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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하나님의 언약 구속사(1)
-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
성경을 보는 관점은 ‘하나님의 구속사’와 이것의 계시 방법인 ‘언약사’, 곧 ‘구속 언약사’, 또는 ‘언약 구속사’에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인 구원 사역을 하나님의 언약을 좇아서 오시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씀하여 주시는 까닭이다. 이때 그리스도의 구속은 창세 전에 계획되어져서 준비되고 실천되어져 온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따른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은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사의 신적기원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사를 알아가고자 하는 데 있어서는 먼저 선행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이해하고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여기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신적작정)을 다루고자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그 자체에 의해서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관련하여 있는 것들과 함께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 신적작정
성경의 총체적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 주제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구속사’ 곧, ‘언약 구속사’에 의해 점진적 발전 속에서 성취를 향하여 진행되어져 왔고, 최종적이고도 온전한 완성을 두고 있다. 이때 하나님 나라의 언약 구속사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따르고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은 ‘신적작정’(decree)이란 용어로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의미한다. 성경을 교리적이고도 신앙고백적으로 정리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제 3장 1, 2항에서 신적작정을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장차 있을 모든 일을 작정하셨으며, 따라서 장차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를 알고 계신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에서 전능하심과 전지하심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그 자신이 뜻하신 바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신 계획에 의하여, 장차 있을 모든 일을 자유롭고 변치 않게 작정하셨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며, 피조물들의 의지가 침해당하지 않으며, 제2원인들의 자유나 우발성이 제거되지 않고, 오히려 확립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 1항)
“하나님께서는 모든 가정된 조건들에 근거하여 장차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를 알고 계신다. 그렇지만 그는 그가 어떤 것을 작정하실 때, 그것이 장차 있을 것으로 예지(豫知)하셨거나, 또는 그 가정된 조건들에 근거하여 일어날 것으로 예지했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을 작정하신 것이 아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 2항).
‘신적작정’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역인데, 이 사역이 하나님의 시간적 사역으로 구체화되고 전개되는 것이 하나님의 ‘세상 창조’와 ‘섭리’이다. 신적작정은 전적으로 세계와 인간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 관계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적 방법으로 되어 진다. 칼빈은 신적작정이야말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성의 가장 깊은 데서 나온 이론으로 이해하였다.
신적작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예정 교리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 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3-12).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딛 1:2)
"이 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 9:11-13).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롬 16:25)
이 여러 성경구절에서 보듯이 우리의 구원은 창세 전에 있은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의 작정에 의해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을 일으키는 기인(基因)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라 불리는 신적작정(神的作定; decree)에 있다.1)
이때 ‘신적작정’은 천사와 인간과 관련하여, 특히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와 관련하여서는 하나님의 ‘예정 교리’에 잘 나타난다. 이를 다루고 있는 돌트 신조(*돌트 교회법)2)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택이라는 것은, 이 세계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이 그들의 최초의 상태로부터 타락하여 죄와 파멸의 결과를 낳게 됨에 따라 그리스도, 즉 하나님께 영원부터 중보자로 또한 택한 자의 머리와 구원의 기초로서 세우신 그 분 안에서 구원받은 자의 일정한 수를 뽑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선하신 주권에 따라 은혜로 인하여 된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목적이 되었다. 택함 받은 자들이 그 본성에 있어서는 그 밖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거나 더 값어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똑같은 비참한 속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주셔서 그를 통하여 택함 받는 자들이 구원을 얻도록 하셨다.”(돌트 신조 제7장)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어떤 사람과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고,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 3항).
“이 천사들과 사람들은 이와 같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히 그리고 변치 않게 계획되어 있는 것이며, 그래서 그들의 수효는 확실하고 확정적이므로, 그것은 더하거나 뺄 수가 없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 4항).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전에, 자신의 영원하고 변함 없는 목적과, 그리고 그의 뜻의 비밀한 계획과 선하신 기쁨을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어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셨으며, 오직 그의 거저 주시는 값 없는 은혜와 사랑에서 그렇게 선택하신 것이며, 믿음 또는 선한 행위, 또는 그들 안에 있는 인내, 또는 피조물 안에 있는 어떤 다른 것을, 그를 감동시켜 선택케 하는 조건들이나 원인들로 미리 보신 것 없이 하신 것이며, 그리고 모두가 그의 영광스런 은혜를 찬미케 하려고 선택하신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 5항).
신적작정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이 신적작정에 의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는데 어떤 천사들과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하셨으며, 또한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하셨다.
이처럼 신적작정에서 나오는 예정 교리는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진다.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룰 구원의 예정이고, 다른 하나는 멸망의 예정이다. 이때 이 예정과 관련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에 이를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고, 또한 영원한 멸망에 이를 사람들을 유기하셨다. 이것을 ‘이중예정’(二重豫定), 또는 ‘쌍방예정’(雙方豫定)이라는 용어로 말해져 왔다. 인간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든지, 아니면 영원한 멸망에 이르든지, 어떠한 궁극적인 결과에 이르는 그 모든 과정은 예정 교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신적작정에 의한다.
우리는 이에 대한 예를 ‘야곱과 에서’에게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다(롬 9:13). 그것은 야곱은 선택받았기 때문이요 에서는 유기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토기장의 비유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향하여 당연한 권리를 행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다루어진다(롬 9:19-24).
칼빈은 잠언 16장 4절의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선택과 유기의 동시적 궁극성을 말하였다. 즉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것과 영원한 멸망에 이르는 이 종말적 영원의 결과는 시원적 영원(始源的永遠)인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의 예정과 완전 일치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이 사실을 깨닫고서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서신 초두에서 이를 언급하였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3-1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 6항도 이와 동일한 언급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하신 자들을 영광에 이르도록 정하신 것 같이, 영원하고 가장 자유로운 자신의 목적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되는 모든 방편들을 미리 작정하셨다. 그에 따라 택함 받은 사람들은 아담 안에서 타락했으나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속을 받게 된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이 예정하신 선택의 직접적인 목적은 택함 받은 사람들의 구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곧 신적작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받으시는데 있다.
어떤 사람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선택된 예정인 것과 영원한 멸망에 이르도록 유기된 예정인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은, 그들 각 사람에게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에 의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할 사람으로 선택한 자를 외적 소명(복음을 통한 부르심)과 내적 소명(중생/거듭남)에 순종하게 하신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할 사람에게는 불순종으로 거부하게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예정 교리를 극도로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는 반칼빈주의자들인 알미니안주의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하셨다는 사상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하셨다는 사상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하게 배척한다. 그래서 그들은‘만인구원론’을 주장하면서,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하시기로 예정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의 마음이 믿고자 하는 생각과 의지를 갖지 않았기 때문으로서 순전히 그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하나님의 예정 교리와 관련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 되시기 때문에 사람이 죄를 짓고 사망에 이르는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또한 하나님은 본성이 선하신 분이신 데 어떻게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사람을 지옥 형벌에 집어넣는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느냐고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생각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니까 천국에 간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만일 이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기의 의지와 노력과 그 공로에 의한 믿음에 의해서 천국에 가는 것으로 알고 그렇게 믿기 때문이라고 하면, 불행하게도 그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8-1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 간다.”는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로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신의 행위에 둔다. 믿음을 ‘하나님의 은혜’요 그래서 ‘하나님의 선물’로 말하는 사람도 하나님을 의존하는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실제는 자기의 의를 위하여 믿음 행위를 갖는 것에서 소유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천국 가기 위한 한 방법과 수단으로 온갖 믿음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어 천국 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이신 하나님의 의를 은혜로 힘입게 하신 데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 섬김으로서 이다.
칼빈(John Calvin)은 하나님의 예정 교리에서 ‘유기’를 라틴어로 ‘decretum horrible'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라틴어 horrible은, 영어로 ‘소름끼치는’을 뜻하는 horrible을 의미하지 않고, ‘경외심을 일게 하는’을 뜻하는 awe-inspiring을 의미한다. 칼빈은 ‘유기’의 작정을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을 일게 하는 두려운 작정’이라고 말했다.
“다시 내가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기 때문이 아니라고 하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어린 자녀들과 함께 아담으로 타락으로 말미암아 돌이킬 수 없게 영원한 사망에 처하게 하는 일이 어떻게 해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점에 관해서 하나님의 신적작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혀는, 모든 다른 점에 관해서는 너무도 말이 많으나, 벙어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유기의 작정이 참으로 경외심을 일게 하는 두려운 작정임을 나는 고백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인간의 장래의 최후의 운명을 미리 알고 계셨다는 점과, 그 운명이 하나님 자신의 작정에 의하여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미리 알고 계셨다는 점입니다”(기독교 강요, Ⅲ xxiii, 7).
칼빈이 ‘유기’의 작정을 ‘경외심을 일게 하는 두려운 작정’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성 때문만은 아니다. 미래에 관한 사실을 사람이 알 수 없다고 하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유기’는 모든 사람이 진정 하나님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유기 되어 영원한 멸망에 처함으로 지옥 형벌을 당하는 자가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만을 경배하지 않은 자기의 행위에 대한 슬픔과 후회 속에서 하나님께 경외심을 갖게 된다. 이런 면에서 ‘선택’의 작정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다고 하면, ‘유기’의 작정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 7항은 이에 대해 언급한다.
“하나님은 피택자 이외의 나머지 인류에 대하여는 헤아릴 수 없는 자신의 뜻의 계획에 따라서 영광을 받으실 목적으로 피조물들을 다스리시는 주권적인 능력을 행사하여 긍휼을 베풀기도 하시며 거두기도 하시고 또한 그들을 간과하시기도 하시며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을 버리시며 수치와 진노를 당하도록 작정하셨으니, 이는 자신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미케 하려 하심이다.”
신적작정과 하나님의 언약과의 관계성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으로 말해지는 신적작정에 품어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택정한 백성에게 나타내 알게 해주시고 그 믿음에 있게 하시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실 일인 구속사와 관련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실 일인 구속사에 대해 가지신 계획을 언약이란 방식에 의해서 세상에 드러내실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부터 언약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시는 언약의 내용을 말씀해 주신 것에서, 그리고 그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과 언약을 세우시는 일을 하신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다만 흙의 형상뿐인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함께 하시는 사람을 등장시켜 그와 언약을 맺어 나가셨다.
이 하나님의 언약에는 성경의 총체적인 주제인 하나님 나라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로부터 구원하실 구원자를 보내실 메시야가 약속되어 있다. 그리고 에베소서 1장 4-6절에서 창세 전에 하나님이 가지신 영원한 작정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계획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실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말해지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언약의 전개를 통해서 행해지고 실현 된다. 즉 하나님의 구속사는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속사는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서 비로소 이해되어지고 알게 된다. 하나님의 언약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구속사는 하나님의 언약 밖에서 말해지게 되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오해하여 잘못 알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성경을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설명하는 것에서 설교하지 않고, 성경을 임의적인 주제나 제목, 사건이나 인물, 교훈 등의 따위에 초점을 두고 설교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의에서 벗어난 설교자의 의도에 의한 설교에서 보아 오고 있다.
성경의 첫 시작인 창세기의 주제와 중심 사상의 견인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언약
성경의 첫 시작인 창세기 1장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에는 ‘날’을 비롯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 등에 대한 여러 가지 고려하고 연구해야 할 신학적 문제가 있으나,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중심 사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에게 선포하신 내용에 담겨져 있고 의미하고 있는 바인 ‘창조 언약’이다. 즉, 하나님께서 무엇을 우리에게 계시하여 알려주고자 해서 창조 사역을 기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을 창세기 1장 26-28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며 선포하신 하나님의 의도에서 보게 된다.
창세기 1장에서의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1절과 2절은 3절 이하를 위해서 있게 되는 것이며, 3절부터 25절까지의 다섯째 날까지의 창조 사역은 여섯째 날의 창조 사역인 사람의 창조가 있게 하심으로 해서 완성에 이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조한 사람을 향해서 5개의 창조동사 명령인 ‘너희들은 생육하라(열매 맺으라)’, ‘너희들은 번성하라’, ‘너희들은 충만하라’ , ‘그리고 너희들은 그것(땅)을 정복(지배)하라’, ‘그리고 너희들은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에 기어 다니는 모든 살아 있는 것을) 다스리라’를 말씀하셨다.
29절에서는 하나님은 이를 위해서 모든 땅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식물과 그 안에 열매가 있는 모든 나무를 사람에게 줌으로 해서 그것을 그들이 식물로 가질 것을 말씀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이 말씀대로 있게 되는데, 이는 장차 하나님께서 사람과 언약을 맺어나가시는 것에서 단지 사람(아담)이 사람(자손)을 내고 크게 많아지고 온 땅에 가득차 가며 자연을 소유하고 지배해 가는 것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인 ‘하나님의 나라’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창세기 1장 28절에서의 5개의 창조명령동사를 사용하여서 하나님께서 선포(선언)하시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드러내어 알게 해주시면서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실 약속에 사람을 두시고 이후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언약과의 연계에 의해서 그 성취를 해나가실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창세기 1장 26-28절에서의 사람 창조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이 계시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즉, '창조 언약'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사람의 창조와 더불어 창조명령에 나타내시고 있는 창조언약에서 약속과 성취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아야 한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의 총주제로서 이것을 이루실 하나님과 함께 중심 사상을 이루고 있다. 즉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나라를 이루어가고자 하시는 것인지를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창세기의 주제요 중심 주제를 이끌고 가는 견인의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언약은 신약성경의 마지막 권인 요한계시록의 주제요 중심 주제인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의 성취로 있는 ‘새하늘과 새땅’으로서의 ‘새예루살렘’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끝난다. (*)
*본 글은 구약신학 강의안, ‘이천우, 「하나님의 언약 신악Ⅰ : 창조언약에서 노아언약까지」 중에서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사의 신적기원 – 신적작정’에 일부 보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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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의 전개상 이후 글에서는 신적작정이란 용어를 주로 사용하되 필요할 경우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라는 용어도 병행하여서 사용한다.
2) 통상 ‘돌트(도르트) 신조’(Dort Confession or Canons of Dort)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돌트 총회(개혁교회 회의)에서 결정하여 선언한 ‘돌트 선언(법령)’인데, 공식적인 명칭은 ‘항론파에 반대하는 5개 조항’ 또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에서 있은 주요 5개 조항 교리 논쟁에 대한 돌트 총회의 결정’(돌트 신조 서문은 “전술한 다섯 개 조항 교리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참된 견해와, 하나님의 말씀에 불일치하여 거부된 잘못된 견해에 대한 판단”이라고 되어 있음)으로, ‘돌트 표준교리(교리강령)’ ,‘돌트 교리(교의)법’이 보다 적절한 표현이다. 돌트 신조는 1618.11.13.-1619.5.29까지 계속된 네덜란드 돌트에서 개최된 개혁교회 회의에서 알미나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의지 Free Will, 조건적 선택 Conditional Election, 보편적 속죄 Universal Atonement, 저항[거부]할 수 있는 은혜 Resistible Grace, 조건적 인내/견인의 불확실성 Conditional Perseverance 또는 은혜의 상실(은혜/구원으로부터의 떨어짐) Falling from grace를 배척하고 칼빈주의 5대 강령(전적 타락 또는 전적 부패 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제한적 속죄 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총 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the Saints)의 확정에 있은 개혁교회의 교리 중심 체계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예정(선택과 유기), (2)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를 통한 인간의 구속, (3) 인간의 타락 (4) 하나님께로의 회개와 그 태도 (5) 성도의 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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