배 기 도
영 광 송 (#40장)
사 도 신 경 (신앙고백)
경 배 송 (#85장)
7. 헌 상 (#351장)
8. 찬 양 송 (#340장)
9. 말 씀 선 포 (창 11:1-9) : 성경봉독-목양기도-강설-기도
* 바벨탑 반역사건
10. 송 영 (#1장)
11, 주 기 도 문/언약적 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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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심기도 : 나라, 민족, 위정자/성도/교회
성경암송구절 : 롬 1:20
본문 : 창 11:1-9
제목 : 바벨탑 반역사건
중심내용 : 노아 때의 대홍수 심판 후, 새로운 인류의 후손들은 노아의 보존 언약에 따라 각 처에 흩어져 나름대로의 다양한 문화생활을 영위하며 살았다. 그러나 본질상 타락한 죄성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하지 못했다. 곧 강력한 힘의 통치를 기반으로 한 인간 정부의 표상인 바벨탑 축조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행위를 저질렀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언을 좇아 각처에 흩어져 점차 부족/도시국가의 형태를 띠며 살게 되었다.
명제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롬 3:28).
설교목적 : 죄의 관영으로 인한 노아 시대 대홍수 심판(창 7:11-12)에도 불구하고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한 새로운 인류는 타락한 죄성상 여전히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이었다(창 8:20-21). 바벨탑 축조사건은 대홍수 심판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죄악 된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배역 행위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선행을 통한 자력 구원은 본질상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사람의 죄악에 대해 물 심판 같은 물리적 방식으로 죗값을 묻지 않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창 8:21). 이는 죄의 문제를 언약의 방식 곧 여자의 후손언약(창 3:15)에 담긴 구속의 방식으로 해결해 주실 것에 대한 재천명의 성격을 띤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에 근거한다(롬 3:28). 우리가 받은 칭의의 근거는 무엇인가. 믿음?/행위?
I. 도입 : 신정 통치를 대적하는 인간 통치의 절정인 바벨탑 축조사건
노아의 대홍수 심판 이후 노아의 세 아들로 말미암아 생육하고 번성한 새로운 인류는 각 처에 흩어져 자신들에게 걸맞는 다양한 삶을 영위하며 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의와 사랑에 기초한 거룩한 신정 통치의 나라를 건설하기보다는 인간의 힘의 통치에 바탕을 둔 세계 정부를 세우는 일에 마음을 같이 하며 뜻을 모았다(창 11:1-4).
특별히 함의 아들 구스가 낳은 니므롯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복자(‘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창 10:9)로서 당시 시날 평지에 바벨을 중심으로 강력한 전체주의 도시국가를 건설한 최초의 군주가 된 자였다(창 10:9, 10-12). 이런 관점에서 시날 평지에 건설한 바벨탑(창 11:2)은 니므롯 왕조를 중심으로 당시 새로운 인류가 서로 연대하여 하나님의 신정 통치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배역 행위의 절정을 보여준다. 바벨탑 건축과 관련해 “......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3-4절)라는 말씀이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해 준다. 이는 하나님과 동일시하려는 인간의 극한 교만심과 자만심의 발로이며, 노아의 보존 언약에 약속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불순종하는 배역 행위가 성립된다.
이런 관점에서 바벨탑 배도 사건은 본질에서 선악과 금령에 대한 아담 부부의 불순종 사건(창 2:17, 3:1-6/인간의 지존 사상의 고취)과 동질성을 띤다고 하겠다. 결국 아담의 후손들과 노아로 인한 새로운 인류의 후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죄인의 신분(롬 3:10)으로서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의 방식을 통해서만 구속함을 받을 수 있음을 암묵적으로 시사해 준다(창 8:21). 범죄 한 인류에게 메시아 대망 사상을 담고 있는 여자의 후손언약을 맺어주심이 이런 사실에 근거한다(창 3:15).
Ⅱ. 전개 : 바벨탑 축조사건과 하나님의 개입(1-9절)
1. 바벨탑 축조사건에 담긴 배역 사상(1-4절)
노아 시대의 대홍수 심판 후 노아의 세 아들로 인한 새로운 인류는 괄목할 만한 생육과 번성을 가져온다(창 10장). 노아와 맺은 언약(창 9:1-2, 8-11절)에 근거해 인류를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언약적 열심이 신실히 성취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들은 이내 조상들의 범죄의 전철을 밟는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는 악한 죄성을 여전히 드러낸다. 당시 인류가 연대해서 축조한 바벨탑은 선악과 불순종 사건 이후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극치를 표상하는 대표적인 경우로 기록된다. 이런 맥락에서 선악과 미혹 사건 속에 담겼던 아담 부부에 대한 사단의 지존 사상의 고취(창 3:4-5)가 이번에는 바벨탑 축조사건을 통해 전 인류를 대상으로 확대돼 나타난 셈이다(창 11:4).
(1)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4절상) : 인간의 지존사상 고취
처음 인류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했다(창 11:1). 이들은 인류의 증가로 인해 보다 넓은 지역을 찾아 동방으로 이동했다. 마침내 시날 평지에 당도해 그곳에 정착할 뜻을 세운다. 그곳에 성(城)과 대(臺)를 쌓자고 공모한다(창 11:2-4). 고대 근동 지역에서 성은 자주 국방력을 갖춘 강력한 도시국가를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자주적 통치 국가를 세우자는 결의이다. 마치 아벨을 살해한 가인이 하나님의 신변보호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을 쌓아 하나님 의존을 외면했던 불순종의 처사와 동질성을 띤다(창 4:14-17). 한편 ‘대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결의는 다시는 대홍수 같은 물로 땅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정면으로 불신하는 처사일 뿐 아니라(창 9:11), 하나님의 도움 없이 자력 구원과 갱생의 길을 모색함으로써 하나님과 동등해 보려는 극한 지존 사상의 발로로 평가된다(창 3:5). 결과적으로 성을 쌓고 대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려는 바벨탑 축조사건은 인간의 자주 독립적인 삶의 특징을 반영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의존적인 관계를 스스로 거부하고 파기하는 반역행위를 표상할 뿐 아니라, 인본주의 사상의 고취와 인간 정부 수립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반(反)신국적 배도 행위인 셈이다.
(2) 우리의 이름을 내자(4절중)
특정인이 자기 이름을 과시하려는 태도는 대중을 상대로 자기의 업적을 자랑함으로써 자기 의와 영광을 구현하려는 이기적인 처사로 평가된다. 성을 쌓고 대를 하늘 꼭대기까지 닿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극한 지존 사상을 도모하려 했던 인간의 교만과 자만심의 극치는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을 대치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존귀하신 이름의 영광을 갈취하는 패역한 범죄를 저지르는 데까지 이른다. 하나님께 대한 영광과 존귀와 찬송이 의도적이고 고의적으로 거부되는 모습이다(삼상 15:12). 사실상 당시의 족보를 세밀하게 연구해 보면 바벨탑 건설 당시 대홍수 심판의 목격자인 노아를 비롯한 그의 자녀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창 10:22-25, 11:10-15).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인간의 죄성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스스로 반영할 수 없음을 재확인하게 된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적함으로 철저히 적대적인 관계를 지향할 뿐이다(롬 1:21-23, 3:10-12).
(3)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4절하)
성을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고 결의했던 당시 패역한 인류는 계속해서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단합한다(4절). 이는 노아의 보존 언약에 약속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문화적 사명(창 9:1-2)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배역 행위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와 사랑과 자율적 섬김으로 말미암는 거룩한 신정왕국인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이 땅 위에 막힘 없이 시행되기를 원하신다(마 6:9-13, 33, 4:17). 당시 인류는 이렇게 집단적으로 연합해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양상을 띠고 행동했다.
2. 하나님께서 바벨탑 건설 현장에 강림하심(5-6절)
바벨탑 사건을 통한 인간의 총체적인 반역과 배도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과 간섭하심으로 무산된다(창 11:7-8). 하나님께서는 성과 대를 쌓는 건축 상황을 살피려 현장에 강림하신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강림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편재성(무소부재)이 불완전하거나 제한적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강림이란 표현은 ‘보이는 방식의 하나님의 현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를 간섭하시고 중재하시기 위하여 역사하는 모습에 대해 신인동성동형론(의인화)적 관점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벨탑 건설 현장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교만한 인간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시사한다.
3. 언어의 혼잡을 통한 흩으심(7-9절)
바벨탑 건설 현장에 강림하신 하나님은 저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그 지역을 바벨이라 일컫게 된다(7-9절). 자연히 인류는 같은 방언을 따라서 지면에 널리 흩어진다. 성 쌓는 일도 자연스럽게 중단된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적 심판인 동시에 은혜의 배려이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당초에 하나님께서 언약하셨던 대로 노아의 후손들인 새로운 인류는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세상 가운데 널리 흩어져 살게 되었다. 이런 사실이 창 10장에 소개된 노아의 세 아들로 말미암는 다양한 민족과 국가의 출현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연 하나님은 역사를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가 되시며, 세상이 다 하나님께 속한 사실이 분명히 확인된다(출 19:5).
4. 창세기 10장과 11장의 상호 불가분의 관계성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
이 시점에서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의 구속사적인 의미를 살피는 가운데 한 가지 확인하고 넘어갈 사안이 제기된다. 창세기 10장에서 소개되고 있는 노아의 세 아들로 말미암는 인류의 생육과 번성과 땅에 충만함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한다면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의 결과로 말미암아야 한다. 따라서 창세기 10장은 이야기의 전개상 자연히 바벨탑 사건 후에 위치해야 한다.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노아의 후손들이 세상 도처에 흩어지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는 창세기 10:5, 20, 32절의 내용들이 이런 사실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해 준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러면 바벨탑 사건은 어느 시점에서 일어났단 말인가. 셈의 후손들의 생육과 번성을 소개하고 있는 기록에서 그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창 10:25). 본 절에서 세상이 나뉘었다는 기록은 근접 문맥 속에서 바벨탑 사건으로 말미암아 다양한 방언(언어)을 좇아 노아의 후손들이 각각의 처소로 흩어진 사실을 가리킨다(창 11:1-9).
그렇다면 연대기적 기록을 무시한 상기 두 장(창 10-11장)의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저자가 제시하려는 주된 메시지는 무엇일까. 첫째, 타락한 인류의 본성상 공동체적으로 추구하는 궁극적인 문화/문명적 활동의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적극 거스르는 반신국적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둘째, 노아의 대홍수 물 심판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한 인본주의를 지향함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하는 배역 행위에 대한 종말론적 심판은 불가피함을 시사해 준다(마 24:37-39, 눅 17:26-30). 셋째, 이상의 사실로 인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지 않고는 죄로부터 인간의 자력 구원은 절대 불가능함을 교훈한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창 8:21). 본문의 말씀은 메시아에 의한 구속사상을 담고 있는 여자의 후손언약의 궁극적 성취만이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해 하나님의 창조목적(창 1:28)을 이룰 수 있는 최선의 방도인 사실을 우회적으로 시사해 준다.
Ⅲ. 결론 : 바벨탑 축조사건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인간의 배역 행위를 표상한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 심판(창 7:11-12)에도 불구하고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한 새로운 인류는 타락한 죄성상 여전히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들이었다(창 8:20-21). 바벨탑 축조사건은 대홍수 심판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죄악 된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배역 행위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선행을 통한 자력 구원은 본질상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사람의 죄악에 대해 물 심판 같은 물리적 방식으로 죗값을 묻지 않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창 8:21, 9:11). 이는 죄의 문제를 언약의 방식 곧 여자의 후손언약(창 3:15)에 담긴 구속의 방식으로 해결해 주실 것에 대한 재천명의 성격을 띤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에 근거한다(롬 3:28). 그렇다면 우리의 칭의의 근거는 믿음인가/행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