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無門關> 발문을 쓴 안만安晩 거사와 이종理宗 황제에 대하여
<無門關>의 맨 처음에 있는 <표문> 의 첫 대목인
'紹定二年(1229년)'의 '紹定'은 이종 황제의 연호입니다.
한편 <無門關>의 맨 마지막에 있는, 안만安晩 거사가 쓴 발문에 나오는
'淳祐丙午순우병오(1246년)'의 '순우淳祐'도 역시 이종 황제의 연호입니다.
참고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일수록 연호를 자주 바꾸었다고 합니다.
한편 안만은 정청지鄭淸之( ?-1251)의 거사호입니다.
그는 과거 시험에 급제하였으며,
문학적인 재능이 뛰어난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었습니다.
남송 영종寧宗 황제 시절 승상이었던 사미원史彌遠은
훗날 이종理宗 황제가 되는 조여거趙與莒의 스승으로 정청지(안만)를 천거했습니다.
안만 거사는 황제의 스승으로서 당시 최고의 선사였던
무문혜개 선사가 편찬한 <무문관>의 3번째 중판(1246년)을 통해
날로 쇠락해가는 남송南宋의 국운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여거(이종황제)는 황제가 되고 얼마 안 되어
청루의 기생들까지 궁으로 들여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는 기록으로 알 수 있듯이
매우 무능한 황제였기 때문에,
<무문관>이 아니라 팔만대장경을 찍어낸다고 해도 국운이 쇠약해져 가는 것을
막기는 역부족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아이러니컬 하게도 남송이 멸망할 무렵
정치적 안전지대를 찾아 중국 임제종 선사들이 대거 일본으로 망명합니다.
이들과 일본유학파들이 함께 오늘날 24개의 선종 제파(임제종 21개파, 조동종 3개파)를
이루며 남송 시대의 사대부들(오늘날의 전문직 종사자들에 해당) 사이에 널리 유포된
간화선 전통을 보존 전개해 왔으며,
아울러 간화선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전 세계로 유포된 <무문관>은 일본의 유학승 각심이
무문혜개 선사 문하에서 인가를 받은 다음
직접 들고 일본으로 귀국한 데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끝으로 우리 모두 함께 이 점을 지혜롭게 통찰해,
한국선이니 중국선이니 일본선이니 피상적인 분별 행위는 그치고
앞으로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이 각각 지역적, 문화적 토양 속에 이어온
간화선 전통의 장점들을 잘 살려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법경 합장
첫댓글 하하하하하! 황제가 무애행을 하셨군요!
주지육림에 빠져 나라가 제대로 경영이 되겠습니까?
무문관 앞에는 가 보지도 못하고 망한 것이 슬프네요! 하하하하하하!
예~! 무문혜개 선사가 입적(1260)한지
19년만에(1279) 남송은 역사에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무문에 제자 무본각심(일본)이 일본에 전해 집니다!
많은 선사들 또한 일본으로 망명을 하지요!
한데, 승상 이었던 사미원史彌遠이
정권을 자기 맘대로 좌지 우지 하려고, 계략적 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듬니다!^^
간화선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나같은 중생들이 짊어지기 힘들면 염불선은 어떤지요?
하하하하하! 어려우니까 선이지요! 길은 외줄기가 아닙니다.
세상에 길(道)은 천만갈래 셀 수도 없지요!
모로가도 서울만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하하하하하!
예! 처음에는 단전호흡을~
단전호흡이 익숙해지면 초심자 화두 16개~
초심자 화두가 끝나면 본칙 무문관 48칙~
48칙 중간 중간에 선시 찾아내기 10개~
48칙이 끝나면 마무리 화두 11개~
마무리 화두가 끝나면
무문관 재독, 삼독을 하죠!
재독, 삼독이 끝나면 벽암록 100칙에 도전 합니다!
화두라는 망상으로 다른 망상이 일지않게 하는 공부죠!
이리 하는데, 10년 정도로 잡습니다~
죽을 때 까지 하는 공부랍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