쫒겨 다니다
달 속에 숨어버린
반딧불이
- 료타/ 일본 하이쿠 시인
1.
하이쿠는 반쯤 열린 문, 활짝 열린 문 보다 반쯤 열린 문으로 볼 때 더 선명하고 강렬합니다. 하이쿠는 省略의 시,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餘白과 沈默으로 마음을 전해주며 영원 속의 순간을 포착, 순간 속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문학이며 꽃과 돌의 얼굴에서 深淵을 보고 숨 한 번의 길이에 깨달음을 담고 있습니다.
2.
주지하다시피 오늘날에는 우리 시 문단에서 정서상 “짧은 시”에 대한 선호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10년 이후 짧은 시로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 된 경우는 거의 없음이 이를 반증(反證)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변의 流行化 된 인식은 사견이지만 신춘문예 등단을 꿈꾸는 신인들의 응모 시나 이를 평가하는 기준들의 가늠자가 대체로 일정한 길이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시류라는 견해도 있긴 합니다만 어째튼 정답은 없지만 하이쿠와 관련하여 省略과 餘白의 미학에 대해 깊이 생각 해 볼 일입니다.
3.
행간을 살핍니다. “빛”의 내면을 들여 다 봅니다. 생명체가 발하는 빛은 살아 숨 쉬는 심오한 호흡과 미세한 감정의 떨림의 파장(波長)이 오색 프리즘으로 굴절되어 투사되는 신비한 에너지를 느낍니다. 빛 자체가 살아 있는 언어(言語)로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겠지요. 달빛은 어떨까요? 이태백이 호수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지게 한 것은 달빛의 투영(投影)이겠지요. 아님 술잔을 들어 달을 맞이하며 그림자에 비쳐진 달을 친구삼아 만취의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달빛의 유혹(誘惑)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인이 접할 수 있었던 하이쿠의 시상은 바로 이상(보름달)과 현실(반딧불이)의 교감에 대한 신선한 착목이 아니었을까요?
4.
작은 생명체 반딧불이의 은은한 빛이 밝고 큰 신비스런 그 달빛 속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과연 우리는 삶이란 질곡 속에서 고난과 역경에 처했을 때 어둠과 빛 중에서 어디로 우리 몸을 숨길까요? 쫒겨 다니던 반딧불이는 그런 우리 인생 삶의 자화상이며 투영입니다. 반딧불이가 달 속으로 숨어버린 것은 어둠보다는 빛 속으로 그것도 자신보다 밝고 큰 빛 속으로 몸을 숨긴다는 이 역설의 시학을 보여 줍니다. 어찌보면 그만큼 인생한계에 대한 극복의 의지를 보여주는 화자의 절실한 선언(宣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전해주는 료타 시인의 이 하이쿠에서 餘白과 沈默의 미묘한 맛을 다시금 느껴봅니다.<悳泉>
첫댓글 그래요.
디카시는 호기심을 한 껏 부추기는 반 반 쯤 열린 문이죠.
멋진 시평 잘 감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