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반의 ‘소천정(小泉亭)’을 찾아서/ 안성환
입산초등학교 총동문회 운영위원회를 마친 뒤, 우리 일행은 가까운 곳에 자리한 의령 신반의 “소천정(小泉亭)”을 찾았다. 오래전부터 이름만 들어왔던 곳이었지만, 직접 마주한 소천정은 기대 이상으로 아담하고 운치 있는 정자였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한 세기를 넘는 시간을 묵묵히 지켜온 모습에서 깊은 품격과 여유가 느껴졌다.
소천정은 1916년에 건립된 정자로, 올해로 11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고(故) 장만익 선생이 거처하며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던 공간으로 전해진다.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작은 정자 하나에 선비의 삶과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어 그 의미는 더욱 크다.
특히 소천정은 아름다운 정원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20년 10월 21일에는 아름다운 정원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자연보호중앙협의회가 선정한 한국 100대 명수(名水) 가운데 하나인 샘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 샘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고 하니, 생명의 원천이자 소천정의 상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맑은 샘물이 조용히 흐르는 풍경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맑게 씻어 주는 듯했다.
정자를 이야기할 때 흔히 차경(借景)과 장경(藏景)이라는 개념을 말한다. 차경은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정자 안으로 끌어들여 감상하는 방식이라면, 장경은 오히려 정자를 자연 속에 조화롭게 숨겨 두어 쉽게 드러나지 않게 하는 배치를 뜻한다. 소천정은 이러한 장경의 미학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숲과 나무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정자는 주변 풍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비로소 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자연이 주인이고 정자는 그 속에 스며든 하나의 일부라는 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소천정은 단순히 풍류를 즐기기 위한 쉼터만은 아니었다. 샘과 물, 숲을 벗 삼아 마음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마하며, 후학을 길러내던 교육의 공간이자 정신 수양의 터전이었다. 조용한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세상을 향한 뜻을 키워 나갔던 선비들의 삶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정자의 작은 거실위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초서체로 쓰인 ‘경류(京流)’라는 글씨다. 정자의 현판으로는 매우 드문 형태인데, 그 의미가 더욱 인상적이다. 그 뜻은 아마 작은 샘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마침내 큰 강을 이루어 세상으로 흘러가듯, 작은 배움과 작은 실천도 꾸준히 이어지면 결국 세상을 밝히는 큰 힘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장만익 선생의 삶의 철학이기도 했을 것이다. 거창한 일보다 작은 선행을 소중히 여기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르치는 배움이 결국 더 큰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이 이 글씨 속에 녹아 있다. 소천정이라는 이름 역시 작은 샘을 의미하지만, 그 작은 샘이 쉼 없이 흘러 큰 강을 이루듯 선생의 뜻 또한 세대를 이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잠시 머물렀던 시간이었지만 소천정은 많은 생각을 남겨 주었다. 세월이 흘러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사람의 올바른 뜻과 배움도 끊임없이 이어질 때 비로소 큰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학문의 정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신반의 소천정은 단순한 옛 정자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었다.
2026년 7월 11일 안성환 쓰다