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소통자 레이건의 '키퍼 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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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탄생 100년주년을 맞아 수퍼보울 결승전이 겹쳐 미국은 하나가 되었다
일요일인 2월 6일(현지시간) 미국이 두 개의 행사로 들끓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그리고 미국 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인 수퍼보울이었다.
수퍼볼이 열리는 텍사스주 알링턴 카우보이스 스타디움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비디오가 방영됐다.
수도 워싱턴DC에선 상원의원들이 연단에서 그를 기리는 연설을 했다.
캘리포니아에선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록그룹 비치 보이스가 추모 공연을 펼쳤다.
'위대한 대통령'을 칭송하는 행렬엔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오바마 대통령도 가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레이건을 "미국의 궤적을 바꿔놓은 대통령"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지난해 11월 실시된 갤럽조사에서 미국인들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레이건 대통령을 케네디 대통령 다음으로 지지했다.
그렇지만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그의 경제정책이 재임 시에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8년간의 집권 기간 동안 단 2년을 제외하곤 매년 세금을 늘렸다.
그의 재임기간 중 평균 지지율은 52.8%로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보다 낮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별로 인기 없다고 생각하는 린든 존슨과 조지 H.W. 부시 대통령보다 못하다.
하지만 그의 인기는 퇴임 이후 1994년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꾸준히 올라갔다.
그는 두자릿수가 넘는 인플레, 오일쇼크로 수㎞씩 늘어선 주유소 앞에서 허덕이던 미국 경제를 부활시켰다.
신뢰를 잃은 미국 국방을 강화해 소련의 깃발을 끌어내렸다.
그러나 재임 시 그를 지지했던 미국인은 절반 정도였다.
세금, 큰정부, 국가안보 등과 관련에 '선택의 순간'에 보였던 그의 결단은
오히려 그가 세상을 뜨고 난 후에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갈수록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큰 정부를 비판하고 시장에 대한 신뢰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킨 보수주의 경제철학의 실천자로 유명하다.
역사의 줄기를 바꿔놓은 큰 업적 때문에 레이건 대통령이 실제보다 과장된 신화로 그려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레이건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인사들조차 그가 '위대한 소통자'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는 문어(文語)보다 특히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구어(口語)에 강했다.
스스로를 농담의 소재로 삼아 격의 없이 국민들에게 다가가면서도 그의 신념을 전염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총격을 받아 쓰러졌을 때 의사들에게 "당신들이 모두 공화당원이길 바란다"고 유머를 던졌지만,
소련과 핵무기 폐기 협정을 진행할 때는 "신뢰하지만, 검증하라"며 간결하고 단호한 메시지를 전달한 '소통의 달인'이었다.
시사매거진 타임은 "아이콘이 되기 전 레이건 대통령은 역설의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온화한 근본주의자' 혹은 '보수주의 혁신가' 등 통념을 깨는 역설의 정치를 시도했다.
그가 역설의 정치인이 된 것은 위대한 비전을 타협을 통해 현실정치에서 구현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숀 윌렌츠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레이건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신중한 사람이었다"며
"통치에는 타협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했고, 막후에서 자신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만 추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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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보울이 열리는 일요일을 ‘수퍼 선데이’라고 지칭한 예년과 달리
미국인들은 이날을 ‘기퍼 선데이(Gipper Sunday)’라고 부르며 축복했다.
‘기퍼’는 레이건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다는 자신의 애칭이다.
할리우드의 2류 배우였던 레이건은 1940년 ‘누트 라크니’란 영화를 통해 명상을 얻는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이 노터데임 대학 풋볼팀 비운의 선수 ‘조지 기퍼’였다.
죽음을 앞둔 기퍼는 결승전에 나서는 동료 선수들에게 “이 기퍼를 위해 한 번만 더 이겨달라”는 말을 전한다.
레이건은 재선에 도전한 84년 ‘기퍼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세요’를
선거 슬로건으로 정해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기퍼 선데이’에 되돌아온 레이건으로 인해 미국 정치는 스포츠 축제를 넘어 소통과 화합의 메시지로 넘쳤다.
특히 공화당 출신 전직 대통령 찬양에는 민주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앞장섰다.
오바마 는 특별성명을 내고 “레이건은 국민과의 소통에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굳은 신념가였다”며
“그가 소통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심어준 확신과 낙관이야말로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레이건은 미국인들에게 근면과 개인의 책임이라는 가치를 다시 일깨워줬으며,
생각이 다른 민주당 의회 지도자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마음을 열고 대화해 나갔다”고 말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위대한 소통자’로 불리는 레이건을 한껏 칭송한 것이다.
오바마는 이날 백악관으로 민주당·공화당을 망라한 정치인들과 주요 각료, 유명 인사 등을 초청해
수퍼보울 경기를 TV로 함께 관전하는 파티를 열었다.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연고지인 펜실베이니아주 팻 투미(공화) 상원의원과 밥 케이시(민주) 상원의원,
그린베이 패커스의 연고지인 위스콘신주 리드 리블(공화) 하원의원 등이 오바마 옆에서 맥주를 마시며 수퍼보울 경기를 즐겼
다. 파티 음식은 치즈버거와 감자 칩, 피자와 버펄로 윙 등 이었다.
팀 연고지인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생산된 잉링 맥주, 위스콘신주의 힌터랜드 맥주가 곁들어졌다.
수퍼보울이 통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의식한 준비였다.
또 레이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은 이날 캘리포니아주 레이건 기념도서관에서 열렸다.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기념도서관에는 21발의 조포가 울려퍼지고
F/A-18 호닛 전투기 4대가 주변을 선회 비행했다. 국가원수급에게 행해지는 최고의 예우다.
특히 호닛 전투기는 그의 이름을 딴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에서 출격해 의미를 더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를 비롯,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한 각료들과 지인 등
1500여 명은 이날 그를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평소 공식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89세의 낸시 여사는
이날 붉은색 옷을 입고 해병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추모식장에 들어섰다.
낸시 여사는 초청객들을 맞으며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로니(레이건의 애칭)가 여러분을 보고 기뻐할 것”이라며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당신의 100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있어요. 생일 축하해요. 로니”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서쪽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시미밸리는 레이건이 영면한 곳이다.
그의 유해는 그의 뜻에 따라 영화배우 시절 자주 말을 타고 경치를 감상했던 기념도서관 인근 동산에 안장돼 있다.
레이건 퇴임 뒤인 1991년 문을 연 기념도서관에는 5000만 쪽에 이르는 문서,
150여만 장의 사진과 수많은 영상 자료가 소장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 레이건을 태우고
211차례에 걸쳐 63만 마일(약 101만3000㎞)을 날았던 이 비행기가 실내에 전시돼 있다.
이름은 도서관이지만 레이건 재임 시절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전시물이 가득 찬 박물관이다.
2년에 걸친 새 단장을 마친 기념도서관은 7일 다시 문을 열었다.
우리에게도 전직대통령이나 위인들에 대한 이런 예우들이 반드시 시간이 되면 갖춰질것임을 믿는다.
<부기:레이건을 기리는 미국의 축제의미를 묶어서 소개한것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