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일터,
정부가 사회서비스 직접운영으로 책임져라!
그녀는 그날을 생각하면 무서워서 몸이 굳고 숨을 쉴 수가 없다. 사건 이후 두 해가 바뀌었지만 그녀의 지옥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그녀는 장애인활동지원사로 파견되어 일하다가 장애인이용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사건 직후 회사에 사실을 알렸지만 관리자는 한가하게 점심 타령을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나타나서는 가해자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다. 회사는 그녀에게 괜찮냐는 위로 한 마디 없이 수익이 줄게 되었다고 그녀를 힐난했다. 그 후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무급휴직에 이은 해고였다. 그녀는 그 사건 이후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살하는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억울해서”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에게 고통은 1차피해 그 순간에 끝난 것이 아니다. 회사로부터 방치되고, 일이 끊기고, 해고되는 그 시간 모두가 피해의 연장이었다.
그녀에게 산재인정 결정은 “당신의 피해는 회사의 책임”이라는 말과 같아서 큰 위로가 되었다.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성폭력피해로 산재 인정을 받은 것은 장활사업 시작 후 처음이다. 그런데 슬픈 현실은 활동지원사가 성폭력피해를 당하고 산재신청을 한 것 또한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왜? 성폭력 피해가 처음이라서? 이사건 피해자가 회사로부터 당한 부당한 처우는 특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를 고발하는 순간 피해자는 일이 끊어지고 업무재배치는 힘들어지고 종국에는 퇴사로 이어지는 과정을 겪게 된다. 가해자에게는 여전히 이성이 매칭되고 서비스는 전과 다를 바 없이 계속되는 걸 지켜보아야 한다. 피해자는 숨고 가해자는 당당하다. 장애인활동지원은 인권단체, 사회단체 등 ‘비영리단체’가 대부분 수탁자들이지만 이익 앞에서 영리와 비영리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사용자들은 평소에는 인권을 외치지만 노동자의 인권은 외면한다.
산재승인 과정은 그녀에게 또 다른 고통의 시간이었다. 일반병원, 산재협력병원, 근로복지공단 병원에서 고통의 순간들을 되풀이해서 증명하고도 몇 개월을 불안하게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그 와중에 공단에서는 가해자의 법정 판결을 계속 물었고 가해자의 구속 판결 이후에야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사건 발생 15개월, 신청서류 접수 후 장장 7개월이라는 기간이 걸렸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거나, 유죄판결이 내려지지 않았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성폭력 사건 피해 신고율은 1.9%밖에 되지 않고, 신고 이후의 삶은 지옥이 된다. 법원 판결이 어쩌면 산재승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까 라고 피해자는 묻는다. 산재승인의 요건으로 가해자의 법정 양형이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산재신청은 꿈도 꾸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 성폭력피해에 대한 산재판정은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지원사노조는 정부에 성폭력 사건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여러 조치들을 요구해왔다. 지난 해는 위 사건 피해자가 “나와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며 복지부를 직접 방문해 대책 마련을 호소했으나, 2023년 지침에 단 한 줄도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가 이처럼 무책임한 이유는 민간위탁과 바우처 덕분이다. 이용자에게는 이용권인 바우처를 주고, 민간에는 운영을 위탁함으로써 정부는 자신들이 할 일을 시장에 떠넘겼다. 그러고는 이용자에게 좋은 서비스가 제공되는지, 노동자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지 무관심한 채, 오로지 부정수급 색출에만 열을 올린다.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이용자에게 성폭력을 당해도 방치되는 일터는 공공성이 결여된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필연적 결과다.
오늘은 세계여성의날이다. 세상은 성별에 달라도 평등한 듯 보이지만 성차별은 곳곳에 만연해 있다. 115년 전 미국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참정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등을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차별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2023년 성폭력으로 안전한 일터를 요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외침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정부에 요구한다.
- 장애인활동지원사의 노동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권을 행사하는 정부가 진짜 사장이다. 지금 당장 성폭력으로 안전한 일터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라.
-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직접 운영함으로써 사회서비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다하라.
2023년 3월 8일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