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궁터...이 별궁터가 어딘지 아시는 분은, 존경할만한 분일 것이다.
비록 아무것도 아닌 저라지만... 도무지 몰랐던 곳이니, 한가지씩 서울을
알아가는 것도 참 유익한 일이라고...이런 표지가 몇년 사이 부쩍 많아져서
사대문안을 걷는 일이 상당히 즐겁다. 곰곰히 기억을 더듬어보면 국사시간에
배운 사건이요 이야기들이다. 물론 남별궁터도.
조선호텔에 오랜 친구 세명의 오붓한 모임이 있었다. 조금 일찍 왔기에 환구단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 때는 원구단이기도 했다가 환구단으로 알고 있다.
높은 빌딩에 묻혀서 쓸쓸한 환구단이 꼬마전구 병정들의 호위을 받고 위엄을
보이고 있다.
아! 환구단이 화려해보여서 기분이 좋다. 조선호텔과 통하는 저 쥐색나는
벽돌 3 아치 문도 우아하다. 그러나 정문은 아니다. 1967년 웨스턴 조선호텔이
건설될 때 철거된 붉은 정문이 강북구 우이동 그린파크호텔 터에서 발견되었다가 42년만에
호텔 옆 시민공원으로 돌아왔다는 연합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그 문은 내가 본 기억이 뚜렷한 단청과 기와에 3개의 나무문이 달려 있었다.
호텔을 통하지 않고 골목 계단으로 올 수 있는 통로가 있었는데, 그 어디쯤 세워졌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만한 면적의 장소가 없을텐데...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문은 아주 낮아서 '머리조심'이라 방을 붙여놓았다. 왜 낮게 만들었냐하면,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이므로 경배드리는 마음으로 몸을
낮추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화강암 단위에 石鼓를 세워두었다. 처음 본 느낌이다. 블로그 하기전에 몇번
왔으나 어둔 기억의 저편이다. 1902년, 광무 6년에 고종황제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조형물이다. 제천의식을 할 때, 사용하던 악기를 형상화 한 것으로 돌북의
옆면에 새긴 용무늬는 당시 최고의 조각 예술로 평가 된다고 한다.
내가 찍어 온 사진이 너무 흐려서 인터넷에서 빌려왔음.
조선조 말기의 조각을 이해하는 최고 작품 중 하나라니 도드라진 솜씨를
잘 보시라고....
환구단은 1897년 고종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즉위식 등을 거행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하지만 일제의 조선철도국이 1914년 그 자리에 조선호텔(철도호텔)을
세우면서 일부가 헐렸고, 1967년 같은 자리에 조선호텔이 더 큰 규모로 재건축되면서
위패를 봉안하던 8각 황궁우와 석고(돌북)단,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을 제외한
다른 시설들은 모두 철거됐다. 사진에 보이는 석조기둥 몇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환구단으로 알고 있는 이 팔각 정자는 위패를 봉안하던
황궁우(皇穹宇)이다. 환구단이 조성된 2년후인 1899년에 지어 하늘과 땅, 별, 천지만물에
깃든 신위들을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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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의 옛 모습(위키백과) |
우리나라에도 오랜 제천의식 전통이 있었다. 그런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자의 권한이라하여 중국이 못하게 하므로 세조이후 없어져버렸다. 세조의 왕위
찬탈 약점에 중국이 꼬장하게 군것 같다. 고종에 이르러 자주의식 주체주의로
황제가 되고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본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것은 천황의 권한이라 하여,
못하게 하더니, 1914년 환구단을 헐고 그자리에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을 지었다.
천자와 천황이 우리를 못살게도 굴었다.
을지로입구쪽 직장을 다닐 때, 이 환구단에 와 보고 참 의아하며 마음이 찡했던
적이 있었다. 외세에 나라가 무척 어려웠을 때, 무슨 경황에, 이렇게 작지만 화려한
건물을 지었을까? 하늘의 힘을 빌어 꺼져가는 조선을 지켜내려는, 안까님 아니었을까?!
이 모든 내력과 사정을 다 아는 해태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다 헤아려보진 못했지만 해태가 여러마리였다. 계단 가운데 엎드린 석수도
용이 아닌 해태로서 화마로부터 지키고자 했던 환구단이었다.
당시 조선국은 거만하게 굴던 중국사신을 위한 남별궁을 허물고, 그자리에
환구단을 세웠다. 광무 원년인, 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환구단에 나아가 천지에 고하는 제사를 드린 후
황제에 즉위했다고 한다. 환구단은 천자나 천황과 대등한 자격으로 서기 위해 황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한편 서구 열강들에게 독립적인 국가상을 보여주고자 했던 정치적ㆍ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이 웨스틴 조선호텔이 들어설 때 지하통로의 반도조선 아케이드 상인들이
반대하고, 환구단터가 더 줄어드는데 말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역사의식
부족도 있었으나, 서울시내엔 외빈이 묵을만한 고급호텔이 한 곳도 없어 필요할
때였다.
이제 조선호텔 지하 1층에 들어왔다.
뷔페식당 예약된 자리에 먼저 온 친구들을 반가히 만났다.
너무 많이 먹었다...
북극 빙하를 형상화한듯한 호텔로비에서 사진 한장씩을 찍었다.
내년에는 좀더 자주 만나기로 했지만, 너무 바쁜 그들이라 또 그렇게
한해를 넘기게 될 것이다. 속절없이 또 한해를 보낸다.
첫댓글 환구단의 이력을 읽으면서 이 다음에 한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나다. 세월이 너무 빨리 가서 머리가 띵하네요.금지님등 깃털 아래서 새해 출발 퍼래이드가 열리나요 추억의 좋은 밤입니다....
아주 중요한 역사를 알게 됐네요...감사합니다.
소공동의 조선호텔 옆에 그냥 풍치를 위해 옛 정자가 있는 줄 알았더니, 중요한 역사적인 의미를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6시간 이상의 비행기 여행이 금지된 나의 건강상태로 아직도 california 외에는 금족령이 내렸는데
금지아우 처럼 서울안의 구경도 고루하면 구경거리가 많지요.환구단 처음들어보는 이름입니다.
감사합니다.금지씨!
상경한지 38년이 되었으나 변두리 외곽에만 살아온 터라,4대문안에 들어갈 일이로 없이 조선호텔엔 못가봤습니다.'환구단'에 대한 역사적 의미도 알게 되었고,약소국의 비애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서울만 꼼꼼하게 돌아 볼려고 해도 시간이 많이 들겠습니다.
언니 덕분에 소중한 역사적인 곳 구경 잘 했습니다.
금지 아우님 역사물의 리포트가 되어야겠어요 ,어디를 가도 똑 뿌러지게 사진 설명 고맙고 뒤늦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